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94)
EP.694 삼한(三韓)(6)
한나라와 마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수전.
전투에 앞서 날 계속 보좌하던 주유는 담담한 어조로 내가 신경 써야만 하는 점을 알려주었다.
“주군. 보고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보고?”
나는 언제부턴가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고기 요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 건강을 책임지는 의원들이 규칙적인 식사 시간이 중요하다 언급한 이후로는 꼭 정해진 시간에 밥이 나오더라.
말이 태의령(太醫令, 황실의 의원)이지 사실상 내 전속 의원으로 활동하는 장각은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낙양을 근거지로 둔 채 가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는 화타조차 이런 이야기를 꺼냈으니까.
그러면 뭐, 내 건강에 극성인 이들이 보일 행동은 하나뿐이지.
콰앙─!
‘정릉! 밥 먹자! 밥!!’
‘…….’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물체가 무엇이든 아주 그냥 박살을 내며 쳐들어온다고.
그리 격하게 움직이고도 쟁반에 담긴 음식이 흘러넘치지 않는 게 신기하더라.
“…….”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서여가 직접 음식을 먹여줄 것 같았기에 나는 젓가락을 움직이면서 말했다.
“말해봐.”
“저희는 주군이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적 군영 내부에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소문?
아무래도 연합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서 퍼트린 모양이네.
나는 본래 역사에서도, 삼국지연의에서도 온갖 소문을 퍼트리며 지능적인 승리를 거뒀던 주유의 행적을 떠올리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문의 내용은?”
“한(漢)이 노리는 것은 마한의 맹주인 백제국뿐이니, 그들만 사라진다면 전쟁을 끝마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내부 분열을 유도하겠다는 뜻이군.
손책과 주유가 낙양을 떠나기 직전 나는 그녀를 따로 호출한 다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마한에서는 백제국, 진한에서는 사로국….
이 두 국가를 콕 집어서 멸망시킨 다음 회군하겠다고 설명했지.
주유는 정말 진실만을 언급하면서 마한군의 결속을 뒤흔든 것이다.
“…하지만 말뿐인 위협은 공허한 법이죠.”
“결국 부딪쳐야 한다는 뜻인가.”
“예.”
지금 마한이 한나라와의 전력 차이를 실감했음에도 꿋꿋이 버티는 이유.
‘그래도 혹시 이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겠지.
왜, 5:5로 싸우는 게임에서도 진짜 항복 선언이 나오는 건 한타에서 패배한 이후 아닌가.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을 때 항복 선언이 나오는 것.
그리고 얼마나 압도적으로 승리했느냐에 따라 항복 선언이 나올 확률이 달라진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점이 바로 이거지.
그냥 평범한 승리로는 부족하다.
마한에 소속된 모든 국가한테 트라우마를 심어줄 만큼 압도적으로 승리해야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게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는 것.
“만약 이번 전투로 마한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면….”
“모든 국가가 백제에게서 등을 돌릴 것입니다.”
주유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자 나는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였다.
심지어 백제국이 위치한 곳은 한강 바로 아래쪽.
우리가 이번 수전에서 승리한다면 바로 백제국의 수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원래 백제는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이라고 한강 위쪽에 수도를 건설했는데, 그 행동이 한사군 입장에서 아니꼽게 보였는지 15년도 못 가서 아래로 밀려났다.
근데 한사군에게 밀려났더라도 한강 근처가 워낙 좋은 땅이잖아.
백제국은 언젠가 다시 한강 위쪽으로 진출하겠다는 다짐을 드러내며 다시 한번 한강 아래쪽에 수도를 건설했다.
그게 바로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지.
하지만 바로 그 행동이 오늘날 백제국의 숨통을 움켜쥐게 되었다.
한강을 건너면 바로 수도가 나오네?
수도에는 당연히 왕이 있을 테고.
중앙 집권 국가라면 어디론가 피신할 수 있기라도 하지 곳곳에서 온갖 세력이 난립하는 연합 국가라면 그것도 힘들었다.
부여의 수도가 함락되자 위구태왕이 도망치지 않은 채 자결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어디론가 열심히 도망치더라도, 귀족들이 책임을 물어서 자신을 살해하리란 걸 알고 있었기에 얌전히 자결한 것.
부여는 안 그래도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 왕을 몰아내는 국가야.
왕이 부덕해서 하늘이 노했기에 자연재해가 일어난 거라고 하던가.
자연재해만 하더라도 이 정도인데 수도가 적국에게 함락당한 경우는 더하겠지.
주유와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얻어내겠나?”
“주군께서 떠올린 방법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떠올린 방법?
난 기껏해야 지휘관 저격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꼬꼬마 군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주유도 날 무척 과대평가하는 모양.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
“…….”
거기까지 들은 나는 주유가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던데….
이건 곧 시베리아 기단에서 형성된 북서풍이 한국을 강타한다는 소리였다.
북서풍(北西風).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부는 바람.
그러니까 위에서 아래로 바람이 분다는 뜻이네?
“저는 그것을 이용할 계획입니다.”
나는 주유의 설명을 듣자마자 두뇌를 재빠르게 굴렸다.
모든 생물이 원초적으로 두려워하는 것….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어오는 바람….
이거 그냥 불 지르겠다는 소리잖아.
여기가 적벽이라도 되는 줄 알아?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적벽 대전(赤壁大戰).
조조의 천하 통일이 좌절되고, 촉나라와 오나라가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된 거대한 전투는 내가 역사를 뒤바꾸면서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 불 지를 일은 없겠다 생각했는데….
이제 조상님 국가에서 불장난을 치게 생겼네?
“부디 지켜봐 주십시오.”
“…….”
“저 주유, 대장군께 빛나는 승리를 바치겠나이다.”
나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주유를 바라보면서 내일 있을 전투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
한강의 주도권을 두고 대치하던 두 국가.
한나라와 마한 사이에서 일어난 수전(水戰)은 매우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사실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지.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에 일어난 전투를 갑작스럽지 않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으아악!
“…….”
나는 눈앞에서 마한의 진형이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비록 여러 문제점이 있었지만 규모 자체는 무시할 수 없었던 마한 연합군이 저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이유.
───화르륵!
…불이 붙어도 아주 제대로 붙었기 때문이지.
마한의 지휘관들은 우리에게 어찌 대응할지를 두고 수많은 논쟁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딱 하나, 안 그래도 규모가 거대한 한나라 군대에 맞서기 위해선 흩어지지 않고 똘똘 뭉쳐야 한다는 마음은 똑같았을 터.
이러한 의견은 마한에 소속된 국가 대부분이 한곳에 집결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수많은 선박.
강 근처 언덕에 지어진 가지각색의 군영들.
이게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
뭐긴 뭐겠어.
콰앙───!!
불 잘못 붙으면 화재가 금방 확산된다는 것.
참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엔 나무로 만들어진 목조선만이 강과 바다를 떠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군영 대부분도 나무로 말뚝을 박고 벽을 세운 채 만들어졌지.
소가죽 같은 것을 덧대서 화재에 대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가죽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데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싸잖아.
생필품과 사치품,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물품.
동물 가죽은 정말 돈이 썩어 넘치는 게 아닌 이상 마구잡이로 소모하는 게 어려웠다.
이런 현실적인 요건 때문에 결국 근처 나무를 베어와 뚝딱뚝딱 만드는 식으로만 해결하는 게 대부분이지.
자, 그러면 주유가 어떠한 방법으로 계획을 성공시켰느냐?
‘저희 주가(走舸)와 몽충(蒙冲)에 마른 억새와 장작을 싣고 기름을 뿌려 불을 지를 계획입니다.’
주가(走舸)는 매우 빠른 속도로 항해하는 작은 군함을 이르는 단어고, 몽충(蒙冲)은 한나라 시대 때 주요 군함으로 사용되던 선박을 이르는 단어다.
특히 몽충은 갑판 위에 1층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내가 올라타는 함선처럼 다른 군함을 이끄는 지휘관이 올라타는 경우엔 3층까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
주유가 이야기한 몽충은 아마 평범한 장수가 지휘하는 1층짜리 몽충일 것이다.
3층짜리는 그 거대한 덩치 때문에 재빠른 기동이 힘들거든.
공격과 수비를 위해서 기동력을 희생한 경우라고 봐야 하나.
구축함, 순양함, 전함 등등….
대충 그렇게 나눠진 거라 봐도 좋지.
…현대 해전과 비슷한 개념이 옛날부터 있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은 없었다.
‘그리고?’
‘그대로 들이받을 겁니다.’
‘…….’
매우 적나라한 표현을 내뱉은 주유는 내게 싱긋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본래라면 적들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사향계(詐降計, 거짓으로 항복하는 계책) 같은 것을 사용해야겠으나….’
‘…….’
‘저들이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니 정공법으로 나서겠습니다.’
그리고 주유는 백여 척에 이르는 함선을 그대로 꼬라박았다.
아니 뭐, 몇 년 전부터 수군 육성에 힘썼으니 배가 많기는 한데 한편으론 너무 과감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
병사가 죽는 것보다 배 몇 대 불타는 게 낫긴 하지만.
───으아악!!
나는 오밤중에 환하게 불타오르는 마한군의 진영을 바라보면서 모든 병사에게 진군 신호를 내렸다.
…테무진은 뭐 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