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31)
EP.631 만남(9)
서량에서 할 일을 대부분 끝마치고 빈둥거리며 시간만 보내기를 며칠.
말만 들으면 백수 한량의 삶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까지 누워만 있을 거야!”
“…….”
“계속 그러고 있으면 몸 무거워진다?!”
내가 좀 게으름을 부리나 싶으면 여포가 귀신같이 날 닦달했거든.
여화를 임신했을 때부터 여포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온갖 가정적인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하던 그녀.
“빨리 일어나! 오늘도 운동해야지!”
“으억.”
기회가 생길 때마다 초선에게 가르침을 받고, 현대 지식이 있는 내게도 육아 관련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던 여포는 어느샌가 가정의 안녕을 책임지는 강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왜, 흔히 어머니는 강하다고 그러잖아.
평범한 사람마저 각성시키는 어머니 버프를 그 여포가 받게 되니 난 운동을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하나, 둘! 하나, 둘!”
“끄으응….”
평소 여포가 호위병들을 어떻게 훈련시키는지 떠올리면 나는 정말 순한 맛이었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였다.
안 그래도 화타가 고안한 오금희는 정자세로 천천히 움직이면 난이도가 있거든.
“자세 틀어졌어! 내가 잡아줄 테니까 다시 하자!”
“…….”
근데 그걸 근육의 자그마한 움직임마저 잡아낼 수 있는 여포가 도와주니 난 싫어도 몸이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하.
이러다가 정말 90세 넘도록 살겠네.
분명 기뻐해야 하는 상황인데 난 지금 왜 이렇게 괴롭지?
“…….”
심지어 서여마저 내게 소리 없이 붙어 체조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으니 피로감은 더욱 늘어났다.
화타가 서여와 여포에게 웬 이상한 책을 넘기도록 두는 게 아니었는데….
일단 그 신의가 넘긴 책이니 분명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할 건강 챙기는 방법이 적혀있겠지.
원래 사람의 몸은 내구도가 존재하는 소모품이라 평소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오래 살 수 있는데, 내 주변 사람들이 이토록 극성이니 적어도 반백 살은 살 것 같았다.
“자세 잡고 숨 고르면서! 하나, 둘!”
“나도 할래! 하나앗! 두울!”
“…….”
허구한 날 아버지가 앞마당에 나와 이상한 짓(?)을 하고 있으니 이에 호기심을 느낀 다른 아이들도 내 근처에서 파닥거리는 귀한 상황이 벌어졌다.
온가족이 함께하는 체조 시간이라….
이것도 어떻게 보면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이라는 걸 드러내는 좋은 시간이겠네.
“아들! 이거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손주 사랑이 워낙 각별하셔서 우리 일행에 따라붙은 어머니조차 눈을 반짝이고 계셨으니,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한들 운동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하긴 대장군이란 놈이 온몸에 지방이 가득 들어차 있으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저런 사람이 정말 무패의 장군?’
‘우와, 정말 못생겼다.’
상상만 해도 가슴 아프네.
마음이 유리인 연약한 남자에겐 너무나 상처받는 말이야.
“그으윽….”
“이제야 좀 개운하네!”
그렇게 약 한 시진(2시간)을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체조 말고도 온갖 근육 운동을 강제로 실시했다.
근데 가면 갈수록 운동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
왜 내 귓가에 ‘회원님! 하나만 더! 진짜 하나! 마지막 하나!’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까.
그러고 보니 운동이란 건 더 이상 못하겠다면서 근육이 비명을 지를 때 억지로 한두 개씩 더 해야 효과를 제대로 본다 하던가.
이걸 현대 운동 업계에서는 ‘과부하’라는 전문 용어로 부르던데….
여포는 도대체 이런 운동 과학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설마 육체를 단련하면서 본능적으로 깨우친 건가?
이게 바로 천하무쌍의 직관력?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운동 기구만큼은 가르쳐주지 말아야지.
맨몸 운동만으로도 벅찬데 여기에 쇠질까지 더해지면 난 근육과 함께 돌연사할 자신이 있다.
내가 지금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렇게 운동을 했음에도 팔팔해 보이는 육체파 무장들이야.
서여와 여포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제 아이들을 찾아 모습을 드러낸 다른 여인들까지.
그들 중 단 한 명도 나처럼 자리에 퍼진 이가 없었으니 무서울 따름이었다.
두 시간 넘게 운동한 것만 봐도 알겠지만 나도 그렇게 약한 편은 아닌데….
왜 죄다 인간을 벗어난 괴물밖에 없는 거냐.
그렇게 내가 반쯤 초주검 상태로 자리에 엎어져 있는 동안, 근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잠시 보고드릴 내용이….”
“…응?”
살짝 가냘프면서도 힘이 있는 묘한 목소리에 난 고개를 슬쩍 들었다.
손권이네.
무슨 일이지?
내 부관으로 종군하는 손권은 최근 제 언니인 손책과 그녀의 의자매인 주유하고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또 한편으론 그 강유와 등애하고 일종의 기 싸움을 벌이는 중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총애를 두고 다투는 모양새였는데 살짝 얼떨떨하더라.
뭐, 본래 역사에서 그들이 보인 행보를 떠올려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손권은 애초에 황제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등애는 자신이 익주를 다스리겠다고 상부에 건의했다가 불온분자로 찍혀 끌려간 장군이지.
강유는 살짝 애매하긴 한데, 그도 무언가 야망이 있었으니 군부에 임관한 것일 터.
즉 세 명 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뜻을 품은 셈이니 내 후계자 자리를 얻고자 저리 눈치 싸움을 벌이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그 기 싸움이라는 게 심해지는 경우인데….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직접 나서야겠지.
하지만 눈치가 뛰어난 소녀들이다 보니 서로 진심으로 다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말 싸움이 과열된다면 내가 세 명 전부 멀리하리란 걸 그녀들도 알고 있으니까.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정작 제일 중요한 내 관심에서 멀어지면 본말전도 아닌가.
그렇기에 그녀들은 참으로 건전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이겼다!
───비, 비겁하다….
───으그극….
…아마도.
호랑이 사냥을 나설 때 늘 선두에 서서 제 무예를 과시했다는 손권이 강유와 등애가 겨룰 때 슬쩍 뒤통수를 후려치던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이것도 어떻게 보면 노련함인가?
아직 강유와 등애는 경험이 제대로 쌓이지 않았으니까.
손권은 실제로 저 두 명과 비교했을 때 어마어마한 경험을 쌓았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줬다 생각하면 되려나.
“보고라고?”
“네!”
이상하게 내 앞에만 서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기묘한 소녀는 제 언니와 다른 푸른 눈을 빛내면서 대답했다.
“현재 돈황군(敦煌郡) 근처에서 대규모 이민족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정보입니다!”
“…….”
돈황군(敦煌郡)이면 한수가 다스리는 무위군(武威郡)보다도 훨씬 서쪽에 있는, 서량 끄트머리에 위치한 지역인데.
한때 동서양이 실크로드로 활발하게 교역하던 시절, 여러 교통로를 잇는 주요 도시가 바로 돈황군이었다.
한나라에서 서쪽으로 여행을 떠날 때 웬만해선 꼭 들리는 지역이 돈황군인 셈.
즉, 이러한 도시에 대규모 이민족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아무래도 도착한 모양이군.”
나는 여름이 되면 한나라에 찾아오겠다고 전한 칭기즈 칸의 전언을 떠올리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불과 2년 만에 여러 국가를 깨부수며 동서양을 횡단한 북방 기마 민족의 나라.
진짜 만만치 않네.
단순히 완주만 해도 놀라울 지경인데, 거기에 전쟁까지 치르면서 유라시아 대륙을 2년 만에 주파하다니.
나는 과거 누군가가 연상될 정도로 무뚝뚝했던 핏빛 머리카락의 정복 군주를 떠올린 다음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난 이후 처음으로 재회하는 상황 아닌가.
조만간 있을 만남의 결과가 어찌 끝을 맺느냐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결정될 터.
그 누구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든든한 우방국을 얻게 될 것이냐.
아니면 다시 한번 배때지에 시원한 바람구멍이 생기면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느냐.
아마 전자의 확률이 높겠지만 상황을 너무 낙관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원래 지도자는 언제든지 최악을 생각해야 하는 법이야.
나는 여전히 근육통에 시달리는 몸을 어찌저찌 수습하면서 물었다.
“그들이 장성을 넘어올 것 같나?”
“과거 주군께서 말씀한 내용도 있으니, 허락만 떨어진다면 거리낌 없이 넘어올 겁니다!”
이미 거리감은 상당히 줄어있나 보네.
중원에 자리 잡은 국가가 북방 유목민을 견제하기 위해 건축한 대규모 장벽.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아주 오래전부터 두 지역에 대한 경계선 역할을 맡아왔던 만리장성의 통과를 공식적으로 승인한다는 건 두 국가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드러내는 행동이기도 했다.
…가까워진 거 맞지?
설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에이, 설마.
칭기즈 칸도 무려 고귀함을 뜻하는 자주색 망토를 보내왔는데 난 충분히 가까워졌으리라 믿어.
솔직히 그녀가 회담장에서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예상이 안 된다만 설마 큰일이라도 나겠는가.
나는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을 마주하고자 부지런히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