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te 1 RAW novel - Chapter 23
23. 송별회
사흘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지났다. 탐사도 끝내고 검사공도 무사히 통과가 되어, 지금 수연 가든은 송별회로 떠들썩했다. 장현 건설의 수장인 장현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자, 모두 잔 높이 드시고요!”
태산도 가득 차려진 상에 앉아 소주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동안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직원들 잘 살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오늘은 저희가 한턱 크게 쏘는 날이니까요, 많이들 드십시오.”
말이 송별회지 거의 동네잔치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감독관인 농어촌공사 문 차장뿐만 아니라 충남지사장까지 참석한 자리였다. 마을 이장님, 면사무소장님, 동만의 마을 친구들까지 모두 모였다.
“세호야, 잠깐만.”
태산은 쟁반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세호를 붙잡았다. 요 며칠간 수연과 스쳐 지나기만 했었다. 드나드는 사람도 많고, 보는 사람도 많아서 좀처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잠깐씩 통화를 하긴 했지만, 겉도는 이야기뿐이었다.
“예, 왜요?”
“누난 어때?”
“누나요? 누나가 뭐요?”
세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프다며.”
“아아, 그거요. 가끔 그래요.”
시원치 않은 대답을 듣는데, 저쪽에서 동만이 세호를 불렀다.
“세호야, 5번 테이블에 소주 한 병하고 콜라 두 병 가져다 드려.”
그 말에 재빠르게 세호가 냉장고로 가 버렸다. 소주병을 챙기는 사이에도 반찬이며 공깃밥을 가져다 달라는 주문이 밀려들었다. 아무래도 세호에게 정보를 얻기는 그른 것 같다.
“전화로 할 말이 아닌데.”
태산은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아침이면 철수를 하는데, 수연과 도통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어 가슴이 탄다. 성격 같아선 누가 보든 말든 나랑 이야기 좀 하자고 하고 싶지만, 수연의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들키지 마시라구요.’
수연이 난처해지길 원치 않는다. 수연이 자신에게로 오는 길은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 5월의 국도 같았으면 좋겠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초록 잎들이 산들거리는,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태산은 인생이 무조건 아름답다거나 행복하다고 믿는 낙관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살아가는 동안 사람은 불가피하게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는다고 믿었다. 무차별적인 폭력과 악의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것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적어도 자신의 일로는 한 줌의 걱정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수연이 자신이 옆에서만큼은 안전하다고 느끼기를 바랐다. 수연에게는 언제나 웃음이 되고, 위로가 되고, 휴식이 되고 싶었다.
“몰래 만나려니 힘드네.”
태산은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웃음이고 위로고 만날 수가 있어야지 뭐가 되도 될 텐데, 여차하다가는 제대로 된 인사도 못 하고 올라가게 생겼다.
철수하는 내일 아침은 정신없이 바쁠 게 뻔하고, 혼자 뒤늦게 출발을 할까 생각했지만 올라가는 길에 용인 현장에 같이 들러 보자는 사장님 지시가 있었다.
“후우.”
답답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수연을 도통 볼 수가 없는 데다, 보는 눈이 많은 이 상황에서 단둘이 빠져나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전화로 얘기를 하기는 싫었다.
이제 올라가니 아프지 말고 잘 있으라는 말은 얼굴을 보고 하고 싶었다. 주말마다 내려갈 테니 기다리라는 말도, 이사할 때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부 수연의 얼굴을 마주 보고 하고 싶었다.
잠깐 창문이라도 보고 싶어서 신발을 신으려는데, 홀 테이블에 앉은 마을 이장님이 크게 태산을 불렀다.
“우리 장 팀장님! 고생 많으셨소. 자, 여기 한 잔 받으셔야지.”
이렇게 테이블마다 붙잡혀서 마신 술만 몇 잔인지. 마음은 타지만 태산은 그래도 싱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예, 주십시오.”
“사람 성격 참 듬직혀. 아주 좋아.”
“자주 듣습니다.”
술잔 가득 채워진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젓가락으로 집어 주는 안주도 선뜻 받아서 입에 넣었다. 복숭아 보내 줄 테니 주소를 남기고 가라는 말도 듣고, 요즘 젊은 사람들 취직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힘들겠다는 말도 들었다. 나라 걱정에서부터 세종시 아파트 매매가의 현황까지 듣고 나니 밖은 어느덧 깜깜해져 있었다.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수연과 통화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태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붙잡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목소리의 밀도가 높았던 공간에서 탁 트인 공간으로 나오니 공기조차 다르게 느껴진다.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태산은 크게 숨을 쉬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저수지로 난 계단을 내려가며 핸드폰을 들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간 뒤에 수연이 전화를 받는다.
– 응.
수연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기분이다. 태산은 잠시 미소를 지었다.
“뭐 하고 있었어?”
– 밖에 잠깐 나왔어.
“커피 마시러?”
– 아니. 그냥 산책하러.
“산책…….”
어디서 하느냐고 물으려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눈에 익은 인영이 보였다. 이제야 만났다. 가까이에서도 이렇게 애를 태우나.
태산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고 수연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다가오는 태산에게서 옅은 술 냄새가 풍겼다. 얼굴색은 그대로이지만 눈 부근이 살짝 붉어진 것도 같다. 수연은 미소 지으며 다가오는 태산을 바라보았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태산이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아. 잠깐 피곤했던 건가 봐.”
태산의 뒤로 불이 환하게 밝은 수연 가든이 보였다. 마당에 차도 여러 대 서 있고, 떠들썩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드문드문 들려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쁜가 보다 했는데, 송별회가 열리고 모두들 인사를 나누니, 내일이면 정말로 태산이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났다. 심란한 마음에 산책을 나온 길이었는데, 태산이 눈앞에 있다.
“송별회는 끝나 가?”
태산이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멀었어. 지금 노래방 기계 꺼내더라.”
“홍관 아저씨가 꺼내자고 했지?”
“응. 빨간 해병대 모자 쓰신 분.”
태산의 말에 수연이 미소 지었다. 수연 가든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닭도리탕과 백숙을 하는 감나무집의 홍관 아저씨는 언제나 붉은 해병대 모자를 쓰고 다녔다.
“처음에.”
태산이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응.”
“여기 도착하고 바로 이장님이랑 현장 답사 가는데 두 분이 따라오셨거든. 아버님하고, 홍관 아저씨.”
기억이 난다. 시간보다 이르게 업체 직원이 나왔다는 이장님의 전화에 아버지가 황급히 내려갔었다.
“그때 내가 숙소를 구한다고 했더니, 두 분이 배틀을 벌이시더라고. 이장님이 아버님 편 들어주셔서 이쪽으로 온 건데.”
우리 집엔 대학 졸업도 못 한 자식이 둘이여, 나는 셋이여, 그쪽은 졸업은 했잖여, 옥신각신 다투던 목소리가 생생해서 태산은 빙그레 웃었다.
“다시 생각하니 아찔하네.”
한 끗 차이로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눈앞의 수연이 새삼 기적과도 같이 느껴졌다.
“수연 가든 간판에 설마 아니겠지 했던 게 어제 같은데.”
태산의 말에 수연이 저수지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시간 참 빨라.”
“그러니까.”
잠시 대화가 끊겼다. 까만 수면 위, 가로등 불빛에 물비늘이 반짝거렸다. 수연은 잠깐 한숨처럼 길게 숨을 쉬었다. 담담하게, 담담하게. 주문처럼 속으로 외우고 고개를 들어 태산을 보고 말했다.
“내가 먼저 내려갈 줄 알았는데.”
그래서 안심했었다. 태산의 뒷모습 같은 건 안 봐도 될 것 같아서, 남아서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떠나는 사람일 거라 생각해서 마음을 놓았었다.
멀리서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었다. 태산이 나 이제 올라가, 하고 전화로 말하면 그래 잘 올라가, 하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사를 서둘렀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보내게 되었다.
5월이 코앞인데도 일교차가 커서인지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싸늘했다. 태산이 입고 있던 얇은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
“춥겠다.”
수연의 어깨에 외투를 걸쳐 준다. 두 팔을 넣지 않아도 푹 잠길 것처럼 컸다. 태산이 허리를 굽혀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여몄다. 제일 아래 단추에서부터 하나씩 단추를 잠그며 태산이 고개를 든다. 턱에 닿을 것 같은 옷깃의 단추를 잠가 주며 다정하게 웃는다.
“됐다.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수연은 태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애써 침착하려는 자신에 비해 태산은 언제나 흔들림이 없다. 언제나 자신만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겁을 내고, 흔들린다. 장태산은 아무렇지 않은데.
“생각보다 빨리 올라가게 되어서, 다 못 채웠는데.”
태산이 말을 하며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수연은 그 모습을 보다가 불쑥 말했다.
“이제 올라가면 보기 어렵겠다. 조심해서 올라가.”
태산의 눈썹이 쓱 들렸다.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게 무슨 뜻이지?”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수연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가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었다. 매번 침착하기만 한 태산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심술인지, 자신과 다르게 흔들림이 없는 태산이 야속해서인지, 끝까지 네가 먼저 나를 붙잡으라는 알량하기 짝이 없는 자존심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뒤섞인 마음인지 수연도 구별이 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어른스럽고 담담한 인사를 하려 했던 원래의 자신의 의도와는 백만 년 먼 거리에 있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뱉은 말을 도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수연은 밀어붙였다.
“무슨 뜻이긴. 말 그대로지. 이제 올라가면 보기 어려우니까, 조심해서 올라가라고.”
태산이 눈을 좁히며 수연을 응시했다. 수연은 고집스럽게 그 눈을 바라보았다.
“하.”
어이가 없고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태산이 헛웃음을 웃었다. 잠깐 저수지 쪽을 보며 한 손으로 얼굴을 쓱 쓸어내리고는 수연에게 다시 물었다.
“보기가 어렵다는 건, 볼 생각이 없다는 건가?”
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은 할 말이 없었다. 마음과는 반대로 말을 해 놨으니, 긍정도 부정도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태산이 어이없어하며 너 같은 이기적인 애랑은 그만두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태산의 날카로운 눈빛이 수연을 샅샅이 훑었다. 그 작은 머리통 안에 들어 있는 알량한 마음까지도 다 들춰 보겠다는 눈빛이다. 심술부리는 어린아이처럼 서 있는 수연을 한참 보더니 태산이 양손으로 수연의 얼굴을 단단히 잡았다.
“뭐 하는…….”
“잘 들어.”
수연의 얼굴을 자신에게 고정시켜 놓고 태산이 말을 이었다.
“우리 사이에 그런 옵션은 이제 없어. 네가 보고 싶다고 하면, 나는 가. 네가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난 그걸 사 오지.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라도 데려다주고, 네가 발이 아프다 하면 업어 주지. 그게 우리 관계에서의 네 역할이고 내 역할이야.”
“그게 무슨…….”
태산이 수연의 양 볼을 잡고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헤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
“설마 처음부터 잠깐만 만날 생각이었던 건가?”
“…….”
태산이 진심으로 어이없어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우리가 무엇이냐며 화를 낸다. 내 마음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느냐며 화를 내는 태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수연은 입을 열었다.
“정말로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올 거야?”
태산이 그게 질문이 된다고 생각하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안 가?”
“밤에 자다가도?”
“가.”
“새벽에도?”
“간다고.”
“일하다가도?”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 안다. 그래도 대답이 듣고 싶었다.
“가. 그게 언제라도, 나는 너한테 가.”
바보 같은 질문에 바보 같은 대답이라 생각했지만 이제껏 들썩거렸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는 말이었다. 수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쩌면 이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아마 그럴 틈이 없을걸.”
태산이 눈물이 고여 있는 수연의 눈을 보며 말했다.
“매번 내가 보고 싶어서 먼저 달려가고 있을 테니까.”
수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산이 엄지손가락으로 수연의 눈물을 밀어내고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짧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떼고는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도망가지 마. 내가 잘할게.”
여기서 더 어떻게 잘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눈물이 자꾸만 나오려 해서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태산이 빙그레 웃더니 수연을 품으로 당겨 안았다.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태산의 입술을 수연이 손으로 막고는 물어보았다.
“그럼 키스도 하지 말라면 안 할 거야?”
태산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입을 가린 손을 잡아 내리며 말했다.
“아니. 할 거야.”
피식 웃는 수연의 입술 위로 태산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사랑의 미로가 울려 퍼지는 밤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시추 장비를 실은 커다란 트럭이 제방을 내려왔다. 가든의 마당 한편에서 보이는 제방 둑에는 이제 비닐로 덮어 놓은 작은 장비만이 남아 있었다. 장비를 싣고서 제일 건설의 김 사장이 먼저 떠나고, 재민과 태산만이 수연 가든으로 올라왔다.
“형님. 이제 온라인에서 만나요.”
세호가 재민을 안고 흑흑 우는 시늉을 했다. 수연은 뒤에서 세호의 꼴불견 같은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금방 다시 내려올 텐데, 뭘 그려.”
태산과 재민이 인사를 왔다는 말에 동만이 가든 문을 열고 나오며 말했다.
“그래도. 한 달은 못 볼 거 아니야. 형님, 한 달 뒤에 또 봐요.”
“그때도 이리로 와 줄 거죠?”
뭔가를 잔뜩 쇼핑백에 싸 들고 나온 정자가 말했다.
“이건 된장하고 고추장인데, 박 대리님 거. 많이는 못 담았어요. 장 팀장님은 혼자 산다 해서 밑반찬으로.”
“감사합니다. 당연히 수연 가든으로 와야죠.”
된장을 받아 든 재민이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을 하더니 먼저 차에 올랐다. 이게 다 무슨 소린지 몰라서 수연은 눈만 크게 떴다.
“팀장님 먼저 출발할게요.”
재민이 먼저 출발을 한다. 그 틈을 타 수연은 세호에게 작게 물어보았다.
“누가 다시 와?”
“몰랐어? 지금 저거 하다 만 거래. 나머지 하러 또 온다는데?”
하.
수연은 어이가 없어서 태산을 바라보았다. 세호도 엄마도 아빠도 아는데 혼자만 모르고 있었던가 보다. 그런 중요한 얘기를 안 해 준 거야?
찌릿 태산을 노려보자 되려 몰랐냐는 표정으로 수연을 본다. 누가 말을 해 줬어야 알지. 어휴. 진짜.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 별 유치한 짓을 다 했는데.
“잘 지내. 이사도 잘 하고.”
태산이 수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더니 주머니를 뒤진다.
“어제 주려고 했다가 못 준 거. 급하게 올라가게 돼서 다 채우진 못 했지만.”
에브리 먼데이의 도장이 찍힌 쿠폰이 열 장이다. 열 개의 도장이 찍혀 있는 쿠폰이 아홉 장이고, 나머지 한 장은 두 개가 찍혀 있었다.
“오올, 누나 좋겠다.”
세호가 옆에서 한마디를 한다. 태산이 두 개가 찍힌 쿠폰을 빼고 나머지 아홉 장을 수연에게 건넸다.
“이건 다시 내려오면 그때 마저 채워서 줄게.”
수연은 잠시 아홉 장의 쿠폰을 바라보았다. 빠지지 않고 도장을 받던 태산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곡차곡 모아 두었을 태산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수연은 흐리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잘 마실게.”
두 사람만이 통하는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본 동만이 어흠 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휘휘 팔을 젓더니 말했다.
“늦겠네. 어서 내려가 봐야지.”
“아직 시간 넉넉하구만, 늦긴 뭐가 늦어요. 인사하던 건 마저 해야지.”
정자가 동만을 쓱 밀었다. 세호도 동만의 앞을 막아선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태산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갈게.”
“응.”
“또 보자.”
“그래.”
수연의 대답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태산이 뒤를 돌아 가족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태산이 탄 차가 멀어진다. 수연은 마당 끝에 서서 오래오래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