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96)
EP.96 총호(冢虎)(3)
사마 가문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
사마방이 자택에서 제일 좋은 손님 방으로 안내해주었기에 나는 잠을 설치는 일 없이 푹 쉬었다.
눈을 뜨자마자 여포가 곁에 앉아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일어났어?”
“그래.”
나는 여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호위 역할로 이곳에 왔으니 같은 방에 머무르고 있어야 한다 주장하길래 난 그러라고 했지.
“…….”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여포처럼 뒤에서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서여를 바라보았다.
진짜 부담스럽네.
나도 모르는 잠버릇을 새벽 내내 지켜봤을 거라 생각하니 좀 부끄럽다.
바깥에서 호위를 설 수 있는데 무슨 개인적인 욕망이 있어서 방으로 들어온 건 아니리라 믿는다.
“…….”
“…….”
내가 그런 뜻을 담아 서여와 여포를 바라보자 둘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뭐지.
대체 무슨 욕망을 채우러 들어온 거냐.
“기침하셨습니까.”
서여와 여포가 밤새 그랬던 것처럼 나도 둘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자 사마 가문의 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그렇습니다.”
“…그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살짝 풀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사마방에게 전해라. 준비가 끝나면 찾아가겠다고.”
“알겠습니다.”
하인은 내게 공손히 예를 취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내가 방 바깥으로 나오자 저 멀리서 어렴풋이 보라색 머리가 보였다.
“…….”
누가 어린아이 아니랄까 봐 리본이 달린 귀여운 머리띠를 찬 소녀.
그 소녀는 내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자 자리에서 후다닥 달아나 내게서 거리를 뒀다.
사마의가 대놓고 나를 피한다는 게 느껴져서 나는 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도 그냥 본래 역사의 조조처럼 관직할래 감옥갈래 지옥의 이지선다를 내놓아야 하나?
실제로 사마의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관직에 오르는 걸 여러 번 거부했는데, 그에 조조는 사마의가 이번에도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냥 감옥에 가둬버리라고 명을 내린다.
조조가 진짜 감옥에 가둘 놈이라는 걸 아는 사마의는 그걸 듣고 화들짝 놀라면서 결국 관직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지.
일하는 걸 그렇게 기피한 주제에 막상 관직에 오르니까 일 엄청 열심히 하더라.
“…….”
가깝다고 하기 뭐하고 멀다 하기도 뭐한 애매한 거리.
사마의는 그 애매한 거리를 둔 채 고개를 살짝 내밀어 우리를 한 번 지켜보고는 모퉁이 사이로 완전히 사라졌다.
저런 걸 보면 또 아예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쩔 수 없지.
“가후.”
“네.”
가후는 어느샌가 내 곁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옆방에서 머무르고 있었다지만 내가 방에서 나온 소리를 듣는 게 가능한 걸까.
이 세계는 능력이 뛰어나면 감각 자체가 평범한 사람과 궤를 달리하는 것 같으니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정을 바꾼다. 당분간 여기에 계속 있어야겠어.”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도 가후는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고 담담히 명을 받들었다.
“뭐 있어? 갑자기 왜 그래?”
가후가 전령을 불러 이리저리 파견하고 있을 때 여포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인재 영입해야지.”
“…그 꼬맹이?”
여포는 사마의를 떠올렸는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저거 자기가 살짝 더 크다고 꼬맹이라 하는 거 봐라.
“여기 꽤 자주 찾아왔다며. 설마 걔 때문이야?”
“그래.”
여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나는 과거부터 사마 가문에 자주 방문하면서 사이를 돈독히 다지고 사마의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사마의의 동생들과는 친해졌는데 유독 사마의만 내게서 거리를 두더라고.
상당히 일찍 태어나 이미 성인이라 볼 수 있는 첫째 사마랑을 제외하면 다 어린아이들이라 자신만만하게 들이댔는데….
병주에서 고아들을 보살피며 치솟았던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다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살짝 풀이 죽어있을 때 여포는 말을 이었다.
“지금 보여주는 행동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계속 진심을 보여주면 가까워지겠지.”
삼국지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일화가 하나 있지 않나.
삼고초려(三顧草廬).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 참을성 있게 노력한다는 뜻.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해서 세 번 찾아간 것에서 유래한 유명한 사자성어.
어딘가에 찾아가는 것 정도야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이거라도 해야지.
낙양에서 하내군은 엄청 가깝기도 했으니 시간을 내서 사마 가문으로 찾아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근데 난 세 번은 진작에 넘은 것 같은데.
사마팔달이니까 셋을 여덟 번 곱해서 스물네 번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하자.
“귀찮지 않아?”
“이 정도쯤이야 상관없지.”
여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되지 않겠냐.”
“……하아.”
내 말이 상당히 대책 없다고 느꼈는지 여포는 한숨을 내뱉었다.
한숨을 내뱉은 여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사마의가 사라졌던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뭐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여포를 바라보며 묻자 여포는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 입을 닫았다.
왜인지 언뜻 보라색 머리카락을 본 것 같았다.
──────────
나는 사마방에게 당분간 이곳에서 머물러도 되겠냐며 허락을 구했다.
만약 허락해주지 않으면 근처 마을에서 머무를 계획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사마방은 이곳에 머무르는 걸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모시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현대식으로 말하면 사마방은 너무 FM적인 인물이라 나는 적당히 해도 좋다고 언질을 줬다.
“허나 그러면 대장군의 위엄이….”
“그만.”
사마방이 입을 열어 내게 반박하려고 하자 나는 말을 끊었다.
“내가 그런 걸 일일이 따지는 인물로 보이나?”
“…아닙니다.”
“그렇다면 됐다.”
이렇게까지 엄포를 놓았으면 사마방도 가문의 식솔들을 과하게 괴롭히지 않겠지.
“가족에게 너무 엄격한 것도 때로는 독이 되는 법이다.”
“…….”
“뭐…. 자녀 하나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우스워 보일지 모르겠다만.”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고맙고.”
그리 말한 나는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섰다.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할 일이 있으면 하도록.”
“감사합니다.”
사마방은 공손히 읍을 올리며 내게 예를 표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까.
조금 충동적으로 이곳에 더 머무르겠다곤 했지만 사마의와 친해질 방법은 딱히 없었다.
사마의보다 한 살 어린 사마부도 어린아이 대하듯 다가가면 친해질 수 있던데 사마의는 그렇지 않더라고.
흔히 말하는 애늙은이라 해야 하나.
사마의는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뭔가 가치관이 엇나가 있었다.
“…저기요.”
복도로 나선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살짝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응?”
고개를 들자 내가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양옆에 기다란 리본이 달린 귀여운 머리띠.
허리에 살짝 닿는 긴 생머리.
사마씨 일족의 특별한 점이라고 하는 보랏빛 머리카락.
사마 가문에서도 드물게 나온다는 보랏빛 눈동자까지.
올해 아직 12살인 사마의 중달(꼬마)가 바로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말이야?”
“네.”
이렇게 사마의가 먼저 다가온 건 처음이었기에 나는 얼떨떨한 기색을 드러냈다.
“왜?”
“…….”
내 물음에 사마의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준비를 하듯 심호흡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같이 바둑이나 좀 두실래요?”
“바둑?”
사마의의 권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만 나 엄청 못 두는데.”
“상관없어요.”
“그렇다면야.”
나를 계속 피해 다니기만 하던 사마의가 먼저 내게 다가왔다.
이제 사이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봐도 되는 걸까?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며 나는 흐뭇한 감정을 드러냈다.
“여기면 적당하겠네요.”
마당이 훤히 보이는 집안.
그곳에 자리 잡은 사마의를 따라 나도 적당한 곳에 앉은 다음 대국을 시작했다.
우리 둘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빠르게 바둑을 뒀다.
내가 잠깐 고민을 하며 흑돌을 두면 사마의는 마치 내 수를 예상한 듯 거침없이 곧바로 백돌을 두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
이런.
나도 모르는 사이 판세가 어느새 사마의한테 기울어져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처참할 정도로 밀리다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항복.”
“…이건 진짜…….”
어허.
당장 그 입 다물라!
사마의는 내 실력을 보고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우물거렸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대장군을 향한 예의라고는 전혀 담겨있지 않은 태도.
이 시대의 평범한 대장군이었다면 화를 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아마 사마의도 이런 나를 꿰뚫어 보고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게 아닐까.
“…한 번 더 해보죠.”
“그래.”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사마의는 재차 대국을 권유했다.
나야 이제 와서 1패가 늘어나는 것 정도야 신경 쓰지 않았으니 담담히 수긍했다.
그렇게 제2국.
“…….”
또 발렸다.
이번엔 생각을 좀 다르게 해보면서 다른 곳에 돌을 놓았는데 오히려 더 빨리 판이 기울어졌다.
내 실력을 보던 사마의는 결국 못 참겠는지 툭 중얼거렸다.
“진짜 못하시네요.”
“크흠.”
진실을 마주한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헛기침했다.
나중에 가후한테 다 말해서 대신 혼내 달라 할 거다.
사마의가 성장한 미래라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가후가 어린 사마의를 이기고 있었으니.
그래도 사마의와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것 같아 나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몰라도 되는 정보
─사마의는 20대 초반에 관절통 거짓말 치면서 조조 휘하에 들어가는 걸 거부한 적 있다.
그렇게 20대 후반까지 버티다 감옥에 집어넣겠다니까 그제야 출사했다.
─말년에는 2년 정도 치매 걸린 노인을 연기하면서 조상의 의심을 피했다.
그리고 고평릉 사변으로 뒤통수를 갈겼다.
꾀병의 달인 쓰마이….
(ง ˙ω˙)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