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97)
EP.97 총호(冢虎)(4)
사마 가문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아침.
나는 오늘도 대국을 둬보자는 사마의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같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한 나라의 대장군이 이리 여유롭게 지내셔도 되는 건가요?”
사마의는 탁 소리를 내며 백돌을 내려놓았다.
바둑판을 노려보던 나는 사마의의 질문에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는 여유가 생겼거든.”
여기를 노리는 건가?
사마의의 의도를 파악하여 훼방을 놓자 사마의는 그걸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돌을 내려놓았다.
아니, 여기서 이런 수가 나오네.
또 집(家) 하나를 먹혔다.
나는 부연 설명을 했다.
“슬슬 관직에 오르는 인원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일이 확 줄었어.”
명사(名士).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냥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 높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 시대에서 명사 하나만 휘하에 있어도 인재 영입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명사는 또 자기들끼리 교류를 하면서 일종의 친목 네트워크를 형성하거든.
관직에 오른 명사가 다른 명사에게 서찰을 보내 여기 물 좋으니까 한 번 와보라고 하고, 그 다른 명사도 ‘여기 진짜 괜찮은데?’ 하면서 또 다른 명사에게 서찰을 보내고….
그렇게 친목질이 한 번 시작되면 인재가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아주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순욱이지.
왕좌지재(王佐之才).
왕을 보필할 만한 재능.
순욱은 순유, 희지재, 곽가, 진군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는 수많은 인재를 조조에게 데려온다.
심지어 사마의를 조조에게 추천한 인물도 바로 순욱이다.
머리도 똑똑하고 인맥도 좋다니?
과연 왕좌지재라 부를 만한 인물이었다.
우리 세력에도 순욱과 같은 영천 순씨 출신인 순유가 있었으니 명사들의 친목 네트워크가 윙윙 돌아가고 있었다.
그 순욱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게 살짝 아쉽긴 하지만 뭐….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의식의 흐름이 조금 다른 곳으로 갔는데 하여튼 우리 세력은 현재 순유 네트워크에 힘입어 인재들을 대거 등용했다.
사마의와 나는 대화를 이어나가면서도 서로 돌을 내려놓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나를 대신해서 일을 처리할 관리들이 많으니 며칠 정도는 자리를 비워도 상관없지.”
“그래도 대장군의 자리라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을 텐데….”
그렇게 말한 사마의는 백돌을 또다시 내려놓았다.
“…….”
바둑판의 형세를 살펴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렀네.
이거 못 이긴다.
“너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지.”
“…….”
내 혼잣말에 사마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장군(大將軍).
한나라의 병권을 총지휘하는 최고의 무관직.
가장 강성한 중앙의 정예군을 직접 지휘하는 관직이다 보니 이 자리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자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일신의 능력보다는 정치적인 요소를 더 따지면서 임명하는 자리란 말이지.
과거 황제가 나를 바로 대장군이라는 높은 자리에 임명했던 건 나를 그만큼 밀어주겠다는 의미였다.
황제는 실제로 내부에서 분란을 일으켜 나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놈들을 직접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 생각하니까 또 불안하네.
이미 코가 단단히 꿰여버린 기분인데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입을 열어 혼잣말을 이었다.
“내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전부 정치적인 뜻이 담긴다고 하는데 그런 걸 일일이 따지기에는 너무 피곤하더라고.”
대장군을 상징한다는 온갖 휘황찬란한 장식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던 걸 떠올렸다.
이런 거 차고 다녀봤자 거슬리고 눈에 띄기만 한다면서 안 차고 다니길 잘했지.
그 외에도 호족들에게서 온갖 선물들이 들어오는데 정치 관계에 따라 어떤 건 받아야 하고 어떤 건 받지 말아야 하고….
진짜 귀찮다.
곁에서 가후가 조언을 해줘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내부가 좀 어지러워졌을 거다.
“나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뿐이야.”
사마의와 두고 있던 대국은 이미 형세가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기에 나는 들고 있는 흑돌을 아무렇게나 놓기 시작했다.
“…지금 이렇게 바둑을 마구잡이로 두시는 것처럼 말이죠?”
“…….”
난데없이 치고 들어오는 사마의의 일침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마의도 진지하게 두는 건 그만두었는지 나처럼 아무 곳에나 백돌을 뒀다.
“그렇게 인재가 많으면 저 하나쯤은 없어도 괜찮지 않나요?”
이미 사마의는 내가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자꾸 찾아온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대장군께서 이러실 만한 가치가 있냐고 물으면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저을 텐데….”
“내가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냐.”
나는 사마의의 말을 끊고 나를 바라보는 보랏빛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위엄이 없다면서 뒤에서 나를 흉보는 건 이미 진즉에 무시하고 있었다.
허례허식에 과하게 집착하는 놈치고 능력이 뛰어난 놈을 못 봤거든.
여전히 속을 알 수가 없는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 정성을 쏟는 거야.”
“…계속 찾아오는 것도 그 일환인가요?”
“그래.”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거짓말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했다는 생각이 드시면 어쩌실 거죠?”
“다음에도 찾아오면 되지.”
“…언제까지 그러실 건데요?”
“관직에 오르겠다는 확답을 받을 때까지.”
자신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유파를 끝끝내 등용한 유비처럼 말이야.
유비를 피해 다니던 유파는 결국 능력을 힘껏 발휘해 촉나라의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았는가.
근데 막상 말하고 보니 조금 신경 쓰인다.
이거 그냥 스토커잖아.
나는 살짝 사마의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싫다고 말하면 포기해야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닌……. …하아.”
무언가 말을 잇던 사마의는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아마도 제가 성인식을 올리자마자 임관하길 원하시는 거겠죠?”
“으음….”
사마의의 질문에 나는 딱히 부정하지 못했다.
사마의가 빨리 오면 올수록 나로서는 더 좋은 일이니까.
그런 내 반응에 사마의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일을 얼마나 시키려고 그러는 건가요?”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데 일이 결코 적지는 않을 거다.
굳이 난세가 아니더라도 사마의 같은 유능한 인재에게는 수많은 일이 쏟아지겠지.
원래 밑에 있는 사람이 유능할수록 지도자는 더욱 기뻐하며 휘하 인재들을 갈아 넣는 법이다.
사마의도 이를 예상한 모양인지 한숨을 내뱉었으나 시간이 좀 지나자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네요. 임관하면 되는 거죠?”
“고맙다.”
“……그렇다고 착각하지는 마세요.”
내 감사 인사에 사마의는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듯 툴툴거렸다.
“가면 갈수록 랑 언니의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있거든요. 이대로 가다간 제대로 혼쭐이 나겠죠.”
“그래.”
“제대로 듣고 계신 거 맞아요?”
“듣고 있어.”
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내 반응에 살짝 꺼림칙한 표정을 짓던 사마의는 말을 이었다.
“일단 입 밖으로 내뱉었으니 지켜야겠죠. 근데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
사마의의 물음에 내가 되묻자 사마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정말 진심으로 충성할지….”
“…….”
“대장군께서는 자신할 수 있나요?”
“하하. 이 맹랑한 꼬맹이가.”
나는 양손으로 사마의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 놓았다.
“앗?!”
그런 내 행동에 상당히 놀란 모양인지 사마의는 몸을 살짝 움츠리며 경악한 목소리를 냈다.
사마의는 곱게 빗어 내린 머리가 삐죽삐죽 망가진 상태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진짜 깜찍한 행동만 골라 하길래 나도 모르게 그만.”
“…깜찍하다고요?”
“그래.”
이제 12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가 아주 앙큼한 말만 늘어놓는데 귀엽게 보일 수밖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지.”
“…….”
현대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꽤 유명한 속담이다.
이걸 고사성어로 뭐라 하더라.
그건 또 기억이 안 나네.
“그래도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 건 있어.”
나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사람을 믿음으로 대한다면 나도 믿음으로 보답받는다고 믿는다.”
“…이 천하에 그런 선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데요.”
“나도 안다.”
사마의의 대답에 나는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렇다고 해서 지레짐작만으로 사람을 의심하고 핍박하면 쓰겠냐?”
사마의 중달.
그가 일으킨 고평릉 사변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근데 그게 그렇게 걱정된다면 애초에 애비가 셋인 여포부터 기용하지를 않았겠지.
“걱정하지 마라. 난 내 사람들을 함부로 내치는 사람이 아니다.”
“누, 누가 저를 내칠까 봐 걱정했다는 거죠?”
내 대답에 사마의는 처음으로 말을 더듬더니 얼굴을 살짝 붉혔다.
천천히 감정을 가라앉힌 사마의는 나를 바라보았다.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그래도 대장군이 믿어주시는 만큼, 저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볼게요.”
“그래.”
“성인식부터 치르고 난 다음에 말이죠.”
“…….”
나는 살짝 풀이 죽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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