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20)
EP.720 일상(5)
───미랑(媚娘)아, 그것 알고 있느냐?
미랑(媚娘).
아름다울 미(媚)에 여자 랑(娘).
사람이 어릴 때 본명 대신 주로 사용한다는 아명(兒名)부터가 심상치 않았던 어린 소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땅이 어째서 이렇게 살만해졌는지 말이다.
병주(幷州) 태원군(太原郡) 출신으로서 일평생 가혹한 삶을 살아왔던 인물은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장군(大將軍).
───…….
───대장군 덕분이란다, 미랑아.
소녀의 아버지, 무사확(武士彟)은 어느 날 소녀를 부르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한때 모아둔 재산으로 저 멀리 밑쪽으로 내려가 형주(荊州)에 정착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는 걸 느꼈지.
───…….
───그 말박이 놈들과 서로 교역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거늘.
딸에게 이야기하던 중년 남성은 지금 병주의 위상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어떠한지 아느냐며 끌끌 웃었다.
비록 말박이와 같은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긴 하지만 소녀는 그게 전부 친근하단 뜻을 담아 부르는 애칭임을 알 수 있었다.
허구한 날 제 아버지와 술잔을 나누던 북방 유목민도 꽤 이상한 별명으로 아버지를 부르곤 했으니까.
이는 서로 증오하는 방법밖에 몰랐던 두 민족이 화합하는 순간이었다.
아직 마음속에 품은 모든 응어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세대를 거쳐 내려갈수록 점차 희석될 터이니.
나라가 이대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어느 민족도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으리라.
병주(幷州) 출신답게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던 남성은 끌끌 웃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여쁜 딸을 마주 보았다.
───미랑, 너는 어떠한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이더냐?
───…….
남성은 눈앞의 소녀가 심상치 않은 성격을 타고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 성인식조차 올리지 못한 어린 나이에 어느 가문의 시종이 되겠다고 이야기할 리 없으니까.
───권력을 원하는 것이라면 조금 더 배움을 쌓고 관직에 오르는 것이 옳다.
자신의 딸은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
조금 주제넘은 평가일지는 몰라도, 운이 따라준다면 능히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겠지.
또 그를 위한 지원도 부족함 없이 해줄 수 있다.
남성은 병주 내에서도 상당히 명망이 드높고 부유하기까지 했으니.
───그래서는 너무 늦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조차 기다릴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알 수 없었다.
자기 딸이 너무 늦는다고 뜻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를.
───…도대체 무엇이 늦는단 말이더냐?
───…….
아버지의 질문을 받은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 알려주지 않으면 결코 보내주지 않겠다 이야기하며 한바탕 충돌이 벌어졌던 적도 존재했으나….
제 고집을 굽히지 않은 소녀가 식음을 전폐하고 죽기 직전까지 버티자 아버지는 결국 먼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이건 애초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으니.
───…후우, 좋다.
소녀가 한 번 고집을 부리면 굽힌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남성은 잠시 머리를 짚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내 추천장을 써줄 터이니 마음대로 하도록.
───…….
───도대체 어느 가문의 시종으로 들어가겠단 건지 이해는 안 되나 나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
비록 신경 쓰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으나 무사확(武士彟)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이 괜히 엄한 곳에서 고생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걱정할 것이다.
만약 소녀가 이상한 사건에 휩쓸리는 순간 부모의 정을 잊지 못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일을 바로잡고자 하겠지.
소녀의 아버지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재력과 권력이 존재했다.
무사확(武士彟).
그는 대장군이 직접 벌이는 토목 사업에서 중간 관리자를 자처하며 여러 공을 세웠으니까.
───감사합니다, 아버님.
───…….
소녀는 제 의견을 받아들여 준 남성에게 절을 올렸으나, 남성은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다시 고개를 강가로 돌린 채 낚시에 집중하고 있었다.
───성(姓)은 무(武)요, 명(名)은 조(照)다.
그렇게 절을 올린 소녀가 발걸음을 돌릴 무렵 뒤쪽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조(武照). 이게 네 본명이니 잘 기억하고 있도록.
───…예.
───쯧, 원래대로라면 성인식을 올릴 때 알려줄 예정이었거늘….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고집이 센 거냐며 남성은 끌끌 찼다.
훗날 남성은 자기 딸이 누구의 시종이 되었는지를 깨닫고 자리에 뒤집어엎어졌지만, 그건 훗날에 있을 일이었다.
──────────
“…….”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아름다운 소녀가 자신이 모시는 이의 질문을 받고 잠시 침묵에 빠져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준비해 놓은 편안한 미래를 거절하고 굳이 어느 한 가문의 시종이 되어 온갖 잡무를 떠맡은 이유.
그 이유는 단순했다.
단지 본인이 하고 싶었기 때문.
그렇다면, 그녀 본인이 이러한 마음을 품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일을 정말 잘해주더군. 다시 봤어.
───하하하! 제가 거짓말을 하는 인간은 아니지요!
그녀는 과거 집무와 관련해서 자신의 아버지와 만남을 가진 남성을 떠올렸다.
마치 한나라에서 가장 고귀한 핏줄이 떠오르는 순흑빛 머리카락.
하지만 그런 황족들과 살짝 동떨어진 옅은 다갈색 눈동자.
【 용의 눈과 봉황의 목을 지녔으니, 이는 참으로 기이한 관상이로다. 】
용과 봉황.
어느 관상가는 자칫 누군가가 들으면 역모라 취급할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며 껄껄 웃어 보였다.
때마침 아이의 머리카락도 황실을 상징한다는 흑색이었으니, 이를 들은 아버지가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예상이 가는 일.
아버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서둘러 관상가를 쫓아내곤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입을 열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그 이후, 소녀는 자신과 똑 닮은 색깔을 지닌 인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검은색.
황족이 아니었음에도 순흑빛 머리카락을 타고난 그는 마치 용을 상징하는 듯했다.
언제든 승천하며 구름 위를 유유히 떠다닐 수 있는 거대한 용.
그러나 용은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구름 위를 올라가지 않고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
그렇기에 봉황(鳳凰).
그는 만물을 지배하는 용(龍)이 되지 않고, 덕(德)의 상징으로서 태평성대를 뜻하는 봉황이 되었다.
───끌끌,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는다니까.
───…….
───나는 예전부터 저놈이 봉황이 될 것을 예측했지.
분명 아버지에게 자택 바깥으로 쫓겨났던 이름 모를 관상가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 아주 잠시나마 역천(逆天)을 행할 운명을 지닌 꼬마야. 】
【 너는 무엇이 될 수 있겠느냐? 】
용(龍)과 봉황(鳳凰).
마치 두 가지 선택지를 내놓는 듯한 노인의 물음에 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머리카락…. 눈동자….
───으음?
이름 모를 관상가는 소녀의 이상한 대답에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는 운명인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가?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지성을 발휘하던 소녀는 어렵지 않게 정답을 찾아냈다.
봉황(鳳凰)은 예로부터 수컷을 봉(鳳)으로, 암컷을 황(凰)으로 불렀다.
하지만 지금 봉황은 아직 제대로 된 짝을 못 찾았지 않았는가?
순흑빛 머리카락이 그러했던 것처럼 남성과 똑 닮은 다갈색 눈동자를 지닌 소녀는 노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
그저 속뜻을 알 수 없는 눈동자로 멀리서 남성을 지켜볼 뿐.
───…크흠,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나?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다는 이유로 천하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던 이름 모를 관상가는 헛기침을 내뱉곤 자리를 벗어났다.
순리대로 흘러갔다면 봉황이 되었고, 용도 되었던 여인에게 불가능한 일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하면서.
“마음에 둔 남성이라면 누구든 상관없는 것이옵니까?”
“그래, 누구든 말이야.”
눈앞의 남성은 소녀가 무슨 대답을 내뱉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리라 볼 수 있으리라.
남성은 이미 수많은 여인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으며 실제로 두 자릿수에 달하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나이도 무려 서른 살이나 넘게 차이가 났으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남성의 권력이나 재물이 아닌, 남성 그 자체에 매력을 느낄 법한 어린 여성들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겠으나 소녀는 자갈밭에서도 옥석(玉石)을 가려낼 수 있는 뛰어난 여인이었다.
그리고 옥석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여인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