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01)
EP.701 삼한(三韓)(13)
하남위례성을 지키는 수비병 대부분이 한나라 군대를 막기 위해 남문으로 몰려간 상황.
이는 곧 백제국이 절박해졌음을 뜻하며, 다른 방향의 성문이 뚫리는 순간 힘없이 무너져 내리리란 걸 뜻했다.
하지만 백제국 입장으로서도 어쩔 방도가 없었다.
다른 방향을 지키는 수비군을 끌어오지 않으면 한나라 군세를 막아낼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니.
또한 그들을 든든히 지켜주는 천혜의 방벽을 믿기도 했으리라.
강폭만 무려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강이 성을 둘러싸고 있거늘 어떻게 적들이 침입하겠느냐 생각하면서.
계책의 건의자인 제갈량과, 수군을 총괄하는 주유가 노리는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무릇 적들이 안심했을 때 삼엄한 경계가 제일 허술해지는 법.
그녀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경로로 부대를 투입하여 한꺼번에 성벽을 오를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두 가지.
수백 미터에 달하는 강을 아주 재빠르게 건널 수 있는 신속함과, 적의 눈에 띄지 않고 성벽을 기어 올라갈 수 있는 은밀함.
───…….
풍덩!
자그마한 군함 위에 올라탄 채 쭉 나아가던 장수와 병사들은 신호가 떨어지자 모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군함이라면 모를까 사람이 헤엄치기엔 수심이 깊고, 유속도 생각보다 빨라서 잠시 방심하는 순간 그대로 휩쓸려 나갈 위험천만한 상황.
그러나 주유가 고르고 고른 최정예 수병들은 각자의 무기를 소지한 채 강을 능숙히 헤엄쳤다.
───이야, 수영 잘하네.
───…그렇습니까?
───그래. 나였으면 바로 꼬르륵 가라앉았을 텐데.
…순간 주군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떠올랐지만 주유는 머리를 휘휘 내저으면서 잡념을 털어냈다.
곧 전투가 일어나는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 주군의 모습이 떠오르다니….
자신도 정말 어지간히 중증이었다.
허구한 날 백부(伯符, 손책의 자)가 자신을 놀리는 것에는 전부 이유가 있는 모양.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남성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자신이 이리되리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렴, 당사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주변 사람이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후우우….”
비록 경계는 허술해졌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강을 잠수한 채 건너온 여인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흐, 이번에도 내가 제일 빨랐네.”
다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은 여전히 자신의 실력이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강을 빠져나왔다.
감녕 흥패(甘寧 興覇).
어린아이 시절부터 온갖 난리판을 겪어온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것을 꼽으라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물(水).
당연히 전투도 익숙했지만, 배 위에서 시간을 때우며 유유자적 보낸 세월이 훨씬 길었다.
───두목! 조만간 나랏일 하는 놈들이 지나간다는데요?
───무슨 나랏일?
───뭐라더라…. 아! 조세랍시고 사람들한테서 돈 뜯어 가는 놈들입니다!
───그것참 짭짤하겠네.
…탐관오리가 날뛰며 치안이 어지러웠던 과거에는 수적질도 하고 그랬지만 그것도 전부 철없는 시절에 저질렀던 일이었다.
자신에게 금범적(錦帆賊, 비단으로 돛을 매는 도적)이란 칭호가 붙은 것도 그때였지.
비단 귀한 줄도 모르고 돛으로 사용하면서 이상한 사치를 부렸으니….
“와, 씨. 왜 이렇게 빨라?”
곧 감녕을 뒤따라 뭍으로 올라온 여인은 놀랐다는 목소리 말했다.
“나도 헤엄치는 건 어디 가서 지지 않는데, 여기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네.”
손책이 수영으로 축축해진 자신의 적갈색 머리카락을 털어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기나 해볼까?”
“내기?”
손책이 꺼낸 갑작스러운 제안에 갈고리를 휘휘 돌리던 감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성벽을 점령하면서 누가 더 많이 적을 쓰러트릴까.”
“…….”
“설마 겁먹은 건 아니겠지?”
주유가 들었다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기함했을 행동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현재 배 위에 남아 전황을 판단하는 중이었다.
“내기라…. 마음에 드는데.”
강동의 소패왕과 금범적.
본래 역사에선 만나지 못했던 두 명의 장수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내기 보상은?”
“돈 말고 더 있어?”
본래라면 주군과 보내는 오붓한 시간을 내기 보상으로 걸까 했지만, 감녕이 대장군과 맺어졌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무엇보다 주유에게 머리가 깨지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었다.
이미 한눈에 봐도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시간을 이상하게 빼앗았다간 미주랑의 날카로운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겠지.
의외로 무예가 뛰어난 미주랑이 검을 무섭게 휘두르며 다가오는 상황은 그녀로서도 바라지 않았던지라 평범한 보상을 걸 수밖에 없었다.
“에이, 겨우 그 정도로 의욕이 나겠어?”
“응?”
이에 감녕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시간 정도는 걸어야지?”
“…….”
“혹시 내가 두목과 뜨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한 거야?”
피식 웃은 감녕은 외설스러운 손짓을 보이면서 이야기했다.
“한때 관군도 털어먹었던 수적의 행동력을 얕보면 안 되지.”
손책처럼 털털한 성격을 지닌 감녕은 이미 대장군과 갈 데까지 간 사이였다.
…자신이 잡아먹으려다가 오히려 잡아먹히긴 했지만 그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굳이 입 바깥으로 내뱉을 필요는 없을 터.
역시 이야기로만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존재했다.
이미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는 손책이 감녕의 외설스러운 손동작을 보고 마주 웃었다.
“확실히 의욕이 생기긴 하네.”
“그렇지?”
서로 비슷한 머리카락 색깔을 지닌 두 여인은 잠시 웃다가 너나 할 것 없이 갈고리를 위로 내던졌다.
카가각─!
너무나도 쉽게 성벽 위에 걸린 갈고리.
정말 어지간히도 인력이 부족한지 띄엄띄엄 배치된 하남위례성의 수비병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알아챘다고 한들 이제 와서 달라진 건 없었다.
“내가 먼저 올라간다.”
“누가 할 소리를.”
손책과 감녕은 신들린 솜씨로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성벽 위로 기어 올라갔다.
“자, 잠시만! 일단 재정비부터…?!”
“시간 없어! 나 먼저 간다!”
손책은 자신의 부관으로 활동하는 한 여인에게 살짝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자의(子義)! 병사는 네가 알아서 수습하고 올라와!”
“야 이…!”
자신에게 일을 전부 떠넘기는 손책한테 태사자는 순간 고함을 내지를 뻔했다.
태사자(太史慈).
대장군이 강동을 다스리던 유요(劉繇) 세력을 흡수한 이후 자연스럽게 그의 휘하로 소속을 옮긴 맹장.
“…….”
본래 역사에서 강동의 소패왕이라 불리던 손책과 단기 접전을 벌였던 자두색 머리카락의 여인은 한숨을 내뱉었다.
은밀함이 중요한 침투 임무 중이라서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고함을 내질렀으리라.
자신의 새로운 주군께선 손책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거라며 같은 부대에 종군하게 만들었는데 어떤 의미론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자신한테 병사의 지휘권을 넘긴다는 것 자체가 믿음을 준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 믿음이 너무 과해서 모조리 떠넘기는 게 문제지.
“으으…. 열받아.”
태사자는 자신의 초록색 눈동자를 깜빡이면서 머리를 짚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자신이 겪은 일을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르륵…!
───컥?!
이미 손책과 감녕은 성벽 위로 기어 올라가 얼마 없는 수비병을 차근차근 줄여나가고 있었다.
비록 내기다 뭐다 했지만 봉화처럼 신호를 내릴 수 있는 적들부터 처리하는 걸 보면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알고 있는 모양.
“…음?”
꽤 나이를 먹었음에도 능숙하게 강을 헤엄쳐 온 손견은 이미 자취를 감춘 손책을 확인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딸은 어디 갔는가?”
“…이미 성벽 위로 올라갔습니다.”
“뭐라?!”
태사자의 보고에 손견을 화들짝 놀라면서 외쳤다.
“그 급한 성미는 도대체 누굴 닮은 건지!”
“…….”
근처에 있던 강동 노장들은 순간 입이 근질거렸지만 오래전부터 숱한 전장을 진전해 온 장수답게 이를 잘 참아냈다.
전장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정을 다스리는 게 필수 덕목이었으니까.
“이러다가 내 등짝이 남아나질 않겠어! 우리도 서둘러 올라간다!”
제 부인이 휘두르는 손바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떠올린 손견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칼과 화살은 두렵지 않거늘, 어째서 부인이 휘두르는 매서운 손길이 이다지도 두렵단 말인가.
슬픈 공처가인 손견은 자신의 딸이 그랬던 것처럼 능숙한 솜씨로 성벽을 기어 올라갔다.
“크흠, 우리도 이만 올라가지.”
“그러세.”
곧이어 손견을 보좌하기 위해 황개와 정보를 비롯한 강동 노장들마저 성벽 위로 올라갔으니, 현재 남은 인원은 태사자를 비롯한 몇몇 부관들뿐이었다.
“…….”
“…힘내죠.”
손책에게 방치당한 태사자와 마찬가지로 감녕에게 방치당한 여몽은 그녀를 위로해 주며 뒤늦게 오는 병사들을 수습했다.
군대에서 직급이 낮다는 건 상당히 서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