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22)
EP.722 일상(7)
어느덧 광희(光熹) 16년(202년)을 코앞에 둔 늦겨울.
구체적으로 언제 임신한 건지는 감이 안 잡히지만, 최근 사마의의 성격이 부드러워진 시기를 떠올려보면 그녀가 임신하고 그리 오랜 시간은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
애초에 겉으로는 티가 별로 안 나.
뱃속의 태아가 안정되면서 임산부의 배가 부풀어 오를 때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다.
누가 봐도 아이를 가졌다고 느끼려면 족히 5달은 지나야 할 터.
하지만 그 사마의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착각할 리 없을 테니,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믿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 이름을 정해달라고?”
“네.”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듣자마자 곧장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이름이 떠올랐다.
사마의의 아이들….
그거 그냥 사마사(司馬師)와 사마소(司馬昭)잖아.
사실 이외에도 사마량(司馬亮)이나 사마주(司馬伷) 등 거의 10명에 가까운 자식들을 낳았는데 가장 유명한 인물들을 꼽으라면 이 두 명밖에 없었다.
그 이유가 바로 무엇이냐.
사마사와 사마소는 본래 역사에서 굵직한 사건을 일으켰잖아.
사마사는 겉으로 사이좋게 지나다가도 상대가 빈틈을 보이면 망설임 없이 푹 찔러 죽이는 희대의 야심가였고, 사마소도 제 아버지와 형을 닮았는지 음험한 짓을 많이 하다가 끝내 황제를 시해하는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다.
사마의도 사마의지만 이 두 자식도 진(晉)나라를 건국하는 데 톡톡한 공을 세웠단 말이지.
조조, 유비, 손권이 패권을 두고 다퉜던 삼국시대의 승리자는 조위(曹魏)도, 촉한(蜀漢)도, 손오(孫吳)도 아닌 바로 서진(西晉)이었다.
문제는 수나라 못지않게 가정 상황이 개판이었던지라 백 년도 못 가고 폭삭 멸망해 버린 거지만.
내가 그 팔왕의 난(八王之亂)이나 영가의 난(永嘉之亂)이 일어날 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겠네.
그것들 전부 3세기 끄트머리와 4세기 초반에 일어나는 일이거든.
…아, 근데 영가의 난의 주역이었던 유연(劉淵)이 훨씬 일찍 태어났구나?
왜, 그 사람 있잖아.
칭기즈 칸 휘하에서 활약하며 수상할 정도로 나를 향해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던 흑발 유목 민족 여인.
───소, 소, 소문으로만 듣던 대장군과 직접 대면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
───이 기쁜 날은 꼭 기억해 두고 훗날 열심히 기록해서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가문의 가보로….
한고조 유방을 물리친 그 유명한 묵돌(冒頓)의 후손이자 한나라 황실의 혈통을 잇기도 한 유(劉)씨 장수는 몸을 부르르 떨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나 한(漢)을 좋아하면 나도 놀랄 정도로 한나라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겠냐.
역시 본래 역사에서 나라를 건국한 창업 군주들은 하나같이 비범한 면모가 존재했다.
“…….”
생각이 조금 길어졌는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참으로 간단했다.
조만간 사마의가 낳을 자녀들도 본래 역사를 생각한다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뜻.
어떻게 보면 조조가 낳은 둘째, 조비와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었다.
조비 그 아이도 자기 가족이 아니면 하루 종일 퉁명스러운 표정만 지으면서 어마어마하게 생떼를 부리거든.
오죽하면 시종들도 조비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걸 꺼릴 정도.
…본래 역사에선 조조가 후계자 자리를 확정지을 때까지 모범적인 자식을 엄청나게 잘 연기했던데 이게 무슨 일일까.
지금 조비의 언니인 조앙이 살아있기도 하고, 애초에 나이가 무척 어리니 당연한 일인가?
이름을 잠시 고민하던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사마의에게 질문을 던졌다.
“뭔가 팍 떠오르는 게 없네. 혹시 이미 생각해 둔 이름이 있어?”
“흥, 제가 먼저 물어봤는데 말이죠.”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는 태도가 상당히 언짢았는지 사마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 팔짱을 꼈다.
“사(師)와 소(昭). 제가 생각해둔 이름은 두 가지예요.”
“그래?”
하지만 그러면서도 붓을 집어들어 내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해 주는 태도는 참으로 사마의다웠다.
정말 새침데기라니까.
나는 사마의가 붓으로 기록한 글자 두 개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 사(師)에 밝을 소(昭).
이건 아무래도 본래 역사와 똑같나 보네.
글자만 봐도 어떠한 의미로 지어줬는지 알 것 같은 내용에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근데 아이 이름을 벌써 두 가지나 생각했어?”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는 거죠?”
“별거 아니야.”
나는 사마의가 당황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예상이 적중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이를 얼마나 낳을 계획이면 아직 첫째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조용히 해요!”
사마의는 내 장난스러운 태도에 당황하면서 얼굴을 확 붉혔다.
뭐….
부인이 이미 생각해 둔 이름이 있다는데 나도 그에 따르는 게 낫겠지.
본래 역사를 언급하며 이런저런 걱정을 하기엔 이미 나는 너무 멀리 걸어왔다.
──────────
201년 겨울.
어떻게 보면 참으로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한나라의 수도 낙양에선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대장군. 별로 보잘것없는 선비가 인사 올리옵니다.”
“…그래.”
대표적으로 못 보던 얼굴이 많이 생겨난 일을 들 수 있겠네.
내가 몇 번이고 언급했지만 한나라는 그 거대한 땅덩어리에 비해 행정력이 무척 부족한 상황이었다.
중앙집권화는 나쁘지 않게 되어있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 보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지역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하나.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욱 많은 노예를….
…아니, 더욱 많은 관리를 등용해야 했다.
하지만 관리를 아무나 뽑았다간 오히려 나라가 몸살을 앓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이미 온갖 부정부패로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한나라 입장에선 관리를 선발할 때 무척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
“무슨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신지요?”
가령 내가 직접 인재들을 살펴보는 것처럼 말이야.
내가 잠시 침묵을 지키면서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않자 눈앞의 관리는 의아한 태도로 내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분명 이번 과거 시험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통과했다는 인물이라던가.
본래 역사에서 과거 시험은 식년시(式年試)라고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것이 규칙이었는데, 이외에도 별시(別試)라고 해서 왕이 열고 싶을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과거 시험도 존재했다.
그러면 뭐 평소 인재 부족에 시달리던 한나라가 어떻게 행동하겠나.
당연히 허구한 날 인재 모집 벽보를 붙이면서 과거 시험이 열렸겠지.
특히 황제 폐하께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신하를 계속 근처에서 치워버리시지 않나.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면 좌천시키는 건 예삿일이고, 심하면 황하 밑바닥에 파묻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뭘 더 말하겠어.
도대체 무엇이 그리 문제인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일단 폐하의 깐깐한 안목을 넘어서는 인물은 어지간해선 존재하지 않았다.
어쨌든 신분에 상관없이 인재를 더욱 등용하고자 열린 과거 시험.
근데 과거 제도가 많이 시행되고 점차 합격자가 늘어나자,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다시 한번 설명해 봐라. 기존에 관직을 먼저 차지했던 놈들이 무엇을 요구했다고?”
“신례(臣隷, 임금을 섬기며 벼슬하는 사람)라면 윗사람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니….”
눈앞의 관리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자신이 겪은 일이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인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조만간 잔치를 열어 자신들을 성대히 대접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허.”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허탈한 한숨을 내뱉으면서 머리를 짚었다.
신례(臣隷)의 도리가 뭐 어쩌고 저째?
…이것들 면신례(免新禮)라도 하려는 거냐?
난 현대인들에게 흔히 신고식으로 알려진 가혹한 관례를 떠올리며 몸에 힘을 쭉 뺐다.
내가 웬만해선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편이 아닌데, 이럴 때만큼은 인류애가 뚝뚝 떨어진다니까.
“제가 그런 관례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거절하자 업무와 관련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상황입니다.”
“…….”
“그리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 나랏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를 빌미로 조정에 죄를 고발해 파직시키니 어떻게 억울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독하다 지독해.
신고식 거절하니까 기수 열외를 시켜서 아예 홀로 고립시킨다는 거잖아.
이제 막 조정에서 일하게 된 신참 관료들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한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법인데, 선임이라는 놈들은 잔치를 열어 자신들을 대접하지 않았단 이유로 후임들을 도와주지 않고 방치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신참 관료가 나랏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경험도 없는데 일부 천재적인 인물이 아닌 이상 당연히 못하지.
그리고 나랏일을 못하는 순간 열심히 벼르고 있던 선임들이 바로 신참 관료를 조정에 고발.
신참 관료는 별다른 뜻도 펼쳐보지 못하고 조정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웃기긴 하네.
과거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나 됐다고 신고식이 일어나는 거지?
“좋다. 전부 이해했으니 고개를 들도록.”
내가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자 눈앞의 관리는 침묵을 지키면서 공손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나와 만나기를 요청하며 며칠을 굶고 대문 앞에서 하염없이 버텼다고 하던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군.”
“…….”
아마 기존 관리들이 과거 제도로 관직을 얻은 신참 관리들의 기를 죽이고 자신의 저열한 권력욕을 충족시키고자 이런 일을 벌인 모양.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이야기했다.
“내가 잠시 외출하고 돌아올 동안 잘 대접해 주도록.”
“예.”
내 명령에 대답하는 초선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선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예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