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75)
EP.675 예맥(濊貊)(15)
마초 맹기(馬超 孟起).
서량의 금마초란 이명으로 불리는 여인이자, 현재 한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두 기마 부대 중 하나를 이끄는 장군.
“빨리 움직여! 낙오하는 놈들은 내가 손수 다져버린다─!”
“예, 옙!”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받아본 듯한 임무다운 임무에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주군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어!’
심지어 이번에는 경쟁자도 있는 상황 아닌가.
장료 문원, 그녀는 한(漢)족이 아니라 북방 유목 민족 출신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터무니없는 기마술을 지닌 장수였다.
평소 이민족의 침입이 잦은 병주(幷州)라는 지역의 특성상 다른 유목 민족과 피가 섞였을 수도 있지.
왜, 한족과 강족의 혼혈인 자신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핏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장료는 싱긋 웃으며 말끝을 흐릴 뿐 제대로 된 대답은 하지 않았으니까.
단순히 이민족의 피가 섞여 대답을 피한다기보단 조금 더 어두운 이유가 존재하는 것 같았으니 마초도 구태여 파고들진 않았다.
어쨌든 현재 마초는 장료와 다른 임무를 맡고 선봉대 역할로서 출진하게 된 상황.
평소에는 장료와 자신을 두고 무어라 이야기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지금처럼 각자 임무를 완수하러 나갈 때 서로 의식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두 명 다 같은 남성을 섬기는 여인 아닌가.
사랑하는 낭군님의 눈에 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도 당연한 이치.
물론 서로 해치려 드는 것처럼 과한 투기(妬忌, 지나치게 시기함)를 부리진 않았다.
그러면 사랑하는 남성이 슬픈 표정을 지을 것이고, 그를 목격한 천하무쌍이 살벌한 기세로 달려올 테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론 정릉을 혼자 감당할 수는 있냐면서 온몸의 뼈가 부러질 때까지 후려칠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심한 투기(妬忌)를 부린 여인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대장군은 천하무쌍이 했던 이야기처럼 부인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자칫 잘못했다간 밀회를 나누다 죽어 후대에 치욕스러운 기록이 남겨질 수 있었다.
“장군! 곧 읍루(挹婁)를 마주칠 겁니다!”
“그래?”
자신을 열심히 뒤쫓아오는 부관의 외침에 마초는 씩 웃었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수천 리를 달려왔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이민족 토벌이야 오래전부터 질리게 하던 일!
비록 그 규모가 조금 거대해졌을 뿐, 자신이 평소 처리했던 일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읍루가 전투에 끼어들지 못하게 막고 있어.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는 주군께서 내리신 명령.
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면 또 자신을 짐승처럼 격하게 다뤄주시지 않을까?
정릉이 알았다면 식겁할 생각을 이어나가던 청은색 머리카락의 여인은 눈동자를 살짝 빛냈다.
마초가 기승한 한혈마는 그 명성에 걸맞게 지치지도 않는다는 듯 주인의 기대에 부응해 더욱 속도를 올렸다.
오죽하면 말을 갈아타며 마초를 뒤따라가던 강족 기병들조차 놀라워할 정도.
그렇게 얼마나 되는 거리를 달려갔을까.
“…보인다!”
강족의 혼혈답게 뛰어난 시력으로 읍루를 포착한 마초는 곧장 몸을 풀면서 전투에 대비했다.
“가자! 저놈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전부…?”
하지만 마초는 거리를 좁힐수록 점차 선명하게 보이는 이민족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커허억!
───으아악!
그야 이민족끼리 서로 싸우고 있는데 당황하지 않는 게 이상하겠지.
북방 민족이 평소 그러는 것처럼 씨족 간의 전쟁이 발발한 걸까?
“…….”
아니, 아니다.
읍루가 의복을 어떤 방식으로 갖춰 입는지 알고 있던 마초는 곧 씨족 간의 다툼이 아니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습격당한 쪽으로 추정되는 세력이 읍루.
그리고 그 읍루를 습격한 세력은….
“…저 나라가 왜 여기 있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몽골 제국을 마주한 마초는 살짝 얼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전투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애초에 습격당한 쪽이 읍루였기도 했거니와, 몽골 제국의 전투력은 그 마초조차도 감탄이 나올 수준이었으니까.
“…장군, 저들도 저희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마초를 보좌하던 부관은 몽골 제국군 중 일부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걸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알아. 발견 당할 수밖에 없지.”
그야 평지에 기병이 1만 명이나 서 있는데 어지간히 시야가 좁은 게 아니라면 전부 눈치챌 터.
몽골 제국도 이쪽이 읍루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는지 섣부르게 움직이진 않았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군기 챙겨온 놈한테 그거 높이 들라고 시켜.”
상당히 크고 무거운 깃발을 하루 종일 챙기며 행군해야 하고 전장에서도 눈에 가장 잘 띄는 만큼 목숨이 자주 위험해지는 병과.
말 그대로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으로만 수행할 수 있는 직책이었으니, 기수(旗手)는 평범한 부대가 아닌 여러 특수 부대 사이에서도 경외하고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병과였다.
“어우….”
하지만 그런 최정예 기수들조차 군기를 챙기고 장거리를 강행군하는 건 몸서리 칠 수밖에 없는 모양.
펄럭─!
뒷사정이 어찌 됐든 몇몇 기수가 상당히 피곤한 표정으로 군기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자 곱게 말아져 있던 깃발이 펄럭거리면서 이 부대가 한(漢)나라 소속임을 알렸다.
한나라와 몽골 제국이 혼인 동맹을 맺은 것은 당사자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저들이 만약 몽골 제국군으로 위장한 적대 세력이 아니라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몽골 제국군이 맞다 하더라도 왜 이곳까지 와서 읍루를 토벌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
선봉대가 깃발을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 부대 내부에서도 큼지막한 깃발 하나가 올라왔다.
백기(白旗).
부대에서 싸울 의사가 없을 때 사용하는 흰색 깃발.
몽골 장군은 전리품을 정리하느라 여전히 정신없는 자신의 부대를 뒤로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
지금 상황이나 정리할 겸 서로 이야기나 나누자는 뜻이겠지.
마초는 몽골 장군의 초대에 응하기 전 병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른 나라 말 잘하는 놈 있냐?”
“어…. 제가 어느 정도 할 줄 알긴 합니다.”
상관의 물음에 부모 중 한쪽이 몽골인이었던 강족 병사가 슬그머니 앞으로 나왔다.
마초는 그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통역 잘해라?”
“……그, 살짝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어느 시기든 다른 나라의 말을 통역해주는 사람은 존재했지만 그들은 상당히 고급 인력이었다.
사람을 해치는 무기보다 붓과 먹이 더 익숙한 이들인데, 그 문관들이 한 달 동안 수천 리를 움직이는 강행군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지.
병사의 걱정스러운 대답에 마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의미만 통하면 되니까 걱정할 거 없어.”
“옙.”
상대편의 무장을 보면 아마 우리처럼 먼 거리를 재빠르게 움직인 것 아닐까.
그런 상황에선 간단한 의사소통만 돼도 다행이었으니 마초는 딱히 아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마주친 두 국가의 장수는 군대를 대기시킨 채 서로 마주했다.
“……여기서 이 얼굴을 마주할 줄은 몰랐는데.”
“…….”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 두 장수가 면식(面識, 얼굴을 서로 알 정도의 관계)이 존재하는 상태라는 것.
“…이름이 분명 무칼리(Мухулай)였나?”
“그렇습니다.”
과거 한나라와 몽골 제국이 전쟁을 치를 당시 서로를 적으로 마주했던 두 여인은 살짝 어색하게 대화를 나눴다.
한쪽은 칭기즈 칸의 명을 받아 한나라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한쪽은 대장군의 명을 받아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서.
각자의 이유로 익주 방면에서 대립했던 장군들이 입을 열었다.
“친근하게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니 본론부터 들어가죠.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요?”
“대칸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영 지워지질 않는 상황 속에서도 무칼리는 차분히 이야기했다.
“부여에게 종속된 이민족이 있으니, 이들의 우두머리를 처리한 다음 휘하에 흡수하라고 말씀하셨지요.”
내용만 살짝 다를 뿐, 무칼리가 칭기즈 칸에게 받은 명령은 마초가 대장군에게 받은 명령과 무척 흡사했다.
“…….”
부부가 서로 비슷한 명령을 내리는구나.
“그 이후에는 보급로를 끊어버리며 지원군이 당도하지 못하게 막아낼 계획인데, 마맹기(馬孟起) 장군께선 어떤 명령을 받고 찾아오셨습니까?”
“…저도 비슷하네요.”
“…….”
그와 동시에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
“…….”
“…….”
아마 무칼리도 자신과 비슷한 감상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마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했다.
…정말 어색해도 너무나 어색한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