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7)
EP.77 애완(2)
황제가 내 제안을 수락한 다음 날 나는 곧바로 애완동물을 구해 황제에게로 데려왔다.
황제는 내가 찾아오자 이제 내 방문이 익숙한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을 물리고 나와 독대했다.
적절한 애완동물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이곳저곳에서 선물로 들어오기도 했고, 흔하지는 않았지만 잘 찾아보면 가끔 상인이 팔기도 했으니까.
내가 아무 동물이나 된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코끼리나 호랑이 같은 걸 주문하면 난처해졌기에 어쩌나 싶었지.
만약 정말로 그런 애들을 데려오라고 했으면 그런 동물은 애완동물이 아니라는 말로 거절하려고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내 걱정은 기우였다.
황제의 취향은 정상 범주 내에 속해있었다.
작고 귀여운 것이 좋다는 황제는 내가 가져온 애완동물 중에서 강아지와 고양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고양이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둘 다 귀엽지만 이 꼬물이가 더 귀엽다.”
새끼 고양이는 인정이지.
황제가 고양이 꼬물이를 껴안고 헤헤 웃는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이름을 지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구나.”
황제는 눈을 감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름. 이름이라….”
척 봐도 이름을 짓는 데 난항을 겪는 상황.
당연한 일이다. 원래 이름을 짓는 것만큼 매우 고민되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총명한 머리를 지닌 황제였기에 이름 짓는 센스가 그렇게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야옹이?”
“…….”
나는 이를 악물고 표정을 유지했다.
위험했다.
하마터면 웃을 뻔했네.
만약 웃었더라도 불경하다면서 목이 잘려 나가지는 않겠지만 소녀 감성을 지닌 황제가 삐질 확률이 높았다.
황제가 삐진다고? 오우. 당분간 황제의 눈치만 볼 생각을 하니까 온몸에 오한이 든다.
황제는 황실 혈통을 증명하는 검은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가? 나쁘지 않느냐?”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다만?”
내가 말을 하다 말고 끊자 황제는 옥좌에 앉은 채로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자그마한 몸집을 지닌 황제는 품에 안고 있는 고양이처럼 치명적인 귀여움을 지니고 있었다.
“너무 위엄이 안 사는 이름입니다.”
“위엄이 없다고?”
나는 황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막말로 지금 황제가 황궁에서 고양이를 찾으며 야옹아~ 야옹아~ 이런다고 생각해봐라.
확실히 그 모습이 귀엽기는 하겠으나 위신을 중요시하는 관료들 입장에선 화들짝 놀라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그러고선 황제에게 물어보겠지. 왜 갑자기 애완동물을 키우냐면서 말이다.
그 물음에 황제의 입에선 자연스럽게 내 이름이 나올 것이고, 황제파 관료들의 눈길이 내게 집중될 것이다.
최근 황제파 관료들이 나를 볼 때마다 매우 묘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렇다고 나를 적대하는 부정적인 눈길은 아니었다.
내가 황제의 권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니 저들도 나를 좋게 생각했으니까.
그 묘한 눈빛은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지?
마치 아끼는 딸이 다른 놈을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는 듯한 그런….
하여튼 그런 눈빛이었다.
그런 내 걱정을 모르는지 황제는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렇게 부르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
“…그건 그렇지요.”
“걱정하지 말거라! 선을 넘는 놈이 있다면 그냥 썩둑 잘라버리면 되지 않겠나!”
뭘 썩둑 자르는 걸까.
관직 말하는 거겠지?
“그대도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다면 언제든 얘기하도록! 짐이 혼쭐을 내줄 테니!”
“감사합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금 황제가 말하는 내용은 귀여웠으나 정말 내가 부탁해서 황제가 다른 사람을 혼쭐 내주는 광경은 전혀 귀엽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정치 암투에 휘말리다 보니까 음, 황제님께서 피를 보는 것에 그리 소극적이지 않더라고.
내가 황제를 밀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이니 가끔 자기 이익을 위해 선을 넘는 놈들이 있었다.
자신이 황제 뒤에 숨어있으니까 이런 짓을 해도 안전하다고 판단한 모양인데, 그런 놈들이 지금 전부 어떻게 됐을까?
내가 행동에 나서기도 전에 황제가 먼저 웃으면서 선을 넘은 놈들을 호출했고, 그 이후 그놈들은 황궁 내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대상에 예외는 없었다.
일단 선을 넘으면 황제파 관료들이든, 심지어 같은 황족 핏줄 집안이든 간에 전부 상관없이 불러들이고 ‘실종’시켜버렸다.
……이래서 어렸을 때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 건가.
외척과 환관들의 권력 다툼에서 온갖 꼴을 봐왔을 황제의 행동에 거리낌은 없었다.
그렇게 황제가 온전히 내 편이라는 제스처를 취하니 황제파가 권력을 등에 업고 큰소리를 떵떵 치는 광경은 자연스럽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자기 파벌의 수장이 자신을 손수 ‘실종’시켜주는데 그 어떤 놈들이 주제넘게 나서겠는가.
황제가 보이는 행동 덕분에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됐다.
“대장군.”
“네.”
내가 생각에 빠져있는 그때 황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늘 짐을 이렇게 생각해주는 건 그대밖에 없다.”
황제는 품에 안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이제는 야옹이라 불릴 새끼 고양이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황제의 품을 파고들었다.
“내가 그대에게 받은 은혜는 이제 셀 수도 없을 지경이야.”
“과찬이십니다.”
“아니, 과찬이 아니다.”
황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 언제든 말만 하거라.”
“…….”
“내부에서 그대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자들은, 짐이 전부 치워버리겠다.”
역시 뭔가 엇나가있는 거 맞다.
──────────
유비 세 자매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사건이 터졌다.
유주자사 유우와 백마장군 공손찬이 한 판 붙었다는 소식.
하지만 유우는 예상대로 이민족 믹서기 공손찬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주 그냥 박살이 났다고 했다.
“병사 숫자도 유우 세력이 부족했고, 실전 경험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니 당연한 일이죠.”
유우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유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순유를 바라보았다.
“순유라면 어떻게 싸웠을 것 같나?”
“음…. 저라면….”
잠깐 생각에 빠져있던 순유는 바둑판을 가져오더니 바둑알을 천천히 늘어놓았다.
“유우군이 검은색이고, 공손찬군이 흰색이라 생각해주세요.”
백마장군이라 흰색 돌을 공손찬이라 설정한 건가?
“일단 소식을 들어보니 서로 평지에서 맞붙었다고 하는데, 이건 주변 지형이 거의 다 비슷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죠.”
잠깐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순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지에서 공손찬이 싸우는 방식은 간단해요. 이렇게 보병끼리 싸우는 사이에….”
순유는 각자 진영에 있는 검은색 돌과 흰색 돌을 움직여 바둑판 중앙에서 서로 맞붙게 했다.
“공손찬이 자랑하는 백마의종으로 측면이나 후방을 교차사격 하는 거죠.”
그런 다음 순유는 뒤에서 날개처럼 펼쳐져 있던 흰색 돌을 스르르 옮겨 중앙에서 싸우고 있는 검은색 돌 근처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니까요.”
순유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일단 기병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겠죠.”
“근데 백마의종은 말 위에서 활 쏘잖아.”
“그게 귀찮은 점이에요.”
공손찬이 자랑하는 백마의종은 기병의 말들을 백마로 깔맞춤한 것 말고도 특이점이 하나 있다.
그들 전원이 말 위에서 활을 쏠 줄 아는 궁기병들이라는 것.
이런 이민족 같은 놈들.
이민족이라는 심연을 잡기 위해 이민족처럼 되어버린 심연의 부대가 바로 백마의종이었다.
원소가 정치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보였다면 공손찬은 병사들을 이끄는 용병술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인물이다.
이미 완전히 판세가 기울어 자신이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원소를 죽일 뻔한 전적이 있는 장군.
“그렇지만 공손찬의 부대에는 한계가 존재하죠.”
“한계?”
“백마의종 같은 궁기병들에게 대항할 전략이 없었다면, 이미 이민족들이 한나라를 집어삼키지 않았을까요?”
그건 그렇다.
궁기병이 무적의 병과였다면 옛날 옛적에 이민족들이 한나라를 잡아먹었겠지.
“잘 훈련된 병사들과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면 공손찬을 깨부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에요.”
“…어떻게 깨부수는데?”
“대장군도 이민족들과 많이 싸우시지 않으셨나요?”
……맞네?
백마의종을 이민족이라 생각하니까 갑자기 뭔가 확 쉬워 보이는 기분이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방패병들을 앞세워서 백마의종이 쏘는 화살을 막고….”
“저희도 똑같이 화살로 되돌려주면 쉽죠.”
“그게 힘들다면 똑같이 궁기병으로 대항하면 되는 노릇이고.”
애초에 백마의종이 왜 궁기병이 되었겠는가.
말 타며 활 쏘고 다니는 이민족들을 상대로 평지에서 똑같이 궁기병으로 맞받아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거든.
병주는 산이 많아서 궁기병보단 지형을 이용해 급습하는 게 훨씬 좋았기에 사정이 달랐다.
중기병은 궁기병들을 상대하기 피곤하다.
속도 우위를 살려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활로 푝푝 쏴대면 방도가 없기 때문.
중기병은 같은 기병을 상대하는 것보다 보병과 궁병을 상대하는 게 좋았다.
궁기병으로 맞대응하는 것도 기병의 정예도가 엄청 높아야 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 군에 있는 기병이 어디 보통 기병인가.
기병을 모아 말 위에서 활 쏘는 훈련을 한 다음 부대를 창설하면 우리 군도 제2의 백마의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공손찬은 기병 위주의 이민족들만 많이 상대해봤지 정작 보병 위주의 한나라 군대와는 별로 겨뤄본 적이 없는 인물이에요.”
“…….”
“유우는 군사 경험이 적어 전투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말을 잇던 순유는 싱긋 미소지었다.
“궁기병 경험이 있는 장군과 부딪힌다면 조만간 한 번 크게 깨지지 않을까요?”
“그렇군.”
나는 원소와 공손찬이 맞붙었던 계교 전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떠올리며 수긍했다.
이래서 무작정 한 가지에 올인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라니까.
뭐든지 밸런스가 중요한 법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헉! 티거_544 님! 5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의 공중제비!
ጿ ኈ ቼ ዽ ጿ
오늘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