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01)
러스트 [RUST]-1001
“태국 왕과 왕가가 인신 공양해서 신앙을 키우고 있다?”
[정황상 거의 그래. 하얀 코끼리도 그냥 덩치 큰 괴수가 아니라 신앙을 먹고 능력까지 생긴 것 같고.]“인신 공양하는데도 사람들이 가만히 있냐? 군대는? 정치인들은 한 통속인가?”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 제보했겠지. 그런 상황에서 제보했다는 건 목숨을 걸고 한 거야. 그리고 알아보니까 태국 왕이 군대를 장악하고 있고, 군대도 태국 왕을 지지하고 있더라. 정치도 그래 반대파 쪽을 모조리 숙청한 것 같아.]신앙을 먹은 흰 코끼리와 왕. 그리고 왕가. 능력의 편린(片鱗)을 맛본 그들은 싱크홀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동남아 쪽이 전부 비슷한 상황일까?”
[각기 다르겠지만, 대충 비슷하지 않겠어? 무언가 기르던 동물이 특수한 능력이 생겼거나, 강한 능력자가 있거나 군부 핵심인물이 신격화됐거나.]일단 강한 능력자를 믿는 건 일반적인 일이었다.
[신앙을 먹어 강해진 게 아니더라도 능력이 강하니까 싱크홀을 붙잡고 있는 거겠지.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더욱 싱크홀을 붙잡을 수밖에 없을 테고. 싱크홀마저 없으면 다른 나라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할 테니.]“쯧- 피곤하네.”
혀를 찬 마루의 미간에 순간적으로 깊은 주름이 깊게 파였다.
태국 왕과 정부가 인신 공양을 할 정도로 신앙을 알고 있으니 처리하긴 해야 하겠는데, 한곳에 손을 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줄이 복잡해질 각이 보였다.
“우리 바로 쓸 수 있는 전술핵은 얼마나 있지?”
[전술핵? 대충 100발은 가까이 있을걸.]기순의 대답에 인공지능 디아나가 정확한 숫자를 알렸다.
[현재 10킬로톤 이상의 전술핵은 모두 87발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10킬로톤급 고화력 미사일은 102발이 있습니다.]실눈이 살짝 떠진 기순이 ‘설마···.’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태국을 시범 케이스로 삼아서 끝장낼 생각이냐?]“아니. 한 번에 동시에 때리면 어떨까 해서.”
[동남아 국가를 전부? 동시에?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데?]“정확한 위치를 모르니까 전술핵을 써야지.”
마루의 계획은 직관적이었다. 전술핵이나 그와 비슷한 위력의 미사일로 싱크홀 무기화하려는 놈들을 동시에 타격한다. 이후 마루 자신이 직접 가서 잔당을 정리.
이후 신성 왕국 군대가 뒤따라 진입, 치안을 유지하고 선거를 통해 신정부를 구성하는 동안, 김 양과 친위대가 싱크홀에 소금과 바닷물을 넣어 비활성화시킨다.
“한국 정부가 동물들과 협상했으니까. 우리는 빠져도 되잖아. 한국에 있는 군을 바로 대만으로 움직이자.”
[대만으로?]“대만으로 옮겨서 동남아까지 이동 거리를 줄이면 병력 전개하기 쉽잖아. 선제타격 혼란이 커지기 전에 대가리들 치워버리고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디아나. 빠른 병력 수송이 가능하겠어?”
[시뮬레이션 결과. 현재 가용 가능한 비행선과 선박을 전부 병력 수송에 사용한다면 한 번에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수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가 최대로 수송할 수 있는 병력 규모를 확인했다. 30만 병력을 수송한다고 치면 왕복 3번에 끝낼 수 있다는 분석.
“기본 보급까지 한 상황이겠지?”
[네. 3일 보급을 포함한 시뮬레이션 결과입니다.]대만을 거점으로 삼고 동남아로 간다면 24시간 안에 30만 병력을 전개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결정하면 바로 실행에 들어가는 마루인지라, 기순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왕님. 잠깐. 결정하시기 전에 플리즈.]“······.”
[동남아 동시 타격은 아닌 것 같다. 태국이야 인신 공양까지 들어간 상황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다른 나라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을 모르잖냐? 막말로 그냥 군사 독재라고 날려버리면 혼란만 커질 거고. 선제타격 실패해서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침략군이 되는 건데. 한국에서처럼 그런 꼴이 나면 어쩌려고.]“그런 꼴?”
[동물들도 보급 끊고 게릴라전 했는데 인간이 안 그럴까? 우리 보급선 끊고 그러면? 우리가 보급선 지켰다고 치자. 한국에서 동물들이 한 것처럼 저항세력이 일반인 목숨 인질로 잡고 소모전 끌고 들어가면 어떻게 하려고?]“······.”
[일반인 죽거나 말거나 그냥 두고 싱크홀만 조지고 말 거냐? 설마. 사람들 죽어 나가거나 말거나 그냥 싱크홀만 조지자는 건 아니겠지?]“······.”
그것도 그렇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신앙 먹은 존재가 인신 공양 반대하는 쪽에도 있다면? 걔도 같이 싸잡아서 죽일 거냐? 우리 공격 때문에 능력을 각성한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신앙을 흡수한 사람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도 모조리 죽일 거야?]“그래서 요점이 뭐냐?”
[인신 공양으로 신앙 모으기 시작한 태국은 공격해도 다른 나라까지 동시 타격하자는 건 다시 생각해 보자는 거야.]“우리가 태국을 치면···. 아니. 태국만 친다고 해도 연쇄적으로 전쟁이 날 게 뻔한데도? 동남아 여러 나라가 한 짓을 보라고. 대화로 해결해 보려고 하지 않은 게 아니잖아. 그리고 신앙을 키운 것들이 위험하다고 한 건 너였다.”
신앙을 계속 먹은 하얀 코끼리나, 태국 왕과 왕가의 능력이 어디까지 커질지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도가 높아질 게 뻔한 상황. 그로 인해 발생할 피해와 위험을 가늠할 수 없었다.
좋게 공격하지 않고 말로 끝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인신 공양하는 놈들이 신앙 먹고 강해지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믿겠나?
[그러니까···.]“네 말도 일리 있어. 근데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안전과 생존이다. 우리가 건국하고 덩치를 키운 이유도 안전과 생존을 위해서였어. 한국까지 와서 우리 애들 각성시키자고 했던 것도 안전과 생존 때문이었고. 지금 동남아 동시 타격하자는 것도 미래에 있을지 모를 위협을 미리 없애기 위해서다.]
“······.”
[솔직히. PD나 네가 생각하는 바는 알겠어. 이왕에 신적인 존재로 취급받게 된 상황이니까. 진짜 신처럼 넓게 포용하고 인간의 수호자니, 구원자니 그렇게 신앙을 받을 만한 존재가 되려고 한 적도 있었어.]마루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나는 아무래도 속이 좁아서 그런지···. 아무래도 우리가 우선이 되더라. 지금도 마찬가지야. 동남아 동시 타격에 생길 문제점? 있겠지. 근데 그래서? 중요한 건 우리의 안전과 생존이 우선 아닌가?]“······.”
[내 생각엔 그래. 동남아 사람들에게 나 같은 존재가 생긴다면, 그래서 우리가 그들의 생존과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 난 그들이 우리를 공격할 거로 생각한다.]처음에는 안전과 생존이 위협받았을 때나 공격하겠지만, 나중에는 불이익이 된다면 공격하겠지. 그리고 불이익이 아니라 신성 왕국을 공격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면 공격할 것이리라.
인류의 역사가 그랬다. 이익을 위해 전쟁. 손해를 줄이기 위해 전쟁. 안전과 생존을 위해 전쟁. 결국엔 누구의 안전과 생존, 누구의 이익과 불이익이냐의 문제였다.
[난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신이 아니라 왕이 된다고 한 거다. 나 같은 인간이 신? 신 같은 왕이면 모를까. 아직도 생존과 안전이 우선인 내가 무슨 신이냐. 했던 거지.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이고 왕이고 간에 나에게 중요한 건 안전과 생존이다. 조금 더 가면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 정도고.]“······.”
행복이란 혼자 이뤄지는 건 아니었다. 지구에서 생존자가 나 혼자라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마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쩐지 그 세력이 떠오른 기순이었다.
식인귀, 흡혈귀 세력. 점조직으로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세력. 신인류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일반인은 단순한 먹잇감, 농노여야 한다는 생각.
신인류, 선택받은 자들의 행복을 위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먹잇감으로 쓰이거나 죽임을 당해도 문제없다는 가치관.
그들의 생각 속에는 뿌리 깊은 일반인에 대한 혐오,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가 있었다.
그 세력은 신인류가 중심이 되는 신세계가 열려야, 지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류의 존속과 신인류의 행복한 생존을 위해, 기존 인류는 먹잇감과 농노여야만 한다. 일반인에게 권리나 권력이 생기면 같은 일이 반복될 테니까.
신인류를 중심으로 귀족 사회. 신봉건제를 이루는 것만이 인류의 존속과 신인류의 행복을 동시에 이룰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를 우선으로 하고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라면 선제 타격해야 한다는 생각과 본질이 다를까? 서로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느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끝없는 전쟁이 될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기순은 아차 싶었다. 그 세력과 휴전을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신성 왕국에 합류하거나 아니면 신성 왕국이 그들과 합류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거나.
[젠장. 복잡해졌네.]“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했어.]“?”
[동남아 각국에서 그 세력 놈들이 작업하고 있는 거라면? 그래도 동남아를 동시에 타격할 거냐?]“휴전은 네가 일본 쪽에 있던 애들이랑 한 거고. 내 눈앞에 보이면 쓸어 버린다고 했잖아. 동남아에 그놈들이 작업해서 인신 공양 꼴이 난 거면 더욱 없애야지.”
그러니까 눈앞에 보이면 쓸어버리겠다는 게 그런 의미였냐? 놈들이 오지 않아도 어딘가 가다가 보이면 쓸어버린다는 소리였어?
그게 뭐야 무서워.
기순은 속으로 ‘미친.’ 했다.
그래도 바로 그렇게 할 건 아니었다. 휴전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전략핵 박아 버리고 마루가 들어가서 쓸어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세력별로 흩어진 놈들이 위기감에 하나로 뭉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지금 태국에서 벌어진 일도 마루의 위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생긴 일일 지도 몰랐다.
‘신앙을 먹는 것에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게 알려지면, 놈들이 그쪽을 더 팔 수도 있어.’
그렇지 않아도 신앙과 능력의 상관관계가 알려지기 시작했을 텐데. 그걸 확정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동남아만 싱크홀이 있는 건 아니잖아. 태국만 신앙을 먹고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 그렇지 않아도 관심 있는 세력은 뭔가 있으니까 우리가 발작한다고 생각할 거다.]“그래서?”
[우리가 발작하는 게 아니라는 명분이 있으면 좋겠지. 그 세력이 동남아를 장악하고 있다면 네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줘야. 놈들이 하나로 뭉치지 않고 서로 견제할 테니까.]남부 연맹이 아직도 재건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나? 서로 견제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그냥 ‘신성 왕국의 안전과 생존이 위협받을지 몰라서.’ 같은 이유가 아닌, 선제공격 때려도 할 말 없는 명분. 놈들이 서로 계속 견제할 만한 명분.
[내가 갈게.]똥 싼 놈이 치우는 게 맞았다. 제일 좋은 명분은 기순 자신이 가서 인질이 되거나, 신앙으로 강해진 능력에 당하거나, 죽으면 마루가 뒤집어도 할 말이 없었다.
“지랄. 넌 지금 냉동형 대신으로 구르는 중이야. 어딜 가긴 어딜 가?”
[아니. 왕님 그게 아니고.]“끊어 새꺄. 뭔 되지도 않는 소릴.”
[잠깐. 끊지 마.]팟-
칼같이 끊은 마루가 생각에 잠겼다.
한쪽으로만 생각했다는 기순의 이야기와 명분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 세력과 다시 충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섞였다.
마루는 그랬다. 그놈들 세력이야 있거나 말거나 신성 왕국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동남아 각국을 동시 선제공격한다는 데 거리낌 없지만, 신성 왕국 병사들은 달랐다.
가만히 있는 동남아를 싱크홀 위험하다고 선제공격해버리고 쓸어버리는 걸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 정부와 제국도 마찬가지겠고.
‘기순이 녀석.’
쯧-
들린 말은 아니었다.
‘인신 공양으로 신앙 먹고, 싱크홀을 전략 자산으로 삼는다는 것만으로는 어렵겠군.’
싱크홀 문제로 협상했었으니, 특사를 보내서 명분 빌드업을 쌓아야 할까? 바로 선제공격 들어가는 것보다야 자연스럽겠지만, 싱크홀 괴물 이야기도 나오고 통제권이니, 주권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올 게 분명했다.
‘시간 끄는 건 아니야.’.
그렇다고 아무나 특사로 보내기도 어려웠다. 명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위험할 수도 있는 일.
기순은 냉동형 중이니까 제외. 김 양을 보냈다가는 오히려 명분을 줄 수도 있었고. 간호사와 후드, PD를 보내기는 위험했다.
“됐어. 디아나. 대만으로 병력 수송하고. 전개 대비해. 김 양과 친위대 호출하고.”
[알겠습니다.]“태국으로 직접 간다. 태국 왕에게 얼굴 한번 보자고 해.”
[알겠습니다.]‘적의 능력이 뭔지 모르는 데 왕이 직접 간다는 건 위험하다는.’ 기순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깔끔하게 무시한 마루였다.
명분이 없으면 직접 가면 될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