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15)
EP.715 귀환(7)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황제 폐하께선 내게 당당히 ‘오붓한 밀회’를 요구한 것치고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서여나 여포와 비교했을 땐 오래 버틴 것이 맞긴 하지만 그 두 명은 내가 손만 대도 자지러지는 최약체들이니 오히려 비교하는 게 실례지.
그래도 나와 맺어진 여인 중 상위권에 들만한 기록으로 오래 버티는 걸 성공했다.
참고로 제일 오래 버틴 여인은 초선이다.
누가 경국지색 아니랄까 봐 본능적으로 여러 가지 기술을 깨닫더라고.
두 번째는 본래 역사에서 부인을 30명이나 뒀던 조조였으니….
황제 폐하가 세 번째쯤 되겠네.
참 의외였지만 초선과 비슷할 정도로 아름다운 주유는 많이 약한 편이었다.
삼한(三韓) 정벌 때 수전에서 공을 세운 이후 포상을 요청하며 나와 시간을 보냈는데 별로 못 버티더라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외모와 그렇고 그런 기술이 서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솜씨는 여전하구나.”
낙양에 지어진 황궁 안쪽.
아마도 한나라 내부에서 가장 경계가 삼엄할 장소.
황제 폐하께선 그 권위에 걸맞은 화려한 침상 위에서 살짝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나라의 황제를 이렇게 다룰 수 있는 건 그대뿐일 터.”
“…….”
“끄응…. 당분간 집무는 쉬엄쉬엄 해결해야겠군.”
몸 곳곳에 붉은 자국이 남은 폐하는 그리 말하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슬슬 날이 밝았으니, 오랫동안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라.”
황제는 침상 위에 누운 채 어서 나가보라는 듯 휙휙 손짓했다.
근데 아이와 놀아주라고?
…오늘 평일인데.
나는 잠시 오랜 원정으로 이런저런 뒷수습을 해야 하는 걸 떠올리고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폐하, 황송하오나 오늘은 따로 처리해야 할 안건이….”
“뭐라고 했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난 폐하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잽싸게 태세를 뒤바꾸며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와, 방금 뭐였지.
조금 전 목소리를 듣자마자 등골이 오싹했는데?
좋지 않은 미래를 피하고자 움직인 결과 오늘 해결해야 할 일을 방치한 셈이 되었으나,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만약 방금 대답을 잘못했으면 아주 큰일이 났을 거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마 한 달 정도는 황궁에서 빠져나가지 못했겠지.
이미 당분간 낙양을 벗어날 수 없을 게 확실한 상황에서 나는 감금 범위를 더욱 좁히고 싶지 않았다.
음….
그러면 뒷수습을 누구한테 맡기지?
모르겠다.
그냥 길 좀 걷다가 적당히 마주치는 꼬꼬마 책사들한테 맡겨야지.
내가 지금까지 일을 한두 번 떠넘기는 것도 아니니 모두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것이다.
아무렴, 높은 사람은 아랫사람한테 일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되니까.
만약 지금 내 생각을 알았다면 꼬꼬마 책사….
대표적으로 보랏빛 머리카락을 지닌 퉁명스러운 군사가 한숨을 내뱉었겠으나 그녀는 최근 이상할 정도로 내게 유순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악우인 흰색 머리카락의 군사와 으르렁거리는 건 똑같았지만, 나만 보면 예민한 분위기가 풀리더라고.
물론 툴툴거리는 말투는 여전했으나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조금 더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이것도 모르면 어쩌자는 거예요?
───크흠. 누누이 말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됐으니까 이리 주기나 하세요. 제가 따로 해결할 테니까.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사마의였다면 원래 내 변명 같지 않은 변명에 한숨을 푹 내뱉으며 조금 더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을 것이다.
아마 그렇게 인정한다고 끝날 이야기가 아니라 설명하며 날 조금 더 들들 볶았겠지.
그러다가 제갈량이 대화에 끼어들면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을 테고 말이야.
담담히 자신이 해결한다며 조용히 넘어간다는 것 자체가 화들짝 놀랄 상황이란 뜻이다.
…도대체 어째서지?
사마의가 원래 나한테 약한 편이긴 했으나, 저렇게 극적인 변화를 보일 정도로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후후.
그 외에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이따금 혼자 웃음을 보이는 등 수상한 정황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사마의 본인한테 물어도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것이라며 장난스럽게 대답할 따름.
…적어도 내게 해로운 일은 아닐 테니 궁금한 표정을 지으면서 넘어갈 수밖에.
───서, 설마….
───…빠르군요.
방통과 제갈량은 사마의의 행동을 보며 무언가 알아챈 듯했으나 확실한 대답을 내놓길 꺼리는 눈치였다.
그 두 명이 이렇게 당황할 정도의 일이라니?
비록 나한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 해도 더욱 궁금증이 들었다.
“대, 대장군. 오셨습니까.”
“그래.”
내가 폐하의 침실에서 벗어나고 잠시 발걸음을 옮기자 나와 마주친 황실 관료들이 인사를 올렸다.
대부분 나이가 상당히 많아 보이네.
하긴, 권력의 중심지인 낙양의 황궁에서 일할 정도면 과거 어디서든 한 끗발 날렸을 인물이겠지.
정말 어지간히 특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 나이가 든 채 낙양의 황궁에 입성할 것이다.
나는 내 앞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눈치를 살피는 관료들을 바라보다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황제 폐하께선 침상에서 휴식을 취하실 터이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여기서 함부로 행동했다간 농담이 아니라 정말 목이 잘려 나갈 수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론 황실을 능멸했다며 주변을 경계하던 금군들에게 즉결 처분당하겠지.
내가 황제 폐하께 이쁨을 받아서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불경죄로 목이 여러 번 잘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서여나 여포가 있으니 죽지는 않았을려나?
애초에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내가 경거망동하게 행동했다며 처벌해야 한다고 외치는 순간 그 관리는 다음 날 마법같이 사라질 것이다.
어디로 사라질지는 나도 몰라.
어디 외딴 시골로 유배당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저기 황하 아래쪽으로 꼬로록 가라앉을 수도 있겠지.
전자는 그렇다 쳐도 후자는 너무 두려운데.
나는 여전히 내 이야기를 기다리는 황실 관료들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나도 할 일이 있으니 당분간 찾지 말도록 해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좋아.
이걸로 어지간히 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날 찾지 않겠지.
이제 남은 것은 황제 폐하의 명령을 잠자코 따르는 것뿐이었다.
…그게 아이 돌보기라는 게 조금 어떨까 싶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그렇고 그런 짓을 보여줄 순 없으니 부모와 아이가 잠시 떨어진 상황.
나는 이 근처에 있는 아이 방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아빠다!”
상당히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이미 깨어 있었는지 유정(劉桯)은 나를 보자마자 앙증맞은 다리를 움직이며 오도도 뛰어왔다.
“아빠!”
“우리 딸!”
나는 내게 달려드는 아이를 꼭 껴안아 주며 마구 볼을 비볐다.
“가, 간지러워! 그만해요!”
“싫은데?”
이 따뜻한 온기와 말랑말랑한 볼살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나는 꺄르르 웃는 유정을 껴안은 채 내 사리사욕을 채우며 실없이 웃었다.
곧 6살이 되는 아이답게 상당히 묵직해졌지만 나도 엄연히 전장에서 활약하는 장수.
말 위에 올라탄 채 수천 리를 행군하는 게 만만히 보이더냐?
비육지탄(髀肉之歎)이라고, 본래 역사의 유비가 허벅지에 살이 쪘을 때 어째서 슬퍼했는지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계속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니까 살은커녕 근육만 붙더라고.
군인이 밥을 많이 먹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
그렇기에 나는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보다 훨씬 강한 편이었다.
서여나 여포가 날 언제 돌연사할지 모르는 개복치로 바라보던 게 이상한 거야.
“…….”
또또 저 눈빛.
아주 그냥 내가 툭 치면 부서질 유리 몸으로 보이지?
서여와 여포의 걱정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담담히 넘어간 나는 사랑스러운 딸에게 물었다.
“유간(劉侃)은 어디 있어?”
“동생?”
꺄르르 웃던 유정은 내 물음을 받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저기! 저기서 쿨쿨 자고 있어!”
“그래?”
유정의 말대로 유간은 자그마한 침상 위에서 귀여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아직 1살이라서 그런지 잠이 많구나.
…근데 몇 달 동안 얼굴 못 본 사이 아빠를 못 알아보는 건 아니겠지?
나는 먼 곳으로 출장을 떠났던 기러기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슬픈 사연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만약 못 알아보더라도 어쩔 수 없지.
그것은 분명 내가 아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뜻일 테니 말이야.
뭐, 지금은 귀엽게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즐겁게 웃으면 됐다.
“부으….”
아기 손바닥 위에 손가락을 슬쩍 올리자 이를 본능적으로 꼭 붙잡는 모습.
나는 푸근한 기분에 감싸인 채 푸흐흐 웃으며, 폐하께서 원하셨던 것처럼 시간을 느긋이 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