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ghly another world TS thing RAW novel - Chapter 147
147회
슬라임 동굴
뜻밖에도 환한 빛이 우리를 반겼다.
왜 환한 빛?
동굴 깊은 곳 아니야?
마치 사람 사는 곳처럼 반듯하게 연마된 석재 타일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나는 신애를 붙잡았다.
“정비하고 가자.”
“그러면 돌아갈까요?”
“지원군을 부를게.”
나는 정신파로 1분 정도 소요해서 세이나를 불렀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
권역 포탈을 열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빈집털이라고 얕잡아 본 결과, 신애가 심한 꼴을 당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지.
세이나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슬럼으로 가는 중’
세이나라면 문제없겠지.
“됐어. 가자.”
“네.”
신애를 앞세워 주의 깊게 나아간다.
두 슬라임은 신애의 발치에 바짝 붙어서 따라갔다.
“….”
신애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게 재미있었다.
“슬양이가 널 좋아하는 것 같아.”
“슬라임과의 친목은 사양하겠습니다.”
“사람 말 다 알아들어.”
“뀽.”
슬양이는 누가 뭐래도 신애와 친해지고 싶은 것 같다.
신애는 발로 조금씩 밀어내다가, 나중에는 단념한 듯 슬양이와 함께 움직였다.
“발소리도 안 나니까….
상관없겠죠. 함께 갑시다.”
“뀽뀽!”
신애의 마스코트가 됐네.
본인 앞에서 이런 말 하면 화내겠지?
하지만 슬양이의 선함을 알아준 것 같아서 기쁘다.
나는 다친 촉괴들을 보살폈다.
너희들도 갓난아기나 마찬가진데, 너무 험하게 다뤘지.
정기가 없었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촉수 갑옷은 아직 성장 중이다.
레벨만 키우면 나를 유리검 같은 강자로 만들어 주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밥을 주면서 길러야 한다.
‘그렇게 섹스했는데 정기가 한참 모자라네….’
첫째나 둘째도 정기를 바라고 있을 텐데.
정기를 모을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꽤 마음을 열고 받아주는 중이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든든하게 날 지켜주겠지.
우리는 석재 타일이 깔린 방에 들어왔다.
가구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고, 텅 빈 방.
벽에 달린 또다른 석재 문이 알아서 열리더니, 안에서 무언가가 나왔다.
“시현 님.”
신애가 나를 감쌌다.
빈틈없이 몸을 감싸던 망사 수트가 대부분 녹아내려, 알몸이나 다름없는 뒤태를 드러내며.
아…. 꼴려….
없는 자지도 설 것 같아.
신애의 엉덩이가 너무 탐스러웠다.
진지한 상황에 관음하는 기쁨이 커진다.
왜 이러지?
자궁 문신이 뜨겁다.
촉괴한테 정기를 몰아줘서…?
“저건….”
신애는 당황한 듯했다.
우리 앞에 유유히 나타난 건 침대였다.
그것도 아주 고급스러운 침대.
나랑 신애가 함께 뒹굴어도 공간이 반 이상 남을 것 같다.
그 침대 중앙에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부채처럼 펼쳐 놓은 아름다운 미녀가 잠들어 있었다.
침대가 미끄러지듯 이쪽으로 다가온다.
“뀽뀽.”
슬양이는 몹시 흥분해서 날뛰었다.
…너도 여자 볼 줄 아는구나.
분홍이가 한눈판 슬양이를 때리며 씩씩거렸다.
“뀨…. 뀨응.”
“한눈팔면 안 되지.”
신애는 가만히 서 있다가 칼을 내렸다.
당장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나는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신애가 손목 뒤로 단검을 감추는 걸 봤다.
상대의 행동을 보고 대응할 생각이다.
“하암.”
분홍 머리 여자가 크게 하품하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정말로 자고 있었던 것 같지만….
눈앞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 같지도 않다.
미리 알고 침대를 마중 보낸 느낌이다.
그러니까….
드론을 조종하는 것처럼.
잘 보니, 침대 밑바닥에는 바퀴도 없었다.
그냥 여기까지 저공 비행해서 날아온 것이다.
신애는 상대가 무방비한 여자라도 봐주지 않을 거야.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즉시 칼부림이 일어나겠지.
나는 긴장감으로 입술이 바짝 말라오는 걸 느꼈다.
정체 모를 분홍머리 여자는 공허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더니 입을 뗐다.
“아멜리아가 아니네. 너희는 뭐니?”
신애가 살짝 내게 눈길을 주었다.
이쪽이 가진 패를 열어야 할 것 같다.
“나는 황자님이 보낸 사람이다.
너를 추적해 왔다. 역병의 디네스.”
“어머나.”
살짝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입만 웃어서 무섭네.
그리고 정말 육감적인 몸매다.
나보다 가슴 큰 사람 처음 봤어.
키도 한 뼘 차이 나지만, 덩치가 크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에게 없는, 농익은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여성이었다.
“나도 네가 누군지 알아.”
“그럼 왜 물어봤어?”
“잘 몰랐어. 이렇게 예쁜 애였다니….”
피차 외모 평가 중이었네.
“옆에 있는 애도 아주 매력적이야.
허리가 얇고 엉덩이가 크네.”
“….”
신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몸은 임전 태세였으니까.
“네가 디네스야?”
“나를 디네스라고 불렀잖아?”
“…확실하지는 않아.”
“솔직하네. 후후후.”
“우리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여자는 너뿐이라고 생각했어.”
디네스, 여자 이름 같기도 하고….
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때려 맞추기에 불과했지만, 세상일은 꼭 올바른 식을 입력해야만 정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우리 앞에 정답이 서 있잖아.
이제 어쩌지?
나는 세 번째 물음에 부딪혔다.
“바로 나를 만나게 될 줄 몰랐구나?”
디네스는 침대에서 내려와 매혹적인 몸매를 과시했다.
엉덩이도 굉장해.
성형 없이 저런 몸매가 가능하단 말이야?
내 몸매도 상당히 비현실적이지만, 신경 쓰인다.
“나도 자는 중에 손님이 찾아올 줄 몰랐어.
맞이할 준비도 못 했네….”
“슬라임은 잔뜩 있던데.”
“아, 그랬지….
걔네들은 아는 얼굴이 아니면 비켜주지 않아.”
“시현 님. 잠시 끼어들겠습니다.”
신애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 응.”
“전기 슬라임을 소환한 건 그쪽입니까?”
“어머 어머. 처리했네. 역소환 돼 있어.”
“처리했습니다. 오는 길에.”
“대단하다~!”
….
이 녀석, 우리가 자길 잡으러 왔다는 걸 알고는 있나?
좀 얼빠진 것 같은데.
젖가슴 크기만큼이나….
“인간 중에 그걸 쓰러뜨릴 수 있는 애가 있었다니….
흥미로워.”
“너는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야?”
“으으음. 무척 어려운 질문이네.
나는 복합적인 존재지. 생물학적으로는 사람이지만, 나를 사람 취급 하지는 마.”
“….”
디네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랬던 애들은 다 불행해졌거든.”
“그러면 젖탱이 요괴라고 불러줄까?”
“뭐어!”
디네스가 양팔로 젖을 가렸다.
팔에 실려 억눌린 젖탱이도 굉장했다.
“그쪽도 엄청나게 크면서, 남 말하네!”
…도발해도 원하는 반응이 안 나오네.
마왕처럼 옥좌에 앉아 ‘오호홋’ 하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차라리 슬라임과 싸울 때가 더 스릴 있었다.
“디네스. 장난은 그만두자.
황자님의 명으로 너를 구속한다.”
미란다 원칙은 필요 없겠지?
“…네가 사람도 아닌 괴물이라면, 잡히는 데 불만은 없겠지?”
“너도 괴물이잖아.”
나는 흠칫했다.
“싸우지 말고, 친구 하자. 시현.”
뭐지….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럴 생각 없어.
가만히 두면 제국을 공격할 거잖아?”
“어차피 사람끼리 있어도 주기적으로 머리가 바뀌잖아?”
“그건….”
“가끔은 마물이 지배하는 세상이 와도 좋겠다는 생각 안 들어?”
“너무 끔찍한데.”
“인간 여자는 모~든 종족한테 인기 있어.
인간 남자만 독점하면 불공평하잖아.”
“정신에 문제 있어?”
디네스의 정신 오염 수치는 0%.
믿기지 않지만, 순결한 상태다.
인간 남자와 섹스한 횟수는 몰라도, 마물과 교배섹스한 경험은 없어.
아멜리아와 같은 편 아니랄까 봐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네.
마물의 세상이 온다고?
누가 그런 걸 진지하게 원할까.
딱.
갑자기 디네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멈춰!”
신애가 칼을 빼 들고 위협했지만, 디네스는 생글생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 소리….
석재 문이 바닥을 질질 끄는 소리다.
문이 닫힌 거야.
“뒤늦은 환영 인사가 되겠지만, 받아줄래?”
뭘 하려고….
디네스의 동작에 맞춰 벽면을 이루던 돌덩어리들이 올라가더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슬라임이 눈에 들어왔다.
족히 천 마리는 되겠는데?
“기다려.”
“으응. 기다리지 않을 거야.”
제길.
생각보다 성급하네.
거의 다 왔지만, 세이나가 올 때까지 이야기를 질질 끌 걸 그랬나?
아! 그런 거 못 해!
“우리를 슬라임 밥으로 주는 게 환영 인사라고?”
“10분…. 아니 1분만 있어도 생각이 바뀔 거야.”
“지랄하지 마. 젖탱이만 큰 년아.”
“….”
“….”
신애가 화들짝 놀라 나를 돌아봤다.
디네스는 손을 꼬옥 쥐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뭐라고…?”
“젖탱이만 큰 년.
네 보지도 핑크색인지 확인해 줄 테니 딱 기다려.”
“…너, 너…! 슬라임 밥으로 줄 거야!”
“어~ 그래. 해 봐. 나는 너를 오크랑 고블린 좆집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나중에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되고, 울면서 구해달라고 해도 소용없어.”
말로는 한마디도 안 지는 나였다.
디네스는 입술을 깨물고 침묵했다.
말 대신에 마력을 방출하기로 한 듯 방에 대뜸 돌풍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와중에도 소리친다.
“엄마 아빠도 없는 년아!
도망치려면 지금 도망쳐라.
큰 엉덩이 실룩거리면서 도망쳐 봐.”
“입에 걸레 물었니?!”
“어, 물었어. 시발년아!”
“시현 님. 옵니다!”
슬라임들이 풀려났다.
“미안. 못 참고 욕 박았어.”
슬라임 파도가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친다.
“저는 어떤 상황에도, 시현 님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신애가 얼마 안 남은 망사 슈트에서 검은 구체를 빼 들었다.
“최선을 다해 싸우겠습니다.
몸을 숙여 주세요!”
“설마…!”
쾅!
신애는 벽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엄청난 압력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이명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폭연이 한 차례 걷히더니, 신애가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흐름을 탄 슬라임들을 폭발로 멈추고, 돌덩이들을 차폐물로 이용해서 싸우고 있어!
대단해, 신애!
나 역시 두 손 놓고 지켜보려고 도발한 게 아니다.
여기까지 와서 놓칠 순 없잖아!
강화 촉수 갑옷 덕을 볼 때가 왔다.
“좀 더 긴 무기로 부탁해!”
나는 아무것도 없는 맨손에서 검을 뽑았다.
??? 검이다.
미확인, 언노운, 다양한 명칭이 떠올랐지만, 나는 이제 촉괴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뛰어오르는 슬라임들을 한 번에 베어낸다!
톱날처럼 고속 회전하는 칼날에 닿은 슬라임은 닿자마자 모조리 잘게 부서졌다.
내 움직임은 마치 검과 하나가 된 듯 자유로웠다.
전보다 훨씬 좁은 공간에서, 사방팔방 둘러싸여 싸우고 있는데도 빈틈이 없다.
처리하는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때, 슬양이의 여자친구 분홍이가 내 팔에 달라붙었다.
뭐야?
“방패로 써달라고?”
“….”
분홍이는 몸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이런 재주가 있었네….
슬양이는 어딨지?
슬양이는, 신애와 함께 절묘한 콤비 플레이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녀가 동작이 큰 발차기를 시도할 때마다 빈틈을 노리는 슬라임을 쳐내 주고, 서로 눈빛─한쪽은 눈 같은 건 없지만─을 교환한다.
“좋습니다. 그 움직임입니다!”
“뀽뀽!”
“이번에는 좀 더 크게 갑니다!”
“뀨웅!”
뭐야. 신애.
나보다 더 신났어.
슬양이를 그렇게 기피하더니, 완전히 빼앗긴 기분이다.
어쨌거나….
이제 누구도 서로의 발목을 잡지 않으니, 슬라임 천 마리 정도는 우스웠다.
모두 신애가 만들어준 전장 덕분이다.
파괴된 바윗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슬라임이 동선에 제약을 받는 바람에, 많은 수를 내세워 일제히 덮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방어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건 당연한 일!
조금만 기다려라. 디네스.
내 출셋길의 제물로 삼아주마!
“하앗!”
“시현 님. 전기 슬라임입니다!”
“어디?”
이쪽에 있네.
나는 살짝 긴장했다.
저놈은 이 동굴의 중간 보스 같은 거라서, 쉽게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번 해볼게!”
요령은 알아.
닿지 않고 처리하면 되는 거잖아?
나는 촉괴검을 투창으로 변형했다. 한 마리 떼어 놓게 돼서 촉수 갑옷의 힘도 줄어들지만, 던지기로 일격필살의 공격이 가능해.
“흐읍!”
나는 전기 슬라임에게 창을 던져 맞혔다.
촥!
꼬치에 꽂힌 고기처럼 관통당한 전기 슬라임은 그대로 터진다.
타격감 끝내주고!
재빨리 달려가서 창을 회수한 다음에 검으로 돌린다.
어느새 남은 슬라임은 신애가 모두 정리한 후였다.
“벌써 끝이야?”
나는 신애와 함께 디네스를 돌아봤다.
이상하리만치 차분하다.
아무리 강해도 두메른보다 강할 리 없어.
무력은 두메른이 최강이라고 했잖아?
지금 상태라면 유리검의 공격도 두 번 정도는 받아낼 수 있어.
그런데도, 디네스의 여유는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