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24)
EP.724 일상(9)
때아닌 면담 시간을 시작한 나는 눈앞의 관리가 뻣뻣한 자세로 앉아있는 걸 확인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긴장했어? 편하게 이야기하자니까.”
“하, 하하! 긴장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래?”
관리의 대답을 들은 나는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긴장하지 않았다기엔 방금 내 말도 무시하고 그러던데….”
“…….”
“어휴, 여기가 네 집이라서 참 다행이다. 그치?”
이는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만약 황제 폐하의 눈과 귀가 존재하는 황궁에서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해 봐라.
그러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경질로 끝나면 다행일 테고, 만약 황제 폐하의 심기가 제대로 좋지 않으면….
───저 얼빠진 놈의 혀를 뽑아버려라.
───…폐하?
───있어도 제대로 놀리지 못하는 혀, 차라리 평생 입을 열지 못하게 뽑아버리는 편이 훨씬 편하지 않겠느냐?
어우.
상상만 해도 몸이 으슬으슬 떨리네.
어쩌면 혀를 뽑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성대까지 망가트리는 방법도 있겠지.
…그 성대를 어떻게 망가트리는지는 설명을 아끼겠다.
솔직히 비위 좋은 이야기는 아니잖아.
한 가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건, 옛날 사람들은 허구한 날 전쟁을 치렀던 것답게 어디를 어떻게 망쳐야 사람의 신체 부위를 아주 효과적으로 작살낼 수 있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특히 이를 직업으로 삼은 고문 기술자라면 더하지.
내가 사람 죽는 건 지금까지 많이 봤는데, 일부러 죽이지 않고 하루 종일 고문하는 광경은 여전히 적응이 안 돼.
“그, 그렇습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내 분위기 전환을 위한 이야기가 통했는지 눈앞의 관리는 식은땀을 더욱 흘리기 시작하면서 최대한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괴롭히는 건 이쯤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일단 선비가 내게 올린 보고가 사실이 맞는지 확인부터 해야 할 터.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거짓으로 대답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만약 거짓말을 한다 쳐도 인간을 초월한 직감을 지닌 서여와 여포가 존재하니 거짓말 정도는 금방 잡아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고조 유방이나 소열제 유비 정도쯤 된다면 이 생체 거짓말 탐지기들한테도 유유히 거짓말을 할 수 있겠으나….
그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애초에 내 귓가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보고가 들려오지 않았을 거다.
“최근 그대를 비롯한 몇몇 무리가 신입 관료들에게 여러 대접을 받으며, 또 이를 강제한다는 소문이 돌더구나.”
“…….”
“그 소문이 사실인가?”
지금 이 순간 내 질문을 받는 관료의 머릿속은 팽팽하게 굴러가고 있을 거다.
내가 어떠한 의도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답해야 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대답이 늦는군.”
하지만 나는 그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혹시 내 이야기를 또 무시하는 건가?”
“헛?!”
자기 상관의 이야기를, 그것도 한나라 대장군의 이야기를 두 번이나 무시하게 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하자 눈앞의 관리는 화들짝 놀라고 최대한 빨리 대답했다.
“그, 그 소문에 딱히 틀린 점은 없습니다!”
“…….”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섬기는 게 마땅한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렇단 말이지.
알아서 자백해 주니까 수고를 덜었네.
나는 눈앞의 관료가 문제 인물이라는 걸 알아채고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정명(正名).”
“……예?”
“윗사람이 자리에 걸맞은 인품과 능력을 보이면 아랫사람의 존경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법이거늘, 네놈은 어떻게 이러한 짓을 벌이는 것이냐.”
흔히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행동해야만 한다는 내용으로 유명한 철학.
실제로 면신례와 같은 신고식은 공자가 주장한 유교 철학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이었기에 조선 시대에서도 매우 시끄러운 주제였다.
한국의 천 원 아저씨인 퇴계 이황과 오천 원 아저씨인 율곡 이이가 면신례와 관련해서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폈을 정도로 반응이 극과 극이었지.
뭐, 세상에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인물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무리 뛰어난 공을 세운 인물이라도 결국 인간이었으니 주머니 탈탈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경우는 정말, 정말로 드물었다.
그리고 나는 면신례를 무척 좋게 보지 않았다.
처음 이를 실행한 취지가 어떠했든, 결국 이게 변질되어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으니 마땅히 바로잡고 뿌리 뽑는 게 옳은 행동 아니겠나.
“하지만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온 관례이자 전통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눈치챈 관리는 급히 입을 열어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
“이러한 풍습을 함부로 없애는 것은 도에 맞지 않는 일 아니겠습니까?!”
“흠.”
아니, 어떻게 된 게 신고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전부 똑같은 거지.
조선 시대 때도 면신례가 지닌 문제점을 눈치채고 이 악습을 폐지하려고 했지만 꼭 나오는 반박이 있었다.
이는 고려 시대 때부터 쭉 이어져 온 풍습이며….
고려 권문세족의 기강 확립을 위해 어쩌고저쩌고….
정작 조선 시대에서도 세도 정치가 횡횡할 무렵 세도 가문 자제들에게 면신례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보면 그닥 신빙성이 없는 주장이지.
그냥 자신의 저열한 권력욕과 가학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보다 만만한 신참 관리들을 괴롭히는 악질적인 문화였다.
이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아무리 오래된 전통과 풍습이라고 한들, 그게 뿌리부터 썩어 사람들에게 온갖 피해를 입힌다면 당연히 전부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오나…!”
이는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교리만 보면 딱히 문제 될 것이 없는 유교가 훗날 이상하게 변질되면서 나라에 해악을 끼쳤으며, 이는 결국 생각의 틀을 제한시켜 시대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내가 굳이 불교나 도교 같은 다른 학문을 열심히 탄압하지 않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지.
너무 과한 경쟁은 독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런 토론조차 하지 않는 것도 또 독이 되어 나라를 내부에서부터 좀먹었다.
흔히 독점의 폐해라고들 말하잖아.
대충 비슷한 거다.
“조만간 폐하께 건의를 드려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그리고 자네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들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인지?”
“다른 관료들에게 뇌물과 접대를 강요하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무고한 이를 고발하는 행위라….”
사회에서 흔히 이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던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이야기했다.
“이것 또한 내가 극히 혐오하는 부정부패와 다를 바 없지 아니한가?”
“…!”
───스르릉.
칼집에서 칼날이 빠져나올 때 들려오는 쇳소리.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검이자, 사실상 숙청 허가권이나 다름없는 상방검(尙方劍)을 꺼내든 나는 칼끝을 눈앞의 관리에게 겨누었다.
“붙잡아라.”
“대, 대장군….”
콰앙─!
“커허억!”
“얌전히 있도록.”
내 명령이 떨어지자 곧장 관리의 뒤통수를 붙잡고 땅바닥에 내려찍은 관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한 번에 잘리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테니.”
“……!”
관우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정부패 저지르는 관리들은 엄청나게 싫어하더라고.
…이것도 본래 역사에서 보였던 면모라고 해야 하나?
“…….”
“에이…. 기회 놓쳤네.”
장비는 독우를 매질했던 과거가 떠올랐는지 아쉬운 듯 혀를 찼고, 유비는 조용히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로서도 정말 가슴 아픈 일이로군.”
관리의 옆쪽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대가 세운 공도 분명 상당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능력 있는 인재를 허무하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야.”
“대장군!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대장군!”
하지만 뛰어난 인재가 저지르는 부정부패만큼 무서운 게 없는 법.
제환공을 보좌하던 명재상 관이오가 그랬던 것처럼 나라에 해악이 되지 않는 선에서 권력을 사용하면 나도 적당히 눈감아 줬을 거다.
아무렴,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인물이 사치 좀 부리고 이성 좀 많이 만나는 게 뭐가 문제겠나.
근데 다른 사람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나라를 내부에서부터 좀먹어간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애초에 정치적으로 뛰어난 인물은 줄을 잘 타는 법이라서 자기가 모시는 주군의 인내심을 구태여 시험하지도 않는다.
지금 익주에서 활동하는 법정이 딱 그러더라고.
법정은 본래 역사에서 은원 관계가 확실한 인물답게 자신이 원한을 진 인물을 하나하나 척살하던데, 그 척살한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씩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뿐이라 나도 딱히 개입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역시 똑똑한 사람들은 무서워.
나도 원한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대장군! 부디 자비를…!”
“…….”
───서걱!
폐하께서 직접 하사한 명검답게 날이 잘 선 상방검은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람의 목을 가볍게 썰어버렸다.
“…후우.”
나는 손에 남은 찝찝한 느낌을 애써 털어내며 주변 제장들에게 이야기했다.
“이와 관련 있는 놈들, 전부 잡아 오도록.”
“예.”
오늘도 고기는 못 먹겠구나.
속이 별로 좋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