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14)
EP.714 귀환(6)
낙양으로 향하는 배의 갑판 위.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배 위에서 무언가 시간을 때울 만한 것이 없을까 고민하며 지루함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여러 번 생각하는 거지만 이렇게 이동하는 시간은 지루해.
육로로 이동할 때는 승마에 재미를 붙이면 조금 낫지만, 지금처럼 배 위에 있을 때는 딱히 무언가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오늘은 또 무슨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이럴 때는 인터넷이 정말 그립단 말이지.
변변찮은 여가 수단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였기에 내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좋아! 맞았다!”
여포도 심심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주변에서 적당한 장수 한 명을 잡아 와 알까기를 즐기고 있었다.
…알까기라고 하면 너무 없어 보이니 탄기(彈碁)라고 표현해야 하나?
하지만 규칙은 탄기보다 알까기에 더 가까운걸.
탄기(彈碁)는 손가락이 아닌 수건을 이용해서 자기 바둑알을 발사해 상대방의 바둑알을 맞히는 놀이였는데, 아무래도 손이 아닌 수건을 이용하다 보니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점이라면 자기 바둑알이 상대방의 바둑알에 적중했을 경우 굳이 판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아도 잡은 걸로 쳤다는 것.
그러나 이런 규칙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현대에서 즐겼던 알까기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왜, 바둑알을 사용하는 알까기도 있지만 다른 보드게임의 알을 사용해서 즐기는 알까기도 있잖아.
바둑알로 알까기를 하면 알이 너무 쉽게 깨진단 말이야.
아무래도 돌끼리 부딪혀서 그런가?
퓽─!
“좋아! 한 놈 더!”
내가 현대를 떠올리며 따로 주문 제작한 장기알을 알까기 용도로 사용한 여포가 힘차게 외쳤다.
아니, 알을 얼마나 세게 치는 거야.
바람 가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은데?
“…으음.”
여포의 상대였던 장료는 그녀가 보이는 신들린 알까기 솜씨에 탄식을 흘리며 연패만 거듭했다.
하긴 나였어도 자신의 차례가 올 때마다 상대 장기알을 두세 개씩 날려대는 고수를 만나면 처참히 패배할 터.
심지어 자그마한 졸(卒) 기물로 궁(宮, 왕 기물)을 날려버리더라.
이게 솔직히 가능한 짓인가?
도대체 얼마나 세게 날리면 이런 묘기가 가능한 거지?
사실 중국의 장기는 상기(象棋)라고 해서 기물끼리 크기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따로 주문 제작한 것.
걸핏하면 깨져나가는 바둑알과 비교했을 때 내구성이 상당해서 막 굴릴 수 있다는 게 편하더라.
솔직히 알까기 용도로만 사용하니까 장기알에 미안해지긴 하는데 장기와 상기는 규칙이 상당히 달랐다.
왜, 일본의 쇼기(将棋)처럼 말이야.
여포와 몇 번이고 재대결을 펼쳤지만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장료는 여포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이제 탄기(彈碁)보다는 바둑을 두시는 게 어떠실는지요?”
“뭐? 싫어!”
장료의 종목 변경 신청에 여포는 곧장 거절 의사를 드러냈다.
“그거 쓸데없이 머리 굴려야 하잖아! 나 그런 거 못해!”
“…그렇다면 상기(象棋)는….”
“못한다니까!”
여포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자기가 못하는 건 못한다고 떳떳이 외쳤다.
저런 모습을 보면 성격이 많이 유순해지긴 했어.
과거였다면 자기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방방 날뛰었을 텐데….
───바둑? 내 바둑알로 상대방 바둑알을 감싸면 이기는 거지?
───아앗! 내 왕이─!!
…음, 확실히 바둑이든 상기든 이해도가 전혀 없어 보이더라.
일단 먹을 수 있는 기물이 있으면 뒷일 생각하지 않고 먹어 치웠다가 그대로 참교육을 당하는 유형이랄까.
체스로 예를 들어보자면 퀸으로 폰을 따고 그대로 잃어버릴 실력이야.
“난 탄기(彈碁) 아니면 안 해!”
뛰어난 장수는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전장에만 뛰어든다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여포는 아주 뛰어난 장수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러면 나하고 해볼래?”
“정릉이라면 상관없어!”
막상 나와 관계되면 패배할 전장이라도 뛰어드는 게 문제였지만.
장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여포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가 패배해도 나와 머리를 맞대며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를 좋아하니까.
…이것도 어떤 관점에선 여포가 승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려나?
게임은 패배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과 즐겁게 지내는 건 무엇과 맞바꿀 수 없을 테니.
“…….”
근처에서 내 경호에 힘쓰던 서여도 나와 같이 게임을 하고 싶다는 듯 날 살짝 반짝이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저 무감정한 눈빛이 어디가 반짝이냐고 물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나한테는 보인다고.
──────────
근처 제장들과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우던 나는 이윽고 호로관을 거쳐 낙양 근처에 자리 잡은 부두에 정박할 수 있었다.
이 익숙한 광경을 보라.
이제야 내가 있을 곳으로 돌아왔다는 게 느껴지는….
“……?”
부두에 함선을 정박한 나는 육지에 발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부대가 부두 근처를 빼곡하게 감쌌기 때문.
처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무슨 매복이라도 당한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곧 부두를 감싼 부대가 황실의 최정예 부대인 걸 확인하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금방 눈치챘다.
그야 황실을 호위하는 금군(禁軍)이 이 정도 규모로 움직일 상황은 하나밖에 없는걸.
“기다리고 있었노라.”
마치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여전히 눈을 휘둥그레 뜬 내 앞에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 달 만에 재회했음에도 여전히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인물.
이 한나라에서 가장 고귀한 핏줄을 지닌 여인은 날 똑바로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
나는 그 뜻 모를 미소의 의미를 잠시 파악하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후다닥 함선 바깥으로 내려왔다.
“폐하,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좋아.
나쁘지 않은 첫마디였어.
평소 폐하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말실수하던 걸 떠올려보면 100점짜리 대답….
“강녕(康寧)이라.”
그때 황제 폐하께서는 내 물음을 받고 웃는 표정 그대로 대답했다.
“대장군 그대는 짐이 강녕해 보이더냐?”
“…….”
뭐지.
나 설마 지뢰 밟은 건가?
열심히 두뇌를 굴리던 나는 곧 강녕(康寧)이란 단어가 지닌 의미를 깨닫고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강녕(康寧).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이르는 단어.
즉 내가 없는 동안 기분이 심히 언짢으셨을 폐하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아마 다른 평범한 신하였다면 이 단어를 내뱉는 순간 관복을 벗어야 했겠지.
아니면 부임지가 시골 촌구석으로 뒤바뀌면서 사실상 반쯤 유배당하거나.
“…….”
난 황제 폐하를 얌전히 뒤따르는 수많은 관리 중에서 몇몇 낯선 얼굴을 확인하고 눈가를 데구르르 굴렸다.
왜 또 처음 보는 얼굴들이 있는 거야.
폐하를 곁에서 보좌할 정도면 상당히 높은 관직을 차지한 인물이란 뜻인데, 어째 내가 기억하는 사람과 인상이 매우 달랐다.
그들이 고대 시대에 존재하지도 않는 성형외과로 향해서 얼굴을 뜯어고칠 리는 없었으니 아마 이번에도 물갈이가 진행된 모양.
오랫동안 온갖 정치판을 헤쳐온 고관대작들조차 신중하게 행동하는 마당에 경험이 부족한 관리들이 황궁에서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마도 이곳은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며 발령지를 옮긴 게 아닐까.
아무렴, 말 한마디 잘못해서 어마어마한 위기에 처하는 것보단 얌전히 황궁에서 떠나는 게 낫겠지.
근데 나는 지금 말을 잘못했네?
이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지?
내 머릿속에 있는 뇌세포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광경을 떠올리던 나는 서둘러 이 상황을 수습할 문장을 골라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지금 제 의견을 온전히 말씀드리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습니다.”
“흐음.”
아무래도 여기까진 괜찮은 모양.
나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 날 뚫어지라 바라보는 황제 폐하께 입을 열었다.
“이곳보다는 저희에게 익숙한 황궁으로 돌아가 오랫동안 쌓인 회포를 나누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후후.”
보는 눈이 적은 곳으로 가서 단둘이 회포를 풀어보자는 내 제안.
이 문장에 담긴 속뜻을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몰라도 황제 폐하께선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기분이 좋은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짐을 황궁에 홀로 남겨두는 행동은 매우 무엄하나, 그대를 너무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몹쓸 짓이겠지.”
“…….”
“좋다. 보는 눈이 없는 곳으로 가서 회포를 풀어보자꾸나.”
그리 말씀하신 폐하는 내게 다가와 손을 슬그머니 붙잡으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아주 오랫동안.”
어라.
이게 무슨 의미지.
내가 이야기했던 ‘회포’와 폐하께서 이해한 ‘회포’의 의미에 무언가 큰 차이가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근데 지금 이를 정정했다간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상상도 안 됐기에 난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이미 눈치챘으면서도 일부러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 수 있지.
나는 내 손을 꼭 붙잡은 채 즐겁게 웃으시는 황제 폐하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