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90)
EP.90 군웅할거(4)
191년 중순.
유비 일행이 유우를 구하는 동안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결국 천하의 정세에 이변이 생긴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청주와 서주에서 30만이 넘는 반란군이 일어났다고?”
“그렇습니다.”
나는 가후가 불현듯 가져온 정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청주.
이 지역은 중원의 세력 다툼과 동떨어진 곳이라 난세가 일어나기 전부터 전란을 피해 달아난 유민들이 주로 정착하던 지역이었다.
거기에 바다와 인접해 있어 무역 도시로서의 면모도 지닌 곳.
그렇다 보니 경제력과 인구를 따지면 어마어마한 지역이었다.
거기에 설상가상 서주에 있는 놈들까지 힘을 합쳤으니 그 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난다고 해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가후는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들은 현재 노란 두건을 두르고 자기 자신을 황건군이라 자칭하면서 약탈을 일삼고 있다 합니다.”
“약탈?”
“그렇습니다.”
본래 역사의 황건적이었다면 이들이 약탈을 벌인다고 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 세계의 황건군을 생각하면 약탈을 벌인다는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황건군의 우두머리인 장각이 죄 없는 백성들에게 손을 대는 걸 엄격하게 금지했거든.
황건적의 난이 한창 활발하던 시기에 약탈을 저지른 놈을 장각이 손수 베어버리며 기강을 다졌다고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황건군이 어째서 약탈을 하는 거지?”
“그들은 그저 황건의 이름을 내달았을 뿐인 단순한 도적떼이기 때문입니다.”
가후는 내 질문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이걸 사칭하네.
지금 한참 예주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을 진짜 황건군이 들으면 뒷목을 부여잡을 소식이었다.
군웅할거의 시대에는 참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이 시기에 청주와 서주에서 대규모 도적 무리가 일어나는 건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관해가 이끄는 대규모 무리가 북해상 공융을 공격하는데 그게 바로 이놈들이고, 유비가 구원을 명목으로 청주에서 한 판 붙었던 것도 이놈들이었다.
근데 지금 그 무리를 이끌고 있을 관해는 예주로 향한다면서 낙양을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러면 지금 그 무리는 누가 이끄는 거지?
“지금 그 반란군을 이끌고 있는 자는?”
“우두머리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 딱히 없다고 들었습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나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단합이 안 된다는 건가?”
“예. 지휘권이 통일되어있지 않아 이리저리 흐트러진 상태라 하더군요.”
이거 글렀네.
진짜 숫자만 많은 도적떼였다.
본래 역사에서 이 도적떼들은 난을 진압당한 이후 기주 발해군을 거쳐 병주에 있는 흑산적에 합류하기 위해 진군한다.
근데 그 깡패 공손찬이 자신의 땅을 도적떼가 밟는 걸 가만히 두고 보겠는가.
애초에 도적떼라는 건 지나가는 곳을 모조리 초토화하는 역병 같은 존재였다.
공손찬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도적 수만 명을 죽여버리는데, 아예 강이 피로 물들었다고 할 정도로 대학살이 일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그 흑산적이 내 휘하에 편입됐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놈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봤자 결국 이 사건으로 이득을 가장 크게 얻는 건 조조겠지만.
조조는 이때 연주자사가 사망하자 그의 세력을 수습한 제북상 포신을 끌어들여 연주를 꿀꺽 삼켜버린다.
그러면 그 연주자사가 어떻게 죽었느냐.
연주자사 유대는 이때 일어난 황건적 잔당을 막아내다가 전사한다.
진짜 엄청 못 싸우거나 운이 지지리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조조는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한순간에 연주를 차지한다.
그 왕좌지재 순욱이 천하의 중심이라며 극찬한 그 연주 지방을 말이다.
조조가 이득을 보는 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조의 부대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병사 청주병.
그 청주병이 바로 이곳에서 난을 일으킨 황건적을 항복시킨 다음 자신 휘하에 편입시킨 부대였다.
중국 특유의 뻥튀기를 고려해도 그때 조조에게 투항한 청주병이 대략 수만은 넘겼을 거라 보니 이 사건은 하늘이 조조에게 선물한 기회라고 볼 수 있었다.
조조는 이를 기점으로 세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자신과 대립하던 원술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원술을 쫓아내서 아예 양주 방면으로 본거지를 옮기게 만든다.
그 이후 곧바로 예주에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그때 서주에 있던 조숭 일가가 도겸에게 몰살당했다는 소식이 조조의 귀에 들려온다.
아버지와 형제를 잃은 조조는 눈이 돌아가서 서주 대효도를 벌이고 뒤통수를 친 여포와 붙은 다음….
생각이 길어지기는 했는데 하여튼 이때부터 조조의 존재감이 엄청나게 커진다.
조조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인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천하 정세가 서서히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다지만 지금은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한복이 원소의 세력을 두려워하며 견제를 이어나가고, 원소가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
군웅할거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계교 전투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내가 눈에 튀는 행동을 했다가는 공적으로 찍혀 연합군 시즌 2를 맛볼 수 있었다.
호로관 수비를 또 하라고? 절대 하기 싫다.
원래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다.
결국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때까지 눈치만 보는 수밖에.
지도만 보면 우리 세력이 꽤 거대했으나 사예주를 제외하면 이득을 보기 힘든 땅들이라 세력 싸움에서 엄청나게 앞서나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조와 원소.
이들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
후한 연주 동군에 있는 중심도시 복양.
현재 연주자사 유대가 다스리고 있는 도시에서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조조 공. 한잔하시게나.”
연주자사 유대는 살짝 취한 표정으로 조조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감사합니다.”
조조는 유대에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예를 올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대가 조조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말씀이십니까.”
“청주와 서주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 말일세.”
유대의 말에 조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유대에게 예를 취하며 공손하게 대답하는 조조의 모습은 평소 조조 행동거지를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놀랄 만한 모습이었다.
조조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유대를 바라보았다.
유대의 갑작스러운 연회 초대.
연회를 같이 즐기기 위해 자신을 초대했다고는 하나 분명 그 안에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
본인 말마따나 정말 연회만 즐길 거였다면 어째서 진류 태수 장막도 함께 부르지 않았겠는가.
유대는 조조가 이를 눈치챘든 눈치채지 않았든 전혀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이런 때일수록 어려운 처지끼리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는가?”
“…….”
“그래서 내가 좋은 생각을 하나 했는데….”
유대는 잠깐 말을 흐리면서 욕망이 담긴 눈빛으로 조조를 바라보았다.
‘…쯧.’
그 눈빛에 담겨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눈치챈 조조가 속으로 혀를 찼다.
보통 이런 눈빛을 하는 자는 단 한 번도 조조의 예상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나와 자네가 결합하여 서로 한 집안이 되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
결국 또 이것인가.
조조는 살짝 놀람을 가장하면서 입을 열었다.
“만약 그리된다면 진류 태수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모릅니다.”
“하하! 이미 진류 내에서 자네의 영향력이 훨씬 커졌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무슨 소리인가!”
유대는 그런 조조의 말을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알고 계셨습니까.”
“이것 참. 부끄러운 건 알겠으나 장난이 짓궂구려.”
부끄럽다고? 누가?
“그대도 이 제안을 동의하는 거겠지?”
“…후우.”
멋대로 대화를 진행시키려는 유대의 모습에 조조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유대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조조의 어깨로 자신의 손을 뻗었다.
“우리 둘이 힘을 합친다면 이 천하에 적수가 없을 것….”
“그만.”
“……?”
유대가 잠깐 멈칫한 사이 조조가 말을 이었다.
“학문을 닦는다며 자신을 예스럽게 포장하는 놈들이 어찌하여 이 모양인지.”
과거부터 자신의 외모를 보고 짐승처럼 껄떡이는 자들이 대체 몇 명인지 이제 헤아릴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예를 갖추는 걸 거둔 조조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네놈의 제안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뭐라?”
“어찌 사람이 짐승 새끼와 혼인을 맺을 수 있겠느냐.”
“이, 이년이…!”
자신을 짐승에 비유하는 조조의 모습에 유대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환관 가문에 불과한 년을 고귀한 황실의 핏줄과 연결해주려 했는데 감히 은혜도 모르고!”
“황실의 핏줄이라.”
조조는 실소를 머금고 유대를 바라보았다.
“그 황실을 직접 뒤엎으려 한 주제에 말이 많구나. 네놈의 조상인 도혜왕이 저승에서 피눈물을 흘리겠군.”
“시끄럽다!”
유대가 조조의 가문을 모욕하자 조조도 똑같이 유대의 조상을 언급하며 유대를 깔보았다.
“나와라!”
유대가 고함을 지르자 연회장 곳곳에서 도끼를 든 병사 수십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을 마주한 조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과연.”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는 모양이군.”
유대가 비릿한 미소를 지을 때 조조는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연회에 초대하고 방심시킨 다음 죽이는 건 흔한 일이지.”
“하하! 걱정하지 마라. 네년의 외모가 아까워 죽이지는 않을 터이니!”
이제는 조조에 대한 음심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유대가 당당하게 외쳤다.
“네년을 시작으로 연주를 집어삼키고, 그다음은 청주로 진출하겠다!”
“주제에 맞지 않게 꿈이 너무 큰 거 아닌가? 네놈은 그러다가 분명 죽어나자빠질 놈이다.”
“끝까지 망발을…!”
유대는 조조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주변에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시는 반항할 생각조차 못하도록 만들어줘라!”
도끼를 든 병사가 살벌한 기색으로 다가오는 걸 바라보던 조조는 술잔에 남아있는 술을 마저 비웠다.
너무나도 태평한 조조의 모습에 유대가 의문을 느낄 무렵, 조조가 비어있는 술잔을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구나.”
조조가 말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조조의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위.”
조조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묘령의 여인.
그 여인이 흩뿌리는 기세에 유대의 병사들이 흠칫 놀라면서 살짝 뒷걸음질 쳤다.
“내가 직접 나서도 되겠으나 아문(牙門)의 깃발도 한 손으로 일으켜 세우던 그대의 무용을 보고 싶군.”
“맡겨주십시오.”
여인은 등에 메고 있던 쌍철극을 꺼내 들며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지금 뭐 하고 있지! 단 한 명에게 겁을 먹고 물러날 생각이더냐!”
전위의 기세에 병사들이 감히 접근할 마음을 먹지 못하자 유대는 이를 닦달하며 병사들에게 거듭 명령을 내렸다.
“쳐라!”
병사들은 결국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이에 전위는 손에 들고 있는 팔십 근의 쌍극을 휘둘렀다.
그날 복양을 지배하던 이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