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29)
EP.729 일상(14)
궁궐 내부는 황제 폐하께서, 군대 내부는 조조가 한바탕 휘저은 결과 한나라는 당연하게도 큰 변화를 겪었다.
“저잣거리 어디를 가도 목이 하나씩 걸려있군.”
“에잉 쯧쯧, 전부 죽을 만한 놈들이니 죽은 게야.”
죄인의 목을 베고, 곤장으로 후려치며, 시신을 거리 곳곳에 매달아 조리돌림까지 하며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말도 말게. 난 그때만 떠올리면 아직도 몸이 부르르 떨리니까.”
아마 백성들이 이야기하는 과거란 탐관오리 대숙청 사건일 터.
…근데 그건 그때가 이상한 거였다.
과거 한나라 황제를 인질로 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동탁을 낙양에서 쫓아낸 이후, 나는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나라 내부를 좀먹어왔던 관리들을 대규모로 숙청했다.
문제는 탐관오리가 아닌 관리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수준으로 안 보였다는 것.
한나라 자체가 수백 년 동안 천천히 썩어가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숙청의 결과로 목이 잘려나간 관리의 숫자만 수백 명.
거기에 환관들까지 포함하면 천 명도 넘어갈걸?
농담이 아니라 칼끝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지.
한나라의 중심 도시인 낙양만 해도 이럴진대 다른 지방의 상태가 어떨지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전 국토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한(漢) 왕조가 어떻게든 유지됐다는 게 오히려 대단할 따름.
“그 피폐했던 나라가 불과 10년 만에 되살아나다니….”
“참으로 하늘이 내린 충신이로다.”
나는 척 봐도 토론 나누는 걸 좋아할 법한 두 선비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 한나라에서 나에 대한 평가가 어떻더라.
아, 그래.
구국간성(救國干城)이라고 평하던가?
구국간성(救國干城).
나라를 구하는 방패와 성이라는 뜻으로, 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인물은 이르는 사자성어.
아마 내가 죽은 뒤에는 아주 높은 확률로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받지 않을까.
왜, 흔히 충무공(忠武公)이다 충무후(忠武侯)다 하는 칭호 있잖아.
제갈량을 이르는 호칭 중 하나인 제갈무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지.
송나라의 명장이라고 불리는 악비도 이 칭호를 받았다.
한반도에는 뭐….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한 분이 계시지 않나.
신하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시호가 바로 충무(忠武)인 것.
사실 이 칭호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해당 나라에서 매우 존경받는 위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주변 병사들의 은밀한 호위를 받으면서 거리를 떠돌아다니던 나는 적당한 주점에 들어와 음식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충무(忠武)라….
내가 과연 그 정도 시호를 받을 만한 인물일까.
전장에서는 여포를 비롯한 만인지적의 장수들 뒤에 숨었고, 머리를 써야 할 때는 가후나 꼬꼬마 군사들처럼 똑똑한 책사 뒤에 숨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누군가의 등에 업혀 버스를 탄 것만 기억나는데.
뭔가 되게 보잘것없단 말이지.
뭐, 주변 사람이 누누이 이야기했다시피 내 진짜 능력은 수많은 인재를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거니까.
국사무쌍 한신도 한고조 유방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수십만 병사를 이끄는 장수보다 장수를 이끄는 장수가 더욱 대단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내가 어쩌다 장수를 이끄는 장수가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진짜 어떻게 된 거지.
“…맛있어?”
“응, 맛있네.”
늘 그랬듯이 근처에서 날 호위하던 여포는 내가 그릇 위에 있는 고기를 우물거리는 걸 보고 묘한 기색을 드러냈다.
마음만 먹으면 이것보다 수십 배는 더 화려하고 귀한 음식들을 황궁에서 배터지게 먹을 수 있겠지만….
가끔은 이런 분위기 전환도 필요한 법이야.
애초에 난 걸핏하면 바깥을 싸돌아다니며 전장을 지휘하지 않았나.
음식 맛으로 불평할 시기는 진작 지나갔단 말이지.
비록 주점에서 술을 시켜 먹지 않는 별종 취급을 받긴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술은 원래 문화적인 이유나 사회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마시는 거니까.
단순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전쟁광 한무제의 활약 이후 실크로드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동서 교역이 활발해지고, 그로 인해 한나라로 들어온 수많은 향신료와 요리 재료들.
본래 역사에선 이때를 기점으로 분식과 관련된 단어가 여러 개 생겼다던가?
사실 춘추전국시대부터 주방장의 지휘하에 분업이 이루어질 정도로 요리에 진심이었지만.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뜻으로, 한고조 유방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유래 깊은 고사성어.
제갈량과 더불어 명재상으로 잘 알려진 관중(管仲)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의식족즉지영욕(衣食足則知榮辱).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의식이 갖추어지면 영욕을 안다.
일단 백성의 배가 불러야 그들이 예의나 체면, 법 따위를 안다는 이야기지.
역시 제환공을 춘추 패자로 만든이답게 유식하다니까.
내가 이따금 거리로 나와 끼니를 해결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어디 가서 배를 곯지는 않는지,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절대 이를 빌미로 갑갑한 황궁이나 관청에서 탈출해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사진기나 인터넷이 없는 시절이라서 의외로 내 정체를 알아채는 사람이 적더라.
이러니까 본래 역사에서도 장료가 합비 전투 때 손권을 못 알아본 거겠지.
물론 이 세계는 온갖 총천연색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존재했으니 상대적으로 알아보기 쉬운 편이긴 했다.
한나라 황족만이 지닌다는 흑발 흑안이 대표적인 경우.
황족만이 지닌다는 흑발을 보고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긴 했으나, 적당히 방계 황족인가 생각하며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인 갈색 눈동자도 색이 옅어서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힘들었고 말이야.
솔직히 한나라 인구가 얼마나 많은데?
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한 명씩 자세히 살펴볼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쿠당탕─!
“아이고!”
“내 말 못 알아들어?!”
…그러니까 이런 일도 일어나는 거겠지.
언젠가 장각이 이야기하기를 나는 온갖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닐 운세를 타고났다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잠자코 수긍했는데, 오늘도 조금 마음이 풀어지나 싶던 순간 웬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오늘 여기 장사 끝났다! 전부 꺼져!”
“…흠.”
이곳 주인과 이상한 시비라도 붙은 걸까.
건장한 장정 여럿이서 하는 행동이 딱 동네 상인들한테 보호비를 걷는 조폭과 다를 바 없었기에 나는 잠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한나라의 수도인 낙양에서 조직 폭력배들이 활동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진 않을 텐데.
물론 범죄가 아예 일어나지 않는 도시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치안이 엄청나게 좋다고 해도 범죄자는 한두 명씩 튀어나오는 법이었으니.
최근 조정 내부에서 피바람이 불어 모든 관리가 눈치를 살피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어지간히 돌아버린 게 아닌 이상 범죄자와 유착 관계를 맺진 않을 것이다.
콰장창!
“우와악!”
“이, 이 무뢰배 놈들이!”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의 식사 시간을 방해하기 시작한 놈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눈치챌 수 있었다.
“딸꾹! 그 눈빛은 뭐야?!”
“한번 붙어보자는 거냐!”
저것들 술 취했네.
정말 별일 아니었다.
그냥 술버릇 고약한 놈들이 가게 안에서 행패를 부리는 취객 사건이었으니.
고대 시대나 현대 시대나, 결국 다 사람 사는 곳인지라 난데없이 용기 버프를 받고 난동을 피우는 인간은 존재한단 말이지.
근데 생각보다 웃기네.
취객은 보통 바깥이 어두워질 때나 나타나는데, 나는 상당히 레어 몬스터(?)라 부를 수 있는 대낮 취객을 발견했다.
물론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다는 게 가벼운 범죄란 뜻은 아니다.
취객 여럿이 사람 한 명을 집단 구타해서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뭐, 이미 거리로 사람이 몇 명 빠져나갔으니 조만간 도시를 순찰하는 병사가 무서운 표정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그리고 저 취객들은 단체로 끌려 나가 술을 끊을 수 있도록 여러 도움을 받을 터.
그 도움이란 게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어쨌든 끊을 수 있긴 할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해결될 사건인데 내가 나서면 상황이 분명 이상하게 흘러가겠지.
그러니까 쥐 죽은 듯 있다가 적당히 값을 치르고 나가는 게….
“거기 너! 내 말 안 들리냐!”
“…….”
이런.
나는 분명 가만히 있었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내 검은색 머리카락을 보고 무언가 느껴지는 게 있었는지 주막 주인은 식겁하면서 소리쳤다.
“이, 이보게! 황족을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걸 모르나?!”
“닥쳐! 이딴 낡아빠진 가게에서 밥이나 처먹는 거 보면 어느 촌구석 출신의 황족 나부랭이겠지!”
음….
확실히 촌구석에서 태어난 건 사실이니 반박할 수가 없군.
또 방계 황족인 유비가 그랬듯 황족이라고 해서 핏줄 하나로 뻗댈 수 있는 시기는 진작 지났으니까.
…근데 난 황족이 아닌데 말이야.
아, 폐하와 맺어졌으니 이제 황족이 맞나?
오늘도 검은색 머리카락 덕분에 어김없이 황족으로 인식된 나는 무어라 이야기하는 취객의 외침을 무시한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
병사들아, 제발 일찍 도착해라.
일 커지면 너희만 피곤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