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09)
EP.709 귀환(1)
테무진이 사로국의 수도를 정벌하고 근처까지 찾아왔다는 소식에 나는 곧장 성벽으로 올라 그녀의 군대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
내가 성벽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수많은 기마 부대가 지축을 울리며 다가왔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마주한 광경이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단 말이지.
과거 저들한테 죽을 뻔한 적이 있으니 당연한 건가?
무시무시한 기마 부대의 최전방에는 당연하게도 그들을 이끄는 유목 제국의 대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목 민족의 뛰어난 시력이라면 이 정도 거리에서도 날 육안으로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
테무진은 내가 성벽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평소와 똑같은 무감정한 표정을 유지한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여포와 똑 닮은 핏빛 눈동자를 마주 보던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근처 부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귀한 손님들이다. 길을 열어주도록.”
“예!”
내 명령을 받든 부관은 곧장 주변 병사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진형을 정렬했다.
───.
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음에도 하남위례성을 포위했던 병사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테무진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문제는 저 수만 명의 기병이 드나들 수 있는 길을 재빨리 열어줄 수 있느냐는 건데….
“…….”
테무진이 오른팔을 들고 정지 신호를 내리자 그녀가 이끄는 수만 명의 기병은 일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명령 한 번 떨어졌다고 우르르 움직여서 길을 재빨리 열어주는 한나라 보병들.
신호 한 번 내려졌다고 모두가 다 같이 속도를 줄이는 몽골 제국 기병들.
어느 쪽이나 대단하구만.
평소 어떤 훈련을 거쳤으면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걸까.
내 명령을 받은 보병들이 길을 터주자 몇몇 호위 장수들과 함께 평야를 질주하던 테무진이 하남위례성으로 들어왔다.
“…….”
공성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딱히 멀쩡하지 않았던 성문으로 입성한 테무진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빨리 내려오라는 뜻인가?
기껏해야 보름 정도 떨어졌을 뿐인데 정말 적극적이구나.
백제국 최후의 보루답게 상당한 높이를 자랑하는 성벽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온 나는 말에서 내린 테무진과 눈을 마주쳤다.
이럴 때 해야 하는 말이 뭐였더라.
내 오랜 경험에 따르면 분명….
“보고 싶었다, 테무진.”
“…나도.”
역시 이게 정답이었군.
지금까지 의도치 않게 수많은 여성을 홀린 내 행동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
“으그극….”
물론 근처에서 이를 지켜보던 서여와 여포의 눈초리가 살짝 매서워졌지만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내가 살짝 어루만져줘도 좋다며 자지러지는 여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니 너무 쓰레기 같네.
어쨌든 나와 두 여인의 관계는 뱀과 개구리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잡아먹히는 천적 사이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그 개구리가 무지막지한 덩치를 자랑하는 황소개구리란 걸까.
나는 그 황소개구리를 잡아먹는 뱀이고.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생태계 교란종이라….
참 기묘하게도 지금 서여와 여포에게 딱 들어맞는 설명이었다.
이 두 명은 내가 사라지면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여인이잖아.
여포는 어찌어찌 진압한다 쳐도, 서여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겨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본래 역사처럼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는 걸 이용해야 하나?
“예상은 했지만 정말 빨리 점령하고 돌아왔군.”
“…네가, 부탁한 일이니까.”
내가 놀란 기색으로 중얼거리자 테무진은 평소처럼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푸른 늑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난 들어줄 수 있어.”
“…….”
부끄럼 따위 없는 일직선 애정 공세라니.
이건 나도 살짝 설렜다.
───푸히힝.
그때 테무진의 품속에서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너무 눈에 띄어서 누군지 떠오르고 말고 할 필요가 없었지만 말이야.
“…아, 미안. 답답했어?”
───히힝.
말에서 내린 테무진이 자신을 땅으로 내려주자 금빛 털색을 지닌 망아지가 기분 좋은 듯 울었다.
불과 몇 달 전에 내가 테무진에게 선물한 한혈마.
구체적인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맹세나 서약을 표현하는 관용적인 단어를 이름으로 지닌 건 알고 있었다.
───푸르릉.
“…음?”
나는 기분 좋게 투레질하는 망아지를 바라보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그래?”
“아니, 별거 아니긴 한데….”
날 바라보던 테무진이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자 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살이 너무 찐 것 같지 않나?”
“……!!”
누군가는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냐 말할 수 있겠지만 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망아지가 금방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감안해도 위가 아닌 옆으로 저렇게 늘어나는 건 말이 안 됐다.
이거 살이 쪄도 너무 쪘잖아.
이게 돼지야, 말이야?
나는 지금도 황궁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을 돼지 고양이를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밥을 얼마나 먹인 거야?”
“…조금, 조금만 먹였어.”
제 고양이를 뚱땡이로 만든 황제 폐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지.
‘이상하구나. 짐은 분명 대장군이 당부했던 이야기를 따랐다만….’
───애옹.
‘…으흠, 정말이로다.’
황제 폐하께서 정말 흔치 않게 당황하시는 순간이었지.
애옹이…. 아니, 야옹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슬슬 식단을 신경 써야 하는 나이인데 말이야.
속된 말로 뼈까지 씹어먹을 나이는 진작 지난 상태였으니 과식은 자제하는 편이 좋았다.
결국 나는 진류왕 전하께 이를 그대로 전달해서 감시를 조금 더 철저히 했지.
이렇게나마 서먹했던 자매 사이가 가까워지니 다행이었다.
“어디 보자….”
나는 토실토실해진 망아지 앞에 쭈그려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히힝.
낯가림이 없는 건 여전하구나.
나는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 좋은 표정으로 울부짖는 망아지에게 피식 웃어 보였다.
과거 내가 선물한 망아지는 기껏해야 종아리까지 오던 자그마한 크기였는데,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어느샌가 성인 여성의 골반까지 올 정도로 무럭무럭 성장해 있었다.
이 대형견 크기의 망아지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테무진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질 지경.
심지어 그냥 돌아다니지 않고 말 위에 기승한 다음 돌아다녔잖아.
그러다가 낙마라도 하면 어쩌려는 걸까.
나는 이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 생각하면서 망아지를 슬쩍 들어 올려봤다.
“…….”
상상보다 훨씬 무거운데.
아니, 이 정도 무게를 아무렇지도 않게 안고 다녔다고?
첫날밤 이후 나를 피해 다닌답시고 공중제비를 돌 때부터 알아봤지만 테무진도 확실히 심상치 않은 신체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내 선물을 이토록 애지중지해 주니 기쁘긴 한데….”
나는 본인도 찔리는 점이 있는지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테무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살이 찌면 말도 힘들어할걸.”
“…….”
“적당히 관리해 주자. 알았지?”
“…응.”
한혈마(汗血馬).
그 많고 많은 말 품종 중에서도 대부분 최고로 취급하는 품종이니 이 말은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뛰어난 신체 능력을 보일 것이다.
오죽하면 한혈마 좀 얻어보겠다고 전쟁까지 일으킨 기록이 존재하겠냐.
정말 놀랍게도 한혈마 전쟁은 전한의 유명한 전쟁광 군주, 한무제가 일으킨 전쟁이었다.
흉노도 패고 한반도도 패고 베트남도 패고 서역도 패고 아주 그냥 안 패는 나라가 없어.
이러니까 전쟁광으로 불리는 거지.
심지어 이 전쟁들을 전부 이겼다는 게 경악스러운 점이지만.
확실히 전쟁은 잘하는 군주라니까.
덕분에 한혈마를 팔지 않겠다며 다른 나라가 뻗대는 경우는 사라졌으니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
괜히 거래 요청을 거절했다가 한무제 때처럼 또 쳐들어올 수가 있었으니 정말 마음만 먹으면 한혈마를 얻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다.
사람의 시선을 강탈하던 뚱뚱이 망아지에게 고개를 돌린 나는 뒤늦게 본래 하려던 질문을 떠올리고 곧장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사로국의 왕은 어찌 됐어?”
삼한(三韓) 시절의 왕이 으레 그렇듯 따로 공부한 게 아닌 이상 알지 못하는 왕이 수두룩했는데, 이 시기의 신라 왕도 비슷한 경우였다.
어디 보자.
지금 신라 왕의 휘가 뭐였더라….
내해(奈解)였구나.
…본래 역사에선 뭐 하는 인물이었지?
기껏해야 백제, 가야와 투닥거리는 정도 아니었을까.
아무렴 같은 민족끼리 하하 호호 웃으면서 정다운 칼날을 나누고 있었겠지.
내 질문을 받은 테무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내게 대답했다.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없어.”
“음?”
“따로 물어봐.”
테무진은 그렇게 대답하고 슬쩍 옆으로 비켜났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낯설었으나 이젠 익숙하다 못해 친근하게까지 느껴지는 인물.
“연우(延優).”
“…….”
산상왕을 눈앞에 마주한 나는 그의 휘를 언급하면서 물었다.
“사로국의 왕은 어찌 됐나?”
“죽었다.”
자신의 무기와 갑옷에 말라붙은 핏물이 묻어있는 산상왕은 짐짓 엄숙한 태도로 이야기했다.
“내해 이사금(奈解 尼師今)이 직접 이끄는 부대와 정면으로 맞붙고 승리했지.”
“그렇군.”
나는 사로국 왕을 무사히 처리했다는 고연우의 이야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이 순간 본래 역사에서 이름을 날렸을 신라 왕이 몇 명이나 사라졌을까.
어쩌면 신라(新羅)라는 국가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
후손 입장에서 참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