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ghly another world TS thing RAW novel - Chapter 71
71회
유리검
혼자 남겨진 나는, 알몸으로 침대 위를 빈둥거렸다.
오크들의 얼굴마담.
그런 걸 어떻게 해?
두메른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멜리아를 용서할 수 없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돌아가야 해.
지금이라면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믿는답시고 전황을 떠벌린 잘못이다.
이대로 숲까지 도망쳐서 권역 포탈에 숨어버리면, 두메른은 나를 놓치게 되고.
혼잡한 틈을 타 제국군으로 돌아가면 문제없다.
나는 널브러진 콘돔을 치우고 벌떡 일어났다.
“부혹!”
“부옥. 내 옷을 준비해.”
“또 외출이냐. 부옥?”
“떠날 거야.”
“두메른 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부옥.”
“알 게 뭐야.
여기 계속 있다간 두메른의 신부가 되고 말 거야.”
부옥이 내 젖탱이를 흘낏거렸다.
“뭐해? 옷 안 가져오고.”
“…시현이 도망치면 부옥은 죽는다. 부옥.”
“질내사정 섹스하기 싫어?”
“흑발 암컷. 약속 안 지킨다.”
“확! 가져와.”
부옥은 훌쩍거리며 내 옷을 가져왔다.
속옷을 입고 재킷을 걸치니 마음이 안정된다.
요즘 당연하다는 듯이 벗고 다녔지만, 밖을 돌아다닐 때는 뭐라도 걸쳐야지.
“정말로 떠날 거냐. 부옥?”
“너 요즘 말이 많이 늘었다.”
“공용어 배웠다. 부옥.”
“그럼 부옥좀 그만해.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
“노…노오로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흑발 암컷. 두메른 님과 있을 때 행복해 보였다. 부옥.”
…걷어차 버릴까?
“시현이 이쪽으로 왔으면 좋겠다. 부옥.”
“나는 사람이야. ‘이쪽’ ‘저쪽’ 하면서 너희 편으로 갈 수 없는 몸이라고. 알아?”
“아멜리아 황녀도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말했다 부옥.”
“그년 얘기는 꺼내지 마.”
“시현이 이쪽으로 오면 온종일 부옥과 임신섹스 할 수 있다. 부옥.”
“누가 너랑 임신섹스를 한다고.”
부옥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다가온다.
“시현이. 자지 넣으면 솔직해진다. 부옥.”
“꺼져.”
“덮쳐준다. 부홋! 보지섹스로 솔직하게 해준다.”
“아!!”
나는 부옥의 자지를 힘차게 걷어찼다.
나한테 달려오던 힘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진 부옥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부…. 홋.”
“지랄하고 있어. 짜증 나게.”
섹스 좋지.
자지 좋아서 허덕일 때라면 모를까. 맨정신일 때 달라붙으려고 해?
두메른이면 몰라도 하찮은 돼지 오크에게 그런 걸 허락한 기억은 없다.
나는 기절한 부옥을 밟았다.
“너랑 섹스할 일은 없어. 두메른이 있는데 왜 너랑 섹스하겠어?”
“….”
“진짜 기절했네.”
쓸만한 거 챙기고 잽싸게 튀자.
며칠 빈둥거리면서 봐둔 패물을 주머니에 욱여넣고 나가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창문에서.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이미 누가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웬 여자?
몸에 빈틈없이 달라붙는 망사 슈트를 입고 복면을 쓴 검은 머리 여자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당신이 시현입니까?”
“그런데요.”
꼭 닌자 같네.
온몸을 무장하고 있는데 움직이면 소리 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등허리에 찬 짧은 칼 정도?
“서안 황자님 명으로 온 신애라고 합니다.”
“아…!”
“편하게 있어 주세요. 그런데 그 오크는….”
“유일한 간수인데, 기절했어요.”
“숨통을 끊을까요?”
“괜찮아요.”
천하의 겁쟁이 부옥이 ‘숨통을 끊는다’라는 말이 나왔는데도 꿈쩍하지도 않는 걸 보면 기절한 게 확실하다.
…죽은 건 아니겠지?
혼신의 힘으로 불알을 걷어차긴 했는데.
“…안 일어날 거예요. 당분간.”
“두메른이 자리를 비운 틈에 왔습니다. 황자님의 전언입니다.”
신애는 나한테 서신을 건넸다.
“여기서 읽어주세요.”
무슨 내용이지?
서론은 넘기고 핵심만 파악한다.
아멜리아를 쫓고 있으니 현재 위치를 사수해달라는, 서안 황자님의 간곡한 부탁이 적혀 있었다.
윽….
‘그 바보 같은 황녀는 고립돼 죽겠군’
두메른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탈출할 수 없잖아.
두메른이 지면 아멜리아가 죽어.
서안 황자님은 황녀를 생포하고 싶은 거야.
내가… 내가 중간에서 컨트롤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서안 황자님이 아멜리아를 잡을 때까지.
“괜찮으십니까?”
내 동요가 심상치 않다는 걸 헤아렸는지, 신애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이 내용은….”
“황자님과 시현 님만이 아시는 내용입니다. 저 역시 뭐라고 쓰였는지 모릅니다.”
극비문서….
정황상 헤나가 서안 황자님에게 이 성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알린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이 서신으로 나한테 긴밀한 협력을 요구하는 거고.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려면 황자님의 명을 무시할 순 없다.
제국군과 황자님의 최우선 목적은 서로 다르다고 보는 게 옳다.
제국군은「오크를 몰아내자」
황자님은「아멜리아를 생포한다」
황자님의 뜻을 이루려면 내가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두메른이 본대를 물리게 두면 안 돼.
아멜리아를 사로잡고 나서 오크를 물리친다….
이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내용을 확인하셨다면….”
“확인했어요.”
신애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문서는 보랏빛 화염에 휩싸여 사라졌다.
“그러면 저는 이만.
다른 소식이 있으면 알리러 오겠습니다.”
“나, 나더러 계속 여기에 있으라고요?”
“저는 그저 전령일 뿐. 판단은 시현 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신애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꿰뚫는 듯했다.
“시현 님께 제 흔적을 남겼으니, 위치가 바뀌더라도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건 알겠는데….”
“황자님께 전할 말씀이라도?”
제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황자님 입맛에 맞춰 움직이는 수밖에.
내가 고생하는 거 알아주기는 할까?
“…아멜리아는 백인대를 데리고 두메른과 독자적인 노선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오크를 필요 이상으로 몰아넣으면, 아멜리아가 제국군 손에 잡힐 거라고 전해줘요.”
신애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전달하겠습니다.”
와. 뭐야.
사람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게 가능하네.
…나는 신애가 있던 자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부…. 부오….”
그때, 부옥이 소리를 냈다.
눈물 콧물 질질 흘리는 걸 보니 상당히 아팠던 모양이다.
“야, 괜찮아?”
나는 부옥을 일으켜 주었다.
“흑발 암컷…. 너무해…. 흑흑…. 부옥이 맨날 청소하고, 빨래하고, 우어엉….”
“알았어. 알았어. 야. 미안하다.
탈출은 없던 일 됐으니까. 계속 내 하인 해.”
“부옥…!!”
부옥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너무 혹사했나?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어 침대에 눕혀주기로 했다.
끄으응. 무거워 죽겠네.
부축한 채로 질질 끌고 와서 어떻게든 침대에 눕힌다.
이제 어쩌지?
…탈출 계획도 흐지부지해졌으니, 밥이나 먹기로 했다.
“또 왔어요.”
“더 줘?”
“네.”
“오늘은 멀쩡하게 입었구먼.”
“원래 입던 옷이에요.”
물론, 주목받는 정도는 미니 드레스 입고 있을 때와 큰 차이는 없다.
두메른 전용 암컷 시현이는 오크들 머릿속에서 몇 번을 강간당하고 딸감으로 쓰였을까?
오크들은 농익은 열매를 올려다보며 침만 질질 흘리는 꼴이다.
먹으면 복통 나는 정도가 아니라는 걸 다들 알기 때문에.
“…코스카가 명예로워졌다.”
“두메른 님의 명령….”
두메른이 아침부터 나가더라니, 부대 편제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다.
오크들 사이에서 그 얘기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영민한 오크 코스카가 두메른의 오른팔이 됐다는.
얼굴 또 볼지도 모르겠네.
…내가 보기에 오크는 두메른을 제외하면 살이 쪘냐 아니냐의 차이밖에 없는, 녹색 괴물일 뿐이지만.
그보다 고민이 크다.
사람 편인데 오크가 지게 두면 안 된다니….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꼬였지?
이게 다 아멜리아 때문이다.
잡으면….
서안 황자님에게 넘기기 전에 내가….
나는 마음속에서 어두운 욕망이 꿈틀거리는 걸 느끼고 흠칫했다.
비르를 시켜 강간하는 건 정도를 넘었다.
헤나도 분명히 지적했다.
여성을 성적으로 겁박하는 건 비열한 짓이라고.
딸도 있는데 자중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기회가 오면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으깬 감자를 입에 야무지게 밀어 넣었다.
“저….”
할머니가 어려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갑자기 왜 그러시지?
“무슨 일이세요?”
“…처자. 혹시… 오크들이 떠난다는 게 정말인가?”
“…뭐 걱정되는 거라도 있으세요?”
나는 넌지시 할머니의 속을 떠봤다.
“떠날 때, 이동에 방해되는 포로는 다 죽인다고 들었어.”
“…그럴 리가 없어요.
오크들이 사람을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잖아요?”
“내 손주는 다리가 불편해. 여기 잡혀 오기 전에 다쳤어….”
윽….
오크들이 다친 남자까지 챙길까…?
자신 없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할머니는 곧 울 것처럼 되었다.
“도와주게. 손주를 보게 해줘.”
“저, 저라고 뭘 할 수 있겠어요. 잡혀 있는 신세인데.”
“….”
“할머니 손주를 찾아볼게요. 한 번 둘러보고, 그런 사람이 있는지 찾는 정도라면 가능할 거예요.”
“정말인가?”
“예. 찾아보고 말씀드릴게요.”
“고맙네! 처음에 내가 뭐라고 했던 건….”
“됐어요. 그런 말씀 안 해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겠지.
식당에는 나 말고 괴물밖에 없는데.
그러고 보니 다른 여자는 어디에 있지?
밖으로 나가보니, 다른 여자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한눈에 보였다.
개처럼 엎드린 채 정액 섞인 꿀꿀이 죽을 먹고 있다.
내가 고블린 소굴에 있었을 때 당한 취급과 비슷하다.
“우홋! 남편 있는 유부녀 보지에 30연속 질싸 간닷!”
“아…. 아아앙!”
항상 보던 광경이다.
착잡하군.
두메른은 영민한 오크 코스카와 함께 있었다.
때마침 눈이 마주쳤다.
“시현. 산책 중인가?”
“야. 포로 취급은 원래 이런 식이야?”
“너, 두메른 님께 무슨….”
“됐다.”
두메른은 코스카를 말리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윽.
이렇게 보니까 기죽네.
올려다보느라 목이 아팠다.
“오크들은 강하고 끈질기다.
여자를 범할 때는 주저하는 법이 없지.”
“남자는? 다친 사람이 있거나 하면 어떻게 돼?”
“보통은 죽여서 묻는다.”
“…그래.”
풀어주면 다시 덤빌 놈들에게 나눠줄 음식은 없겠지.
할머니 손주도 어쩌면 지금쯤….
관두자. 찾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마음은 정했나?”
“나는….”
“두메른 님!”
그때, 전령으로 보이는 오크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냐?”
“습격입니다.”
“누가 맞서고 있지?”
“기형 님이 맞서고 있습니다.”
“코스카. 출격 준비해라.”
“옛.”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간다.
“상대는 누구지?”
“유리검입니다!”
“나가야겠군.”
두메른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시현. 정해라.”
이 상황에 오크를 돕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애초에 서안 황자님의 명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이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나는 마음을 정했다.
“같이 갈게.”
“준비해라. 내 말에 태워주마.”
“나, 나 말 타본 적 없는데엑…!?”
두메른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태워줄 테니.”
“다, 다들 보잖아. 이러지 마!”
나는 두메른의 몸만큼 거대한 말 위에 내려졌다.
떨어질까 봐 두메른을 꽉 붙잡고 눈을 감고 있었더니.
금세 섬뜩한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아악!”
“게에엑!”
놀랍게도 상대는 오십 명이 안 되는 소수 정예였고, 중심에는 유리검 아스테로 추정되는 여검사가 있었다.
‘서부 지역 몬스터들의 씨를 말렸다는 헌터 길드 최강의 검사’
트리샤가 그렇게 말했었지.
같은 금급 모험가 중에서도 격이 다르다고.
싸우는 걸 보니 알겠다.
아스테는 뛰어다니고 있지만, 날아다니는 것처럼 움직였다.
춤사위 같은 검 놀림으로 오크들을 썰어 넘긴다.
그러면서도 표정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것이, 무슨 살육 기계 같았다.
두메른은 아스테를 가리켜 말했다.
“늑대의 눈을 가진 여자다.”
내가 느낀 인상과는 다르지만, 두메른의 말도 이해가 되었다.
회색빛 머리에 날 선 눈매.
앳된 얼굴에서 느껴지는 사랑스러움마저도 검기에 녹여낸 여자.
손가락에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은, 속이 비치는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위태로우면서도 예술 같다.
그녀는 주변에 널린 오크를 정리하고, 이쪽을 돌아봤다.[작품후기]오늘 시현이의 지명도는 4,627!
추천 감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