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58)
EP.658 태양과 달(2)
나와 사흘 밤낮 동안 천막에서 함께하며 오붓하고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려 했던 칭기즈 칸의 야심 찬 계획.
테무진 개인의 욕망이 잔뜩 들어간 깜찍한 계획은 딱 절반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이유가 바로 무엇이냐.
“이, 이제 그마안….”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흐아앗?!”
테무진은 내게 몇 시간도 못 버티고 계속 자지러지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래서야 그녀가 사흘 밤낮을 버틸 수 있을까.
글쎄, 아마 이틀도 아슬아슬할 것 같은데.
그래도 칭기즈 칸은 칭기즈 칸이란 건지 의식을 놓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모습은 칭찬해줄 만했다.
“읏, 으읏….”
…끝까지 버티려 했기 때문에 더 참혹한(?) 몰골이 된 건 뭐라 할 말이 없지만 말이야.
아직 첫 번째 밤이 다 지나가지도 않았거늘 난감하구만.
조금은 살살 해줄 걸 그랬나?
이쯤에서 끝을 낼지, 아니면 항복따윈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더욱 괴롭혀줄지 고민하던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막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누가 봐도 입구 근처에 부자연스럽게 놓여있는 물이 가득 찬 나무 욕조.
마치 금방 가져다 놓은 듯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나무 욕조의 모습은 욕조 안에 담긴 물이 따뜻하다는 걸 알려주었다.
지금 천막 입구를 누가 지키고 있는지를 떠올리면 이 욕조를 누가 가져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이렇게 타이밍 좋게 세세한 것까지 챙겨주는 인물은 애초에 한 명밖에 없기도 했고.
난 입구 근처에서 초선의 향낭(香囊) 냄새가 남아있는 걸 느끼고 피식 웃었다.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향긋한 꽃향기가 나는 걸까.
경국지색의 여인은 잠시 머무르다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는 뜻인가?
서여와 여포는 언제 자신이 또 디저트로 끌려갈까 전전긍긍하면서도 내 호위를 위해 주변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음….”
난 그녀들의 걱정을 현실로 만들어 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면 초선이 따뜻하게 데워놓은 물이 전부 식어버릴 테니 오늘은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욕조의 물이 식기도 전에 그 두 명을 쓰러트릴 수 있긴 하다.
이야, 고금무쌍과 천하무쌍을 욕조의 물이 식기도 전에 쓰러트린다니.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따오겠다고 이야기한 관우도 감탄하겠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여전히 자세히 서술하기 난감한 몰골의 테무진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 그마내…. 또 들고 흔들지 마….”
“…….”
어허.
누가 들으면 이상한 생각 하겠네.
…근데 내가 몇 시간 동안 테무진을 가지각색 방법으로 괴롭히긴 했지.
그녀로선 이렇게 반응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나는 이미 온몸의 힘이 다 빠진 것인지 미약하게 발버둥치는 테무진을 진정시키고자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목욕하는 거니까 얌전히 있어.”
“…목욕?”
내 설명을 들은 테무진이 핏빛 눈동자로 날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그러면…. 이제 끝난 거야?”
“그래. 오늘은.”
“…오늘.”
테무진은 그렇게 자신을 괴롭혔음에도 부족하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모른 체했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그런 눈빛은 엄청나게 익숙하거든.
지금까지 수많은 여인을 울린 남성으로서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니 좀 쓰레기 같기도 하고.
“얌전히 있어. 열심히 씻겨줄 테니까.”
“씨, 씻는 건 내가 알아서엇…?!”
어딜 감히 벗어나려고 해.
여러 번 절정에 이른 이후 틈만 나면 도망치려 하는 테무진을 난 곧장 붙잡으면서 손을 잽싸게 움직였다.
내가 몇 번이고 언급했지만 아직 두 번째 날도 찾아오지 않았어.
테무진, 네가 불러들인 재앙이다.
곱게 받아들여라.
──────────
내가 예상한 것과 달리 단둘이서 보내는 두 번째 날은 그렇게 격렬하지 않았다.
“…손 대는 거, 금지.”
“크흠.”
그야 테무진이 내가 가까이 가려고 할 때마다 민첩한 몸놀림으로 스르륵 거리를 두는데 뭘 어떻게 하겠어.
천막 바깥으로 못 빠져나가는 걸 이용해 벽에 몰아서 붙잡으면 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녀는 슬금슬금 거리를 두다가 벽에 몰리면 펄쩍 공중제비를 돌면서 내 위를 휘리릭 지나가 버렸다.
공중제비 자세가 어찌나 완벽한지 마치 서커스라도 보는 것 같더라.
…그 어마어마한 묘기를 제 남편을 피하기 위해 쓰는 게 좀 어떤가 싶지만 말이야.
유독 내게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렇지 테무진도 엄연히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뛰어난 장수.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녀가 정말 날 해치고자 마음먹는다면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맨손만으로도 난 언제든지 정릉(이었던 것)으로 변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너무 괴롭히긴 했어.
걸핏하면 내게 달려드는 조조나 날 너무 사랑하는 황제 폐하조차 내가 하루 종일 괴롭히면 다음 날 살짝 거리를 두는데, 하물며 어제까지만 해도 숫처녀였던 테무진에겐 어떻겠나.
“…조금만, 산책 다녀와.”
“산책?”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을 줄 몰랐던 나는 궁금증을 드러냈다.
잔치가 진행되는 사흘간 부부는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날 잠시 내보내려고 하는 걸까.
내 의아한 기색을 눈치챈 테무진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대로 가다간, 나 죽어.”
“…….”
“정말로.”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이유였구나.
하긴, 칭기즈 칸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목민 군주 중에 밤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죽은 인물이 있긴 하지.
로마 제국의 악몽이라 불리며 신들의 채찍이란 거창한 칭호를 지니고 있던 아틸라(Attila).
훈족의 군주였던 그는 아름다운 여인과 관계를 맺던 중 죽었다고 한다.
비록 그의 사인(死因)은 확실하지 않다지만….
하필 성관계 도중 죽었다는 건 특기할 만한 상황 아니겠냐.
심지어 그렇게 사망한 인물이 후대에도 여러 번 화자 되는 뛰어난 유목민 군주라면 더더욱.
만약 지금 상황에서 그런 일이 터지면 대형 사고란 단어로도 부족한 초특급 사건이 터지는 것이기에 나는 잠자코 칭기즈 칸의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같이 산책하지 않아도 되겠나?”
“응.”
이왕 외출하는 겸 같이 외출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식으로 제안했지만 테무진은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얌전히 쉬고 있을게.”
“알았다.”
조금 전만 해도 그녀가 공중제비까지 돌면서 날 피해 다녔기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으나, 지금 이렇게 서로를 마주한 상황에선 테무진의 상태가 어떤지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무표정을 최대한 유지하는 모습.
확실히 저 상태에서 무리하게 움직였다간 군주로서의 위엄이 실추하겠구나.
근데 저런 상태에서도 공중제비를 휘리릭 돌면서 날 피해 다녔다는 거냐.
진짜 육체 능력은 어마어마하네.
테무진의 제안을 받아들인 나는 천막을 빠져나가기 전 그녀에게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는 돌아오겠다.”
“응. 저녁 먹기 전에는, 돌아와.”
테무진의 배웅을 받으면서 천막을 벗어나던 나는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테무진이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다며 날 내보냈다고 정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조금 더 표현을 순화했다.
“휴식 시간…이란 말씀입니까?”
“그래. 테무진도 분위기를 환기할 겸 잠시 다녀오라더군.”
나는 천막을 빠져나오자마자 얼굴을 마주한 칭기즈 칸의 호위 장수에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외모가 이상할 정도로 뛰어나네.
수부타이나 제베처럼 인상만으로 사람 너댓 명은 죽여버릴 듯한 험악한 남성만 보다가 이렇게 어여쁜 몽골 여인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설마 이 사람 무칼리(Мухулай)인가?
왜, 칭기즈 칸을 따르는 사준사구(四駿四狗) 중 한 명 있잖아.
본래 역사에서 칭기즈 칸이 호라즘 왕국과 싸우는 동안 그는 홀로 금나라를 쥐어팼던 뛰어난 전략가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일한 나머지 금나라를 멸망시키도 전에 과로 증세를 보이며 사망한 게 안타까운 인물이지.
그리고 그를 증명하는 것처럼 이 세계의 무칼리는 칭기즈 칸과 별도의 부대를 통솔하며 마초, 법정을 홀로 상대하는 등 시야 분산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런 전공을 제외하고도 그는 칭기즈 칸과 단둘이서 길을 걷다가 적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무칼리는 칭기즈 칸을 먼저 대피시킨 다음 홀로 적에 맞섰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놓고 자기도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는 게 놀라운 점.
아마 그녀가 현재 천막 근처에서 칭기즈 칸을 호위하게 된 이유가 이런 활약 때문 아닐까.
“대칸께서 하루도 버티지 못하다니….”
하여튼 무칼리는 무슨 망측한 생각을 하는 건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서여와 여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멀뚱히 침묵만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