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30)
EP.630 만남(8)
일단 어떤 일을 벌이면 그 결말이 어찌 됐든 끝이 보이긴 하는 법이다.
내가 이번에 본격적으로 벌인 서량 청소 작업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끝나간다는 뜻.
“어디, 자네는 정말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나?”
“그렇습니다, 대장군! 부디 믿어주십시오!”
“하지만 그대의 창고는 안 그렇다 이야기하는데?”
“…….”
이제는 없으면 살짝 섭섭하게 느껴질 탐관오리와 부패 호족들을 숙청하고,
“재산이 정말 이것뿐이라고?”
“예.”
“…거짓말은 아니군.”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 등장하는 청렴한 관리를 확인하고 그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난 지금도 이런 사람을 볼 때마다 놀랍다니까.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는 상황에서도 제 소신을 지키며 청렴함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라니?
평범한 사람이 주변 분위기에 쉽게 휩쓸린다는 걸 떠올리면 이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일이었다.
원래 인간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세게 받으니까.
저렇게 청렴한 모습을 지키기 위해선 보통 노력으로 안 되지.
물론 단순히 청렴하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능력까지 뛰어나면 좋겠지만….
이건 너무 양심이 없나?
그래, 능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인재가 어디서 쉽게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해야할 터.
하지만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네.
어쨌든 나는 생각보다 훨씬 큰 이득을 얻고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눈앞에 한가득 쌓여있는 재물들을 봐라.
이것들 전부 부패한 호족과 관리들의 집안을 탈탈 털었을 뿐인데 생겨난 것들이다.
정말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청렴하게 살아온 이들의 재산은 손대지 않았지.
아니, 오히려 훌륭하다는 뜻을 담아 몇 가지 재물과 함께 포상을 내렸다.
물론 그 재물은 한나라를 위해 제 가문의 재산을 선뜻 ‘기부’한 호족들의 것이었다.
어찌나 진심을 담아 기부했는지 눈물까지 보이던 사람이 있더라.
───설마 재산이 아까워서 눈물을 흘리는 건가?
───아, 아닙니다! 단지 제가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 것뿐입니다!
봐라.
본인도 직접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난 전혀 잘못한 거 없어.
그 당시 내게 비리가 적발되고 죄의 경중에 따라 이런저런 짓을 당한 사람이 많았다고 하지만, 그러한 주변 경황쯤은 우리 충성스러운 호족들의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을 거다.
“준비는 전부 끝났습니다.”
“그래?”
지방 호족들의 대국적인 결단 덕분에 칭기즈 칸을 환대할 준비를 마친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제 더 해결할 일이 있나?
서량의 부패한 호족과 그와 붙어먹던 관리들도 한차례 갈아치웠고, 창고에 쓸데없이 보관하기만 하던 수많은 재물도 나라의 국고에 더했다.
또 그들을 처리하는 과정 중 소금 밀수 같은 여타 음습한 사업체들도 정리했으니 치안도 훨씬 좋아졌을 터.
내가 호족들과 관리만 주로 언급해서 그렇지, 그들을 뒷배 삼아 활동하던 여러 범죄자도 굉장히 많이 잡아들였다.
안 그래도 최근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사람이 부족해 허덕이던 상황이었는데 공짜 인력이 이렇게나 들어오다니?
비록 이들을 잘 통제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겠으나, 저렴하게 굴릴 수 있는 인력이 생긴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죄수가 머물 공간과 식사도 추가로 마련해야 하지만 그건 다른 평범한 인부들도 똑같지.
머나먼 타지까지 일하러 온 사람한테 거주지와 밥도 안 내어줄 순 없잖아.
물론 누가 범죄자 집단 아니랄까 봐 그들은 대다수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르르 몰려들어 집단 패싸움만 벌일 줄 알던 놈들이 관군에게 대항한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뭐, 감옥에서 노동만 하며 썩을 순 없다고 달려들던 인물이 대다수긴 했지.
그리고 그런 놈들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노동이 필요 없는 머나먼 곳으로 보내주긴 했다.
지방 호족들에게 돈도 갈취…. 기부받고, 뒷세계에서 쓸데없이 무게 잡으면서 치안을 어지럽히던 범죄자 무리도 소탕한 상황.
…더 할만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진짜로 쉬는 시간인가?
이제 칭기즈 칸이 장성을 넘어올 때까지 시간만 보내면 된다는 걸 깨달은 나는 잠시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기분 나쁘게 웃고 있어요?”
“…….”
비록 근처에 있던 꼬꼬마 군사가 내 표정을 보고 퉁명맞게 쏘아붙이는 일이 있긴 했는데, 휴식을 코앞에 둔 나는 관대한 마음으로 그녀를 응징하지 않았다.
요 며칠간 내가 호족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얼마나 피곤했던 줄 알아?
자리에 가만히 앉아 분위기를 잡으면서 근엄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이제 진짜로 적당한 방에 틀어박힌 다음 온종일 잠이나 자야지.
칭기즈 칸이 약속한 여름이 찾아오기까지 앞으로 며칠.
“또 일 안 하고 빈둥빈둥 노시려고요?”
“…….”
“으브브?!”
계속 날 도발하던 사마의의 볼따구를 잠시 가지고 놀며 응징한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한눈에 전부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벌판.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살랑거리는 풀밭.
살짝 웅장함까지 느껴지는 드높은 푸른 하늘.
“…….”
“대칸, 보고 드립니다.”
안장 위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던 여인은 근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테무진이라 불러.”
“알겠습니다, 대칸.”
분명 말로는 알겠다고 하는데 행동으론 도저히 들어 먹지 않는 모습.
“…….”
“…….”
이에 여성은 자신의 핏빛 눈동자로 눈앞의 남성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불길하다고 일컫는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피하지 않는 모습.
잠시 그와 시선 교환을 하던 여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면모까지 제베(жебе)를 닮을 필요는 없는데.”
“순서가 잘못됐군요.”
여인의 중얼거림을 들은 남성, 수부타이(Сүбээдэй)가 곧장 대답했다.
“제가 제베를 닮은 것이 아니라, 제베가 저를 닮은 것입니다.”
“…….”
“따지고 보면 제가 먼저 대칸을 섬기지 않았습니까?”
아닌 건 아니라며 단호하게 대답하는 모습.
이는 분명 그들의 관계가 평범한 군신 관계보다 훨씬 가깝다는 걸 드러냈다.
“저희가 동쪽으로 보냈던 사신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대칸이라 불린 여인, 칭기즈 칸이 드물게 감정을 드러내자 제 허리춤에 곡도 두 자루를 걸친 강인한 인상의 장수는 말없이 예를 표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감정한 표정이었으나, 아주 오랜 세월 그녀를 섬겨왔던 불세출의 명장은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보좌하는 이가 현재 무언가를 무척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장수는 행동을 조심하면서 주군의 대답을 기다렸다.
“…데려와.”
“예.”
주어가 생략된 상당히 짧은 말이었지만 장수는 어렵지 않게 알아듣고 잠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적발의 여성을 섬기던 장수는 동방으로 향했던 사신 일행을 그녀 앞으로 데려왔다.
여성은 조금 전 강인한 인상의 장수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예를 표하는 사신 일행에게 물었다.
“어땠어?”
“예, 대장군은 대칸의 선물에 만족한 기색이었습니다.”
자꾸 주어를 생략하는 질문에 당황할 법도 했으나, 여인 근처에 자리한 인물들은 이게 일상이라는 듯 매우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또 앞으로 쭉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가자 이야기했으니, 곧 있을 만남에 대해서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래, 알았어.”
남성의 대답에 여인은 매우 만족했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그것 말고 또 다른 정보는?”
“…아.”
그녀가 어떤 의도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잠시 고민하던 사신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대답했다.
“한나라에 포로로 붙잡혔던 저희 동지 모두, 부족함 없는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
자신을 믿고 따르던 이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에 테무진의 얼굴은 살짝 풀렸다.
“그리고 대장군이 대칸께 제시했던 중개 무역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만….”
“…….”
칭기즈 칸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슬쩍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나는 잘못한 거 없어.”
“…….”
“그놈들이 먼저 도발한 거야.”
마치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대장군을 향해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듯한 모습.
“…역시 선물을 더 가져가야 할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도둑이 제 발을 저리는 것처럼 남성이 이야기를 끝마치기도 전에 여인은 주변 장수와 대처법을 열심히 의논했다.
“…….”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 표현이 적을 뿐, 테무진은 충분히 거대한 제국을 이끌만한 인간적인 면모가 존재한다는 걸 병사들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