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83)
EP.683 예맥(濊貊)(23)
지금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새삼스러울 수 있으나, 본래 역사보다 1,000년 일찍 존재감을 드러낸 몽골 제국은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적이 대칸께 접근한다!
───어서 막아라!!
전장에서 전사하거나 포로로 붙잡히며 무력화된 수만 명의 몽골 병사.
───주, 주인님….
───부탁한다.
───…네.
그리고 고금무쌍을 막아내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차디찬 대지 위에 몸을 뉘인 사준사구(四駿四狗)들까지.
그 결과 칭기즈 칸의 가장 뛰어난 장수였던 수부타이와 익주 전선에서 마초, 법정과 부딪히던 무칼리를 제외하고 전부 죽거나 생포당했다.
사준사구 중에서 무려 6명이나 사라진 상황인데 힘이 얼마나 약해지겠나.
포로로 붙잡혀 겨우 살아남은 제베, 쿠빌라이, 보로클을 제외한다면 공석이 3개나 남은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칭기즈 칸도 몽골 제국의 팔천왕을 새로 뽑을 수밖에 없지.
자, 그러면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는 자리엔 누가 오를 수 있을까.
───피유우우웅─!
그것은 이번 전쟁에서 공을 얼마나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근처에서 돌격 신호를 알리는 효시(嚆矢) 소리가 울려퍼지자 근처에서 대기하던 몽골군이 일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야전(野戰, 산이나 들 따위에서 벌이는 전투)에서는 강하지만 공성전에는 약한 유목 민족의 고질적인 단점.
몽골 제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전략을 만들어 냈다.
“ᠴᠠᠬᠢᠯᠭᠠᠨ ᠭᠠᠷᠭᠠ !(발사!)”
후우웅─!
───도, 돌 날아온다!
───피해!!
쾅!
첫 번째로는 기술자들을 적극 영입하여 수많은 공성 병기를 만들어 내고 활용한 것.
몽골 제국이 송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회회포(回回砲)를 사용한 건 꽤 유명하지.
회회포(回回砲)가 뭐냐고?
투석기의 한 종류인 트레뷰셋(Trebuchet)을 한자로 부르는 말이다.
왜, 무게추 방식을 사용해서 균등한 힘으로 발사체를 날리는 투석기 있잖아.
본래 역사에서 회회포를 사용해 공격을 5년이나 버틴 송나라의 양양성을 함락한 것처럼, 이 세계의 몽골 제국도 어디선가 투석기를 끌고 와 바위를 마구잡이로 날려댔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무게추를 이용하는 투석기가 아닌 인력을 사용하는 투석기였지만.
…여러 개로 갈라진 로마 제국을 한 차례 초토화하고 왔다길래 혹시나 하며 기대했는데 말이야.
지금 이 시기의 로마도 한나라와 비교했을 때 투석기 기술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나 보네.
쾅! 쾅!
투석기를 맡은 몽골군은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바위를 날려댔고, 이에 경쟁욕이라도 생긴 건지 한나라 병사들조차 더욱 재빠르게 돌을 날려댔다.
───으아악!
그럴수록 성벽 위에 자리 잡은 부여군은 더욱 죽어 나갔지만.
두 나라 모두 체력이 뛰어난 정예군을 끌고 왔으니 투석기가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갉아먹기만 해도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언젠가 부여성을 점령할 수 있을 터.
하지만 평소 기동전을 일삼았던 몽골 제국은 눈앞의 성을 더욱 재빠르게 점령하고자 했다.
“ᠬᠥᠳᠡᠯ ! ᠰᠢᠯᠵᠢ !(움직여라! 움직여!)”
짜악!
“커헉!”
포로로 붙잡은 부여군 병사들을 앞세운 채 공성 병기를 전진시키는 몽골 제국군.
내가 조금 전 몽골 제국은 성이나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참 많은 전략을 사용했다 설명하지 않았나.
첫 번째가 점령한 지역의 기술자를 영입해 공성 병기를 활용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가 바로 자신이 포로로 붙잡은 적국 인력을 앞세우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잔혹하다고 볼 수 있는 전략이었으나 적어도 아군의 희생이 늘어나는 것보단 나을 터.
…사실 이러한 전략을 사용한 게 몽골 제국이 악마의 군대라 불린 이유인 것 같기도 해.
포로로 잡힌 부여군이 몽골 제국의 강압에 못 이겨 충차(衝車)를 이끌고 해자를 메우기 위해 접근해 오자 부여성은 한층 혼란스러워졌다.
───자, 장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쏴라!
───하지만 저들은 우리 아군….
───쏘라고 명령하지 않았느냐!
이제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네.
분명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먼저 전쟁을 일으킨 건 부여인데, 왜 지금은 우리가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일까.
슈슈슉─!
“크아악!”
“으악!”
결국 부여군은 상관의 명령을 따라 포로로 붙잡힌 아군에게 화살을 발사했고, 몽골 제국이 전진시키던 부여군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으으….
공세는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있었으나 이상하게 사기가 점점 떨어지는 특이한 상황.
거기서 몽골군이 더욱 독한 점이 무엇이냐면 단 한 명도 포로와 함께 돌진하지 않았다.
“ᠲᠡᠨᠡᠭ ᠬᠣᠯᠢᠮᠠᠭ ᠥᠨᠳᠡᠭᠡ ! (멍청한 녀석!)”
───끄르륵…!
오히려 부여군이 포로에게 화살을 발사하는 동안 뛰어난 활 실력으로 궁수들을 처리하더라.
또 굼뜨게 행동하며 기회만 살피는 포로들한테도 망설임 없이 화살을 날리며 움직이는 걸 독촉했지.
적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면서 성문까지 뚫는다라….
정말 무시무시하긴 하네.
사실 포로를 공성전 때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긴 했다.
나만 하더라도 남만을 정벌할 때 포로로 붙잡은 남만 병사들을 동원해서 은갱산을 뚫지 않았나.
조금 더 구체적으론 제갈량이 주머니에 흙을 가득 채우고 이를 던져서 토산을 쌓으라 명령했지.
하지만 그건 맹획이 버티고 있던 은갱산 성채의 높이가 낮아서 가능했던 짓이고, 지금 부여성처럼 험한 지형에 작정하고 건설한 성채는 상당히 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말 몽골 제국처럼 피도 눈물도 없이 포로를 사지로 몰아넣기엔 사정이 다르거든.
한나라는 남만을 온전히 흡수해서 그들을 다룰 수 있을 만한 행정 역량이 있었고, 몽골 제국은 그럴 만한 행정 역량이 존재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수백, 수천만 명에 이르는 피지배인들을 수십만 명밖에 안 되는 몽골 사람이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겠냐.
그렇기에 몽골 제국은 아주 관대하면서도 잔혹한 방식으로 피지배인들을 다스렸다.
피지배인들의 문화, 전통, 종교 등에는 간섭하지 않고 정복 활동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만을 징발해 갔지.
…단지 대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징발해 가는 정도가 엄청났을 뿐.
당연히 이에 불만을 품은 피지배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터.
이에 몽골 제국은 아주 잔혹하게 그들을 처리하며 다른 피지배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말 그대로 도시를 초토화하며 생존자 한 명 남기지 않았지.
반란을 일으킨 도시 하나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고, 그로 인해 형성된 공포심으로 다른 도시 수십여 개의 질서를 유지한 기형적인 정치 형태였다.
그리고 몽골 제국도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으니 소문을 의도적으로 부풀렸다.
“…테무진.”
“응?”
몽골 제국의 전법을 떠올리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부여성 근처에 있는 마을, 전부 파괴하진 않았지?”
현 상황에서 나오지 않은 몽골 제국의 세 번째 공성 전술.
그건 바로 주변 마을을 일부러 초토화하고 대규모 난민 무리를 발생시키는 것이었다.
거주지를 잃은 난민 무리는 당연히 살려달라면서 성으로 몰려들 테고, 난민을 받아들인 성은 자연스레 물자 압박에 시달릴 터.
그렇게 성을 포위한 다음 천천히 적을 고사(枯死)시키는 것이다.
이제 왜 사람들이 몽골 제국을 악마의 군대라 부르며 두려워했는지 알겠나.
몽골 제국이 일부러 소문을 부풀린 것도 있지만, 적군 입장에서 정말 악마 같은 짓만 골라 해서 그래.
…사실 몽골 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전부 이랬지만.
몽골 제국처럼 계획적인 학살 행위를 자행하든, 단순히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마을을 약탈하고 파괴하든….
힘없는 백성 입장에선 똑같은 자연재해지.
역시 전쟁은 사람의 정신을 너무 극한까지 밀어붙인다니까.
처음부터 죽기를 각오한 군인은 어떻게든 넘어가더라도, 다른 평범한 백성들까지 학살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더욱 비틀릴 것이다.
“…….”
───으아앙!!
───주군, 살아남으려면 이런 광경에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이 근처에서 들려올 리 없는 아기 울음소리와 지금은 내 근처에 존재하지 않는 무뚝뚝한 부관의 목소리.
또 시작이네.
오늘 잠자리도 상당히 사납겠구나.
이에 테무진은 무언가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건드리지 않았어.”
“정말?”
“왠지, 싫어할 것 같아서….”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정말 처음 보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별로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다 드러났나 보네.
“주인님.”
“…괘, 괜찮아?”
나는 내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는 서여와 여포를 확인하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부여성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