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40)
EP.740 청주 제남국(靑州 濟南國)(10)
유비와 조조가 평소처럼 알 수 없는 기 싸움을 벌이며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시간이 지나간 이후, 나는 평소 그랬던 것처럼 익숙한 태도로 작전을 시작했다.
뭐…. 작전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지만 말이야.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얼굴을 까꿍 내밀며 관리들을 놀라게 하고, 휘하 책사들에게 명령해 무언가 이상한 점은 없는지 지역을 조사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조사하던 도중 수상한 무언가가 적발되면 바로 수많은 장수와 병사들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며 뒤집어엎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전부 똑같을 수는 없기에 중간중간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긴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탐관오리들은 전부 목이 달아나고, 그 자리를 새로운 관리가 채우길 반복하는 무한의 고리.
그 과정에서 지방 호족 몇 명도 같이 쓸려나가는 경우도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상황이 있지.
궁서설묘(窮鼠齧猫).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뜻으로, 전쟁광 한무제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생각보다 훨씬 유래가 깊은 사자성어.
사실 이와 비슷한 말은 손자가 저술한 손자병법에서 먼저 나오지만 쥐가 고양이를 깨문다는 비유적 표현은 한무제 시절에 나왔을걸.
손자병법에는 궁구물박(窮寇勿迫)이라고 해서 적을 궁지에 몰면 오히려 필사적으로 저항해 도리어 큰 피해를 입는다는 내용이었다.
한고조 유방이 일부러 포위망을 열어주자 초나라 장병들이 앞다퉈 도망친 것처럼, 일단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필사적인 저항에 직면하지 않았다.
자, 그러면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자.
백성을 수탈하고 고혈을 짜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탐욕스럽게 행동한 관리들을 함정에 끌어들이기 위해선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정답은 ‘불가능’이었다.
이런 함정도 한두 번 쓸 때나 통하지, 지금 천하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어떤 줄 아냐.
한나라의 대장군은 도적과 탐관오리를 보면 눈이 돌아간다더라….
기회만 있다면 검과 도끼를 들고 쳐들어가 목을 베어버린다더라….
그렇게 목숨을 잃은 부패한 관리만 해도 수천 명이 넘어간다더라….
아주 그냥 소문만 들으면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인 줄 알겠어.
비록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지만, 이쯤 되면 날 도대체 어떤 놈으로 생각하는 건지 궁금하다니까.
하여튼 탐관오리와 그들과 붙어먹은 지방 호족들의 귀에도 이런 소문이 들려올 텐데 이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참으로 간단했다.
형주 호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잔치를 가장해서 내게 독주를 먹이려 한다거나….
“…이게 무슨 상황이지.”
“…….”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 행동이 맞나?”
…지금처럼 대놓고 나를 죽이려 하겠지.
동평릉현(東平陵縣)에 진압하고 정보를 수집하고자 일부러 인적이 드문 외딴 길만 골라서 걷던 나는 이윽고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흉흉한 기색의 무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신원을 특정할 수 없도록 복면이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에는 사람 한 명 죽이기에 충분한 무서운 날붙이를 든 모습.
“보아하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은 아닐 터.”
“…….”
어디 보자….
전방은 물론이고, 후방도 어느샌가 수상한 인물들이 가로막았으며, 집과 담벼락으로 가로막힌 좌우에서도 심상치 않은 인기척들이 느껴졌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포위당했네.
서여와 여포의 분위기가 점점 더 흉흉해진 이유가 있었어.
나는 주변 상황을 판단하고 눈앞의 인물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굳이 이렇게 경솔한 선택을 내린 이유가 있느냐?”
“…하.”
이런 내 질문이 우스웠는지 대표로 추정되는 인물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나야말로 그 멍청한 질문을 하는 의도가 궁금하군.”
“…….”
“수 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이 지역의 전통을 무시하고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하는 무도한 놈을 우리가 가만히 내버려둘 이유가 없지 않나.”
또 그놈의 지긋지긋한 전통 타령이네.
“네놈은 우리를 한낱 겁 많은 쥐새끼로 보았겠지만 착각이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암살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하물며 그 쥐새끼조차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거늘,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호위도 별로 없이 돌아다니고 있나?”
“흠.”
암살자의 설명에 나는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호위가 두 명밖에 없는 건 사실이지만 이 두 명이 만만한 인물이냐 물으면 전혀 아닌데 말이야.
아, 설마 성인 남성보다 몸집이 조그마해서 얕보는 건가?
확실히 한나라 내부에서 오랫동안 안 싸운 게 크긴 했나 봐?
아무리 평범한 척 위장을 했다지만 그 고금무쌍과 천하무쌍이 일개 암살자에게 얕보이는 처지라니….
나는 이미 이겼다는 듯 열심히 말하던 암살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까.”
“그래. 이제 네놈의 상황이 조금 파악되는….”
아직 사람 말 안 끝났어.
왜 자꾸 자기만 이야기하려고 하냐.
나는 기본적인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자객의 말을 가로채며 담담히 말했다.
“근데 이곳에는 쥐가 없지 않나.”
“…뭐라?”
난 한 차례 반문하는 암살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내게 지금 보이는 것이라곤 지렁이뿐이군.”
“…….”
“밟아봤자 꿈틀하는 것밖에 못하는, 무능력한 생물 말이다.”
엄밀히 따지고 보자면 무능력한 건 아니지.
지렁이가 생태계에 기여하는 바는 상당하니까.
하지만 천적에 대항할 수단이 전무하기에 상처라도 입힐 수 있는 쥐와 달리 지렁이는 전투에 한정해서 무능력한 게 맞았다.
단순히 깨무는 상처가 뭐가 그리 위험하냐고 할 수 있는데, 그 상처가 감염이라도 되는 날에는 훅 가는 거야.
심지어 쥐는 세균 덩어리잖아.
항생제도 없는 시대에서 이놈에게 물리면 열에 아홉은 상처 감염이 생기겠지.
그 유명한 흑사병도 쥐 때문에 퍼진 건데 뭐….
“네놈이 말했지. 대장군씩이나 되는 놈이 어째서 호위도 별로 없이 돌아다니냐고.”
“…….”
“그야 이 두 명이면 충분히 차고 넘치기도 하거니와….”
나는 무언가를 단단히 착각하는 암살자가 알아듣기 쉽도록 조곤조곤 설명해 줬다.
“…너희처럼 알아서 죽을 곳으로 기어들어 오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지.”
“쳐라──!!”
내 이야기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곧장 짓쳐들어오는 암살자 무리를 맞이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또 호위도 별로 없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황제 폐하 귀에 들어가면 잔소리를 듣겠지만, 이것만큼 효과가 좋은 유인 계획이 없다는 게 또 문제였다.
아마 나였어도 적대 세력의 우두머리가 호위 두 명만 데리고 돌아다닌다고 하면 잠시 솔깃했을 거다.
물론 거기서 호위 장수가 누군지 알아보고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았겠으나, 세상 사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진 않지.
“…주인님, 제 뒤로.”
명령이 떨어지며 암살자가 달려오자 서여는 등 뒤에 묶여있던 천을 풀어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초천검과 초진창.
평범한 이들은 결코 다룰 수 없을 거대하고 묵직한 무기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자 정면에서 달려들던 암살자들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뭣…?!”
“저, 저건 도대체──”
서걱!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몸이 나뉘면서 쓰러지는 적들.
마치 장난감처럼 사람의 사지가 뚝뚝 떨어지는 광경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니까.
이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비위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서 절단면을 자세히 보진 않았다.
괜히 며칠 넘게 고기 못 먹을 일 있냐?
또 내가 그런 짓을 했다간 죄 없는 요리사들만 새로운 메뉴 개발하겠다고 고생할 것이다.
황제 폐하께서 원하는 음식을 내오지 못하는 숙수(熟手, 요리사)들이 무슨 쓸모가 있냐며 대규모로 교체하려 했을 땐 얼마나 식겁했는지….
이젠 사소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누군가의 일자리가 걸리니 나로선 피곤할 따름이었다.
“그러면 나는 뒤쪽 맡으면 되나?”
서여가 전방을 맡으면서 말 그대로 적들을 쓸어버리자 여포는 발걸음을 휘휘 옮기면서 내 뒤에 자리 잡았다.
“…….”
내 후방에 자리 잡은 적들은 서여가 보여주는 초월적인 무력을 확인하고 주춤거리면서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너희는 안 와?”
“…….”
“흥. 순 겁쟁이 새끼들뿐이네.”
여포는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암살자들을 한 차례 비웃고 어깨 위에 방천화극을 땅에 꽂았다.
“뭐, 좋아. 그러면 나도 생각이 있지.”
잠시 중얼거린 여포는 그렇게 허리춤에 걸린 대궁을 꺼내 들더니,
피슈우우웅───!!
하늘을 향해 효시(嚆矢)를 발사했다.
전장에서 흔히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날카로운 화살 소리.
귀가 좋다면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진 다음 여포가 이야기했다.
“방금 발사한 화살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지?”
“…큭.”
“빨리 덤벼.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셈이야?”
그래도 달려들지 않겠다면 남은 화살을 쏘겠다며 여포가 위협하자 후방의 암살자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놈들, 활 안 가져왔나?
차라리 그게 더 가능성 높았을 텐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