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67)
EP.667 예맥(濊貊)(7)
장료와 마초가 이끄는 두 선봉대가 부여의 고구려 정복을 저지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상황.
그 두 부대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내가 직접 지휘하는 본대도 쉬고만 있어선 안 됐기에 최대한 발걸음을 빨리했다.
몽골 제국의 기마대나 장료와 마초가 이끄는 최정예 기마대처럼 정신이 아찔해질 수준의 기동력을 보이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부대를 기병으로만 편성한 보람이 있는지 웬만한 군대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더라.
어떻게 보면 참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낙양에서 기주로 향하는 경로는 도로가 잘 닦여있었다.
기주가 무척 부유하다는 건 삼국지에 관한 지식이 있으면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어느 지방이 부유하다는 것은 곧 상업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뜻이고, 상업이 활성화되어 있으면 도로가 잘 닦여있는 뜻.
…그리고 도로가 잘 닦여있으면 대규모 이동이 원활하기에 군대도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단 뜻이지.
장료와 마초도 이미 이 길을 통해서 움직인 모양인지 이동 경로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직 버틸 수 있지?”
며칠에 이은 강행군에 살짝 걱정이 든 나는 내가 기승한 말을 살짝 쓰다듬었다.
─푸르륵.
이에 여전히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는 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울음소리를 냈다.
확실히 이 말도 굉장하긴 하네.
애초에 수상할 정도로 말에 진심인 후성이 고르고 고른 한혈마일 테니 뛰어난 것도 이상하지 않지만, 이 말은 그 한혈마 중에서도 유독 궤를 달리하는 녀석인 것 같았다.
오추마나 적토마한테도 덩치가 밀리지 않는 것도 그렇고,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지금까지 한 번도 지친 기색을 보인 적이 없더라.
…그 한혈마가 지칠 정도로 달려야만 하는 상황이면 진짜 큰일 났다는 뜻이지만.
아마 전투에서 패배하고 적군한테서 달아날 때나 그래야 하지 않을까.
주변에 있는 고금무쌍과 천하무쌍이 그런 위급 상황을 두고 볼리 없으니 내가 올라탄 한혈마는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하루 종일 달려본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유비의 적로도 유우를 구출할 무렵 꽁지 빠지게 달렸다던데 말이야.
꿀을 빨아도 너무 빠는 거 아니야?
괜스레 그런 생각이 든 나는 주변에서 날 보좌하는 흑발의 여인에게 물었다.
“유비, 합류 지점까지 얼마나 남았어?”
“…이제 막 평원군(平原郡)을 거쳤으니, 합류 지점인 발해군(勃海郡)까지 약 300리(120km) 남았습니다.”
벌써 그 정도나 왔다고?
발해군이 기주의 중심에 자리 잡은 걸 생각해보면 만리장성 끄트머리인 산해관까지 절반 조금 안 되게 왔다는 뜻이다.
역시 병사 모두 말을 타고 달려오니까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네.
보급품조차 제갈량이 건의했던 대로 중간중간 도시에 들러서 해결하니 별 문젯거리가 될 것도 없었고.
어쨌든 300리 정도라면 조금 무리해서 이동했을 때 하루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냥 여기저기서 풀 뜯어 먹는 평범한 말과 전쟁 용도로 길러지는 군마는 그 품종부터가 다르니까.
옛날 사람들의 이동 수단인 평범한 말도 비싼 편이다만, 괜히 군마가 그것보다도 더 억 소리 나오게 비싼 게 아니지.
“그러면 속도 좀 내야겠네.”
유비의 보고를 받은 나는 잠시 몸을 풀고 이야기했다.
“오늘 휴식은 발해군에서 취한다고 전해.”
“예, 알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료와 마초는 서로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 것처럼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터.
어쩌면 그녀들은 진작 만리장성을 넘어 요동 근처에 도착했을지도 몰랐다.
난 지금까지 꿀을 달달하게 빨던 청황마의 고삐를 틀어쥐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솔직히 예전부터 궁금하긴 했어.”
“뭐가?”
“이 아이가 진심으로 달리면 얼마나 재빠를지 말이야.”
여포의 의문에 대답해준 나는 병사들의 준비가 끝난 걸 확인하고 살짝 몸을 낮췄다.
───적어도 적토(赤兎) 이상은 되어야지!
───제가 주군의 위엄에 걸맞은 엄청난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여와 여포가 심혈을 기울여서 고르고, 후성이 내게 당당히 외치며 호언장담한 말.
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햇빛에 은은하게 반사되는 백금색 몸체를 한 차례 쓰다듬었다.
한때는 발발이의 뒤를 이어 씽씽이란 이름을 지니게 될 뻔한 아름다운 말.
만약 내가 정말로 이 이름을 지어줬다면 뒷발길질을 당하지 않았을까.
“가자, 청황(靑黃).”
───히히힝!
내가 이름을 부르자 청황마는 영리한 녀석답게 곧장 주인의 뜻을 알아채고 전방을 향해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뒤바뀌는 주변 광경과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며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질주하는 기분이구만.
내가 속도광은 아닌데 속이 뻥 뚫리는군.
“…….”
“역시 빠르네?”
내가 속도를 올리자 서여와 여포도 각자 오추마와 적토마를 조종하며 능숙하게 뒤따라왔다.
고금무쌍과 천하무쌍을 양옆에 나란히 낀 채 달리는 광경이라….
확실히 가슴이 웅장해지기는 하네.
그녀들을 제외하고도 내 뒤에선 수많은 기병이 일제히 속도를 올리며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 쭉 가기만 하면 본래 계획보다 발해군에 일찍 도착해서 원소와 합류할 수 있겠지.
그래, 여기까지는 좋은데….
왜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지.
이미 충분히 빠르지 않아?
내가 당혹스러워하는 동안에도 청황마(靑黃馬)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처럼 더욱 속도를 올렸다.
“……?”
“…아니, 생각보다 더 빠른데?”
어렵지 않게 내 옆을 따라붙는 서여와 여포조차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이는 상황.
그야 나도 말을 다룰 줄 안다지만, 서여와 여포에 비할 정도로 기마술이 뛰어난 건 아니거든.
여기서 눈을 더 낮춰도 장료나 마초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내 기마술이 뛰어나다며 뻗댈 정도는 아니란 뜻이지.
그러니까 지금 이 어마어마한 속도를 주인의 도움도 없이 홀로 내고 있다는 소리였다.
“정릉! 괜찮은 거 맞아?!”
“아마도?!”
“왜 확신을 못해!!”
그야 나도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거든.
이럴 때만큼은 내가 병주에서 태어나 다행이다.
기마술 똑바로 안 배웠으면 진작 말에서 떨어진 다음 온몸이 박살 났겠지.
…아닌가?
서여라면 내가 낙마하는 순간 휙 뛰어들어서 무사히 받아낼 것 같기도 하네.
이 정도 속도를 다른 병사들이 쫓아올 수 있나 생각한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
아니나 다를까 병사들이 열심히 고삐를 조종하고 있음에도 점점 더 거리가 벌려지고 있었다.
심지어 장수들도 못 쫓아오고 있네?
적로에 올라탄 유비나 절영에 올라탄 조조는 나름대로 잘 쫓아오고 있지만 나머지 이름 없는 말을 가진 장수들은 살짝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이 와중에도 청황의 속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으니 무척 당혹스러운 상황.
“…됐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내가 고삐를 늦추면서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를 보내자 청황마는 더이상 가속하지 않고 살짝 속도를 줄였다.
“…….”
“와, 말이 진짜 좋긴 하구나.”
설마설마했지만 내가 올라탄 말도 오추마나 적토마처럼 하루에 2,000리(약 800km) 가까이 달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놈인 모양.
그 정도 거리면 말을 조종하는 주인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질 수준이잖아.
서여나 여포처럼 인간을 초월한 장수라면 몰라도 나처럼 평범한 놈에겐 너무나 과분한 말이었다.
“허, 참.”
청황마가 속도를 줄이면서 살짝 여유가 생긴 나는 말을 살살 쓰다듬었다.
이런 말이 어째서 날 주인으로 인정한 걸까?
후성도 함부로 올라탔다가 낙마해서 갈비뼈가 부러졌다던데 말이야.
내가 비록 한나라의 대장군이라는 둥 황제 폐하의 국서라는 둥 굉장한 칭호를 지니고 있긴 하나 그것도 동물에게는 별 상관없을 텐데….
어쨌든 말이 워낙 굉장한 탓일까.
───커흑, 흐헤엑….
───허어억, 헉….
다른 평범한 병사들이 다리를 덜덜 떨면서 피로를 호소하는 동안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발해군에 도착한 나는 담담하게 청황마 위에서 내렸다.
“야! 얼마나 움직였다고 힘들어하는 거야?!”
“하여튼 빠져가지고…. 전부 움직여! 농땡이 피우면 쉬는 시간도 없어!”
───으아악!
───우와아악!
…이런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여포와 장비를 비롯한 몇몇 엄격한 장수가 고함을 내지르긴 했지만 폭력은 휘두르지 않았으니 다행일 따름.
허구한 날 앞에 앉혀두고 미주알고주알 하며 설교한 보람이 있네.
특히 본래 역사의 장비는 손속이 너무 과한 나머지 부하 장수들에게 살해당한 인물이니까.
내가 당연히 신경 쓸 수밖에 없지.
나는 병사들이 짐말과 마차에서 재료를 가져와 부랴부랴 숙영지를 설치하는 걸 바라보다가 눈앞의 여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군.”
“예, 확실히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적어도 1년은 넘은 것 같은데.
나는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금발의 여인을 바라보며 픽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