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96)
EP.696 삼한(三韓)(8)
한강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전투는 정말 별다른 이변 없이 끝을 맞이했다.
압도적인 전력 차, 이리저리 분열된 수뇌부, 통일되지 못한 군사 진형,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한 병사….
온갖 문제점을 전부 다 끌어안고 있네.
솔직히 이런 차이를 어떻게 뒤집겠냐?
상대가 방심이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주유가 어디 그럴 인물인가.
이번 전투에서 이상하리만치 의욕을 드러내던 주유는 제 모든 역량을 발휘해 마한을 찍어 눌렀다.
“…….”
전장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생포 당한 병사들.
이들은 전부 화재를 피해 한강으로 뛰어들었다가 붙잡힌 인원들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시원하게 풍덩 입수했다는 걸까.
역시 병사든 장군이든 몸에 불이 붙으면 별수 없는 모양.
국내성 전투 때도 그렇고, 조상님 국가에선 유달리 불을 많이 지르는 것 같네.
그땐 칭기즈 칸이 불을 지른 경우였지만….
인과 관계를 따지면 그녀도 결국 내 존재로 인해 전쟁에 끼어든 것 아닌가.
“크윽….”
나는 이번 전장에서 포로로 붙잡힌 인물 중 가장 직급이 높은 남성을 눈앞에 두었다.
제아무리 머리가 여러 개 있는 연합군이라지만 결국 그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총지휘관 비스름한 존재는 필요하지 않겠나.
본래 역사에서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될 때 원소가 맹주 자리에 앉은 것처럼 말이야.
현재 마한의 주도권을 쥔 국가는 백제국이었으니, 현 상황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표적은 백제국 장수였다.
또 우리의 목표가 백제국이기도 하니 더욱 좋지.
“듣자 하니 전장에서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항전하다 붙잡혔다던가.”
난 어지간히도 치욕스러운지 부들부들 떠는 장군과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대충 대답이 예상되긴 하지만 그래도 예의상 물어보지.”
나는 장군을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준다면 섭섭지 않은 대우를 약속하겠다.”
“…….”
“어떠한가? 그대가 이 자리에서 입만 연다면, 평생 노력해도 손에 넣지 못할 금은보화가 들어오는 것이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라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제안.
너무 촌스러운 제안이 아니냐 싶겠지만 이걸 계속 써먹게 된 이유가 있다고.
이런 제안이 아주 잘 통했으니까 자주 써먹는 거 아니겠냐.
“…내가 어찌 주군을 배신하겠는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눈앞의 남성은 금은보화보다 다른 무언가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인물이었다.
“나와 내 가족, 모두 나라의 녹을 먹고 살아왔는데 어찌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
“그대가 현명한 인물이라면 응당 해야만 하는 일을 하시오.”
차라리 명예롭게 죽겠다는 뜻이구만.
하긴, 여기서 괜히 적국한테 붙어 온갖 기밀 정보를 털어놓다간 고향에 있을 가족이 위험하겠지.
자기 한몸 보전하겠다고 소중한 사람을 전부 사지로 몰아넣는다면 그 누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을까?
군에 몸을 담은 순간 언젠가 이런 일이 찾아오리란 것은 그도 알고 있었을 터.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할 말은 없군.”
나는 제 명예를 위해서, 또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택한 장군을 바라보다가 결정을 내렸다.
“끌고 가라. 고통 없이 보내주도록.”
“예.”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병사의 손에 순순히 이끌려 가는 장군한테 고개를 돌린 나는 곧장 다음 놈을 끌고 오게 시켰다.
“히, 히이익….”
“……?”
뭐지.
이놈은 지레 겁부터 먹었는데?
조금 전까지 장군다운 기개를 보이던 인물을 마주하다가 갑작스럽게 이런 유형을 맞이하니 기분이 얼떨떨했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 내 근처에 서여와 여포 등 온갖 쟁쟁한 장수들이 자리를 지키는 상태구나.
심약한 사람이라면 벌벌 떨기만 하면서 정신을 못 차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
이런 걸 생각했을 때 방금 지휘관은 고위 관직을 딱지치기로 얻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봐.”
“부, 부, 부르셨습니까!”
근데 이놈은 다른 것 같네.
과하게 겁을 먹은 태도를 보니 잘 구슬린다면 골수까지 빨아먹을 수 있을 듯했다.
하긴, 어딜 가도 높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은 한 명씩 있는 법이지.
그러면 이제 천천히 알아내 볼까.
“내가 궁금한 점이 있는데 말이야.”
“예, 옙! 뭐든지,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나는 비굴한 태도를 보이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포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해서 정보를 빼내는 건 내 특기가 아니지만, 꼬꼬마 군사들을 비롯한 온갖 쟁쟁한 책사가 날 보좌하고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
“…….”
“…….”
하루의 일과를 끝마치고 각 군대가 진형을 형성해 놓은 어두운 밤.
침묵이 흐르다 못해 살짝 기묘한 분위기마저 감도는 두 군대의 진영에서 산상왕은 요 며칠간 벌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요 며칠, 칭기즈 칸이란 자가 이끄는 북방 유목 민족은 모든 사람이 경악할 속도로 산맥을 주파했다.
───적이다!
───진한의 병사들이여! 고향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어라!
당연하게도 진한은 제 영토 안에서 무서운 기세로 진군하는 군대를 막기 위해 수많은 부대를 투입했지.
본래 예상과는 다르게 두 군대가 서로를 마주한 지역은 여담국(如湛國) 부근이었는데, 이는 진한이 외부의 개입을 눈치채자마자 재빠르게 물러났다는 뜻이었다.
여담국(如湛國).
진한의 수많은 연합국 중 바깥쪽에 위치한 국가.
자신이 어느새 꽤 깊숙한 곳까지 진군한 걸 확인한 칭기즈 칸은 고개를 잠시 까딱거리다가 뒤늦게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목표는, 사로국뿐이야.
───…사로국?
───응. 길 비켜주면, 안 노려.
과연 그녀는 그때 무슨 이유로 뒤늦게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은 것일까.
…혹시, 자신의 길을 가로막은 적들을 대화도 없이 전부 무자비하게 짓밟을 계획이었을까?
확실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러지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그 말을 믿지 않겠다면 어쩔 생각이지?
───…믿지 않을 거야?
진한군의 사령관이 그리 대답하자 칭기즈 칸은 살짝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면 안 되는데….
───…….
───…정말로?
마치 마지막 기회라는 듯 물어본 행동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을 멍청이가 어디 있겠느냐! 당장 이곳에서 꺼져라!
수만 명의 군대를 이끄는 적 사령관은 허리춤에서 무기를 뽑아 들며 외쳤다.
확실히 그의 의견은 틀리지 않았다 볼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무기를 들고 위협하며 어느 한 곳만 멸망시키겠다는 침입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하지만 단 하나, 그가 실수한 행동이 있었다.
그녀의 제안을 헛소리라며 넘어가는 와중 누군가를 깎아내린 것.
이 행동은 처음 의견을 냈던 인물과 그에 수긍한 인물 모두 멍청이로 깎아내리는 행동이었다.
이게 뜻하는 바는 무엇이냐.
───…멍청이?
진한의 장수는 단 한마디로 한나라의 대장군과 몽골 제국의 지도자를 직접 모욕한 용기 있는 장수가 되었다.
산상왕은 부디 동맹국의 군주가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으나….
───나는 몰라도, 정릉까지 모욕하다니.
───…….
───…용서 못해.
그게 헛된 바람이라는 건 정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무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모습.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 안에 담긴 감정은 산상왕이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칭기즈 칸이 등 뒤에 매단 활을 꺼내들자 진한의 장군은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잠깐! 무슨 짓을 할 속셈이지?! 정녕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걷겠다는 뜻이더냐!
───응.
진한은 그들을 향해 위협스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그건 자신감에서 나오는 여유가 아니었다.
───지금 물러나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를, 굳이 흘리겠다는 말이더냐!
───맞아.
강자만이 보일 수 있는 타고난 여유라기보단, 마치 피식자가 포식자에게 맞설 때 몸을 부풀리는 것처럼 살고자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보였다.
───길을 열지 않겠다면, 길을 열 때까지 쓰러트려 줄게.
───…….
칭기즈 칸이 말을 끝마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손아귀에서 화살 하나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피유우우웅───!!
효시(嚆矢).
화살에 특수한 처리를 가해 인위적으로 큰 소리를 내게 만든 것.
이는 때에 따라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사용된 용도는 하나뿐이었다.
───돌격.
─────!!!
효시가 날아오르면서 전장에 돌격 신호가 울려 퍼지는 걸 시작으로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기마 민족이 눈앞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허어.
믿을 수 있는 장수에게 개마무사의 지휘권을 위임하고 칭기즈 칸을 먼저 뒤따라온 산상왕은 한숨을 내뱉으며 그녀를 뒤따랐다.
앞으로 자신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이것이 바로 몽골 제국과 진한이 본격적으로 맞붙은 전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