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49)
EP.649 축제(祝祭)(3)
칭기즈 칸의 본심을 확인한 나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다. 그대가 어떤 마음으로 혼인 제안을 건넸는지 이해가 가는군.”
“…당혹스럽진, 않았어?”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갑작스러운 행동이란 건 알고 있었는지 조금씩 내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그야 당연히 당혹스러웠다만….”
난 담담한 목소리로 칭기즈 칸에게 설명했다.
“본디 사람의 마음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지.”
“…….”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도 힘든 일이거늘, 다른 사람에 대해 완전히 앎을 자부하는 것은 오만한 행동 아니겠나.”
공자는 지천명(知天命, 50세)에 이르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하늘의 뜻조차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하던데 그건 몇몇 똑똑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 같아.
전생에서의 삶을 포함하면 나도 지천명은 족히 넘겼는데 깨달음 같은 건 얻지도 못했거든.
에잉 쯧쯧, 이래서 똑똑한 사람들이란….
내가 잠시 장난스러운 생각을 이어나가는 사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테무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혼인 일자는 언제 잡을래…?”
“혼인 일자?”
그건 확실히 중요하지.
결혼 행사라는 게 단순히 뽀뽀 한 번 하고 끝나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지 않나.
여러 절차가 생략된 현대만 보더라도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빠져나가는 게 결혼식인데 이런 걸 더욱 철저하게 따지는 옛날은 어떻겠어?
지금 같은 과거 시대에는 관혼상제(冠婚喪祭)라고 해서 혼례식을 인생에 단 4번 있는 큰 행사로 묶어 불렀다.
어린아이가 갓(冠)을 쓰고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는 뜻인 관례(冠禮).
두 가문이 이어지며 남녀가 평생을 함께하는 걸 맹세하는 혼례(婚禮).
소중한 사람의 명이 다했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죽음을 애도하는 상례(喪禮).
그리고 일정 주기마다 죽은 사람에게 추모를 올리고 안식을 비는 제례(祭禮).
현대인이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각각 성인식(成人式), 결혼식(結婚式), 장례식(葬禮式), 제사(祭祀)로 부를 수 있겠군.
…근데 제사에만 식(式)이 안 붙어서 딱 3글자로 안 떨어지는 거 나만 불편한가?
제삿날이라 불러도 되긴 하겠지만 그 단어는 뭔가 부정적인 인상이 강해서 말이야.
하여튼 이렇게 큰 행사로 묶어 부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혼례식인데 당연히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지.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테무진에게 말했다.
“좋다. 혼례 방식은 그대 나라의 전통을 따르도록 하지.”
“…정말?”
칭기즈 칸은 내 제안이 의외라고 느꼈는지 살짝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한나라 전통 방식이 아니면 내가 혼례식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로 생각한 건가.
내가 뭐 중화 사상을 찬양하며 다른 나라의 문화를 얕볼 마음은 없었으니 굳이 그럴 필요성은 못 느꼈다.
애초에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있으니까.
“그대는 이번이 첫 혼례식이지 않나.”
“…….”
“그렇다면 훗날 과거를 떠올렸을 때 응당 즐겁게 웃으면서 되새길 수 있을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 옳겠지.”
훗날 테무진과 내 사이의 부부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와 내가 지닌 직책 특성상 장거리 연애….
아니, 연애가 아니라 결혼 생활이니 기러기 아빠라 불러야 하나?
아무튼 서로 떨어져서 오랫동안 지낼 확률이 높으니 결혼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테무진은 쓸쓸하게 지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외롭다고 해서 내가 아닌 다른 남성과 맺어지기에는 그녀의 눈높이가 또 너무 높은 것이 문제지.
테무진 말마따나 적의를 선의로 돌려줄 수 있을 만큼 마음씨가 좋아야 하며, 몽골 제국의 창업 군주가 기댈 수 있을 만한 믿음직한 남성?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보니 허들이 높아도 너무 높잖아.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군.
테무진이 이런 취향을 지니게 된 것에는 아무래도 그녀의 가혹했던 삶이 상당 부분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자신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성격을 지닌 이성에게 이끌리는 것.
칭기즈 칸의 경우에는 그게 포용력이 넓고 자신조차 심리적으로 기댈 수 있는 남성이란 거지.
…그리고 난 이 기준을 통과했단 뜻이고.
나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인 남성인가?
하여튼 그런 인물이 있었다면 테무진은 진작 그와 맺어진 다음 여러 후계자를 낳았을 터.
그렇다면 나도 적당한 방계 황족 한 명을 골라서 칭기즈 칸의 후계자와 맺어주는 식으로 우호 관계를 맺었겠지.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테무진은 본인의 눈높이에 맞는 짝을 찾지 못했고, 그 결과 내게 나이를 밝히는 걸 꺼릴 정도로 오랫동안 홀몸으로 지내왔다.
사실상 다른 남성과 이어지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특이한 취향을 지닌 여성.
나는 내 대답을 듣고 날 멍하니 바라보는 테무진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몽골의 전통에 대해서 무지한 편이니, 모자란 모습을 보이더라도 이해해줬으면 좋겠군.”
“으, 응. 걱정하지 마.”
내 이야기를 들은 테무진은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고작 그런 걸로 헐뜯는 사람들이 있으면, 전부 없애버릴게.”
“…….”
…없애버린다고?
나는 만약 뒷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으면 전부 없애버리겠다는 테무진의 강경한 어투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테무진에게서 왠지 익숙한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단순한 기분 탓일까.
마치 누군가와 무척 비슷한 행동인데….
아, 이제 떠올랐다.
지금 내 아이를 보살피는 것에 여념이 없으신 황제 폐하의 모습과 똑 닮았어.
대제국을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끼리 무언가 통하는 게 있는 걸까.
“내부 단속은, 자신 있어.”
“…….”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혹여나 있을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겠다는 테무진의 이야기에 잠시 침묵했다.
…본래 역사에서 수레바퀴보다 큰 놈은 모조리 죽여버리라 명령했던 그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 건가.
물론 그 명령은 자신의 아버지를 손님으로 접대하는 척하면서 비겁하게 독살한 타타르족에 대한 보복 차원도 있었다.
오죽하면 다른 부족조차 테무진이 저런 잔혹한 명령을 내리는 게 이해가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을까.
그렇다고 테무진의 성격이 마냥 유하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그녀도 결국 적수공권(赤手空拳, 맨손과 맨주먹)의 상황에서 끝끝내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 우뚝 올라선 인물.
칭기즈 칸은 피를 흘리는 게 필요하다 판단되면 얼마든지 잔혹해질 수 있는 군주였다.
“믿고 맡겨줘.”
“…알았다.”
그리고 지금 그 잔혹한 칼날이 외부가 아닌 몽골 제국 내부로 향하게 된 상황.
“…….”
“크흠.”
근처에서 칭기즈 칸을 호위하던 만인지적의 장수, 수부타이는 고개를 돌린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곰 같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슬쩍 시선을 피했다.
왠지 나한테 찍히기 싫어서 슬금슬금 거리를 두는 모양새.
명장 수부타이가 내게 찍히기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야 나한테 찍히면 자신이 모시는 테무진의 눈 밖에도 날 거 아니냐.
이야, 고금무쌍과 천하무쌍을 눈빛으로 제압하는 걸로도 놀라운데 이젠 그 수부타이마저 시선을 피하게 만들었군.
…이거 맞아?
주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온갖 패악질을 부렸던 요녀 달기(妲己)마저 이런 수준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야 달기는 상나라 내부만 휘어잡았잖아.
근데 나는 한나라 말고도 몽골 제국까지 휘어잡았네?
이쯤 되면 내 미래가 도대체 어찌 될지 궁금할 지경.
상나라가 망한 이후 달기의 모가지가 썩둑 잘렸던 것처럼, 나도 훗날 나라를 홀린 요물이라며 무덤에서 파헤쳐진 다음 부관참시를 당하는 걸까?
아니 뭐….
내가 죽은 이후 시체를 어찌하든 상관은 없다만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궁금하네.
주변 상황을 파악한 내가 문득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질 무렵 테무진은 더 지체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딱 삼일(三日)만 기다려줘.”
“삼일?”
“응.”
혼례식을 준비하는 것치고는 생각보다 짧은 기간이네.
혹시 몽골 제국의 혼례 절차는 한나라와 비교했을 때 간단한 편인가?
내 어머니께서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일행에 포함된 상태라 하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너무나 짧은 시간.
혹시 테무진의 어머니인 호엘룬도 이곳에 머무르는 건가?
왜, 혼례식을 올리기 전에는 원래 무조건 상대방의 부모와 만나서 상견례를 가져야 하잖아.
이건 굳이 유교를 중심 사상으로 삼은 동아시아가 아니더라도 모든 문화권의 공통점일걸.
의외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호엘룬은 무려 80살 근처까지 살면서 무척 장수한 인물이거든.
즉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한 이후에도 멀쩡히 살아있단 뜻이지.
…근데 호엘룬도 내 어머니 정원처럼 엄청난 동안일지 궁금하네.
정확한 기준점은 모르겠지만 이 세계는 기묘할 정도로 늙지 않는 인물이 몇 명 있거든.
“…….”
난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 무척 활발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칭기즈 칸을 바라보면서 상견례 선물로 무엇을 준비할지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