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6)
EP.66 뒤처리(4)
처음에는 단지 궁금증이었다.
“제게는 과분한 여성들이죠.”
연회에 참가한 이들이 모두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때 유일하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인물.
오히려 그 남성은 자신을 기회로 삼아 주변에서 호위를 서고 있는 소녀들을 익숙한 모습으로 쥐락펴락했다.
자신의 눈썰미로 얼핏 살펴봐도 웅대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수들을 어찌 저렇게 잘 다루는 걸까.
과연 세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얕볼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초선아.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거라.”
그리고 그날 밤 남성이 돌아가고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
자신을 거둬준 아버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자신으로선 생소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아버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으리라.
그저 다른 사람 말에만 따르는 영혼 없는 삶을 살지 말라는 뜻이셨다.
그때 자신은 아버님의 말씀에 조금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다.
궁금한 것이 생겼기에 잠깐 그분을 지켜보고 싶다고.
그런 자신의 말에 아버님은 그저 껄껄 웃으며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하거라. 내가 한 번 말해보도록 하마!”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저를 받아 들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대장군은 아버님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대장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릉 님. 조심하십시오. 예로부터 이유 없이 다가오는 여성은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나 쟤 마음에 안 들어.”
그때 연회에서 대장군 곁에 있던 소녀들은 갑작스럽게 시녀로 들어온 자신을 환영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자신은 저 소녀들이 대장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미 눈치채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쭉 벌어지는 일들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장료 문원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릴게요?”
갈색 머리카락을 정수리 부근에서 뒤로 질끈 묶은 청초한 인상의 미녀.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답해주실 수 있을까요?”
“말씀하시길.”
정릉군에서 여포 다음으로 유명한 장수의 물음에 초선은 공손히 답했다.
“집에서 지내는 정릉 님의 모습은 어떠신지요?”
“…….”
아무렇지도 않게 대장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던 장료.
꽤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느긋하게 지내시는 걸 좋아하십니다.”
“흐음…. 역시 그렇군요!”
그렇게 말한 장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청초한 인상에 어울리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네.”
그런 장료를 지켜보던 초선은 대장군이 이상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생각했다.
“…제 질문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그다음은 회색 머리를 머리핀으로 고정한 여성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차분한 청록색 눈동자를 지닌 여성의 질문은 이러했다.
“너무 딱딱하지 않게 말을 거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분명 고순이라는 이름을 지닌 장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평소처럼 얘기하셔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무뚝뚝한 장수는 무뚝뚝한 감사 인사를 남기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체 뭐였을까.
이를 지켜보던 초선은 다른 건 몰라도 흥미롭다는 감정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자신은 여러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대장군의 시녀께서 천하절색이라더니 사실이었군요!”
“…실례지만 누구신지?”
“아. 서황 공명이라고 합니다! 편히 부르십시오!”
호방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면서 말을 걸어온 여인이 있었다.
자신은 너무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으나 그 여인은 한사코 거절하며 예를 거두지 않았다.
“대장군께서는 계시는가?”
“무슨 용무이신지요?”
“별거 아니고 그저 내가 맛 좋은 술을 얻었기에 같이 마시고자…. 허억!”
눈을 감고 큼큼 헛기침을 내뱉으면서 선물을 가져온 남성이 있었다.
마등이라 했던가. 자신을 보고 놀란 듯이 숨을 삼키는 순박한 모습은 꽤 재미있었다.
이외에도 참으로 많은 사람이 있었다.
각자의 매력을 지닌 수많은 인물.
한평생 원하는 것 없이 집에서만 살아왔던 자신으로선 매우 새롭게 다가오는 광경이었다.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채 대장군께 찾아온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그 모두가 대장군을 나쁘게 생각한다거나 어려워하지 않았다는 것.
대장군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이들이었으나 그들은 그런 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제 손바닥 뒤집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태도를 바꾸던 몰염치한 자들.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면서 자그마한 원한은 끝까지 잊지 않던 치졸한 자들.
겉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칼을 품고 언제든지 서로를 노리던 음험한 자들.
낙양에서 살아오며 그러한 인간들만 봐왔던 초선은 흥미를 느꼈다.
과연 대장군은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이들이 곁에 있는지 궁금했다.
과거, 장안에 있던 수많은 백성을 태워죽인 동탁이란 자의 가문을 잡아들인 날이 있었다.
이미 자신들이 죽을 걸 직감하고 침묵하는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순진하게 바라보던 어린아이들.
어린아이들은 그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다른 어른들처럼 입을 꾹 다물고 얌전히 있을 뿐이었다.
그때 자신은 저런 어린아이까지 죽어야 한다는 것에 측은함을 느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승리한 자는 패배한 자의 일가를 전부 몰살시킨다. 그것이 정치였다.
이러한 피의 숙청은 굳이 난세가 아니더라도 옛날부터 늘 자행되어왔던 일이었다.
자신은 그저 속으로 대장군이 죄 없는 어린아이들을 고통 없이 보내주기를 빌 뿐이었다.
모두가 동씨 일가를 전부 예외 없이 처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있던 대장군은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20살을 넘는 자들은 고통 없이 보내주고, 20살이 되지 못한 이들은 노비로 만들어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판결.
대장군을 따르던 장수들은 충성심이 높았기에 별다른 말 없이 대장군의 말을 따랐다.
몰살을 예상하던 동씨 일가의 어른들은 대장군의 자비에 눈물 흘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묵묵히 형을 집행 받았다.
판결에 수긍하지 못하고 난동을 피우던 이들도 있었으나 그런 이들은 전부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런 전례 없는 처사에 다른 곳에서는 분명 뒷말이 나올 게 분명했다.
초선은 그러한 점이 걱정되어 자택에 찾아온 대장군에게 입을 열었다.
“지금 결정은 분명 뒷말이 나올 텐데 괜찮으신지요?”
자신의 물음에 대장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역적의 집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한다는 건 가혹하잖아.”
죄 없는 이들을 좌시할 수 없다는 신념이 담긴 목소리였다.
“정 불만 있으면 나오라고 해.”
당당하고 굳세게 그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인물.
그런 인물이었기에 수많은 인재들이 그를 따르는 것이라고 느꼈다.
어째서 백성들이 대장군을 찬양하며 그리 따르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어지러운 천하를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인물.
수많은 피로 얼룩진 난세를 끝내고 찬란하게 빛날 치세를 만들어나갈 인물.
그때 처음으로 초선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할 수 있었다.
대장군의 꿈이 헛되이 끝나지 않게 곁에서 보좌하고 싶다고.
그래도 대장군에게 딱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었다.
“어, 응. 고마워.”
이상할 정도로 자신에게만 소극적인 태도.
마치 자신과 가까워지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거리를 두는 대장군의 모습에 묘한 심통이 났다.
어디에 끼어도 자신의 매력이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그러시는 걸까.
살짝 눈웃음만 지어도 가슴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쓰러지는 남성들이 몇인데 대장군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대장군도 그럴 때마다 잠깐 넋을 잃고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면 남성을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신 것 같은데….
자신이 거리를 좁히면 거리를 좁힌 만큼 대장군께서 물러나시니 초선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그런 자신을 경계하는 여성들까지 있으니 대장군과 거리를 좁히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이쯤 되면 괜한 오기가 생긴다.
지금까지는 대장군의 의도를 존중해 은근슬쩍 거리를 뒀으나 이제는 기회가 된다면 거리를 확 좁히리라.
과연 언제까지 자신을 그런 얼떨떨한 눈빛으로 바라볼지 초선은 궁금해졌다.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해본 적 없는 초선이었기에 든 생각.
초선의 그런 생각을 알 리 없는 대장군은 오한을 느끼며 몸에 닭살이 돋을 뿐이었다.
“날도 더운데 왜 갑자기 오한이 들지.”
“…불길한 징조가 아닐까요.”
“갑자기?”
닭살 돋은 팔을 문지르던 정릉은 서여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악 지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