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86)
EP.86 유주자사(9)
유우를 데리고 낙양으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한 유비 일행은 간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왜인지 기뻐 보이는 적로를 마구간에 넣어두고 유비와 그 의자매들은 이때를 기회 삼아 낙양 곳곳을 돌아다녔다.
한때는 대장군과 적이었던 유비 일행이었으나, 지금 낙양에 있는 그 누구도 대장군의 허락 아래 낙양을 돌아다니는 유비 일행을 제지하지 않았다.
유비 일행은 며칠 동안 낙양을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것은 거의 다 하고 돌아다녔다.
황건적의 난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오기만 했던 유비 세 자매에게 행복했던 시간.
그렇게 며칠을 꼬박 투자해 낙양을 샅샅이 돌아다닌 유비 세 자매는 제각기 감상평을 내뱉었다.
“공손찬에 비하면 수십 배는 낫네.”
장비는 팔짱을 끼곤 고개를 끄덕였다.
관우는 평소처럼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런 관우와 장비를 바라보던 유비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뭐 할까?”
대장군이 보수금을 넉넉하게 챙겨주기도 했고, 역시 한나라의 수도라는 건지 낙양은 즐길 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며칠을 열심히 놀던 유비 일행은 이윽고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이제 시간을 재미나게 보낼 수 있는 구상이 다 떨어졌다.
“어….”
“…….”
유비의 물음에 관우와 장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유비 일행은 너무나도 한가로운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던 장비가 입을 열었다.
“술잔치는 어때?”
“우리 셋이서?”
“…….”
이곳이 연고 하나 없는 도시라는 걸 깨달은 장비가 바로 입을 닫았다.
유비 언니와 관우 언니.
셋이서 함께 하는 술자리.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지만…. 솔직히 너무 많이 했다.
이제는 얼마나 했는지 셀 수도 없을 지경.
그때 관우가 의견을 말했다.
“독서는 어떻습니까?”
“또, 또 좌씨전 읽으려고?”
“…….”
유비에게 자기 생각을 간파당한 관우도 장비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 기회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계속 읽으려고 했는데 조금 아쉬웠다.
장비가 관우를 바라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좌씨전 좀 그만 괴롭혀. 대체 그 책을 몇 번이나 읽는 거야?”
“옛사람의 지혜가 담긴 책은 수백 번을 읽어도 모자람이 없다.”
너무나도 당당한 관우의 태도에 장비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한데 관우 언니는 유독 좌씨전만 고집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현덕 님은 좋은 생각 있으십니까?”
“그래. 궁금하니까 말해줘.”
관우와 장비가 동시에 유비를 바라보았다.
만약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딴지를 걸겠다는 의자매들의 눈초리에 유비는 싱긋 웃었다.
“나도 생각해낸 게 없어서 물어본 거야.”
“…….”
관우와 장비는 그런 유비를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황명─! 황명이오─!”
차마 맏언니에게 뭐라 할 수가 없어 서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바깥에서 유비 일행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명?”
상상도 못한 단어에 유비가 의아한 태도로 집안을 나섰다.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오자 누가 봐도 황실에서 보냈다는 걸 알 수 있는 남성이 서 있었다.
“그대가 유비 현덕이 맞는가?”
“그렇습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유비가 공손히 예를 올리며 대답했다.
관우와 장비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호위라는 본분에 충실히 행동했다.
잠깐 유비를 바라보던 남성은 그런 유비 세 자매의 모습을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유비 현덕, 관우 운장, 장비 익덕은 지금 즉시 황실로 출석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령이시다!”
“……폐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호출이었으나 유비는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담담하게 명을 받들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
유비와 그 의자매들은 황제의 호출을 받았다.
──────────
황제의 호출에 응한 유비 세 자매는 황궁으로 향해 한나라의 황제와 대면했다.
“흐음…. 과연.”
확실히 범상치 않은 인물인 건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옥좌에 앉은 채로 유비를 바라보던 황제의 주변에는 수많은 관료가 대기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황궁에 오지 않은 인물이라면 자연스럽게 기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나, 유비에게서는 전혀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황족의 고귀한 핏줄만이 지닌다는 흑발 흑안.
같은 핏줄이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몇몇 황족 출신 관료는 벌써 유비에게 호의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저들도 호로관 전투에서 유비 일행이 어떤 활약을 보였는지 들었으니 분명 유비를 강력한 아군이라 생각하리라.
우스운 놈들이었다.
몇몇 황족들은 과거부터 끊임없이 대장군을 견제하길 원했다.
대체 대장군의 무엇이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대장군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들을 형장의 이슬로 만들 수 있다 생각해서?
쓸데없는 걱정이다.
자신이 죄를 짓지 않을 거라면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일.
대장군은 결코 무고한 이들을 벌하는 인물이 아니다.
황제는 유비의 뒤에서 똑같이 예를 올리고 있는 관우와 장비를 바라보았다.
마치 대장군처럼 황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검은색 머리를 지니고 있는 인물들.
‘참으로 특이하군.’
듣자 하니 셋이 힘을 합쳐서 그 여포 장군과 호각으로 붙었다던데.
먼발치에서나마 여포 장군의 무위를 목격한 적 있던 황제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유비 현덕.”
“말씀하시옵소서.”
황제의 부름에 유비는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대도 황족의 핏줄을 잇고 있다고?”
“예. 중산정왕의 먼 후손입니다.”
“흐음….”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황제는 곁에 있던 관료에게 명했다.
“가져와 보거라.”
“알겠사옵니다.”
주어가 빠져있는 황제의 말에도 곁에서 황제를 모시던 관료는 척하면 척이라는 듯 알아들었다.
잠시 자리에서 물러난 관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문서 하나를 가져왔다.
황실의 혈통들을 기록한 족보.
황제는 바로 그 자리에 족보를 하나하나 들춰 보며 유비의 핏줄을 확인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황궁에 침묵이 감돌았으나 그 누구도 감히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흠.”
손가락으로 글자를 훑던 황제는 짧게 감탄사를 내고는,
“정말이군.”
자신이 읽고 있던 족보를 턱 덮었다.
한고조 유방의 후손.
중산정왕 유승의 서자 육성정후 유정의 후손.
“그대는 황족이 맞다.”
황제의 말에 유비는 더더욱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유비를 바라보던 황제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짐이 오늘 그대를 부른 이유는 단 한 가지.”
“…….”
“최근 대장군의 명을 받고 유주자사를 구출해왔다고 들었다.”
황제가 자신의 옆에 자리 잡은 유우를 힐끔 바라보았다.
유우는 황제의 눈길이 자신에게 향하자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시 눈길을 유비에게 돌린 황제는 말을 이었다.
“그 공에 대한 보상을 내리기 위해 그대를 호출했도다.”
“…….”
“이의 있느냐?”
“없사옵니다.”
유비는 공손히 대답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디 원하는 것이라도 있느냐?”
“원하는 것이라 하시면….”
“관직도 좋고, 재물도 좋다.”
그리 말하던 황제는 옥좌에서 허리를 살짝 낮추며 유비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도 아니라면 제후왕이 될 수도 있는 황족의 권리라도 원하나?”
황제의 파격적인 말에 주변에 있던 관료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현재 유비라는 인물은 황족의 핏줄이기는 하나 그에 딸려오는 권리는 단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힘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방계 종친의 혈통.
그렇기에 유비는 지금까지 황족 혈통이라는 점을 앞세워 이득을 취할 수 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유비 자네도 내가 황족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황제의 물음에 유비는 고개를 살짝 숙인 상태로 대답했다.
“이제 대답해 보거라. 그대가 원하는 보상은 무엇이냐?”
황제 입장에서는 유비를 시험해보는 질문이었다.
말이 황족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거지 지금과 같은 난세에선 결국 힘이 대폭 줄어든 반쪽짜리 권리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 어지러운 시대이기에 힘을 얻을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자신만의 세력을 일으킬 수 있는 명분.
관직을 원하든 재물을 원하든 황제로서는 흔쾌히 내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유비가 황족의 권리를 원한다면?
그때부터 황제는 유비라는 인물을 위험한 인물로 분류하고 이를 대장군에게 귀띔할 계획이었다.
애초에 대장군을 한 번 적대한 적이 있다는 사실부터가 살짝 황제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제와 자리에 있던 관료 모두가 유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저는…….”
유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으음?”
상상도 못한 대답이 나오자 황제는 살짝 놀란 기색을 보였다.
“저는 단지 대장군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행동했을 뿐, 그 외에는 다른 어떠한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자신의 의도를 눈치채고 미꾸라지처럼 이를 빠져나간 걸까?
그도 아니라면 정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걸까?
선선하게 웃는 유비를 바라보며 황제는 의문에 빠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말!
불타오르는 겁니다!
( ᐛ )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