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98)
EP.98 총호(冢虎)(5)
사마의에게서 확답을 받은 나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마방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다.
사마방은 미동도 없이 꼿꼿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자기 절제력이다.
저만한 수양을 쌓는 데에는 필시 엄청나게 많은 노력이 들어갔겠지.
서로를 마주하고 앉은 그때 방문이 열리며 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에 들어온 하인은 나와 사마방에게 차를 내오고 다시 자취를 감췄다.
사마방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의 앞에 있는 차를 한 잔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최근 사마의와 부쩍 가깝게 지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알고 있었군.”
사마방도 내가 사마의에게 접근하던 걸 알고 있는 모양.
하긴. 이곳에 널려있는 하인들이 몇 명인데 모르는 게 이상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마셨다.
“…흠.”
맛과 향을 보니 많이 귀한 차 같은데.
진짜 손님맞이 하나는 확실하구만.
그런 나를 지켜보던 사마방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때가 됐을 때 관직에 오르라 권유하신 것이 사실입니까?”
“그래.”
“…다행이군요. 감사합니다. 대장군.”
사마방은 갑작스럽게 내게 예를 표했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급하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제 둘째 딸은 머리는 비상하나 그 예사롭지 않은 재주를 이상한 곳에 쓰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으음….”
사마의를 얼마 지켜보지 않은 나도 사마방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확실히 좀 괴짜스러운 면모가 보이긴 했지.
“틈만 나면 꾀를 부리며 게으름을 피우길래 고민이 많았는데 대장군께서 이를 해결해주셨으니 제가 어찌 감사를 표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알겠으니 고개를 들도록. 내가 다 부담스럽군.”
“명에 따르겠습니다.”
사마방은 담담히 고개를 들고 자세를 바로 했다.
나는 사마방에게 말을 걸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설명할 필요를 덜었군. 그렇다면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 같이 지내면서 추억을 많이 쌓도록 하게나.”
사마의가 성인식을 치를 시점에는 천하의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거다.
나는 사마의를 중하게 쓸 예정이었으니 아마도 천하 방방곡곡을 빠짐없이 돌아다니겠지.
그렇게 되면 가족과 만나고 싶어도 분명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자 사마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음?”
뭐가 괜찮다는 거지.
“조만간 이곳에서 떠나실 때 대장군께서 사마의를 데려가 주시길 바랍니다.”
“……?”
난데없는 사마방의 폭탄선언.
나는 할 말을 잃고 사마방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저희 집에서 가르칠 수 있는 건 전부 가르쳤습니다.”
“……그 정도라니.”
“지금 사마의가 하는 일이라곤 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자신의 여동생들을 괴롭히거나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 멍하니 늘어져 있는 것뿐이지요.”
명문가의 교육을 12살 만에 다 터득했다니.
무슨 살아있는 양파도 아니고 까면 깔수록 신기한 면모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배움에 좀 더 정진해야 할 어린아이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으니 부모 된 도리로서 큰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사마방은 조목조목 이해할 수 있는 말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이 어지러운 시대에 배움의 기회가 생길 리 없으니 저는 그저 사마의를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기만 했습니다.”
“…….”
“분명 넓디넓은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호랑이의 재능을 지닌 아이입니다.”
여기서부터 호랑이라 불리는 건가?
총호(冢虎).
뜻을 풀어보면 큰 호랑이라는 뜻인데 사마의를 호칭하는 별명이기도 하다.
와룡(臥龍)과 봉추(鳳雛) 같은 멋들어진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마의에게 붙여준 별명.
내 실없는 생각을 알 리 없는 사마방은 말을 이으면서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듭 부탁드립니다. 사마의를 데려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마방의 간절한 부탁에 나는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사마의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본인이 내뱉었던 말처럼 성인식 이전까지는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할 것 같던데.
“뒤에서 등을 떠밀어주면 불평불만을 내뱉으면서도 결국 따라주는 아이입니다.”
“…….”
“늘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만 사람의 호의에는 약한 아이지요.”
“그러고 보니….”
사마방의 말을 듣던 나는 문득 어제의 광경이 떠올랐다.
어제 사마의와 얘기를 나눌 때도 계속 찾아올 거다 너를 믿는다 이런 소리를 하니까 관직에 오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호의적인 태도로 밀어붙이는 거에 약한 새침데기 스타일인가?
“아무래도 짚이시는 점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으음….”
“호의에 약한 아이가 대장군의 제안을 따른 걸 보면 분명 대장군께서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셨겠지요.”
그리 말한 사마방은 얼굴에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사마의에게 제가 따로 얘기를 할 터이니 대장군께서는 그저 떠나시는 날 사마의를 데려가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솔직히 나로서는 나쁜 것 하나 없는 제안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자신이 먼저 요청하지 않는 이상 사마의에게 일을 시킬 계획은 없었다.
그냥 대충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간단히 견학만 시켜줄 계획.
그렇게만 해줘도 알아서 쑥쑥 성장하지 않을까.
내가 제안을 수락하자 사마방은 내게 공손히 예를 취했다.
“부디 제 딸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
“그렇게 되었으니 사마의 너는 대장군을 따라 안목을 좀 더 키우도록 해라.”
여느 때와 같이 방에 늘어져 있던 사마의는 아버지의 통보에 고운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정말이신가요?”
“그래.”
과거부터 엄격했던 아버지의 교육 덕분에 사마의는 아슬아슬하게나마 예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의야. 나는 좀 더 네가 넓은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사마방은 사마의를 흔치 않게 이름만으로 불렀다.
“무릇 호랑이는 동네 작은 뒷산이 아니라 거대한 산맥을 호령하고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
사마방의 눈빛에 담긴 아버지로서의 정.
사마의는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우리 사마 가문은 네 언니와 여동생들에게 맡기고 너는 네 뜻을 드넓게 펼쳐 보아라.”
“…….”
“때마침 거대한 천하가 네게 찾아왔으니 이게 바로 기회가 아니면 뭐란 말이더냐?”
사마의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마방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버님께서는 대장군이 저를 품을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하시는지요.”
“그래.”
사마방은 사마의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역으로 물어보마. 네가 보는 대장군은 어떤 인물이더냐?”
“……저는….”
사마의는 천천히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되지 않겠냐.
자신이 거리를 두는 것을 알아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가까워지려 노력하던 선선함.
───사람을 믿음으로 대한다면 언젠가는 나도 믿음으로 보답받는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것을 꺼리지 않는 호기로움.
───그렇다고 해서 지레짐작만으로 사람을 의심하고 핍박하면 쓰겠냐?
사람의 의로움을 끝까지 믿으려 하는 선(善).
눈을 감고 있던 사마의는 담담하게 한 단어를 읊조렸다.
“…호인(好人).”
이상할 정도로 착해빠진 사람.
사마의의 말에 사마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목숨이 그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되는 비통한 시대다.”
사마의의 대답에 사마방은 말을 이어나갔다.
“지도자가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으니, 어찌 효(孝)가 바로 서고 인(仁)이 바로 서겠느냐.”
공자가 말했다.
백성을 사랑으로 대하면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이 나라는 오랫동안 그를 실천하는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의야. 나는 그가 이 비통함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버님?”
사마의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인물이 너를 진정 품지 못하리라 생각하느냐?”
“…….”
사마방의 질문에 사마의는 이상할 정도로 말문이 막혔다.
사마방은 그런 사마의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아직 확신을 못하는구나.”
“…네.”
“그렇다면 곁에서 지켜보거라.”
사마의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간만에 소리 내서 웃었다.
“호랑이는 갑갑한 우리에 갇혀있으면 결국 이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는 법이다.”
“…….”
“대장군이 너를 가둬두는 한낱 족쇄에 불과한 인물인지, 아니면 호랑이를 능히 품을 수 있는 드넓은 천하인지는 직접 판단하면 되지 않겠느냐?”
사마방의 말에 사마의는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사마의는 속으로 살짝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갑자기 어디선가 대장군이 객사했다는 소식이라도 들리면 괜히 신경 쓰일 테니까.
대장군이 걱정돼서 이러는 건 결코 아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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