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80)
EP.680 예맥(濊貊)(20)
오랜만에 재회한 칭기즈 칸과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낸 다음 날.
나는 다시 한번 지도를 살펴보면서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이 지도에는 요새나 성채처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설의 위치가 전부 적혀있었는데, 이를 볼 때 척후병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엄청난 고생 끝에 지도를 작성했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
하여튼 재주도 좋아.
어떻게 들키지 않고 지도를 이렇게 쓱쓱 그려왔대?
“저희와 내통하는 자가 있습니다.”
“…응?”
부여를 배신하고 우리와 내통하는 사람이 있다고?
제갈량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백우선으로 입가를 가린 채 싱긋 웃어 보였다.
“국내성 전투의 결과가 부여에도 전해졌는지, 최근 몇몇 귀족들이 은밀하게 전령을 보내더군요.”
“…….”
“세상 그 무엇보다 제 목숨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인물은 어디에도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국내성 전투에서 부여군이 전멸하자마자 냅다 백기를 들면서 우리한테 투항하는 놈들이 있단 뜻이다.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는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한나라만 상대해도 나라가 멸망할 위기인데 거기에 몽골 제국까지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압도적인 전력 차가 훨씬 더 벌어졌으니 무조건 죽는 선택지보단 실낱같은 희망에 걸어본 거겠지.
또 귀족들도 아예 아무런 생각 없이 항복한 게 아닐 것이다.
내가 영토 확장에 관심이 없다는 건 모두 알고 있을 테니, 지금 이 위기만 어떻게든 헤쳐나가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단 생각 아닐까?
“참 우스운 놈들이지 않나요?”
“…….”
“저희가 사병까지 거느린 자치 세력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는데 말이죠.”
사마의가 했던 이야기처럼 부여는 고구려보다 귀족의 권력이 더욱 강하면 강했지 약하진 않았다.
그래도 고구려는 고국천왕 때부터 귀족들의 자치권을 없앤 다음 국가의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장수왕 대에 이르러선 내전까지 불사하며 귀족의 권력을 어떻게든 약화시켰다.
하지만 부여는 아예 그런 것도 없지.
수많은 귀족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그들을 간접적으로 통치하기만 했던 부여의 이런 면모가 오히려 배신자들을 튀어나오게 했다.
부여를 다스리는 왕은 어디까지나 부여에 존재하는 귀족의 대표자일 뿐, 흔히 왕이라 하면 떠오르는 절대적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귀족끼리 회의를 열어서 자기 마음대로 왕을 쫓아내거나 죽일 수 있었어.
이게 뭐가 왕이냐?
…근데 나 이것과 비슷한 정치 체제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로마 공화국….
원로원과 집정관의 관계….
왠지 굉장히 비슷한데.
사실 로마 공화국은 집정관(왕), 원로원(귀족)을 제외하고도 호민관이라 해서 시민을 대표하는 세력이 존재하긴 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삼권 분립의 시초지.
근데 공화정 후기로 가면 원로원의 세력이 너무 강해져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게 문제일 뿐.
원로원이 강해진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래도 가장 대표적인 이유를 꼽으라면 이것 아닐까.
로마 공화국은 그 당시 연이은 정복 전쟁을 벌이며 영토가 무척 넓어진 상황이었는데, 그 영토 대부분을 귀족이 꿀꺽하며 힘이 너무 강해져 버린 것이다.
평민은 자신이 농사지을 땅이 없으니 먹고 살기 위해서 귀족한테 소속되는 방법밖에 없고, 귀족은 그를 바탕으로 토지를 더욱 넓혀나가고….
이에 호민관이 토지 개혁을 하면서 귀족을 억제하려 하자 원로원은 로마의 오랜 전통을 통해 그를 치워버렸다.
그 오랜 전통이 뭐냐고?
야심한 밤에 몰래 들어가서 검으로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하는 행동 있잖아.
아, 호민관을 죽였을 때는 심야를 틈타 검으로 쓱싹한 게 아니라 대낮에 패싸움을 벌여 몽둥이로 때려죽였던가?
로마 공화정이 멸망한 것에도 다 이유가 있네.
라티푼디움(Latifundium).
대지주를 이르는 단어가 튀어나온 것도 바로 이 시기.
그 로마 공화국조차 급격한 영토 팽창을 버티지 못했다는 뜻이지.
이것도 대책 없이 땅만 늘리다가 배탈이 난 경우 아닐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때 귀족 세력을 뒤집어엎어 버린 사람이 그 유명한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몇 번이고 사이좋게 지내자 말했는데, 원로원이 그거 다 무시하고 계속 자기를 죽이려 하니까 화나서 칼을 뽑아든 거지.
사실 원로원은 자살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당시 모든 군대를 줄줄이 박살 내던 카이사르에게 얌전히 죽으라며 으름장을 놓을 리 없지.
아마 원로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거야.
가령 집정관에 오르고 호민관의 지지를 받으며 압도적인 권력을 손에 넣은 카이사르가 민중파를 위한 여러 개혁을 펼치면서 귀족파의 이익을 뺏어갈 것 같다거나….
솔직히 그 당시 원로원들은 카이사르가 독재 정치를 펼칠 것 같아 막는다는 숭고한 이유보단, 그냥 자기 이익을 뺏어갈 것 같으니 죽이려 했다는 게 90% 이상일 것이다.
뭐, 집정관의 독재 정치를 막는다고?
이미 원로원들이 독재 정치를 펼치고 있었잖아.
하지만 카이사르처럼 나라를 뒤집어엎은 게 성공한 경우….
아니, 카이사르도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을 뿐 결국 원로원 귀족들한테 암살당했지.
이처럼 귀족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인지라 부여처럼 귀족들의 분탕을 손 놓고 지켜보다가 폭삭 주저앉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왕의 권력이 약하면 귀족들이 강해지는 건 당연하지.
고구려에서 활동하던 귀족들은 부여의 꼬드김에 곧장 넘어가 성문을 열어주면서 제 조국을 배신했다.
안 그래도 최근 고구려는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여러 귀족과 갈등을 빚던 상황이었으니까.
선비족의 영웅인 모용외를 막아냈던 명장, 고노자가 수십 년 일찍 등장했음에도 고구려가 너무 맥없이 밀린 이유가 있단 말이지.
“부여는 단순히 여러 귀족이 뭉쳐서 만들어진 연맹 세력이니까요….”
“…그렇다면?”
그러나 제대로 뭉치지 않은 세력은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녔더라도 오합지졸일 뿐.
방통이 한 차례 이야기하자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그, 그들의 구심점만 처리한다면 귀족끼리 알아서 내전을 벌이지 않을까요?”
“…….”
그렇구만.
본래 역사에서 부여가 그 명성과 다르게 상당히 힘없이 멸망한 이유가 있었어.
모용외한테 왕이 잡혀서 죽어버리니, 구심점을 잃은 귀족들은 서로 자기가 왕 하겠다면서 드잡이질을 벌인 게 분명했다.
힘을 하나로 합쳐도 모자란 때에 자기들끼리 분열을 일으킨다라….
왠지 나라가 멸망하는 패턴은 몇 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는 것 같아.
“…죽이면 되는 거야?”
그때 근처에서 회의를 지켜보던 칭기즈 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매우 직설적인 질문이로구나.
그 와중에 주어는 또 빼먹었고 말이야.
특이한 말투를 제외하고도 테무진은 어제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낸 것 때문인지 다리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
“…….”
나는 서여와 여포를 비롯한 근처 여인들의 알 수 없는 눈빛을 최대한 무시하면서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
이미 한나라 내부에서 부여를 다스리는 왕은 역적으로 낙인 찍힌 상태다.
저번에도 설명한 적이 있지만 역적 당사자는 살려둘 수가 없어.
내가 역적을 살려주면 몇몇 사람들은 자비로운 품성에 감동하고 마지막 기회를 활용해서 마음을 고쳐먹는 것보다 ‘어? 한 번은 봐주네?’ 같은 이상한 생각을 하며 문제를 일으켰다.
‘난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 기회가 한 번은 있구나!’
‘한 번 봐줬는데 혹시 두 번도 봐주지 않을까?’
아무렴, 그놈들은 어떤 걸 상상하든 그 이상의 인성을 보여주거든.
───그들은 저희와 사고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나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느 유명한 문장을 떠올리고 역적과 관련된 문제에선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역적 이놈들은 죽을 거면 자기만 죽지, 꼭 주변 사람을 물귀신처럼 끌고 가는 게 문제라니까.
“부여를 다스리는 왕….”
“…위구태왕(尉仇台王)이요.”
“아, 그래. 위구태왕.”
내가 또 이름을 잊고 버벅거리자 근처에서 사마의가 한숨을 내뱉으며 슬며시 알려주었다.
의외로 위구태왕이란 별칭이 시호(諡號, 죽은 뒤에 붙이는 이름)가 아니더라고?
따로 알아보니까 왕의 이름이 위구태(尉仇台)라던데….
즉, 자기 이름 뒤에 왕(王) 글자만 붙인 참으로 간단한 별명이었다.
아무리 호칭 짓기가 귀찮아도 그렇지 너무 대충 지은 것 아니냐.
부여에선 왕의 권위가 상당히 약한 것도 있으니 호칭을 신중하게 지을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일단 왕은 왕이니 위구태왕이 죽은 다음에는 다른 호칭으로 불릴 가능성이 높을 터.
…아닌가?
왕이 생전에 쓰던 호(號, 본명이나 자 이외에 쓰는 이름)가 시호(諡號)로 굳어진 경우도 있으니까.
뭐, 위구태왕의 시호가 어찌 되든 내가 신경 쓸 바 아니지.
나는 여전히 날 뚫어져라 응시하는 테무진한테 이야기했다.
“어차피 처리해야 하는 인물이니까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어.”
“…….”
“내일이면 고구려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을 테니 그때 진군하자고.”
테무진의 질문에 대답한 나는 눈앞에 놓인 지도를 내려다보며 다음 목표를 찾았다.
어디 보자….
부여의 수도가 어디였더라.
아, 여기였구나.
잠시 갈 곳을 잃고 헤매던 내 손가락은 이윽고 한 곳에 멈춰 섰다.
부여성(扶餘城).
…왕 호칭도 그렇고 수도 이름도 되게 단순하게 짓네.
이게 부여의 전통인가?
“위치는 여기야. 생각보다 가깝지?”
“…응. 맡겨줘.”
내가 같이 공격해야 하는 위치를 알려주자 내 곁으로 다가온 칭기즈 칸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
“으그극….”
…서로 의견 나누는 것뿐이니까 그만 쳐다봐.
이러다가 내 뒤통수에 구멍 뚫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