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10)
EP.710 귀환(2)
몽골 제국을 이끄는 칭기즈 칸과 고구려를 이끄는 산상왕이 사로국의 국왕을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건 백제국 하나뿐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백제국은 이미 멸망했지만, 어딘가에 왕이 존재하는 이상 기회만 생긴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테니까.
근데 이 넓은 도시에서 사람 한 명을 찾아야 한다니….
시간을 투자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한 가지 문제점은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저, 대장군.”
“알고 있다.”
최근 내게 황명을 전달한 금군이 열심히 눈치를 살피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나는 적어도 일주일 안에 하남위례성에 숨은 초고왕을 찾고, 뒷정리는 휘하 장수들에게 맡긴 다음 곧장 낙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마한과 진한, 두 국가에서 뜯어낸 선박을 전부 동원한다면 아마 절반 조금 안 되는 규모의 병사를 한꺼번에 운송할 수 있을 터.
현대에서도 해상 운송로만큼 많은 물자를 재빨리 옮길 수 있는 경로는 없잖아.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해상 운송로는 나라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다 줄 수 있었다.
괜히 전생의 러시아가 부동항(不凍港, 얼지 않는 항구)을 찾겠답시고 이리저리 들쑤시던 게 아니란 말이지.
영국의 방해로 번번이 무산됐다는 게 또 웃긴 사실이지만.
어쨌든 숨은그림찾기처럼 초고왕을 짧은 시일 내에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뭐가 있을까.
“…사람 한 명을 찾아달라고?”
“그렇습니다.”
소의 등 위에서 책상다리로 걸터앉은 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흩날리던 백발의 소녀는 내 부탁을 듣고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네놈은 날 대체 무엇으로 생각하는 거냐.”
“능력이 부족한 제게 늘 과분할 정도의 은혜를 베푸는 분이시지요.”
“그걸 아는 놈이 태연스럽게 그런 부탁을 하다니….”
걸핏하면 내게 찾아오며 바둑 대결을 신청하는 열자가 말하기를, 평소 나를 쫓아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다고 언급한 인물.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사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신선.
그리고 그러한 신선 중에서도 상당한 명성을 자랑하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흥, 이 내가 그렇게 쉬운 인물로 보이더냐? 꿈 깨거라.”
평소 남화노선의 괴팍한 성질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보았다면 무척 경악했을 것이다.
그녀의 본래 성격을 생각한다면 그 망측한 주둥아리를 꿰매주겠다는 둥, 아니면 버릇없는 대가리를 깨부숴주겠다는 둥 온갖 막말을 내뱉으며 달려들 인물이었으니까.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성격을 지닌 그녀가 단순히 부드러운 말로만 타이른다는 것은 열자의 표현을 빌려 천지가 개벽할 상황이었다.
자기 제자인 장각이나 우길에게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나한테 보여주네.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인가.
“그렇습니까.”
뭐가 됐든 지금 내 부탁이 거절당한 것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난 아쉬운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싫다는 분께 제 부탁을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지요.”
“…….”
“만약 부탁을 들어주셨다면 저도 진인(眞人)께서 원하시는 바를 한 가지 들어주었을 텐데….”
“뭐, 뭐라?”
짐짓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던 남화노선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면서 외쳤다.
“그렇다면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예?”
“사람 한 명을 찾는다고? 하! 어려운 일도 아니니 하루만 기다리도록!”
소 위에서 냅다 뛰어내린 남화노선은 그렇게 외친 다음 바람으로 변해 사라졌다.
…내가 지금 누굴 찾아야 하는지도 안 알려줬는데 말이야.
평소 날 스토킹하던 인물답게 알려줄 필요도 없다는 건가?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주인 없이 홀로 남겨진 소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음머─.
순식간에 제 주인한테 방치당하기 시작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울부짖는 소.
아니, 심지어 소는 제 주인이 사라지자마자 땅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우면서 여유까지 부리기 시작했다.
신선이 타고 다닐 때부터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놈도 영물에 속하는 모양.
“…….”
나는 바닥에 누운 소 처음 보냐는 듯 멀뚱거리는 소와 눈을 마주치며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다.
…오늘은 소고기 요리해달라고 해야지.
물론 저놈을 요리하겠단 뜻은 아니었다.
──────────
부탁 하나를 들어준다는 내 이야기에 딱 하루만 기다리라면서 냅다 자취를 감춘 남화노선은 정확히 다음 날 모습을 드러냈다.
“찾아냈다.”
“…정말이십니까?”
이 거대한 도시를 불과 하루 만에 수색했다고?
남화노선의 이야기에 내가 살짝 놀라운 표정을 짓자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날 얕보지 말거라.”
“…….”
“바람이 지나가는 곳이라면, 어떠한 속삭임도 내 귀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대충 눈치채고 있었지만 정말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인물이구나.
누군가를 감시하는 건 물론 대화를 엿듣는 것까지 가능하다니….
…이런 이야기를 하긴 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토킹에 최적화된 능력 아니냐.
남화노선이 알았다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방방 날뛸 평가였지만 사람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건 신선이라도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남화노선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초고왕이 어느 곳에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그전에, 네가 했던 말은 잊지 않았겠지?”
백발을 지닌 꼬마 신선은 자신의 푸른색 눈동자로 날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내가 네 부탁을 들어주면 너도 내 부탁을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이죠.”
솔직히 신선씩이나 되는 인물이 내게 부탁할 게 뭐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아예 예상이 안 되는 건 또 아니었다.
남화노선이 명예나 재물에 연연할 인물은 아니라서 선택지가 확 좁혀지거든.
만약 그녀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네, 네놈은 조만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
…이렇게 개인적인 부탁을 할 게 분명하단 말이지.
“어, 어째서 대답이 없는 것이냐?”
“잠시 생각할 게 있었습니다.”
나는 당당히 외쳐놓고 뒤늦게 자신감이 떨어져 버벅대는 신선을 바라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남화노선은 본인이 쉬운 인물이 아니라고 당당히 주장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상당히 쉬운 인물이란 말이지.
“그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 제가 거절할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걱정했다는 거냐!”
화들짝 놀라는 모습 보니 걱정한 거 맞구만.
여기서 더 놀렸다간 그녀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 숨어버릴 가능성이 높았으니 난 주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초고왕은 어디에 있습니까?”
“…크흠, 잘 듣거라.”
뒤늦게 정신을 되찾은 남화노선은 헛기침을 내뱉으면서 초고왕이 어느 지역에 숨었는지 알려주었다.
이제 정말로 끝낼 수 있겠구나.
──────────
남화노선에게 정보를 전달받은 나는 곧장 부대를 이끌고 초고왕이 숨어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초고왕은 정말 어지간히도 마음을 독하게 먹은 듯 설마 이런 곳에 숨어있겠나 싶은 장소에 숨어있었는데, 그 지역이 바로 어디였느냐.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였다.
상당히 많은 발전을 이룬 현대 시대에서도 빈민가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 드문 편이거늘 하물며 이 시대엔 어떠하겠나.
현대 서울에서도 강남 지역에 구룡 마을이라고 해서 빈민가가 존재하거든.
다른 지역 출신의 사람들은 그 강남에 빈민가가 존재한다는 걸 듣고 상당히 놀라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현대 한국의 수도에도 빈민가가 존재하는 상황인데 하남위례성이라고 다를 리 없지.
물론 나라의 수도이니만큼 빈민가의 규모가 상당히 작았으나….
사람 몇 명이 신분을 숨기고 들어오기엔 딱히 문제되지 않았다.
근데 일평생 나라를 다스리던 왕이 빈민 생활도 감수하면서 어떻게든 살고자 노력할 줄이야.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를 용서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한 차례 전투가 벌어진 듯 건물 입구부터 시체들이 놓여있는 상황.
이들은 초고왕을 호위하는 마지막 장수들이 아니었을까.
마지막까지 자신의 왕을 지켰던 이들이니만큼 실력도 분명 뛰어났을 터.
하지만 빈민으로 위장하기 위해 별다른 방어구도 걸치지 않은 호위 장수는 상당히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는 온몸에 화살이 박힌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 나는 병사들에게 붙잡힌 채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초고왕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정말 빈민으로 철저하게 위장했네.
아니면 요 며칠간 고생을 많이 해서 자연스럽게 이런 모습이 된 건가?
여기서 초고왕과 무어라 이야기를 나눠봤자 그를 동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테니 나는 무뚝뚝한 어조로 선택지를 내려줬다.
“어떻게 죽기를 원하나?”
“…사사(賜死)를 받겠소.”
조선 시대의 사약 형벌처럼 독약을 마시고 죽겠다는 뜻이군.
상당히 고통스럽겠지만 시신은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왕의 마지막 명예는 지켜주는 걸로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냥 시신이 훼손되더라도 깔끔하게 고통 없이 가는 편이 좋은데 말이야.
이것도 결국 시대에 따른 관점 차이겠지.
난 고개를 떨군 채 병사들에게 이끌려 가는 초고왕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고구려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터.
백제와 신라가 또다시 되살아나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과연 본래 역사보다 수백 년 일찍 통일 국가가 등장할 수 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