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60)
EP.660 태양과 달(4)
한나라의 대장군과 몽골 제국의 대칸의 혼례를 축하하는 잔치도 어느덧 끝을 맺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오래 걸렸지.
테무진이 선물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친목이나 다질 겸 사냥도 같이 하고 갑작스럽게 혼례를 신청하는 등….
아마 한 달은 족히 서량에서 보낸 느낌이네.
하지만 결국 모든 일엔 끝이 찾아오는 법이니, 테무진과 나는 각자의 직무를 위해 서로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
“…….”
이미 모든 뒷정리를 끝마친 채 나를 멀뚱히 바라보는 칭기즈 칸의 모습.
내가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분위기였기에 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괜찮겠나?”
“…뭐가?”
“불과 며칠 만에 혼례식을 올린 남편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번 혼례식이 정말 정치적 의도만 들어간 정략결혼이었다면 나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난 물론이고 내 주변 사람들조차 모두 알고 있었다.
“…아니, 전혀 괜찮지 않아.”
테무진이 날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원체 드문 그녀가 이렇게나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는 건 지금 테무진의 심정이 어떤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녀를 늘 곁에서 호위하는 케식들조차 살짝 거리를 두며 홀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줬으니까.
당장 내 근처에 있는 서여와 여포만 하더라도 나와 며칠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온갖 난리를 피울걸.
───…주인님…?
───내, 내가 뭐 잘못했어? 미안해! 한 번만 용서해줘!
지금 떠올려도 참으로 기겁할 만한 상황이었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끊임없이 흘려대는 서여,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절박한 표정으로 매달리던 여포….
이게 바로 공포 영화 아니겠나.
말 한마디 듣자마자 바로 삶의 의지를 잃은 것처럼 행동하는데 어찌 기겁하지 않겠냐고.
뭐, 테무진이 이처럼 나에 대한 의존증이 심할 거로 생각하진 않는다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는 걸 반길 사람은 없지.
“지금도 그를 곱씹을 때마다 가슴이 시릴 듯이 차갑지만….”
“…….”
“이게 정말로 마지막 만남은 아니니까.”
역시 몽골 제국을 홀몸으로 통일한 여인답게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숙한 모양.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우린 머지않은 시기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음?”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거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내가 전혀 모르겠다는 기색을 드러냈음에도 테무진은 알려주지 않겠다는 듯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우리 사이가 가까움에도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일 터.
만에 하나라도 자신의 예상이 틀려서 잘못된 정보를 전해줄 수 있으니 조심하겠다는 것과….
“…….”
…훗날 무언가 일이 터졌을 때 깜짝 선물처럼 알려주겠단 뜻이겠지.
테무진 그녀가 무언가를 잘못 판단할 인물은 아니었으니 나는 구태여 정보를 캐묻지 않았다.
“네가 부탁한 중개 무역, 최대한 노력해볼게.”
“그러면 좋고.”
또 이게 유목민의 교역이라면서 다른 나라 도시를 탈탈 털어버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우린 그걸 교역이 아니라 약탈이라 부르기로 사회적 합의를 했답니다.
…저번 로마-몽골 전쟁은 군인 황제 중 한 명이 안일하게 행동해서 일어난 게 컸으니 이번에는 아마 안 일어날 것이다.
설마 그 꼴을 보고도 또 칭기즈 칸에게 싸움을 거는 군인 황제가 있겠어?
그러면 이번엔 국토 3분의 1을 휩쓴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걸.
“…또, 상속법 자체도 뜯어고쳐 볼게.”
“잘 생각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몽골 제국이 불과 100년조차 가지 못하고 갈가리 찢어졌던 결정적인 이유.
내가 이렇게 온갖 고생을 하면서 몽골 제국과 동맹 관계를 맺었는데, 그 고생이 금방 허무하게 사라진다면 원통하다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질 자신이 있었다.
제 자식들에게 영토와 군사를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분할 상속제보단, 나라가 분열되지 않도록 단 한 명의 후계자에게만 모든 걸 몰아주는 상속법이 훨씬 낫지.
물론 그만큼 어떤 자녀를 후계자로 임명하느냐가 무척 중요해지겠다만….
그건 전 세계 어떠한 나라든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이니 알아서 해결해야만 했다.
하지만 상속법을 뜯어고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지.
정말 엄청난 권력을 지닌 군주가 아니라면 이를 뜯어고치는 게 불가능할걸.
그렇기에 나는 칭기즈 칸에 직접 이야기한 것이다.
자신이 죽은 다음 나라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가장 권위가 강력한 네가 이를 직접 해결해야만 한다고.
그녀는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전리품을 정신없이 챙기기 급급했던 유목민의 군대에 최초로 규율을 가져온 인물.
다행스럽게도 총명한 칭기즈 칸은 내가 알려주고자 하는 바를 금방 깨닫고 이를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몽골을 통일하면서 은근히 나이를 많이 먹은 게 문제일 뿐, 본래 역사의 칭기즈 칸은 그 이후 20년 동안 몽골 제국의 수많은 사회 제도를 직접 뜯어고치려는 모습을 보였다.
계급제를 철폐하며 전사가 아닌 대장장이나 양치기 같은 생산직들의 신분을 중시했고, 그 당시 십자군이다 자하드다 하며 피터지게 싸우던 서양과 다르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또 여러 나라의 학자들을 초빙해서 몽골 제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의논하고, 당시 몽골 내부에서 체계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던 법전까지 새로이 만들어 이를 배포하는 등 무척 개혁적인 성향이 강했지.
실제로 칭기즈 칸이 없었다면 몽골인이 현대까지 나라를 무사히 유지할 수 있었을까?
글쎄, 청나라를 세웠던 만주족이 전생에서 결국 어찌 됐는지를 떠올려보면 답이 나오지 않나.
현대 시대까지 오면 만주족은 한(漢)족에게 거의 다 융화돼서 민족 정체성이 사라질 위기라고 하지.
뭐…. 인구가 깡패라고, 중원을 100년 동안 지배했던 원나라와 300년 동안 지배했던 청나라는 민족 동화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말이야.
그런 칭기즈 칸조차 결국 낙마 사고로 죽었다는 게 참 덧없을 따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던데 칭기즈 칸은 그게 워낙 컸어.
솔직히 60대란 늙은 나이에 말에서 떨어진다면 뼈조차 못 추릴 것 같긴 해.
그나마 칭기즈 칸이라서 낙마 후유증으로 사망한 거지, 나였다면 으악 소리를 내기도 전에 목뼈가 오도독 부러져서 즉사했을걸.
“그러면, 안녕.”
“…잠시만 기다려라.”
“응?”
나는 한 차례 손을 흔들고 내게서 천천히 멀어지는 테무진을 붙잡았다.
“가져오도록.”
“예.”
내가 근처에서 대기하던 유비를 향해 슬쩍 턱짓하자 그녀는 잠시 모습을 감추더니 이윽고 귀여운 망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히힝.
크기만 따지면 아직 내 종아리까지밖에 못 오는 작디작은 새끼 말.
“…….”
그 치명적인 귀여움에 칭기즈 칸도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쳐다봤다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이 말은, 뭐야?”
“한혈마(汗血馬)라고 들어봤을지 모르겠군.”
분명 서양식 이름도 따로 존재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말 품종에 관해 빠삭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말과 함께한다는 유목민이라면 이게 얼마나 뛰어난 말인지 금방 알 수 있겠지.
──피히힝.
…아닌가?
솔직히 지금은 너무 어리긴 해!
나는 햇빛에 반사되는 황금빛 털을 잠시 쓰다듬다가 이 귀여운 망아지를 번쩍 안아 올렸다.
──히힝.
낯선 사람 품속에 안겼음에도 무척이나 얌전한 모습.
이는 전장에서 창칼이 날아들어도 쉽게 겁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고, 자신의 주인을 함부로 해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충 살펴보니 그대의 말이 상당히 나이 들어 보이더군.”
“…….”
“그래서 헤어지기 전 선물로 뛰어난 품종의 말을 따로 들여왔다.”
원래는 내가 지금 사용하는 말을 교배시킬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애초에 이놈이 짝짓기 자체를 하려는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품종이 똑같은 수말을 붙여줘도 콧방귀만 뀌면서 막 뒷발차기를 날리더라고.
자신이 차였다는 걸 깨달은 수말이 풀죽은 모습은 꽤 유쾌했지.
뭐, 그래도 내 권위가 워낙 막강해서 한혈마 새끼를 금방 구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칭기즈 칸이 본래 역사처럼 낙마 사고 때문에 사망하면 큰일 나니까.
“이름은 딱히 정하지 않았으니 그대가 지어주도록.”
“…고마워.”
내게서 조그마한 망아지를 조심스럽게 건네받은 테무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걸로 낙마 사고는 막은 건가?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란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다른 건 몰라도 테무진 그녀가 나와 오래 떨어지기 싫어한다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