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42)
EP.642 공존(6)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화살이 유도탄처럼 날아가고, 열심히 도망치던 짐승이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인 상황.
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해괴한 현상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일어났다.
───꽤애액!
구체적으론 내가 짐승을 노릴 때만 말이야.
달리는 말 위에서 풍향을 계산할 정도로 내 궁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짐승이 기가 막히는 달리기 솜씨로 회피 기동을 선보이기 때문일까?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발사한 화살은 마치 주인에게 엿이라도 먹으라는 듯 전혀 생뚱맞은 곳으로 날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번에야말로 칭기즈 칸에게 내 밑바닥 솜씨를 보여주는가 싶었지만….
휘우웅──!!
그럴 때마다 갑작스럽게 바람이 강해지면서 내 화살의 방향이 강제로 틀어졌다.
현대에서 총을 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
사격 자세가 아주 미묘하게만 달라져도 명중률에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숨은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방아쇠는 언제 당겨야 하는지….
여기서 하나라도 삐끗하는 순간 특등 사수는 못 따는 거야.
물론 나도 특등 사수 칭호는 못 얻었다.
아니, 딱 한 발이 부족했다니까?
하여튼 수많은 원거리 무기 종류 중에서도 나름 간단하게 다룰 수 있는 총기조차 이러할진대 다른 무기는 어떻겠는가.
“…….”
나는 이번에 혀를 빼물고 이승에서 승천해버린 멧돼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놈도 난데없이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여서 죽어버렸네.
내가 날린 화살을 피해서 잘 도망치던 놈이 무슨 이유로 다시 고개를 돌린 걸까?
처음 수사슴을 맞힐 때와 같이 일부러 곡사 사격을 했던 나는 잠시 턱을 쓰다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대충 예상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내 간절한 바람을 눈치챈 천지신명(天地神明)이 현실을 조작해버린 게 아니라면 괴력난신을 다룰 줄 아는 누군가가 개입한 것이겠지.
그리고 당장 내 근처만 보더라도 괴력난신을 부릴 줄 아는 인물이 여러 명 있지 않나.
황건당이란 거대한 세력을 이끌었던 대현량사 장각.
허구한 날 나를 귀찮게 구는 열자와 늘 날 지켜보고 있다는 남화노선.
이렇게 용의자들이 좁혀졌으니 이제 남은 건 소거법을 통해 가장 유력한 인물을 골라내면 된다.
일단 장각은 남만 정벌 당시 웬 해괴한 요술을 부리던 목록대왕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
하지만 그녀는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괴력난신을 부리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내 신변이 위험하다거나, 수많은 병사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 아니면 의술에만 집중하더라고.
본인이 직접 말하기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은 뒷수습이 번거롭다나 뭐라나.
게임에서도 강력한 기술은 몸에 부담이 오는 식으로 페널티가 가해지는 것이 있으니 난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다.
내가 저번처럼 배때지에 바람구멍이 생기는 게 아닌 이상 자연을 조종하는 천재지변 수준의 요술은 부리지 않을 터.
물론 그만한 규모의 요술을 부린다면 장각의 몸도 요술에 의한 반동으로 남아나지 않겠지.
그런고로 장각은 제외.
이제 남은 건 바둑 마니아인 열자와 스토킹 신선 남화노선뿐인데….
이 두 명 중에서 범인이 누군지 대충 짐작 가는 건 왜일까.
열자 그 귀찮은 노인네는 누가 봐도 방임주의자라 정말 웬만해서는 끼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자신과 같은 신선에게 습격당하는 수준이 아니면 반응하지도 않겠지.
실제로 저번 남화노선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열자는 내가 습격당하는 줄 알고 도와주기 위해 나타났다.
정작 실체를 알았을 때는 그녀를 실컷 비웃다가 부리나케 도망만 쳤지만 말이야.
솔직히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긴 한데 평소 귀찮게 구는 것만 조금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술집에서 좋은 여자를 찾았다며 같이 가자고 꼬드기는 건 도대체 무슨 의도야.
서여와 여포가 지그시 바라보는 데도 그런 권유를 하는 게 정말 이상한 노인이었다.
자, 이렇게 유력한 용의자 두 명이 사라졌으니 남은 사람은 한 명.
───이 몸은 언제나 네놈을 지켜보고 있었느니라!
나와 사이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어느덧 당당하게 날 스토킹하고 있다 외친 이상한 신선.
역시 신선은 신선이라는 것인지 정상적인 사람과 살짝 괴리감이 있는 남화노선의 정신세계에 난 살짝 얼빠진 표정을 지었었다.
솔직히 아무리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수백 년 동안 살다 보면 정신이 살짝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릴 것 같기는 해.
역시 세월의 힘은 무시할 게 못 되는 건가.
하물며 남화노선은 도교를 추종하는 여러 사람에게 신격화까지 되는 유명한 신선.
내 눈앞에서 만화에나 나올 법한 분신술까지 선보였던 인물이 이 정도 선술 하나 부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화노선이 직접 이런 짓을 이유는 간단하지.
자신과 맺어질 인물로 점찍어둔 남성이 다른 국가 사람들에게 얕보이는 걸 못 참겠단 이유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녀는 내가 근처에 있을 때만 자중하는 편이지, 평소엔 누가 봐도 무척 다혈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남화노선의 제자인 장각도 스승의 성격에 대해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고….
열자는 성질머리 더러운 꼬맹이라며 웬만해선 그녀와 부딪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
아, 참고로 남화노선은 열자를 신선의 격을 떨어트리는 노망난 노친네라며 욕했다.
원래는 제 체면도 잊고 여자들과 노닥거리는 행동에 정신 팔린 음적(淫賊, 음란한 도적)이라 칭했다던데….
───네놈을 지켜보기 시작한 이후에는 그 말이 쏙 들어가더군.
───…….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를 무척 의식하는 모습 아니더냐? 으하하하!
자신이 짝사랑하는 상대가 알 수 없는 스플래시 데미지를 입을까 염려되어 욕하는 내용을 바꿨다는 것.
이것도 친절하다면 친절하다 볼 수 있는 변화일까.
…확실히 내 이성 관계가 워낙 난장판이 나 있긴 해.
사실 황실에서 일하는 관료들이 날 두려워하는 이유에는 이런 것도 있겠지.
황제의 국서(國壻)임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마구잡이로 늘려대는데 목이 안 날아가는 대장군.
심지어 비우(妃耦)라고 해서 본래 역사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중혼 특별 권한을 황제 폐하께서 직접 수여했으니 날 알지 못하는 신하 입장에선 내가 무슨 정치적 괴물로밖에 안 보일 것이다.
군사적 시야는 한신에 비교될 만하며, 대국적인 관점은 장량에 비견될 만하고, 내정을 보살피는 능력은 소하에 비견될 만하다.
솔직히 나로선 속이 거북해지는 평가지만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짓을 살펴보면 그리 판단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더라.
여러 업적을 세웠음에도 황족이나 신하들에게 계속 경계당했던 이유가 전부 존재하지.
막말로 내가 ‘아~ 새로운 나라 세우고 싶다~’고 외치는 순간 한(漢)이 뿅 사라질걸.
근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런 말을 하면 진짜 간신배 같은데, 이미 위세 자체는 황제 부럽지 않도록 누려서 말이야.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후대 사람들은 날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황제를 꼭두각시처럼 부리며 모든 권력을 독차지한 간사한 인물?
아니면 무너지던 나라를 되살린 길이길이 기억될 성웅(聖雄)?
사실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는데 부디 사관이 기록한 온갖 낯뜨거운 기록들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나도 자세히 무어라 적혀있는지는 모르지.
사관이 기록한 내용을 당사자가 살펴보는 건 역사 기록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일이었으니까.
근데 내가 황제 폐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무감정한 표정으로 손을 움직이는 모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심지어 옛날 선비들의 글솜씨를 생각하면 더욱 두려워지지.
어디 번개 같은 게 떨어져서 그 기록들만 정확하게 불타지 않으려나.
근처에 있는 온갖 역사서까지 같이 타버릴 게 문제라서 실행에 못 옮기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제 사냥은 멈출 테니 이제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어디선가 날 열심히 지켜보고 있을 신선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살랑거리는 바람이 내 몸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는데, 유감스럽게도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았다는 대답일까.
아니면 정말이냐고 묻는 대답일까.
내가 직접 부탁하면 웬만한 것은 전부 들어주는 쉬운 성격을 생각해보면 전자같기도 하고.
────!!
“안 돼.”
내 근처에서 함께 사냥을 즐기던 테무진은 자신이 기르는 독수리와 무언가 의견 충돌이 있었는지 잠깐 다투고 있었다.
의견 충돌로 표현하니까 괜히 사람 같네.
근데 서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걸.
“앗, 가죽이.”
물론 그 끝은 독수리가 기껏 잡은 사냥감의 품질을 떨어트리면서 끝이 났다.
대체 무슨 의견 차이가 있었길래 저런 일이 일어난 걸까.
“…고기, 더 달래.”
“고기를?”
“응.”
내 물음에 테무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근데 그러면, 무거워져서 제대로 날지도 못할 거라 얘기했어.”
“…….”
“귀엽다고, 많이 먹이는 게 아니었는데….”
저 독수리가 귀엽다고?
멋있는 게 아니라?
어쨌든 주인 입에서 그런 말까지 나올 정도면 저 독수리는 이미 위험 체중이란 건가.
────!!
독수리는 마치 아니라는 듯 힘차게 울부짖었지만 저 엄청난 크기를 보면 나도 딱히 부정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까 살이 아주 토실토실하게 올라와 있구나.
성인 남성의 절반이나 되는 크기까지 자란 이유가 있었어.
나는 어느샌가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슬슬 뒷정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