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03)
러스트 [RUST]-1003
쥐어짜는 듯한 비명과 동시에 터진 강력한 백색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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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빛이 뭉쳐져 거대한 코끼리 형상이 이뤄졌다.
뿌우우우우우우—
빛의 코끼리가 만든 충격파가 죽음의 넝쿨을 지워버렸다. 벽과 천장, 바닥을 휩쓸던 넝쿨이 검은 임자로 변해 사라지는 모습에 상석에 앉아있던 태국 왕이 미친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잘한다. 그래. 그거야. 다 지워버려! 하하하하핫.”
빛나는 코끼리 덩어리가 웅웅-떨리는 진동과 함께 서서히 흐려졌다. 그리고 그 강한 빛 에너지가 사라진 끝. 짙은 죽음이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검게 흩어지는 작은 알갱이들 사이로 뚜렷하게 치솟은 풀잎, 넝쿨 그리고 찌이이익- 소리가 화려한 식탁을 휩쓸었다.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로 크게 소리치려 했지만, 외침이든 비명이든 벌어진 왕의 입으로 뛰어드는 죽음의 생쥐.
퍽-
풍선이 터지듯 터지는 그림자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문 것을 시작으로 검은 생쥐와 넝쿨이 은은한 잔광을 내뿜고 있는 태국 왕을 향해 밀물처럼 달려들었다.
퍽-퍽- 퍼퍼퍼퍽–
휘리리리리리리릭-
검게 부서지는 작은 입자들 사이로 끝없이 밀려드는 죽음의 정원. 태국 왕이 의자에서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을 때는 만찬장 전체가 죽음의 정원으로 변한 뒤.
으아아아아아아아!
빽빽한 죽음의 정원을 뒤흔드는 절규에도 빛의 코끼리는 생기지 않았다.
‧
‧
‧
만찬장 밖. 갑작스러운 통신 두절과 CCTV 먹통에 태국 경비대와 신성 왕국의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충돌했다.
“손들어.”
“헬멧 벗어!”
굳게 닫힌 만찬장 문앞을 지키던 경비대가 비무장인 안드로이드 경호원을 향해 총을 겨누며 외쳤다.
“엎드려!”
“움직이면 쏜다!”
순식간에 안드로이드 경호원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경비대. 뒤를 잡은 경비대원이 안드로이드 경호원의 오금을 걷어찼다.
퍽! 소리 나게 걷어찬 경비대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엎어져야 할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쓰러지지 않고 버텼기 때문이었다.
“엎드리라고!”
총구로 안드로이드의 뒤통수를 쿡 찌르는 순간. 180도로 돌아가는 머리- 뒤통수를 겨눴던 총구가 미간을 겨누게 되자,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경비대원.
크릭-
투다다다다-
인간이라면 가동할 수 없는 방향으로 관절이 꺾이며, 총구를 잡아챈 안드로이드. 왼쪽에 포위하고 있던 경비대가 동료가 쏜 총에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앞면은 정면을 향했는데 고개가 돌아가 뒤통수가 됐고, 등 쪽에 180도 돌아간 얼굴이 있는 기괴한 모습. 그것도 모자라 팔과 어깨가 비상식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미친!”
“······!”
신성 왕국 경호원은 사람이 아니었다.
“저게 뭐야!”
“쏴!”
으아아아-
위잉-
잡아챈 총구를 끌어와 미간을 노린 경비대원의 멱살을 잡아 방패로 삼은 안드로이드 경호원. 그리고 또 다른 안드로이드 경호원은 총탄을 맞으면서 그대로 달려들었다.
제자리 멀리 뛰기처럼 풀쩍 뛰어오르자, 한 번에 7m~8m를 좁혀지는 거리. 경비대 가운데로 들어간 것을 따라 정면을 향했던 총구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파바바박-
중심에 착지한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관절이 없는 연체동물처럼 납작 엎드리자, 남은 건 경비대원끼리 서로 쏘는 아군 오사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몇 명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졌지만, 신체 능력 각성자로 이뤄진 경비대는 거칠었다.
“이 새끼가!”
“죽여!”
바닥에 납작 엎어진 안드로이드 경호원을 노리는 총구.
그리고 그 총구를 바라보는 안드로이드 경호원의 한쪽 눈이 번쩍 빛났다. 응축했던 에너지를 한 번에 쏟아내듯 그어지는 광선.
지이이잉-
붉은색 광선이 사방을 헤집자, 광선에 절단된 팔다리. 몸통이 바닥을 굴렀다.
(반경 20m. 생명 반응 없음.)
(적 경비대 32개체 완전 침묵.)
(열선 조사까지 4.72초 소요. 실험실보다 1.49초 지연.)
(신형 방탄 슈트. 방어력 개선 필요.)
안드로이드 경호원 둘이 정보를 주고받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만찬장 문앞을 지켜섰다.
“······.”
“······.”
잠시 뒤, 총성을 듣고 우르르 몰려온 경비대가 참혹한 현장을 보곤 선뜻 접근하지 못했다.
(적 개체 수 73. 제거 필요.)
(선제공격 요건 충족.)
(절단 광선 발사까지 427.33초 소요.)
(냉각 시스템 조정.)
(냉각 시간 단축.)
(절단 광선 발사까지 311.95초 예상.)
(접근전 시작.)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멈칫한 경비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범처럼 훌쩍 뛰어오른 안드로이드가 그 힘을 잃고 둥실 허공에 멈췄다.
“쏴!”
“공중에 멈췄다.”
“지금 쏴!”
(염력 확인.)
(대응.)
안드로이드 경호원의 손과 발에서 가느다란 와이어가 쏘아져 벽과 바닥에 꽂혔다.
투두두두둑-
타타타타탕-
위잉- 와이어가 휘감기는 소리와 함께, 벽과 바닥으로 내려가는 경호원을 따라 쏟아지는 총탄. 중간중간 특수탄이 섞였는지 슈트 형식의 방탄복이 뚫리기 시작했다.
“수류탄 투척!”
“RPG! RPG!! 빨리!”
“염력 뭐해!”
“놈들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내리누르는 염력을 와이어와 출력으로 무시하고 달려들려는 순간, 밟고 있던 땅과 밀치려는 벽이 물컹하게 변했다.
(조작계 능력 확인.)
(대응.)
재차 내디디던 다리가 늪에 빠진 것처럼 쑥 들어갔고 벽에 박혔던 와이어가 쑥 빠져버렸다.
(절단 광선 재기동까지 228.64초 예상.)
(방어막 기동.)
우우웅-
투명한 장막이 안드로이드 경호원을 감쌌다.
쾅- 콰쾅-
수류탄이 터지며 치솟은 먼지를 뚫고, RPG 탄두가 방어막을 때렸다.
변이 괴수의 부산물을 이용해 관통력을 극대화 시킨 탄두인지, 방어막이 반쯤 관통되며 강력한 충격이 방어막 안쪽을 헤집었다.
“방어막?”
“인간이 아니군. 신성 왕국 놈들 로봇을 만들었나?”
깨진 헬멧 속에 보이는 경호원의 얼굴. 인공 피부가 찢어진 속에는 유백색 인공 근육과 티타늄 합금 뼈대가 언뜻 보였다.
“멈추지 말고 계속 쏴.”
“놈들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번갈아 가면서 발사.”
경비대장이 계속 RPG를 쏘라고 명령했다.
“놈들을 파묻어. 움직이지 못하게 해.”
“염력! 뭐 하고 있어? 내리눌러!”
“로봇이면 에너지 한계가 있을 거다. 방어막을 계속 두들겨.”
“멈추지 말고 계속 쏘라고!”
“3소대는 우측으로 돌아가서 공격해. 전면 방어막이다.”
“놈들이 몸을 돌리지 못하게 계속 공격해.”
경비대장은 안드로이드 경호원의 약점을 찾은 것처럼 지휘했다.
“특공대는 만찬장으로.”
“내부와 통신이 끊겼다.”
“코드 블랙 상황으로 보고 진입하도록.”
코드 블랙이면 만찬장이 적에게 장악된 것을 전제로 한다는 뜻.
“국왕 폐하께서 계시는데···. 알겠습니다.”
신수가 가호하는 국왕 폐하와 왕가 인사들이 모두 있는데 설마 하던 경비대가, RPG로 두들겨 대도 버티는 인간형 로봇을 보곤 대답했다.
우측을 노리는 적들. 늪에 빠진 것처럼 묶인 발. 끊이지 않는 RPG 공격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고개를 움직였다.
(냉각 완료.)
(에너지 변환 시작.)
(방어막 일시 중지.)
(절단 광선 발사.)
“?”
“엎드려!”
경비대장의 외침과 함께 붉은색 빛이 좌우 상하를 헤집었다.
“안 돼!”
“쏴. 지금 쏴!”
“방어막이 꺼졌을 때 쏘라고!”
왜 안 쏘느냐고 고개를 돌린 경비대장의 눈에 RPG를 겨눈 채 상하로 절단된 부하의 시체가 보였다.
이익-
RPG를 들어 직접 쏘는 경비대장. 푸화하학- 가속하는 탄두가 붉은 광선을 피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폭발했다.
“······.”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지나간 듯한 느낌에 고개를 숙인 경비대장. RPG 탄두를 자른 광선이 자신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 보였다.
(염력 능력자 제거.)
(물질 변환계 도주. 추적 필요.)
(절단 광선 과열. 재냉각 이상.)
(적 개체 68체 제거. 5체 도주.)
(임무 분담.)
(적 추적.)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만찬장 입구 방어와 경비대 추적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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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과 친위대를 태운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 선단이 태국 밀림 지역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함?”
[만찬장을 정리한 뒤, 작전을 개시하라고 하셨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가 김 양을 다독였다.
[통신 두절 확인. 만찬장 내부 CCTV 작동 중지 확인. 적 경비대와 아군 경호원 교전 시작.]“됐음? 시작하면 됨?”
[적 경비대 침묵. 아군 경호원 경호 재개.]“우리 최고 존엄이 작업 시작했으면 끝이잖아.”
그간의 경험으로 김 양은 믿음이 있었다. 마루라면 놈들이 신앙을 먹었건 어쨌건 끝낼 것이라는 믿음. 어떤 상황에서든 마루가 죽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우리도 바로 작업 들어가는 게 맞음. 놈들이 혹시라도 싱크홀 터뜨리기 전에 먼저 시작해야지.”
[싱크홀을 터트릴 수 있다는 겁니까?]“본래 구석에 몰린 쥐가 덤비는 법이야. 만찬장에 있던 것들 전부 끝났다는 걸 놈들이 알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어. 어차피 죽는 거 같이 죽자고 하겠지.”
[통신이 끊겼는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텔레파시도 있고 정신파도 있잖아. 신앙 먹고 능력 이상하게 된 놈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무조건 지금 시작하는 게 맞음. 불의의 사태가 생겼어도. 일단 지금 우리 작전을 끝내고 확인하러 가는 게 맞고.”
설령 불의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작전을 계속해야 했다. 서열 2위로서 마루의 유산인 신성 왕국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이번 작전을 성공시킬 필요가 있었다.
응.
[불의의 사태···. 입니까?]“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오해임. 진짜. 우리 왕님이 얼마나 무서운 왕님인데. 우리는 왕님을 믿고 작전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였음.”
인공지능 디아나의 반응이 어쩐지 무겁게 느껴진 김 양이 화들짝 손을 흔들었다. 인공지능 년들, 마루를 향한 충성이 무거웠다.
“죽음 펼치면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 펄스) 효과 나잖아. 그러니까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할 수도 없고. 안에서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데. 안과 통신 끊긴 놈들이 미리 연락 끊기면 자폭하라고 해놓은 상황이면 어떡해.”
[······.]설명하던 김 양이. ‘어라?’ 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내가 왜 이년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지? 내가 서열 2위잖아.’ 하는 표정. 인공지능 년이 너무 사람 같아서 순간 홀린 것 같았다.
김 양은 바로 전용 노심 아머의 얼굴 가리개를 내리곤 강하 포트에 탑승했다.
[싱크홀 폐쇄 작전을 시작한다.] [적을 섬멸하고 싱크홀을 폐쇄한다.] [강하!]신형 강하 포트가 지상을 향해 가속을 시작했다. 싱크홀을 통제하고 있던 태국군이 대공포와 대공 미사일을 쐈지만, 탄도 미사일처럼 불규칙하게 방향을 바꾸는 강하 포트를 요격하는 건 불가능했다.
[착륙!] [충격 대비!]지표에 닿기 직전, 강한 폭발을 이용해 속도를 줄여 착지한 강하 포트가 열리고 노심 아머로 무장한 친위대가 쏟아져 나왔다.
[방어막 전개!] [방어막부터 작동해!]내리기가 무섭게, 퉁- 철갑탄을 막은 방어막이 출렁이는 모습.
[전차다! 3시 방향!] [3시 방향 적 전차 매복!] [2시 방향에도 적 전차 확인!]전차가 매복하고 있었다.
[항공지원 어렵습니다.]울창한 밀림인지라 정밀 타격이 힘들었다. 싱크홀 특유의 전자파 교란 현상도 있었고.
[방어막 출력 최대로.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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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익-
만찬장의 묵직한 문이 열리자, 죽음의 기운이 물씬 밖으로 흘러나왔다. 만찬장 밖은 여기저기 교전의 흔적이 가득했다.
광선에 절단된 흔적이 선명한 시체를 시작으로 총상이 가득한 것에서 격투라도 벌인 것처럼 신체 여기저기가 으깨지고 부러진 시체까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경비대와 교전한 흔적이었다. 어떤 양상으로 교전이 이뤄졌는지 대략 파악한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안드로이드의 전투력이 강했다. 해킹 능력자나 EMP만 아니라면 안드로이드 부대를 만들어 운용해도 괜찮을 정도.
“하얀 코끼리의 위치는?”
(현재. 유력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영상 출력할까요?)
경호원과 비서로 따라온 안드로이드들이 흰 코끼리가 있는 곳과 만찬에 참여하지 않은 왕족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래.”
(영상 출력합니다.)
광선이 지나간 흔적과 핏방울이 튄 대리석 벽에 영상이 떠올랐다.
“위치가 어디지?”
영상 한쪽 구석에 현재 위치와 영상 속 방향이 지도로 표시됐다. 그리고 이어진 장면. 거대한 출입문 옆에 작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 안드로이드가 기능 고장을 일으킨 것처럼 그 자리에서 멈췄다.
하얗게 빛나는 코끼리가 안드로이드 저 너머, 마루가 있는 곳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바라봤다.
[······.]“······.”
짐승의 눈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눈빛. 안드로이드의 시각 센서를 통해 마루와 마주한 흰색 코끼리가 경고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파직-
무언가 빛난다 싶더니 영상이 끊겼다.
(연결이 끊겼습니다.)
경고인가? 아니면 도발?
“앞장서.”
안드로이드 경호원을 따라가던 마루가 복도 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잠깐. 잊은 게 있다.”
마루의 시선이 향한 곳엔 덩그렇게 뽑힌 뉴클립스가 ‘나는 그저 칼일 뿐이오.’하는 자세로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