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78)
EP.678 예맥(濊貊)(18)
한수(漢水).
본래 역사였다면 한사군(漢四郡)의 행정 구역 중 하나인 대방군(帶方郡)의 한자를 떼서 대수(帶水)라고도 불렸을 강의 이름.
하지만 대수(帶水)라 불리는 것도 잠깐이었고, 이 강은 훗날 여러 사람에게 한강(漢江)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애초에 대방군(帶方郡)이라는 구역 자체가 요동의 왕을 자칭했던 공손씨 일가가 낙랑군(樂浪郡)에서 떼어내며 만든 지역 아닌가.
본래 역사의 요동 공손씨 일가가 상당히 오래 살아남은 것과 다르게, 역적 낙인이 찍히며 금방 토벌당한 현 세계에선 한강(漢江)이 대수(帶水)라고 불릴 일은 없었다.
본래 강(江)이라는 글자는 중국 강남 지방의 장강(長江)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쓰였으나….
한나라 시절부터 점차 포괄적인 의미를 포함하며 다른 곳에도 강(江)이란 글자를 사용했다.
“오, 이곳에 이렇게 넓은 강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대장군이 출진시킨 그 어떠한 부대보다도 일찍 한사군에 도착한 정예 부대.
강동에서 나고 자랐기에 물길을 지나는 것이 무엇보다 익숙했던 적갈색 머리카락의 여인은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폭을 자랑하는 거대한 강.
이 정도면 한나라에 존재하는 장강(長江)과 엇비슷한 정도였다.
“…….”
“공근,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어?”
“흐앗?!”
손책이 근처에 있던 주유의 어깨를 툭 두드리자 주변 상황을 정리하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 손에 든 지도를 껴안았다.
“놀라게 하지 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현재 주유가 서 있는 곳은 선상 끄트머리.
하마터면 주변 지리를 기록한 귀한 지도를 깊은 강줄기 아래로 빠트릴 뻔했다.
“…어, 나는 몰랐지.”
손책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눈치챈 듯 적갈색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주유의 시선을 슬며시 회피했다.
“후우….”
주유는 상당히 얼빠진 모습을 보이는 손책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전장에 던져놓으면 족히 수십, 수백 명은 참살하면서 크나큰 전공을 세우는 뛰어난 장수였지만 정말 그것만 잘하는 것이 문제인 인물.
대장군 덕분에 욱하는 성질머리는 조금 줄어들었다지만 계획을 수립하고 그녀를 책임지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었다.
손책은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주유가 자신에게 잔소리를 내뱉기 전에 서둘러 행동에 나섰다.
“에이, 화내지 마. 그래도 내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이어질 수 있었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모른 척하기는. 나 아니었으면 지금도 식은땀 뻘뻘 흘리면서 부끄럼만 탔을…. 꺄악!”
주유에게 슬그머니 어깨동무하면서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잇던 손책은 미처 주유의 발차기를 피하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는 주유가 걷어찬 부위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중얼거렸다.
“하필 걷어차도 정강이를…!”
“누가 이상한 말 하래?”
분명 어느 정도 보호구를 갖춰입었는 데도 이토록 아픈 건 주유의 무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드러내는 것일 터.
대장군이 보낸 온갖 약재와 뛰어난 의원 덕분인지 주유는 그녀가 과거 종종 보였던 병약한 모습이 사라진 상태였다.
───끌끌, 너 또한 천명(天命)을 거슬렀는가?
───네?
───아무것도 아니다. 오래 산 늙은이의 헛소리일 뿐이니….
과거 주유를 잠시 살펴보곤 이상한 소리를 내뱉던 의문스러운 노인도 존재했지.
몸이 불편한 듯 다리를 절뚝거리며 왼쪽 눈의 초점조차 제대로 맞지 않던 노인.
파란색 의복을 걸치고 머리 위에 넝쿨로 만들어진 관까지 뒤집어쓴 특이한 차림이었기에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
분명 노인이 나타난 곳은 길거리 한복판이었는데 도대체 그 짧은 순간 어떻게 사라진 걸까.
───…뭐야. 헛것이라도 본 건가?
이에 손책과 주유는 괴력난신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어리둥절한 기색만 보였다.
───이놈아! 내가 분명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크흠.
───괜히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네놈이 책임질 것이냐?!
───…이미 그놈 자체가 변수 아니오?
───감히 어른한테 말대꾸를 해?!
우두둑. 뚜둑.
───오냐, 네놈이 오늘 사람의 관심이 고픈 것 같으니 내 직접 관심 어린 손길을 내려주마!
───억! 어억! 그, 그만! 내가 잘못했소! 그만 때리시오!!
…그 노인은 곧 소녀의 모습을 한 신선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온갖 꾸중을 들었지만 그건 당사자만이 아는 뒷이야기였다.
“그래서 공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간단해.”
한무제 시절 기록된 지도와 자신이 직접 척후병을 풀어 새롭게 기록한 지도를 비교한 주유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주변 지형을 파악해보니 이 강도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며 한사군 곳곳 골고루 뻗어져 있어.”
임진강(臨津江), 북한강(北漢江), 남한강(南漢江), 홍천강(洪川江)….
비록 이 시기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현대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수많은 강들.
물론 강의 폭과 길이에는 각각 큰 차이가 있겠지만 전부 주유가 활용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와아아아──!!
“…이 소리는?”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았나 보네.”
이제 막 한강 근처로 다가왔을 뿐인데 곳곳에서 힘찬 함성 소리가 들려오자 손책은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북쪽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남쪽에 있는 국가가 쳐들어온 거지.”
“…….”
“어디 보자….”
손책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주유는 대장군이 직접 자필로 기록한 문서를 조심스럽게 꺼내 펼쳐 읽었다.
“특히 마한(馬韓)과 진한(辰韓)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셨던가.”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지.”
연파랑색 눈동자를 지닌 여인은 살짝 탈색된 백금발을 휘날리면서 손책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강을 순찰하면서 도하(渡河) 작전을 펼치려는 놈들 확인하고 전부 막으면 돼.”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짓이네!”
손책은 주유의 설명을 듣자마자 씩 웃어 보이며 허리춤에 걸린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면 빨리 가자!”
“뭐? 잠깐! 후발대는 어쩌고?!”
“아버지와 할아범들 있잖아!”
자신을 열심히 뒤따라오는 아버지 손견과 강동 노장들.
비록 지금은 자신에게 공을 몰아주기 위해 한 발짝 물러난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오래전부터 온갖 전장을 전전한 잔뼈 굵은 장수들이었다.
특히 손책의 아버지인 손견은 그 대장군이 직접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통솔력을 지닌 장군.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는 손견의 유일한 단점인 성급한 성격조차 과거 화살에 맞아 죽을 뻔한 이후 고쳐진 상태였다.
“전령 보내놓으면 알아서 판단하겠지!”
“…….”
손견과 강동 노장들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지녔는지 주유도 알고 있었기에 딱히 반대하지 못했고, 이를 확인한 손책은 곧장 근처 부관들에게 외쳤다.
“뭐 하냐! 더 빨리 움직여─!”
“예!”
손책의 외침과 동시에 수많은 함선이 더욱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저, 저 함선들은 뭐냐?!
───적습─! 적습이다──!!
이미 고구려군과 한 차례 부딪히며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수많은 부대가 전부 혼란에 빠졌다.
…자세한 사정을 알 리 없는 고구려군도 예외 없이 혼란스러워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어쭈?! 이미 열심히 다리도 만들어 놨네? 전부 박살 내버려─!”
콰앙─!
“꺄아악?!”
───우와악!
───꽉 붙잡아!
함선이 부서지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다리를 들이받은 손책의 모습에 주유는 절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야! 이 정신 나간…?!”
“나 먼저 간다!”
“어디 가!!”
그런 주유의 반응을 예상한 것일까.
슈웅!
손책은 그 어느때보다도 빠르게 함선에서 뛰어내리며 전장에 참전했다.
───내가 바로 손백부(孫伯符)다! 적장은 당장 앞으로 나와라!
───으아악!
다리가 박살 나면서 자칫 잘못하다간 발을 헛디딜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용케 중심을 잡으며 넘어지지 않는 모습.
그 탁월한 균형 감각은 손책이 뛰어난 뱃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딸랑.
“다른 건 몰라도 저 호쾌한 성격은 마음에 든다니까.”
“예?”
이에 주유가 머리를 짚을 무렵 근처에서 방울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
“군사님, 나도 마음대로 날뛰어도 되지?”
손책과 상당히 비슷한 인상을 지닌 여인이 씩 웃으면서 묻자 주유는 다시 냉정함을 되찾고 대답했다.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좋았어!”
탓!
주유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힘차게 전장에 난입한 여인은 손책이 그랬던 것처럼 전장을 휩쓸었다.
───…방울 소리?
───여기 감흥패(甘興覇)도 있다! 자신 있는 놈들만 덤벼─!
안 그래도 성격이 비슷한 두 인물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날뛰니 환장할 노릇.
“…후우우.”
이에 주유가 오늘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뱉자 근처에 있던 장수가 힘차게 외쳤다.
“저도 열심히 돕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이름이 분명 여몽(呂蒙)이었나.
대장군이 충분히 가르치기만 한다면 뛰어난 능력을 선보일 수 있는 인물이라던데, 그건 앞으로 쭉 지켜보면 알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