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66)
EP.666 예맥(濊貊)(6)
나는 장료가 고구려의 명장 고노자를 이끌고 물러나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과연 부상당한 몸으로 수천 리에 이르는 강행군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내가 아는 그 고노자가 맞다면 낙오되지 않겠지.
그는 모용외가 내보낸 추격군에게 쫓기던 봉상왕(烽上王)을 불과 수백 명의 병사와 함께 구출한 장수.
이미 부여조차 한 차례 패퇴시키고 고구려도 수도를 버리고 달아날 정도로 강력했던 모용외의 군사이니만큼 만만치 않았을 텐데 고노자는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왕을 무사히 구출한다.
이 심상치 않은 소식을 들은 모용외는 당연히 직접 출진해 고구려를 다시 침공했으나….
고노자가 요충지를 지키는 태수에 임명되자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
아무래도 오호십육국을 거치면서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였기에 기록이 매우 적어 구체적으로 무슨 싸움이 있었는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용외가 다시는 고구려를 침공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버젓이 적혀있는 걸 보면 부딪혀도 여러 번 부딪혔을 거야.
아마 이때부터 고구려의 수비 능력이 강해진 게 아닐까.
저기 고구려보다 국력이 2배는 강력한 부여조차 모용외를 막아내지 못해서 큰 피해를 봤는데, 고구려는 어디선가 명장이 등장해 침공을 막아냈으니….
그리고 이후 수나라의 100만 대군을 막아내고, 당나라의 수십만 대군도 막아내는 것.
만약 한나라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어쩌면 고노자가 부여의 침공을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너무 나간 게 아니냐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늘 상상을 초월한다고.
…그렇다고 해서 고구려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괜히 얄미운 짓을 해서 훗날 있을 분란의 씨앗을 만드는 것보단 앞으로도 쭉 이어질 동맹 관계의 든든한 디딤돌로 만드는 게 낫겠지.
만약 고구려가 본래 역사처럼 부여를 집어삼킨다면 만리장성 근처를 기준으로 3개의 국가가 국경을 접하게 된다.
광개토태왕 시절처럼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성공적으로 차지한 고구려.
본래 역사보다 천 년은 일찍 태어난 칭기즈 칸이 여러 유목 민족을 병합하며 건국한 몽골 제국.
오랜 부정부패로 여러 번 휘청거렸으나 몇몇 뛰어난 사람이 어떻게든 다시 살려낸 한나라.
이것도 어떻게 보면 삼국지겠네.
…조상님 국가의 체급이 유독 낮은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하지만 고구려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반도 전체를 무사히 집어삼킨다면 어느 정도 국력을 끌어올릴 순 있을 터.
그러면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를 손에 넣는 건가?
왜, 대체 역사 창작물들 보면 흔히 만반도라 일컫는 판도 있잖아.
물론 만반도의 영토가 어느 정도 되느냐에 대해 여러 논쟁이 있다.
내가 공손도를 토벌할 때 넘은 적이 있는 요하(遼河)를 기준으로 해서 나뉘는 게 대부분이지.
그냥 단순하게 요동을 집어삼키는 것에서 만족하고 자연스러운 국경을 형성하느냐.
아니면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요서 지역까지 차지하며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 근처까지 진출하느냐.
…여기서 상상력을 더욱 부풀리며 일본까지 차지하는 만반열도 같은 것도 있지만 그건 넘어가자.
이거 완전 동양 버전 레벤스라움이네.
만반스라움으로 불러야 하나?
하여튼 중원에 한나라처럼 강력한 통일 국가가 존재할 때 요서 지역은 내버려두는 편일걸.
심지어 이 세계엔 한나라뿐만 아니라 몽골 제국이란 어마어마한 나라조차 있지 않나.
실제로 지금 요서 지역은 어느 한 국가가 온전히 자치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아무래도 만리장성 너머에 있기도 하고, 물리적 거리의 한계 때문에 행정력도 잘 미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요서 지역이 전략적 요충지이긴 해서 어떻게든 다스리는 편인데….
결국 이 손길이 닿지 않고 이얏호 난장판을 피우며 자리 잡는 유목 민족이 일부 존재했다.
즉 지도만 보면 거대한데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영토는 좁아터진 내 빌어먹을 고향, 병주(幷州)와 비슷하지.
역시 중원 제일의 똥 덩어리 땅이로군.
마치 양파처럼 까도 까도 새로운 무언가가 튀어나온다니까?
어쨌든 여기 터가 좋다면서 엉덩이를 깔고 앉은 유목 민족들의 머리를 난데없이 깨부수고 혜성처럼 등장한 국가가 있다.
몽골 제국 설명하는 거 맞아.
이 경우 유목민이 지니고 있던 땅이 누구 것이 되겠냐.
당연히 그들을 흡수한 몽골 제국 것이지.
즉 현재 요서 지역은 한나라와 몽골 제국이 사이좋게 나눠 먹은 상황이었다.
아직 전성기도 오지 않은 고구려가 슬쩍 발을 들이밀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나.
뭐…. 요서는 몰라도 요동은 충분히 지배할 수 있겠지.
거긴 멀어도 너무 멀어서 한나라가 반쯤 방치해두는 땅이야.
괜히 압도적인 국력 차이임에도 공손도가 뻗대며 요동의 왕을 자칭한 게 아니지.
훗날 요동 지역과 관련해서 고구려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으나, 그때가 지금은 아니었다.
“마초.”
“네! 지금 달려왔습니다!”
내가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을 호출하자 마초는 기다렸다는 듯 매우 재빠르게 등장했다.
눈이 아주 초롱초롱하네.
곧 무슨 명령을 내릴지 대충 짐작한 것 같은데….
나는 장료와 더불어서 한나라의 또 다른 최정예 기마 부대를 이끄는 무장에게 이야기했다.
“…그대는 부여 방향으로 향해서 읍루(挹婁)가 아군의 측면을 노리지 못하게 막아주도록.”
“맡겨주세요!”
내 명령을 받은 마초는 매우 활기차게 대답했다.
읍루(挹婁).
후대에는 말갈(靺鞨)과 여진(女眞)으로 불릴 민족.
누군가는 부여와 싸우는데 어째서 이들을 건드리느냐 물을 수 있겠지.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이 시기의 읍루(挹婁)는 부여의 지배를 받고 있거든.
즉 부여의 종속 세력이라는 뜻인데, 부여가 멍청하지 않은 이상 이들도 당연히 전쟁에 동원했을 것이다.
본래 역사에서 읍루가 어떤 놈들이라 적혀 있었더라.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화살촉에 독을 발라서 사람을 즉사시키고, 멀리 있는 적의 눈을 능히 맞출 정도로 활 실력이 뛰어나며, 험한 산도 능숙하게 타고 다닌다던데….
이들이 훗날 말갈과 여진으로 불리는 걸 떠올리면 기마술도 상당히 뛰어나겠지.
이야, 완전히 전투 민족이네.
이러니까 내가 신경 안 쓰고 배기겠어?
그때 근처에서 사마의가 의문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놈들은 이미 몽골 제국이 흡수하지 않았나요?”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뿐이야.”
난 사마의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마의가 이야기한 것처럼 읍루는 이미 몽골 제국이 북쪽 여러 민족을 통일하면서 한 차례 박살 났다.
왜, 저번 전쟁 때 수부타이가 읍루 수만 명을 이끌고 부대 측면을 공격했잖아.
이를 막기 위해서 서여가 잠깐 근처를 벗어난 사이 제베가 내 배때지에 도넛 구멍을 뚫어놓았지.
“몽골 제국에 흡수되지 않고 부여로 도망친 읍루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
“으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내 대답을 들은 사마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몽골 제국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만큼 읍루의 규모는 무척 줄었을 터.
기껏해야 수천 명, 많이 봐줘도 1만이 한계이지 않을까.
그야 몽골 제국한테 흡수된 병사만 수만 명인데 남아있는 숫자가 많을 리 없지.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해서 방심할 수 있는 세력은 아니었다.
이민족 군대는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만큼 구성원 개개인이 전부 전투 병기니까.
‘어?’ 하는 순간 바로 뒤통수 박살 나는 거야.
확실히 전성기 부여가 강력하긴 해.
어떻게 이런 읍루들을 종속국으로 부리고 있던 걸까.
고구려가 괜히 꼼짝 못한 게 아니었군.
“저 마초! 주군께서 읍루의 머리카락 하나 보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내겠습니다!”
“…그래.”
난 의욕이 넘치는 마초를 바라보고 얼떨떨하게 수긍했다.
최근 같이 시간을 보낸 것 때문에 그런가.
이상할 정도로 의욕이 엄청나네.
내게 당당히 외친 마초도 곧이어 자신이 이끄는 기마 부대와 함께 재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췄다.
장료가 이끄는 병주 기마대.
마초가 이끄는 서량 기마대.
병사 숫자는 조금 부족할지언정 압도적인 기동력과 돌파력을 지닌 두 선봉대가 출발했으니 나도 슬슬 움직여야겠지.
“…왜?”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순간 여포한테도 고구려를 먼저 도와주라고 이야기할까 고민했지만 이번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며 거절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말을 아꼈다.
낮에 1,000리를 달리고 밤에 800리를 달리는 적토마라면 평양성까지 며칠 걸리지도 않을 텐데 그 며칠조차도 참 싫어하더라.
…내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런가?
어쨌든 나와 떨어지는 시간이 길수록 여포의 컨디션에 악영향을 주니, 나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방지하고자 안전하게 나아가기로 했다.
고구려의 명장인 고노자가 시기를 앞당겨 태어난 것처럼 부여에도 내가 예상치 못한 만인지적의 장수가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도 이제 움직인다.”
“예!”
내 명령을 받은 부관들이 발빠르게 움직이자 곧 수만 명의 기병이 일제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원군으로 기병만 편성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계획이었다.
부대 특성상 어쩌면 그들이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겠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