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8)
EP.78 유주자사(1)
유주에 있는 계 도시의 근처.
한 무리의 패잔병들이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해진 갑옷에는 흙먼지와 핏물이 묻어있고, 각자가 들고 있는 무기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낡아 있었다.
“……이게 다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선두에 서 있던 인물이 좌절한 표정으로 툭 중얼거렸다.
그런 힘없는 중얼거림에 주변에 있던 장수들이 급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이게 어찌 유주자사님의 잘못입니까! 군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저희의 책임입니다!”
“맞습니다! 백 번 죽어도 모자를 죄, 부디 주군께서 벌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주군이 슬퍼하는 걸 지켜볼 수 없다는 장수들의 간절한 외침.
이러한 장수들의 외침은 이 유주자사라는 인물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보여줬다.
유주자사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아니다. 그대들은 용맹하게 공손찬의 병사와 분투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전장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겠느냐?”
유우는 전투 단 한 번 만에 병사 대부분을 잃고 패주했다.
“그 많던 병사들이 겨우 이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니….”
수만 명을 자랑하던 군대가 이제는 고작 수백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자신의 병사들을 학살하던 공손찬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현재 천하에서 제일 유명한 기마 부대인 백마의종을 이끌고 손수 선두에서 돌격하던 모습.
──하하하! 중앙에서 서책만 읽던 샌님 따위가 어찌 이 백마장군에게 맞설 수 있겠느냐!
──돌격해라! 주제도 모르고 덤벼든 유우 놈에게 한 수 가르쳐줘라!
인품은 저열하기 그지없었으나 그자가 지니고 있는 용병술만큼은 진짜였다.
공손찬은 마치 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자가 북방을 지키고 있었기에 그 어떤 이민족도 감히 국경을 넘어올 생각을 못했으리라.
백성을 생각하는 자비로움까지 겸비했으면 더욱더 좋았을 것을.
지금은 어찌어찌 살아남아 군사를 이끌고 도시로 돌아가고 있으나, 이제 유우는 더 이상 자신이 공손찬에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공성전을 펼치기에는 지금 남아있는 병사의 숫자가 너무나도 적었다.
──어서 도망치십시오! 후방은 제가 맡겠습니다!
──자사님께 받은 은혜를 드디어 돌려드릴 때가 왔군요.
──이놈들아! 유주자사님을 해하려거든 내 시체부터 넘어서야 할 것이다!
전투에서 대패하고 도망칠 때 자진해서 후방에 남았던 충성스러운 병사들.
이들은 부덕한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한몸 바쳐 모두 희생했다.
유우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전부, 전부 자신이 부족했기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나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얼굴을 저승에서 어찌 봐야 하겠는가….”
유우의 말에 주변에 있던 장수들이 화들짝 놀랐다.
“저승이라니요! 주군!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유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제 내가 살아날 길은 사라졌다.”
더 이상의 헛된 저항은 공손찬의 심기를 거스를 뿐이다.
그렇게 되면 공손찬이 분풀이로 죄 없는 백성들을 학살할 수도 있는 일.
“이렇게 된 이상 한시라도 빨리 항복하여 백성들의 목숨이라도 살려주도록 비는 게 낫다.”
“주군!”
“공손찬 그놈도 생각이란 걸 한다면 자기가 점령한 도시의 백성들을 무고하게 죽이지 않겠지.”
유우 근처에 있던 장수 중 한 명이 절실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기 휘하에 있는 백성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고 수탈하는 자입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유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끝까지 반항한다면 계에 있는 백성들이 전부 죽을 수 있다.”
“그건…!”
“초패왕이 벌였던 양성 전투를 떠올려 보아라.”
유우의 말에 근처에 있던 장수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초패왕 항량이 끝까지 결사항전했던 양성의 주민들을 전부 구덩이에 파묻어 생매장한 사건.
공손찬은 수틀리면 그런 악독한 짓까지 벌일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미친 짓은 안 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하지만 분풀이로 억울하게 죽어 나갈 백성이 분명 있을 것이다.”
피곤한 기색을 보인 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런 백성이 하나라도 생긴다는 게 버틸 수 없을 뿐.”
“주군….”
“지금 공손찬이 의기양양하게 군대를 이끌고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 했던가.”
이미 삶을 초탈한 모습으로 유우는 힘없이 말했다.
“나는 도시로 돌아가는 즉시 공손찬에게 항복하겠다.”
──────────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유우가 결국 공손찬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손찬은 그런 유우를 조롱하면서 감옥에 가뒀고 조만간 때가 되면 목을 베어버릴 것이라 천명했다.
수많은 백성이 몰려들어 어르신을, 유주자사를 살려달라고 엎드려 빌었지만 공손찬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천하의 이목이 공손찬에게 집중됐다.
대부분의 군웅은 설마 공손찬이 진짜 그 유주자사를 죽이겠냐며 겁만 주는 거라 생각했다.
도시의 백성들과 유우와 친한 이민족들이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인질로 잡고 있는 게 아니겠냐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몇몇 통찰력 있는 이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저 공손찬은 뒷일이 어떻게 되든 정말 유주자사를 죽여버리고도 남을 깡패 같은 놈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언제 유주자사가 처형당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그 순간 정릉의 명을 받고 유우를 구하기 위해 출발한 유비 세 자매는….
“……여기는 또 어디야.”
병주 어딘가에 있는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얼굴을 왈칵 찌푸리던 장비는 이윽고 자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길도 안 닦여있고 산은 더럽게 많으니 길을 잃는 게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나.”
곤란한 기색을 보이는 관우가 장비에게 말을 몰며 다가왔다.
관우의 말에 장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장비의 곁에는 이민족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소수로 뭉쳐 다니며 작은 마을들을 약탈하고 다니는 병주의 골칫덩어리들.
유비 세 자매는 마을을 약탈하려는 이민족 무리를 발견했고, 그에 맞춰서 행동했을 뿐이다.
“운장 언니도 같이 날뛰었으면서.”
“……크흠.”
지금 피가 뚝뚝 흐르고 있는 장비의 사모처럼, 관우가 들고 있는 청룡언월도에도 이민족들의 피가 묻어 있었다.
유비가 쓴웃음을 지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을을 구원한 건 좋았지만 도망치는 이민족들을 쫓는 과정에서 산을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게 폐인이었다.
길을 길대로 잃었고, 설상가상 지금 서서히 해까지 지려고 했다.
산의 밤은 일찍 찾아오고, 그만큼 더 가혹했다.
유비는 또 처량하게 산 한가운데에서 노숙하게 생겼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장비와 관우가 동시에 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누군가 있습니다.”
유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관우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와. 죽기 싫으면.”
장비가 여전히 피가 흐르는 사모를 들어 한 방향을 겨눴다.
그런 장비의 위협이 통했는지 수풀이 바스락거리며 숨어있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알겠으니까 그 살벌한 무기 좀 치워줄래?”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쌍도끼.
등에 메고 있는 활과 화살통.
움직이기 편하게 개량되어있는 경갑옷과 무엇보다 눈에 띄는 흑색 두건.
그 모습을 보던 유비의 입에서 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흑산적…?”
“오, 뭐야.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어?”
한때 병주를 공포에 떨게 했던 대형 도적 집단.
그렇지만 지금은 정릉군 휘하에 편입된 정예 유격 부대가 씩 웃었다.
“이민족들이 있다길래 후다닥 달려왔는데 이미 처리하신 분들이 있다길래 궁금해서 살펴보고 있었지.”
“……좋은 취미는 아니네.”
장비는 다른 사람이 자신들을 몰래 훔쳐봤다는 사실에 살짝 불쾌감을 표했다.
흑산적은 여전히 양손을 머리 위에 든 상태로 입을 열었다.
“거, 미안하게 됐소이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무조건 확인한 다음 윗선에 보고해야 하거든.”
흑산적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장비도 딱히 부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근데 참 특이하네. 우리가 산에 숨어있을 때 들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감은 좋거든.”
“이야. 그건 부럽네.”
흑산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데, 도와줄까?”
“…….”
“딱히 뭔가 위해를 가하려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라.”
그렇게 말한 흑산적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이민족 시체들을 살펴보았다.
시체들은 베이거나 찔린 곳은 전부 달랐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상처가 단 하나뿐이었다는 것.
바꿔말하면 이민족들을 일격에 하나씩 저승으로 보내버렸단 뜻이다.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야 저런 솜씨를 보이기란 불가능했기에 흑산적은 오한이 들었다.
“진짜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
“너희 지금 길 잃었지?”
“…….”
과연 산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빠삭한 흑산적.
대충 쓱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현재 유비 세 자매가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단번에 간파했다.
“방금 너희가 구한 마을로 안내해줄 테니 따라와라.”
유비 세 자매는 그런 흑산적을 바라보며 숙덕거렸다.
“운장 언니. 거짓말은 아니겠지?”
“몸놀림을 보아하니 흑산적을 사칭하는 건 아닌 것 같군.”
관우의 의견을 들은 장비가 이번에는 유비를 바라보았다.
“현덕 언니는? 함정 같은 건 기가 막히게 눈치채잖아.”
“나도 딱히 함정 같지는 않네.”
둘의 의견을 종합한 장비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가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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