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76)
EP.676 예맥(濊貊)(16)
나는 몽골 제국이 전쟁에 개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정보 수집을 위해 척후병들을 움직였다.
그야 몽골 제국은 전쟁이란 활동 자체에 이골이 난 무시무시한 정복 국가 아닌가.
지금이라도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급변하는 상황을 못 따라가고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겠지.
본래 역사에서 호라즘 왕국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속도로 도시를 점령하는 몽골 제국에게 정신을 못 차린 건 꽤 유명한 이야기.
만약 내가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간 고구려에 도착하기도 전 국내성 전투의 승패가 정해질 수 있었다.
“…….”
어쩌면 이미 끝나있을 수도 있고.
우리가 비록 유목민의 방식을 참고한 기마병을 2만 명이나 양성해 선봉대로 투입했지만 본고장인 몽골 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애초에 말 품종부터가 다른 걸 어떻게 해.
몽골에서 태어난 말들은 초원에 널린 잡초 아무렇게나 뜯어먹어도 멀쩡한 놈들이라고.
보통 말이라고 하면 길가에 널려있는 풀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않나 생각하겠지만 자연은 의외로 심오하거든.
초식 동물이 들가에 널린 풀만 먹으며 영양분을 채우려면 정말 하루 종일 먹기만 해야 한다.
가축을 방목하려면 엄청나게 넓은 땅이 필요하잖아.
이게 전부 이런 이유 때문이지.
또 자기를 뜯어먹는 초식 동물을 식물이 좋게 바라볼 리 없으니 미약하게나마 독성을 띠는 종류도 있고….
더욱 단순하게 돌아가서 이미 죽어있던 풀이 상해버린 경우도 존재하지.
이런 걸 잘못 뜯어먹었다간 말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초식 동물이라 한들 바로 배탈이 나거나 질병에 걸려 죽어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전쟁이 본래 역사에서도 존재한다.
왜, 인간은 초식 동물이라고 주장한 독립 운동가가 거하게 터트린 전투 있잖아.
같은 사람한테도 그러는데 동물이라고 안 그러겠어?
당연히 소나 말 등 보급을 위해 동원된 짐승은 몰살.
그 뒤를 이어 수만 명의 군인까지 먹을 게 없어 우수수 죽어나갔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엄청난 전략이라며 치켜세울 전공.
당연히 반어법이다.
이제 사람들이 어째서 건초(乾草)라는 먹이를 따로 만들고 콩이나 귀리 같은 곡식까지 섞어 짐승들에게 먹이는지 알 수 있을 터.
근데 이것도 전부 보급품이라 속도를 느려지게 한단 말이지.
사람 먹을 것도 제대로 챙기기 힘든 마당에 짐승 먹을 것까지 챙겨야 한다고?
심지어 짐승은 사람보다 더 많이 먹는데?
하지만 몽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말들은 이러한 제약을 받지 않으니 기동력이 무시무시한 것이다.
물론 단점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
태어날 때부터 잡초만 먹고 살아서 그런가, 몽골에서 태어난 말들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말들과 비교해 조랑말이라 불러도 될 수준으로 몸집이 작았다.
덩치가 작으니 순간적인 파괴력에선 살짝 밀릴 수밖에.
근데 몸집이 작다는 걸 다르게 표현하면 연비가 뛰어나단 뜻 아니겠냐.
거기에 오래 달려도 버틸 수 있는 지구력까지 겸비했으니 더욱 좋지.
실제로 몽골 기병의 말과 갑옷이 볼품없다며 이들을 비웃던 유럽 기사단이 어찌 됐는가.
병력은 전멸당했고 지휘관까지 전사했다.
만약 판금 갑옷이 존재했던 시절이라면 더 잔혹하게 죽었겠지.
면갑이나 갑옷 틈새로 화살이 박혀 죽을 수 있겠지만….
하루 종일 술래잡기만 하다가 말이 지치는 순간 낙마해 두들겨 맞아 죽는 기사도 있었을걸.
실제로도 그렇게 죽는 경우가 있었지.
방어력이 너무 높아서 더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해.
“주군! 보고에 따르면 선봉대를 이끄는 두 장군 모두 몽골 제국과 마주쳤다고 합니다!!”
“…마초까지 몽골을 만났다고?”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마다 느낌표가 하나씩 늘어날 것 같은 말투는 여전하구나.
난 여느 때와 똑같이 힘찬 목소리로 보고하는 손권을 마주한 다음 잠시 상황을 정리했다.
위험에 빠진 국내성을 구원하기 위해 동쪽으로 파견한 장료.
부여에게 종속된 읍루를 견제하기 위해 북쪽으로 파견한 마초.
그 두 장수가 모두 몽골 제국을 마주쳤다는 건 그들이 이번 전쟁에서 아주 제대로 날뛰고 있단 뜻이었다.
이거 부여의 손발이 죄다 잘리고 있네.
한쪽은 군대의 보급로를 끊어버린 다음 지원군이 당도하지 못하게 길을 막아버렸고, 다른 한쪽은 공성전을 벌이던 부대를 급습해 적을 전멸시키거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혔다.
“…….”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전쟁을 끝낼 생각인가.
테무진의 계획을 도통 알 수가 없네.
그러나 몽골 제국의 개입이 나쁜 일이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비록 부여한테서 뜯어낼 수 있는 재물은 줄어들겠지만 그렇게 일차원적인 이유로 참전한 전쟁이 아니지 않나.
칭기즈 칸도 그런 의도로 끼어든 것 같지도 않아.
애초에 몽골 제국이 돈 좀 쥐여준다고 해서 용병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집단은 아니지.
일개 씨족도 아니고, 어엿한 통일 국가로 성장한 몽골한테 그런 짓을 하면 오히려 자신을 얕잡아 보는 거냐며 무섭게 반응할 터.
그녀는 정말 단순히 동맹국으로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끼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야, 뒤에서 받쳐주는 세력이 참 든든하구만.
조금 더 속되게 표현하자면 빽이 너무 좋아.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나도 조금 더 욕심을 부릴 수 있었다.
본래 역사의 부여가 선비족을 이끄는 모용외에게 대패하고 성장 동력을 잃은 것처럼 이 세계의 부여도 몽골 제국한테 같은 일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겠지.
심지어 몽골 제국은 선비족뿐만 아니라 흉노족이나 오환족 등 온갖 유목민을 전부 흡수하지 않았나.
모용외가 이끄는 세력하고는 전투력 단위부터 다르다고 봐도 될 터.
어쩌면 무왕(武王) 장궤처럼 모용외도 이른 시기에 태어났을 수 있지.
난세를 성공적으로 수습한 시기에 태어난 장궤가 결국 한(漢)나라 소속이 된 것처럼, 칭기즈 칸이 다른 이민족을 전부 집어삼킨 시기에 태어난 모용외도 몽골 제국 소속이 되어있을 수 있었다.
“으음….”
그렇게 치면 오호십육국의 주역인 다른 이민족 군주들도 깡그리 몽골 소속이 됐으려나?
별로 유명하지 않은 시기라 기억은 안 나지만, 강족 저족 오환족 선비족 흉노족 등 아주 그냥 안 끼어든 이민족이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대.
애초에 이름부터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아니냐.
적어도 자기 나라를 세울 만큼 능력 있는 인물이 16명은 있다는 뜻이지.
정보를 주르륵 훑어보다가 스쳐 지나가듯 확인한 무왕(武王)이란 이명이 너무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은 장궤.
조상님 국가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한 기록이 남아 내 머릿속에 각인된 모용외가 특이했던 경우였다.
마지막으로 오호십육국의 도래를 알린 유연(劉淵)도 있겠네.
이 사람, 유(劉)씨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흉노족 출신이다.
흉노족이 왜 한나라 황족의 성씨를 사용하느냐고?
간단하다.
바로 그 묵돌의 후손이거든.
한고조 유방이 흉노 선우 묵돌에게 전쟁을 걸었다가 역으로 처맞고 공주와 함께 공물을 바치지 않았나.
그 한나라 공주와 흉노 선우 묵돌의 핏줄이 이어진 고귀한 혈통이란 뜻에서 유(劉)씨를 사용한 거지.
아무튼 그러한 이유 때문일까.
유연은 흉노족치고 한나라를 기묘할 정도로 좋아해서 나라를 세울 당시에도 이미 멸망했던 한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성씨가 유(劉)씨라서 알게 모르게 세뇌라도 당한 건가?
참으로 무섭군.
설명이 조금 길어졌는데, 내가 기억해야 할 건 오호십육국의 개막을 알린 유연이나 조상님들을 쥐어팼던 모용외 등 미래에 생겨날 폭탄 여러 개를 몽골 제국이 끌어안았단 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매우 좋은 상황이지.
적어도 오호십육국은 일어나지 않는단 뜻이잖아?
“손권.”
“네! 부르셨습니까!!”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면서 바둑알을 이리저리 옮기던 나는 계획을 한 차례 수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이면 그대의 자매가 어디 있을 것 같나?”
“백부(伯符) 언니 말씀이신가요?”
손책의 자(字)를 언급한 손권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마 배를 타고 나아가서 한사군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
육로로 부대를 보냈으면 수로(水路)로도 부대를 보내야지.
나는 낙양에서 출발하기 이전 수군을 이끄는 손책과 주유에게 먼저 한사군으로 향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내가 저번에 장료나 마초보다도 더 일찍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부대가 존재할 수 있다 언급하지 않았나.
그들이 바로 손책과 주유가 이끄는 수군(水軍)이었다.
“듣자하니 마한(馬韓)과 진한(辰韓)도 고구려를 침공했다면서?”
부여처럼 공손도의 딸과 맺어진 마한(馬韓)은 우리한테 공격당하기 전 먼저 움직인 것으로 쳐도 진한(辰韓)은 어째서 고구려를 침공한 걸까.
…한사군(漢四郡)이 그렇게나 탐스러웠나?
확실히 너나 할 것 없이 고구려를 집어삼키고자 하는 상황인데 슬쩍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할 터.
부여가 백제와 신라까지 끌어들인 건지, 아니면 이들이 독단적으로 나선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전쟁을 일으킨 건 그들이니 나도 이에 대응해야만 했다.
“손책한테 북쪽보다는 남쪽을 더 신경 쓰라고 전해줘.”
“…네!”
원래라면 한사군에 정박한 다음 위로 쭉 올라가 부여와 대치할 계획이었지만, 몽골 제국이 끼어든 이상 그럴 필요는 없지.
어쩌면 주유가 이미 상황 판단을 끝마치고 한사군에 눌러앉아 이들을 막아내는 상황이지 않을까.
마한과 진한….
그러니까 백제와 신라 입장에선 웬 이상한 연놈들이 갑작스럽게 배를 타고 넘어왔으니 상당히 당황스러울 터.
“…….”
무슨 마트 행사 상품도 아니고 감자 줄기처럼 줄줄이 딸려나오는구나.
이제 곧 국내성에 도착하니 그때 상황을 한 번 더 정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