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42)
EP.742 청주 제남국(靑州 濟南國)(12)
암살자 집단을 이끌던 우두머리는 자신이 달아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부하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날 버리고 가라! 어서!
이대로 가다간 전멸을 피할 수 없으리란 걸 깨달은 필사적인 외침.
눈앞의 장수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아군을 쓰러트리는 모습은 흡사 경이롭기까지 했다.
“…….”
그 어떠한 감정의 편린조차 찾기 힘든 여인이 행동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대장군을 처리하기 위해 가까이 접근한 경우였고, 두 번째는 다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아군이 다가오는 경우였다.
“…흐.”
모든 상황을 파악한 암살자는 입가에 실소를 머금으며 생각했다.
자신을 심문하여 정보라도 얻어낼 생각인 건가.
저들의 의도가 너무 뻔히 읽혔기에 오히려 우스울 정도였다.
비록 상대를 잘못 판단하여 이 지경에 몰렸으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정작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할 순 없는 법.
복용하면 즉시 죽음에 이르는 독약처럼 형편 좋은 물건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짐조의 독을 사용한 물건 정도가 이에 해당하는데, 목격하기가 무척 힘들뿐더러 단순히 어딘가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마을이나 도시에 거대한 해를 끼쳤기에 발견되는 족족 사냥당하는 짐승이었다.
조정에서도 짐조를 토벌한 사냥꾼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내리고 있으니 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건 당연한 일.
존재만으로 주변에 해악을 끼치고, 심지어 악용 가능성마저 높은 이 짐승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사냥당하며 자취를 감췄다.
이처럼 귀한 짐조의 독을 천운이 따라 손에 넣는다고 한들 자결 수단으로 이용될 리 없었다.
차라리 암살 대상에게 사용하는 편이 훨씬 이득일 터.
어떠한 향기도 나지 않고, 색깔도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독은 누군가를 죽이기에 최적일 테니.
그렇기에 별다른 독약을 지니지 않은 암살자였으나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단 정도는 늘 가지고 있었다.
──스르릉.
‘…내가 이것을 사용하는 날이 올 줄이야.’
아직 멀쩡한 손을 움직이던 암살자는 제 품속에서 만져지는 물건을 확인하고 살짝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
이제 이 자결용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그으면 확실하게 목숨을 끊을 수 있겠지.
비록 그 과정이 무척 고통스럽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저들에게 생포 당하면 그보다 더한 상황에 처하게 될 터.
암살자는 황제와 대장군이 자신에게 반기를 든 역도들을 처리할 때 어떤 잔혹한 방식을 사용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팔팔 끓는 냄비에 여러 번 담가 놓았다가 빼기도 하고, 살갗을 하나하나 저며내며 마지막에는 소금 항아리에 집어넣어 절여놓기까지 했다.
마치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 것과 같은 모습.
자신과 같은 인간을 그렇게 취급할 수 있는 인물은 분명 어딘가 튀틀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
자신이 이곳에서 자결하지 않을 경우 겪게 될 상황을 떠올리자 암살자는 이윽고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이제 저들이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단검을 꺼내 자신의 목을 찌르면….
“응? 너 지금 뭐 하냐?”
“…!”
푸슉!
“컥?!”
“아하, 죽을 생각이었구나.”
암살자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기 무섭게 화살로 손등을 맞춘 여포는 씨익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부하들에게 먼저 도망치라고 이야기한 것이 패착이었을까.
자신을 향한 견제가 줄어들자 눈길을 슬쩍 돌린 여포는 곧장 암살자의 의도를 파훼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절대 안 되지. 내 사랑스러운 서방님을 노린 죗값은 치르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
아니, 만약 부하들이 존재했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겠지.
이는 암살자를 향해 무감정한 눈빛을 보내며 무기 투척을 준비하던 여인만 확인해도 알 수 있었다.
손등을 깔끔하게 꿰뚫으며 날아간 화살은 여전히 주춤거리던 다른 암살자에게 박혀 들었으나 그 누구도 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결을 준비하던 암살자의 손은 만신창이가 된 채 피를 뚝뚝 흘렸다.
당연히 자결용 단검은 저만치 날아갔으며, 그를 쥐고 있던 손가락조차 일부 사라진 상황.
암살자는 매우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도대체 어떻게 된 파괴력이냐며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허벅지를 관통한 외날 검도 이상하리만치 중요한 혈관을 빗나간 채 박혀 들어 자리에서 움직일 수만 없을 뿐 생명에 그리 치명적이진 않았다.
물론 이 상처를 방치했다간 죽는 건 매한가지겠으나….
아마 그 정도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이 상황이 수습되겠지.
이제 곧 자신에게 찾아올 미래를 걱정하던 암살자는 잠시 고개를 돌려 부하들이 도망치는 광경을 확인했다.
…그래.
자신은 비록 잔혹한 죽음을 맞이하겠으나, 적어도 본인을 따르던 병사들은 살렸다는 안도감은 거짓된 게 아니었다.
“무언가 헛된 꿈을 품은 모양이군.”
그때 이 상황을 얌전히 지켜보기만 하던 대장군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효시(嚆矢) 소리가 제남국 근처에 울려 퍼지고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
“한데, 아직 이곳에 지원군이 당도하지 않은 걸 보고도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없나?”
“…뭣이?”
대장군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오싹한 예감이 암살자의 등골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이제야 상황 판단이 되는 모양이군.”
───끄아아악!
───어, 어떻게 이런…!
암살자의 창백한 표정을 확인한 대장군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주변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멀리 북방 기마 민족조차 겨우 뚫을 수 있던 것이 내 호위들이거늘, 한낱 암살자들에게 내가 당할 턱이 있나.”
심지어 그것도 온갖 편법을 동원한 끝에 뚫은 것.
전방에서 칭기즈 칸을 따르는 사준사구 두 명이 최정예 병사들과 함께 여포를 붙잡고, 수부타이가 읍루와 같이 측면에서 짓쳐 들어 서여를 근처에서 벗어나게 만든 뒤에야 대장군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대장군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자리에 주저앉은 암살자와 거리를 좁혔다.
“아마 이 주변은 완전히 포위됐겠지.”
“…….”
“정보의 정확성을 위해서라도, 심문할 포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나?”
포로들은 애초에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고, 만약 정확한 정보를 알더라도 이를 순순히 말하지 않아 여러 심문 과정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심문 과정을 거친 뒤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로 인해 무언가 잘못된 정보를 내뱉는 경우도 많은 편이지.
이런 경우에는 최대한 많은 포로를 붙잡아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통일된 정보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여러 번 거듭해서 같은 질문을 던지며 한계까지 쥐어짜는 방법도 있고.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엮여있을까 참으로 궁금하군.”
자신을 따르는 꼬꼬마 군사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던 대장군은 발걸음을 멈추고 눈앞의 암살자를 내려다보았다.
“제남국만 하더라도 수백 명은 죽을 것이고, 만약 이 사태가 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면 청주 전체로 범위가 확대될 것이다.”
“…….”
“그렇게 된다면 몇 명이나 목숨을 잃을 것 같나?”
마지막으로 시행된 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주의 가구 숫자는 총 70만 정도고, 총인구수는 450만 명 정도였다.
이는 대장군의 고향인 병주에서 총 70만 명 정도가 머무르는 걸 비교했을 때 무려 6배나 차이 나는 숫자.
…사실 병주의 인구 규모가 유독 작은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들 청주의 인구수가 적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수천 명? 어쩌면 수만 명일 수도 있지.”
전한 시절부터 내려져 오며 반란까지 일으켰던 사이비 종교.
후한이 부정부패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신음하던 수백 년의 세월.
“그보다 더욱 많은 숫자가 노비로 전락 당할 테고.”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연좌제로 인해 줄줄이 끌려 나갈 인원들을 헤아리며 대장군이 이야기했다.
“부디 이 문제가 제남국에 한정된 것이기만을 바란다.”
“…….”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피곤해질 테니.”
땅이 워낙 넓어서 아무리 처리해도 문제를 일으키는 연놈들이 계속 튀어나온다며 그는 한숨을 내뱉었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가 길어졌군. 잠시 누워있도록.”
“그게 무슨 소리…. 컥!”
털썩.
대장군이 이야기를 끝마치자 여포는 방천화극을 휘둘러 창대로 암살자를 단번에 기절시켰다.
“…여포야, 죽인 건 아니지?”
“날 도대체 뭐로 보는 거야?! 아, 안 죽였어!”
왜 거기서 확신할 수 없다는 듯 말을 떠는 걸까.
한나라를 이끄는 대장군은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방천화극의 피 묻은 창대를 바라보며 걱정에 휩싸였다.
“서여도 가만히 있고.”
“…….”
“손 움찔거리는 거 보인다. 그만해.”
아무래도 자신을 죽이려 한 것에 대해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모양.
대장군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는 여인들을 열심히 진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