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al Loader - Wa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77
00575 Game No. 575 =========================================================================
Game No. 575
월드 챔피언십부터 시작해도 올스타전, 종족 최강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진짜 휴가가 시작되었다.
뭐 그래 봤자 10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게 어디냐. 당장 다음 시즌 시작하면 바쁘게 뛰어 다녀야 하는데.
마음 같아선 이 스포츠 대상 날까지 침대에 붙어 생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지.”
해야 할 일이 조금 있거든.
오늘 박성훈 코치님을 만나기로 했다. 경기장에서 스치듯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나는 건 처음이다.
예전처럼 꼬박꼬박 코치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지만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아니던가?
나를 처음 지도해 주신 분이다. 내 가능성을 처음 알아봐 주신 분이기도 하고.
코치님께 드릴 선물을 챙긴 후 숙소를 나섰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했는데.
“어? 벌써 오셨어요?”
“차가 안 막혀서 빨리 왔네.”
코치님이 먼저 와 계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올 걸 그랬다.
“이야. 신수가 아주 훤하네. 훤해. 얼굴빛도 좋고.”
“뭘요. 식사 안 하셨죠? 제가 한 턱 제대로 쏘겠습니다!”
코치님께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가격이 꽤 나가는 곳을 일부러 골랐다.
예상대로 코치님께선 부담스러워하셨지만 억지로 안으로 모셨다. 이래서 어디서 식사를 한다고 미리 말 안했다. 만약 처음부터 여길 온다고 말했다면 한사코 거절하셨을 테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음식이 하나둘 준비되었다. 음식이 나왔음에도 대화는 끊길 줄 몰랐다. 함께한 세월이 6년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 네가 이렇게 잘될 줄 알았다.”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내가 널 1군으로 올리려고 애썼지.”
“아. 죄송해요.”
“뭐가?”
“그때요. 제가 조금 더 잘했어야 했는데. 적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실수는 하면 안 됐는데.”
승드셋과 몰수로더.
하나만 해도 역대급인데 두 개를 동시에 터트렸다.
날 강력하게 추천해 준 코치님에게 제대로 폐를 끼친 거지. 그날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상당히 곤혹스러우셨을 거다.
내 말에 코치님이 피식 웃었다.
“아. 아. 뭐 그거 가지고 그러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하지.”
그 후 내가 방출된 것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에이.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코치님께선 저에게 기회를 주셨고 전 그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이에요. 그냥 서로 타이밍이 엇나간 거죠.
“크. 진짜 잘 먹었다. 이런 음식을 너에게 얻어먹을 줄이야. 진짜 세상일 모르는 거네.”
코치님께서 맛있게 드셨다니 기분이 굉장히 좋네요.
“이제 어디 뭐하냐?”
“잠깐 들릴 곳이 있어서요.”
“그래? 연락 자주 하고. 먼저 들어간다. 그럼.”
흠. 저도 연락 자주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라이벌 팀이다 보니 좀 눈치가 보이네요. 최소한 지금처럼 시즌 끝날 때마다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넵! 오늘 만나서 즐거웠어요!”
“나도다. 짜샤.”
코치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 발걸음을 옮겼다.
****
코치님과 헤어진 후 들른 곳은 내가 S1에서 방출된 후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식당이었다. 입소문이 난 식당이라 일부러 식사 시간을 피해 찾았다.
-딸랑.
문을 열자 익숙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전에 있을 때도 계셨던 분이다. 아직까지 계셨구나. 오래 일하진 않았지만 아는 얼굴이 보이자 반가움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어서 오세……! 어? 총각은?”
“저 알아보세요?”
놀라운 건.
“당연하지.”
나를 알아보신다는 것이었다. 그리 오래 일하지도 않았는데 기억해 주시는 게 감사했다.
“기억 못할 수가 없지. 진짜 설거지 엄청 잘 했는데.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잘했어.”
지금도 설거지는 잘 합니다.
“식사하러 왔어? 뭐 줄까?”
“아. 아니에요. 식사는 방금 했어요.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인연의 크기를 수치화 할 수 있을까?
수치화 할 수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매겨야 할까?
오래 알았으면 큰 인연이고 짧게 알았으면 작은 인연일까?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위처럼 생각한다면 그 사람에겐 이게 답이겠지. 적어도 나에겐 이게 답이 아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곳에서 정을 느꼈다.
“혹시 여기 식기 세척기 있어요?”
“있을 리가 있나. 그냥 손으로 하는 거지. 뭐.”
그때 갑자기 그만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오랜 기간 할 수 있다고 약속했었으니까. 이게 뭐 그리 중요한 거냐 하겠지만 어쨌든 약속이다. 그때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키러 왔다.
저보고 예전에 설거지 잘 한다고 하셨죠?
저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잘 하는 놈 하나 가져왔습니다.
“잘됐네요.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외치자.
“으잉? 이게 뭐야?”
두 사내가 커다란 박스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박스를 안쪽에 내려놓은 후 다시 나가 몇 개의 박스를 더 안으로 들고 왔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박스를 번갈아 보는 아주머니.
소란에 안에 계시던 다른 아주머니들도 밖으로 나왔다.
이게 뭐냐고요?
힌트는 제가 드렸잖아요.
식기 세척기입니다. 식기 세척기. 손님들 우르르 몰려들면 그만큼 닦아야 할 그릇도 왕창 나왔잖아요.
다행히 주방 구조는 예전과 똑같았다.
아주머니께 자초지정을 모두 설명해 드렸다. 예전 일 때문에 식기 세척기를 사 온 거라고.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바쁘면 그만둘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걸로 이렇게 사 오면 부자 됐겠다.”
부담스러워하는 아주머니. 거절하시는 걸 설득하느라 혼났다. 이런 거 몇 대 더 사도 전혀 부담되지 않으니 받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결국 아주머니께서 한발 물러나셨다.
“이쪽에다 설치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런 거 없어도 괜찮은디.”
“이놈이 앞으로 그릇 잘 닦아 줄 겁니다.”
식기 세척기를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훌륭한 설거지 기계가 되어 아주머니들을 도와주렴.
“그럼 저 가 볼게요.”
“뭐라도 먹고 가지.”
“진짜 배불러서요. 나중에 또 들를게요.”
“그래. 언제든 와!”
이것으로 오늘의 할 일은 다 마쳤다.
이제 뭐하냐고?
흐흐흐. 뭐하긴. 채하랑 데이트해야지! 채하를 떠올리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솟았다.
****
이제 2016년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2016 이 스포츠 대상.
선수들이 유니폼을 벗고 단장을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팬들이 카메라를 들고 총출동했다. 1년에 단 한 번 있는 기회니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다.
올해 역시 이승우의 해였다.
단체전에선 프로리그 우승, 위너스 리그 우승, 프로리그 101승으로 다승왕, 통합 MVP를 차지했고 개인리그에선 6회 우승을 추가하며 최초로 플래티넘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월드 챔피언십에선 단 1승도 기록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출전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올해 다승과 승률 역시 압도적으로 1등이었다.
182승 16패.
올해 공식전 기록이다.
이는 한 해 역대 최다승 기록을 한참 뛰어넘은 수치였다.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186승 16패로 승률이 더 올라간다. 작년보다 비공식전 전적이 적은 이유는 올 시즌엔 단 한 번도 예선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승률이 무려 91.9%다.
이 역시 최초의 기록이다. 저번 시즌 89.4%를 기록하며 90% 벽을 깨지 못했던 이승우가 이번엔 승률 90%의 벽을 허문 것이다.
이미 누구보다 화려한 기록을 만들어 낸 이승우가 종족 최강전에서 최초 올킬까지 달성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러한 기록은 상으로 이어졌다.
인기상, 올해의 용족, 다승왕, 승률왕, 베스트 경기, 최우수 전략상, 베스트 세레모니를 이번에도 석권했다. 저번 시즌과 달라진 건 용족 신인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작년엔 경험이 없어 여러 번 소감을 말하는데 약간 버거웠지만 올해는 미리 준비를 해 왔는지 막힘없이 소감을 이어나갔다.
확실히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간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흔히 말하는 수트빨도 잘 받았다.
올해의 환국엔 이영우가 뽑혔다.
김영민과 똑같이 2회 결승 진출했지만 프로리그 최종 순위와 다승에서 수상이 갈렸다. 김영민으로선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초반 페이스를 유지했더라면 데뷔 첫 해 올해의 환국상을 받는 기염을 토해 낼 수 있었을 테니까.
2016년엔 환국 신인상을 받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올해의 마수는 임형규가 2회 연속 수상했다.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가장 큰 활약을 보여 줬기에 어느 정도 예정된 수상이었다.
팬들은 기뻐했다.
드디어 2회 올해의 마수상을 받게 되었으니까.
무려 2다. 2.
임형규의 위상도 많이 올라갔다.
작년만 해도 삼김 마수보다 위에 있는 걸 의아하게 생각했던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확실히 본인의 위치를 인정받았다.
이제운 바로 밑 2인자.
쌍림이 삼김보다 위에 있다는 걸 이번 시즌 확실히 증명했다.
다음 시즌엔 꼭 우승을 하겠다며 팬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수상 소감을 밝힌 임형규.
물론 팬들의 바람은 달랐다.
홍진우의 양대 5회 준우승 기록을 넘어 더 많은 준우승을 하는 것.
팬인지 안티인지 살짝 헷갈리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그들은 임형규가 다음 시즌에도 결승까지 오르길 희망했다.
인기상 역시 작년과 똑같았다.
택뱅리쌍에 이승우.
송병호의 은퇴로 새로운 스타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송병호가 복귀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송병호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인기상을 받을 수 없었을 거다. 복귀 후에도 한결같이 좋은 모습을 보여 줬기에 인기상에 오를 수 있었다.
수상 소감 발표에서 송병호는 다음 시즌 반드시 나무 전자를 우승시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팬들은 환호했다. 다음시즌에도 은퇴하지 않는다는 말이었으니까.
선수들이 선정하는 우정상엔 김영민이 뽑혔다.
환국 신인상을 받았을 때도 울지 않았던 김영민이지만 우정상을 받을 땐 펑펑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소감 발표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선수들이 어떤 의미로 주었는지 잘 알고 있기에 더 복받쳤을 거다.
올해 굴곡도 참 많았다.
첫 개인리그 출전에 결승을 가진 로열로더 후보가 되고 프로리그에서에도 올킬을 4회나 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전반기 최고의 선수로 꼽혔지만 그 후 개인리그 광속 탈락과 함께 30%대의 승률을 기록하며 최악의 후반기를 보냈다.
이대로 무너질 줄 알았던 김영민.
하지만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올킬을 기록하며 반전의 선보였다.
올킬을 기록하긴 했지만 아직 완벽히 경기력이 살아났다고 확정 지을 순 없다. 국내 선수들과의 경기가 아닌 해외 선수들과의 경기였기 때문이다.
김영민의 부활 여부는 다음 시즌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확실히 밝혀질 거다.
모두의 예상대로 올해의 팀엔 아스트로가, 올해의 감독엔 이재명 감독이 선정되었다.
아스트로는 이번 시즌 확실히 완성되었다. 불안한 요소가 없었다. 모두 자신의 역할을 100% 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년보다 더 뜻 깊은 상이었다.시상과 공연, 하이라이트가 어우러진 2016 이 스포츠 대상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올해의 선수 하나뿐이었다.
****
-정말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올해의 선수 시상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승우 형 나갈 준비해요.”
“답정너지. 답정너.”
“이승우!”
“이승우!”
어째 나보다 팀원들이 더 난리다. 다들 평소보다 업되어 있다. 하긴 작년에 이어 모든 상을 휩쓸었으니.
네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 그럼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2016 대한민국 이 스포츠 대상 올해의 선수는!
-축하합니다. 아스트로의 이! 승! 우! 선수입니다!
-작년에 이어 이승우 선수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모습입니다.
-이승우 선수는 2015년 데뷔한 이후 개인리그 도합 10회 우승. 프로리그 2회 우승, 위너스 리그 2회 우승 등 그사이 치러진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프로리그에선 101승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기록으로 다승왕에 올랐습니다.
-이런 선수가 올해의 선수상을 받지 못하면 누가 받을 수 있나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받을 줄 알고 있었어도 막상 이름이 불리니 기쁜 걸 참을 수 없었다.
“크. 역시 이승우!”
“우리 이야기 해 줘요.”
“부담 주지 마.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 해.”
“축하해요!”
“부럽다. 부러워.”
팀원들의 축하 인사가 들려온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도 함께.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았다. 작년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승우 선수.
-자. 이승우 선수는 마지막으로 수상소감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에 놓인 마이크에 입으로 가져다 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작년에 이 자리에서 약속했던 것을 모두 지켜냈다는 것이 너무 뿌듯합니다. 프로리그를 다시 한번 우승했고 올해의 팀, 올해의 감독, 올해의 선수까지 다시 한번 수상했습니다.”
말을 잠시 끊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런 걸 요즘 스웩이라고 한다지? 말로만 떠는 허풍이 아니라 실천까지 함께하는 것!
“아스트로는 더 이상 기적의 팀이 아닙니다. 명실상부 세계를 대표하는 최강의 팀입니다. 이러한 건 내년에도 계속될 겁니다. 모든 우승과 함께 다음 시즌 꼭 다이아몬드 마우스와 배지를 얻는 최초의 선수가 되겠습니다.”
여기까진 선수로서의 이야기.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
“제가 말재주가 없어 하고자 하는 말이 온전히 전해질지 모르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마이크를 다시 잡습니다. 음.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만약 제가 방출되던 때 프로게이머를 접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적어도 지금과 같은 위치에 서지 못했겠죠. 그리고 정상에 선 선수들을 평생 부러워하며 살아가겠죠. 시련이 있었지만 전 프로게이머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제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이 말이 정답은 아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니까.
하지만 힘들어하는 누군가에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언제 어떻게 될지 다른 사람은 몰라요. 본인만 어렴풋이 압니다.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면요. 스스로 한 점 부끄럼 없이 열심히 하고 있다면 계속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름 사람과 비교하지 마세요. 자신만의 속도로 걷다 보면 자신만의 정상에 도착하게 될 겁니다. 이상입니다.”
-이승우 선수의 아주 멋진 수상 소감 잘 들었습니다.
-정말 심금을 울리는 수상 소감 아닙니까?
휴.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중간중간 떨어서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모두 다했다.
나도 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올. 이승우. 준비 좀 해 왔는데?”
“얘 처음부터 자기가 받을 줄 알고 있었다니까요.”
연호야. 미안한데 초 좀 치지 말아 줄래?
나 지금 굉장히 감성적……. 에휴. 됐다. 그래. 억지로 감정 잡을 필욘 없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답이지.
이 스초프 대상을 끝으로 올해 모든 일정이 끝났다.
내년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지금처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계속 만들어 갈 거다.
The Last Game
2001년 어느 날.
-임주혁 선수! 홍진우 선수를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가히 환웅이라 불릴 만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마수의 시대에서 이토록 마수를 잘 잡아내는 선수가 어디에 있을까요?
-없습니다. 없다고 단언 지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막지 못했습니다. 마수의 날카로운 발톱 아래 살아남는 환국 선수가 누가 있습니까? 지금도 보십시오. 마수가 어떻게 공격하겠다는 걸 완벽히 알고 있다는 듯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반응하지 않습니까? 그래. 네가 닷발귀로 본진을 흔든 후 그슨대와 함께 정면을 치겠다고? 마음대로 해라. 난 다 막을 수 있으니까! 정말 상상 속으로나 이뤄지던 것 아닙니까? 그런 플레이를 임주혁 선수를 실제로 손으로 해내고 있습니다. 정말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무이한 선수입니다.
-아! 이 순간 홍진우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스코어 3:2! 임주혁 선수가 우승을 차지합니다!
12살.
그때까지 난 장래희망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다 적는 대통령이나 화가, 소방관 등은 내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다.
“멋있다.”
멍하니 바라본 TV 안에선 현재 신들의 전쟁 최고의 프로게이머라 불린 임주혁이 우승을 확정짓고 한 손을 하늘을 향해 번쩍 치켜들고 있었다.
터지는 폭죽.
쏟아지는 함성과 환호.
그 중심에 있는 프로게이머.
어린 눈에도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그날 난 되고 싶은 걸 찾았다.
16년이 지난 지금.
목표를 완벽히 이뤘다. 예상과 조금 차이가 있다면 팀은 달라졌다는 것 정도?
1년에 600만원을 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공식전 한 번 나가 보기를 희망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한 해에 가장 많은 공식전에서 승리를 거둔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룬 것이다.
올해도 2016 이 스포츠 대상에서 말했던 포부를 이뤘다.
다이아몬드 마우스.
다이아몬드 배지.
OSL과 MSL을 각각 7회 우승해야 주어지는 영광의 상징.
물론 쉽지는 않았다. 거센 도전을 아주 많이 받았거든.
까딱하면 못 이룰 뻔했다. 올해 다이아몬드를 이룩하긴 했지만 작년처럼 모든 대회에서 우승한 건 아니다.
딱 마지노선인 OSL 2회, MSL 2회 우승으로 다이아몬드 마우스와 배지를 얻었다.
남은 두 대회는 누가 우승했냐고?
영민이다. 영민이.
올해 결승에서만 무려 네 번을 만났다. 그중 두 번은 이기고 두 번을 졌다. 작년 월드 챔피언십 이후 영민이는 달라졌다. 오히려 전보다 한층 더 성장했다. 내가 아주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니까.
아쉬움이 남냐고?
전혀.
오히려 나를 위협하는 선수가 생겨 기분이 좋다. 과거 최강의 선수를 무너뜨려 정상에 오른 후 새로운 선수들의 도전을 받고 있는 지금이 그저 반갑기 만하다.
결과적으로 최초로 다이아몬드 마우스와 다이아몬드 배지를 얻는 데 성공했고 프로리그 역시 위너스 리그와 정규 리그 모두 우승을 차지했으니 아쉬움이 남을 리 없다.
여기에 더해 2017 월드 챔피언십 우승까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2주에서 3주로 기간이 늘어나고 참가국도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어난 2017 월드 챔피언십은 누적 시청자수가 3억 명을 돌파했고 결승전은 무려 3천만 명이 시청하는 기염을 토했다.
진짜 대박 아냐?
정규 스포츠 못지않은 위상이다.
2017 이 스포츠 대상을 끝으로 마무리된 2017 시즌.
이번에도 모든 상을 싹쓸이 하며 아스트로가 여전히 최강이란 걸 만천하에 알렸다.
모든 팀이 2018 시즌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 아스트로에도 변화가 생겼다.
현우 형이 이적을 하게 된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고?
믿지 못할 건 뭐야.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 할 이유가 없잖아? 현우 형이 이적하는 날 숙소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이럴 거면 왜 이적시켰냐고 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현우 형이 이적한 팀은 육군이었으니까.
우리가 말린다고 말릴 수 있는 이적이 아니었다. 현우 형이 차고 있던 주장 완장은 내 몫이 되었다. 부담스러워 한사코 거부했지만 ‘그럼 연호 줄까?’라는 말에 군말 없이 주장직을 받았다.
자신을 무시했다며 입이 삐죽 내밀던 연호.
지금도 입을 삐죽 내민 상태로 나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좋겠다.”
들리지 않는 척했지만.
“진짜 진짜 진짜 좋겠다.”
시위라고 하듯 연호가 더 큰 목소리를 냈다.
“너도 그럼 데이트하던가.”
“아. 놀리냐? 여자가 있어야 하지. 12월 31일을 또 혼자 보내게 될 줄이야.”
“에이. 혼자라니. 숙소에서 파티 할 거 아냐.”
“……파티 안 하고 나도 데이트 가고 싶다.”
어째 대회가 다시 돌아온 것 같네.
아. 얼마 전에 가족들에게 채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숨기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정말 크게 기뻐하셨다. 어째 내가 우승을 했을 때보다 더 좋아하신 것 같다.
“요즘 여자들은 다 일찍 자냐?”
“그게 무슨 소리냐?”
“딴 게 아니고 내가 마음에 드는 여자분 번호 물어봐서 받는 덴 성공했거든?”
“올. 대단한데?”
“근데 신기하게 10시 전후로 잔다? 톡을 보내도 답이 없고 다음날 일찍 잠들었다고 하더라. 남자보다 여자들이 잠이 많은 게 맞나 봐.”
“……아침형 인간이 되려나 보지.”
“그런가?”
순진한 눈망울을 한 연호에게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럼 나 간다!”
“그래. 데이트 잘하고 와.”
‘아침형 인간이 요즘 대세구나’라고 중얼거리는 연호와 인사를 하고 나오니.
“데이트 잘해요!”
“오늘 집엔 언제 와요?”
“야. 그런 거 눈치 없이 묻는 거 아냐.”
“물을 수도 있지. 형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건데!”
“하. 말을 말자.”
팀원들이 모두 자리에 서 있었다.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저 뒤에서 말없이 엄지를 척 세우고 계신 감독님. 죄송하지만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렇게 팀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숙소를 나섰다.
땅에 발을 댄 순간.
“어? 눈 오네?”
머리에 떨어진 하얀 눈.
데이트 날 눈이라니. 로맨틱한데?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프로게이머로서도 남자로서도 아들로서도 오빠로서도.
내가 희망했던 모든 걸 이뤘으니까.
물론 여기서 안주할 생각은 없다.
더 대단한 프로게이머가 될 거다.
내가 임주혁 감독님을 보며 꿈을 키운 것처럼 누군가 나를 보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 작품 후기 ============================
지금까지 로열로더: 신들의 전쟁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확히 1부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2부는 이승우의 감독 이야기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1부와 2부는 독립적으로 쓸 생각입니다. 1부를 안봐도 2부를 볼 수 있게. 물론 1부를 봤으면 2부가 더 재미있을 겁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언제나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