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50)
EP.650 축제(祝祭)(4)
상견례(相見禮).
두 남녀가 서로 이어지는 중대한 혼례 의식에 앞서 양가의 구성원이 서로 대면하고 인사를 나누는 절차.
제아무리 결혼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도 이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을 터.
실제로 사랑을 약속한 연인이 상견례를 삐끗해서 결혼 자체가 파토나는 경우도 있었다.
…근데 지금처럼 정략결혼이 일상인 시대에는 상견례에 부담을 가질 필요가 별로 없지.
혼담이 오갈 정도면 이미 두 가문끼리 이야기가 전부 끝났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어느 상황에도 예외는 있는 법.
‘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란 강한 의지를 갖추고 어디선가 웬 생뚱맞은 인물을 배우자로 점찍는다면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상견례가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아빠! 나 이 사람과 결혼할래!
───뭐?! 절대 안 돼──!!
…잠시 내 딸이 웬 놈팡이를 데려오며 결혼하겠다 외치는 끔찍한 광경을 상상해버렸지만 적어도 지금 일어날 일은 아니니까.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난 게거품을 물면서 그대로 쓰러질 자신이 있다.
…여타 창작물에서 딸바보 캐릭터가 흔히 보이는 모습을 내가 직접 재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응?! 갑자기 또 혼인한다고?!”
“예.”
“누구하고?!”
내가 난데없이 새로운 여성과 맺어진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화들짝 놀라시는 어머니의 모습.
하긴 나였어도 내 아들이 어디 떠날 때마다 여자를 한 명씩 꾀어온다면 많이 당혹스러울 것 같긴 해.
난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어머니께 입을 열었다.
“저기 위쪽 유목 민족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한 여성입니다.”
“으응?!”
나와 맺어지는 여인의 정체를 알자마자 더욱 놀라네.
근데 나조차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어.
설마 내가 칭기즈 칸의 취향에 들어맞는 남성일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아들!”
“예?”
그때 어머니께서 내 어깨를 콱 붙잡고 날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가정 계획을 얼마나 크게 그려놓은 거니?!”
“…….”
“혹시 중산정왕(中山靖王)처럼 아이를 120명도 넘게 낳을 생각이니?!”
난 지금 내 부곡으로 일하는 유비의 조상을 언급하면서 당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는 어머니께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정말?!”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 일이 가능해지려면 나는 나랏일도 전부 제쳐놓고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만 지내야 할 터.
중산정왕 유승 그 양반은 여자를 밝히는 것도 밝히는 거지만 워낙 일을 안 하고 놀러 다니기를 좋아했던 왕이다.
아이를 120명이나 넘게 낳은 이유가 있는 인물이지.
“그래도 아이를 늘리지 않겠단 소리는 안 하는구나!”
“…….”
그야 뭐, 난 아이를 싫어하지 않으니까.
내가 이제 와서 육아 비용에 허덕일 정도로 재산이 없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닿는 곳까지는 노력해야지.
한 가지 문제점은 너무 늘어난 내 아이들이 외척의 권한으로 나라를 망가트릴 수 있단 건데….
그것도 전부 생각해놓은 방안이 있다.
───아이의 이름을 본인이 아니라 어미의 성(姓)으로 지은 이유가 그것 때문 아니었나요?
───응?
───아버지 쪽이 아닌 어머니 쪽 가문이란 인식을 더 강하게 해서, 훗날 자신의 핏줄이 한나라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건 줄 알았는데요?
…사실 생각해놓았다기보단 얻어걸린 쪽에 가깝지만 말이야.
난 단순히 내 성인 정(丁)씨를 이으면 몇몇 아이들의 이름이 이상해진다는 이유로 어미의 성을 잇게 했는데, 꼬꼬마 군사들 입장에선 그 행동이 다르게 보인 모양이다.
───…설마 별거 아닌 이유로 어미의 성을 잇게 한 건가요?
───…….
───저기요?
나는 내 반응을 확인하자마자 눈가를 슬며시 좁히는 사마의의 눈빛을 피할 수밖에 없었지.
───천명(天命)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으셔도 천하를 이롭게 하시는군요. 역시 저희 주군이십니다.
───그, 그게 그렇게 되는 거야?
───물론이죠.
이때다 싶어 나를 칭찬하는 제갈량과 눈을 끔뻑이면서 당혹스러워하는 방통은 덤이고 말이야.
하여튼 꽤 복잡한 뒷사정이 있는 건 제쳐놓더라도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
“…….”
단순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중압감이 느껴지는 엄숙한 자리에서 테무진의 어머니인 호엘룬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
그녀는 위대한 정복 군주를 낳은 여인답게 상당히 강직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긴, 아무리 테무진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10명이 넘는 아이를 보살피며 여러 가지 지식을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만약 누군가가 내게 호엘룬이 뛰어난 여장부인가 묻는다면 난 기꺼이 그렇다 대답할 수 있었다.
기록에 따라선 호엘룬이 자신의 배다른 자식인 벡테르와 맺어지려 했다는 둥 상당히 깨는 내용이 존재하긴 하는데….
원래 유목 민족은 가장이 죽으면 자식이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그의 모든 것을 계승 받는 관습이 존재했다.
새로운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진다는 의무와 사명을 지는 대신 아버지의 재산과 부인을 모두 차지할 수 있는 거지.
아, 물론 친어머니를 부인으로 만드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사회 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유목 민족이라도 친어머니와 맺어진다는 마지막 선은 넘지 않더라.
호엘룬이 벡테르를 먼저 노린 건지, 아니면 벡테르가 호엘룬을 먼저 노린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그 두 명도 따지고 보면 피가 이어지지 않은 사이.
만약 테무진이 허구한 날 자신을 괴롭히는 벡테르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새로운 아버지가 생길 수 있었단 뜻이었다.
애초에 호엘룬이 예수게이와 맺어진 경위도 황당하지.
원래 그녀는 메르키트족으로 시집가기 위해서 남편과 함께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금태양….
아니, 흑태양 예수게이가 나타나서 그녀를 납치해버린 것.
여기서 호엘룬은 자기를 두고 갈 수 없어 끙끙거리는 남편에게 살아만 있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숙녀를 맞아들일 수 있다며 겉옷을 건네주고 그를 대피시키는 여장부다운 면모를 보인다.
이는 훗날 메르키트족이 앙심을 품고 테무진의 첫 번째 아내인 보르테를 납치하는 계기가 되지.
NTR에 대한 보복으로 또다시 NTR을 벌인다라….
참으로 무시무시한 풍습이군.
괜히 초원 민족의 결혼 풍습 하면 약탈혼을 먼저 떠올리는 게 아니다.
심지어 이 세계는 남녀의 사회적 위치가 평등하니 아마조네스마냥 부인한테 남편을 빼앗는 일도 일어났으려나?
상상만 해도 두렵다.
괜히 칭기즈 칸이 질색하며 몽골 통일 이후 약탈혼을 금지한 게 아니란 말이지.
아마 나였어도 금지했을걸.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지만 지금 우리는 각자 어머니를 데리고 한곳에 모인 상황.
호엘룬은 젊었을 적부터 칭기즈 칸의 아버지인 예수게이를 비롯한 수많은 남성을 홀린 것을 증명하듯이 매우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설마했는데 정말 내 어머니인 정원처럼 엄청난 동안을 자랑하는군.
겉모습만 보면 30대라 해도 믿겠는데.
옛날 전통 복장이 으레 그렇듯 살짝 개성적인 장신구와 의류를 걸친 여성은 우리를 마주하자마자 공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몽골 제국을 다스리는 대칸(大汗)의 어머니이자, 콩기라트(Хонгирад) 씨족의 올코노드 호엘룬(Олхонууд Өэлүн)이 삼가 대인을 뵙고 인사를 올리옵니다.”
“알늑홀늘 하액륜(斡勒忽讷 訶額侖)…?”
어머니께선 아무래도 다른 언어가 영 익숙하지 않으신 모양.
보르지긴 테무진(BorJ̌igin TemüJ̌in)을 패아지근 철목진(孛兒只斤 鐵木眞)으로 발음하는 것처럼 어머니는 호엘룬이란 이름을 그대로 음역(音譯, 외국어 발음을 한자로 따라 함)했다.
그러니까 영어권 사람이 한국어를 발음할 때처럼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억양이 됐다고 해야 할까.
올코노드 호엘룬을 우뤄후나 훠어렌으로 발음한 기적의 언어 실력에 난 머리를 짚을 뻔했다.
“한(漢)의 태부(太傅)이자 대장군(大將軍)의 어머니인 정원(丁原)이라 합니다!”
“…….”
“…아! 그리고 자(字)는 건양(建陽)이니 편하신 대로 불러주세요!”
이 칠칠맞은 모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나이가 몇 살이신데 왜 나보다도 어린아이 같지?
혹시 그것 때문인가?
내 권위가 워낙 드높다 보니 그 누구도 어머니의 행동에 함부로 간섭을 못하는 거지.
내가 저번에도 언급한 적 있지 않나.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을 낳은 시어머니께 편히 행동하는 며느리는 없다고.
심지어 그 며느리에 황제 폐하까지 포함된 상황에서 그 누가 면전에 대놓고 예의를 챙기라며 꾸짖겠는가.
내가 직접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내 어머니는 다혈질적인 면모가 있거든.
병주에서 맨날 이민족과 치고받을 때는 이러한 성격이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황궁처럼 온갖 복잡한 예절이 존재하는 곳에선 마이너스 요소밖에 안 됐다.
“…….”
본인의 문제점을 아예 모르시는 건 아닌지 이리저리 곁눈질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어머니의 모습.
난 이번 혼례식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