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89)
EP.689 삼한(三韓)(1)
고구려의 여러 귀족을 포섭하고 국내성을 단시간에 함락하며 적국을 멸망시키고자 했던 부여의 마지막 도박.
하지만 그들의 과감한 선택은 몽골 제국의 예상치 못한 개입으로 크게 실패했다.
도박이 실패했어?
그러면 이제 대가를 치러야지.
부여는 고구려 침략으로 인한 역풍, 즉 한나라와 몽골 제국에게 얻어맞으면서 순식간에 멸망해 버렸다.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누가 감히 손댈 수 없는 강력한 국가였는데 말이야.
부여는 단 한 번,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단 이유 하나로 허무하게 멸망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지.
부여에 대한 뒷수습도 어느 정도 끝마쳤으니, 이제 남은 일은 아래쪽에서 쳐들어온 삼한(三韓)을 막아내는 것뿐이었다.
“으음….”
나는 주유가 직접 유려한 문체로 적어 내린 보고서를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확인했다.
마한과 진한의 도하 작전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그들이 한사군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어하고 있다는 내용.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일 엄청나게 잘하고 있네.
하긴, 본래 역사의 오나라도 장강을 낀 채 위나라의 침공을 몇 번이고 막아내지 않았나.
비록 장강과 비교했을 때 길이는 짧더라도 폭 자체는 그렇게 꿇리지 않는 한강.
본래 역사의 적벽대전에서 어마어마한 공을 세웠던 주유가 강을 낀 채 버틴다면 마한과 진한은 별다른 도리가 없겠지.
만약 이 방어진을 무리해서 넘으려 했다간 수십만 병사를 홀랑 태워먹은 조조처럼 되는 거야.
심지어 마한과 진한은 두 군대를 합쳐도 군대 규모가 10만을 넘기지 못하잖아.
누가 농업 잘되는 땅 아니랄까 봐 수만 단위로 군대를 이끌고 온 건 인상 깊긴 했다.
본래 역사에서도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당시 5만 명 정도 이끌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백제도 이에 밀릴 리가 없지.
하지만 딱 그것뿐.
병사가 수만 명이나 된다는 건 놀라웠지만, 병사 모두 한사군에 제대로 입성하지도 못한 채 발목이 붙잡혀 있으니 조급해지는 건 그들이었다.
물론 지형을 크게 우회한다면 어찌저찌 한사군에 닿을 수 있긴 해.
근데 한강을 우회할 경우 자연스럽게 진군 경로가 길어지고, 보급로도 훨씬 길어질 텐데?
만약 우회 기동을 했다가 보급로가 툭 끊기는 순간 대참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보급로가 끊어져서 밥도 못 먹고 쫄쫄 굶어?
그러면 제아무리 정예군이라 한들 바로 몰살당하는 거야.
팽월에게 보급로를 끊겨도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던 서초패왕의 경우가 존재하긴 하나 그건 예외로 치는 게 옳다.
인간을 벗어난 괴물과 평범한 사람을 비교하는 건 너무하지.
어쨌든 마한과 진한의 연합군이 한사군을 점령하기 위해선 한강을 넘거나 우회로로 움직여야 하는데, 주유가 평범한 책사도 아니고 그것 하나 모를까.
한강과 그곳에서 쭉 이어지는 수많은 강줄기는 적군의 도하를 막기 위해 철통같이 경계할 테고, 그나마 존재하는 우회로조차 함정을 파놓고 삼한이 넘어오는 순간 뒤통수를 후려칠 터.
손책과 주유는 지원군이 도착하기까지 지키기에만 충실하란 내 명령을 그대로 받들면서 제멋대로 튀어 나가지 않았다.
본래 역사의 마속이 이렇게 말을 잘 들었다면 제갈량도 그를 베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놈의 등산가 기질이 뭐라고….
물론 주유와 마속을 비교하는 건 주유에게 크나큰 실례였으니 잡생각은 이쯤 하기로 했다.
“이제 어쩔 계획인가?”
“어쩌기는.”
산상왕의 질문을 받은 나는 보고서를 돌돌 말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밑으로 내려가서 다른 놈들도 때려눕혀야지.”
“…….”
내 적나라한 표현에 할 말을 잃었는지 산상왕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대장군치고는 단어 선정이 너무 저렴했나?
전장에서 구르는 게 이래서 문제야.
열심히 점잖은 말투를 쓰기 위해 노력해도 고생 좀 하다 보면 옛날 말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니까?
물론 여포나 장료처럼 야성적인 매력이 느껴진다며 옛날 말투를 더 선호하는 여인이 존재하긴 했다.
“주군.”
“알았어. 조심할게.”
하지만 대부분은 자리에 걸맞은 위엄이 존재해야 한다며 잔소리를 내뱉으니까 문제지.
평범한 농민 출신이었던 한고조 유방도 황제답지 않은 말투를 사용해서 신하들에게 자주 지적당했다던데, 내가 지금 딱 그 꼴이네.
그래도 최근 내게 자주 잔소리를 내뱉던 사마의가 유순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잔소리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지만….
───군자는 말 한마디로 슬기롭게 여겨지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어리석게 여겨지는 것이라고도 하였습니다.
君子一言以爲知, 一言以爲不知.
군자일언이위지, 일언이위부지.
───전 혹여나 다른 누군가가 주군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
사마의가 얌전해지니 이젠 다른 곳에서 잔소리를 내뱉고 있어.
───주군께선 백성에게 스스로 일어설 능력을 주시고(所謂立之斯立, 소위입지사립), 바른길로 이끌어 행하게 하며(道之斯行, 도지사행), 편안케 하여 모여들게 하고(綏之斯來, 수지사래), 격려하여 화목을 이루게 했습니다(動之斯和, 동지사화).
───…….
───즉, 주군이 살아계심을 모두가 영광으로 여기길 바라며(其生也榮, 기생야영) 이를 위해 주군께서는….
여기 사람 있어요!
살려주세요!
나는 자칫 잘못하면 귀에서 피가 나오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잔소리를 내뱉는 육손의 연파란색 눈을 슬며시 피할 수밖에 없었다.
───…….
───…….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마자 제갈량과 눈이 딱 마주쳤다면 이는 단순한 우연일까?
───후훗.
그 당시 나는 제갈량이 백우선으로 입가를 가린 채 싱긋 웃어 보이는 걸 확인하고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저 이야기 모두 논어(論語) 자장(子張)에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
───이와 비슷한 가르침으로는 군자가 한 번 말한 것은 천 년이 지나도 바꿀 수 없다(君子一言 千年不改, 군자일언 천년불개), 옛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이유엔 그를 이루지 못할까 염려한다는 것(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고자 언지불출 치궁지불체야)이 있겠군요.
때 아닌 상황에 벌어진 공부 시간.
이래서 눈을 마주치면 안 됐는데!
사실 이 시기 필독서나 다름 없는 논어를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겠느냐 싶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논어를 외우지 못한 인물이었다.
어렸을 때 시(詩) 하나 외우는 데에도 온갖 노력을 했던 마당에 책을 통째로 외워?
심지어 그거 몇백 쪽은 되던데 오히려 외우는 사람들이 대단한 거다.
문관으로 관직에 오를 마음이 있다면 무조건 외우는 게 철칙이지만 난 무관이라고.
정작 무관 주제에 무력이 약하다는 건 또 우스운 상황이었지만.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삼국지 게임에서 지력 능력치가 95 이상을 넘기는 책사들에게 두들겨 맞았지.
“크흠!”
“…….”
나는 또다시 그런 상황이 찾아오기 전에 큰 소리로 헛기침을 내뱉으며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지금은 일국의 군주가 세 명이나 모인 자리였으니 두 책사 모두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겠으나, 회의가 끝나면 다시 온갖 고사를 들면서 내 혼을 쏙 빼놓겠지.
…회의 끝나면 무어라 말하기 전에 후다닥 도망가야겠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샜군.”
“그, 그러한가.”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필사적이란 걸 눈치챘는지 산상왕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몽골 제국을 이끄는 테무진도 이런 내 모습에 의아한 태도를 보인 건 마찬가지.
두 명 전부 문관보다 무관에 가까운 이라 그런지 지금은 감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들도 훗날 내가 어째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
늘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법이었으니.
너희도 결국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
근데 산상왕은 몰라도 칭기즈 칸은 나와 대화 나누겠다고 다른 나라 언어까지 배운 인물이잖아.
저번 혼례식 때 축시(祝詩)를 몇 분 만에 지은 것도 그렇고, 테무진은 흔히 이야기하는 천재였던지라 오히려 새로운 배움을 즐길 수 있었다.
───피히힝.
왠지 저 망아지가 그것도 몰랐냐며 비웃는 것 같은데 단순히 기분 탓일까.
칭기즈 칸은 내가 선물한 망아지를 정말 어지간히도 애지중지하는지 늘 자신의 곁에 데리고 다녔다.
───푸히힝.
마치 내 기분 탓이 아니라는 듯 다시 한번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망아지.
저거 비웃는 거 맞네.
사람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짐승에게 무시당하는 삶이라니….
확 꿀밤이라도 때려주고 싶구나.
“…….”
나는 망아지를 바라보곤 살짝 눈빛이 서늘해지기 시작한 서여의 눈가를 오른손으로 잠시 가렸다.
저 인간이든 짐승이든 날 무시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눈빛 봐라.
제발 좀 참아다오.
난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는지 흠칫 몸을 떠는 망아지를 확인하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우리는 밑으로 내려가 미리 파견했던 수군과 합류할 계획이다.”
“…….”
“그대들은 어쩔 계획이지?”
내가 담담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자 칭기즈 칸이 먼저 대답했다.
“나는…. 응, 다른 곳으로 우회해서 진한(辰韓)을 노릴게.”
“산맥이 많은 곳인데 괜찮겠나?”
조상님 국가, 특히 동쪽에는 산맥이 엄청나게 많지.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사실 아닐까.
칭기즈 칸은 이런 내 염려 섞인 질문에 차분히 입을 열었다.
“말 타고 산 오르는 건 익숙하니까.”
정말 유목 민족다운 자신감이구나.
말 위에 기승한 채 산을 오르는 것.
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이냐 물으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야.
“…우린 몽골 제국과 합류하여 근처 지리를 알려주도록 하겠다.”
“그래?”
“대장군 그대는 이곳이 묘하게 익숙해 보이니까.”
순간 뜨끔했네.
눈치가 왜 이렇게 좋아?
물론 나도 한반도 전체를 꿰고 있는 건 아니니 지도를 살펴보면서 가야겠지만 그래도 몽골 제국보단 길을 해매진 않을 터.
몽골 제국과 고구려가 진한(辰韓)…. 그러니까 신라를 맡는다면 나는 백제와 부딪쳐야겠네.
“좋아. 결정했으면 움직이지.”
“…응.”
“알았다.”
이 전투도 부여 때 그랬던 것처럼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이때 당시 백제와 신라는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도시 연합 국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