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04)
러스트 [RUST]-1004
우웅-
우우우우웅-
사람을 유혹하는 듯한 울림이 칼날에서 흘러나왔다.
그런 주제에 ‘나는 단순한 칼이오. 그러니 나를 잡아 주시오.’ 하는 모습으로 얌전히 놓인 뉴클립스의 주변엔 머리통이 없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우우우우웅—
마루는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아챘다. 뉴클립스를 뽑자마자, 특유의 펄떡거림과 공간 삼키기로 근처에 있는 경비대의 머리통을 씹어 버린 것.
칼을 뽑은 자가 ‘어어어-’ 뒤로 물러섰지만, 그건 더 큰 실수였다. 뒤에 있던 자들도 뉴클립스의 사정거리에 들어갔으니까.
넓은 복도가 초토화된 것을 보니 뉴클립스 녀석, 공간 잠식을 더 길게 뻗을 수 있는 걸 숨기고 있었거나. 아니면 머리를 먹으면서 거리가 늘어났다는 이야기였다.
마루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가늘게 검명을 흘리던 뉴클립스가 조용해졌다. ‘나는 칼일 따름이오.’. ‘그저 단순히 휘두르면 휘둘러 질 뿐인 칼이오.’를 온몸으로 표출하는 뉴클립스.
쯧-
혀를 찬 마루가 버려진 칼집에 뉴클립스를 꽂아 넣었다. 얌전하게 칼집에 들어간 뉴클립스가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듯 작게 우웅- 울었다.
“지랄하지 말고 잘해라.”
······.
한 번 울었다가 본전도 못 찾은 뉴클립스가 조용해졌다. 마루의 고갯짓에 흰색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앞장서는 안드로이드 경호원.
(연결이 끊긴 3호와 통신이 복구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영상. 백색광을 흘리는 거대한 코끼리와 마주한 안드로이드 경호원과 갑작스럽게 연결이 끊겼다.
(4호가 방계 왕족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
(5호가 경비대와 교전을 시작했습니다.)
(1호가 통신망을 장악하는 데 성공. 적군을 교란하기 시작했습니다.)
(친위대. 강하 성공. 싱크홀 통제병력과 교전 시작했습니다.)
(대만에서 병력 이송 시작. 1차 급속 타격대가 6시간 23분 뒤 도착 예정입니다.)
비행선을 이용해 오는 급속 타격대는 전원이 각성자로 이뤄진 병력이었다. 배를 타고 오는 병력도 48시간 안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숨겨 놓은 싱크홀이 있을 수 있으니까. 싱크홀 관련 정보부터 파악하도록 해.”
(전달했습니다.)
(방계 왕족이 능력을 사용해 공격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할까요.)
“대응 방침대로 처리해.”
안드로이드의 공격력이 막강했지만, 방계 왕족들의 능력도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 경비대도 왕족을 지키기 위해 몰려들었다.
“둘이서 정리할 수 있나?”
아니면 코끼리 보러 가기 전, 왕족이 있는 곳에 먼저 들려야 하느냐는 마루의 질문에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즉답했다.
(4호와 5호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쩐지 빠릿빠릿한 대답에 마루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다면 코끼리부터 보는 게 맞겠지.
“서두르지.”
(네.)
마루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지는 것에 맞춰, 앞장선 안드로이드 경호원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도착했습니다.)
“크군.”
그렇게 도착한 코끼리의 거처는 거대한 담벼락으로 둘려 있었다. 담이 아니라 성벽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규모.
(이쪽에 문이 있습니다.)
그 규모에 걸맞게 커다란 문이 있었다. 아마도 코끼리가 드나드는 문으로 보였다. 영상에서는 이곳에 도착한 안드로이드 경호원이 작은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연결이 끊겼었다.
‘놈이 바로 공격했다는 건데.’
코끼리가 무엇으로 어떻게 공격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능력자로 이뤄진 경비대를 몰살시킨 공격력과 방어력으로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건 확실히 위험했다.
태국 왕이 마지막에 발악했을 때 떠오른 코끼리 형상과 강력한 빛이, 죽음의 넝쿨을 분해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 그랬다.
안드로이드 2호가 작은 문 앞에서 마루를 돌아봤다.
뉴클립스를 뽑자, 스르르- 우우웅- 소리를 내는 뉴클립스.
‘나는 그저 칼이오.’, ‘나를 뽑은 것이오.’ 하면서 군침을 흘리는 듯한 진동에 손잡이를 꽉 쥔,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2호가 문을 밀었다. 잠겨있지 않은 문이 둔중한 소리와 함께 서서히 열렸다. 끼드드득- 일반인은 열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뻑뻑한 문.
절반 이상 열린 문 사이로 붉은빛이 번쩍였다. 쩌저정- 2호의 보호막을 관통하고 몸통을 꿰뚫는 붉은 광선이 뒤에 서 있던 마루를 향했다.
푸카가가각-
뉴클립스가 찢은 공간 사이로 굴절되는 절단 광선이 그대로 횡으로 그어졌다. 안드로이드 2호의 몸통이 그대로 상/하로 분리되는 것과 동시에 다시 쏘아지는 붉은 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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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시간이 필요한 붉은 광선을 연달아 써버리는 폭주였지만, 뉴클립스의 굴절을 뚫지 못하고 옆으로 미끄러지는 광선이 작은 문짝을 토막 냈다.
그 열린 틈으로 뛰어든 마루를 향해 절단 광선을 발사한 안드로이드 3호가 마주 달려들었다. 냉각하지 않고 연달아 쏜 반동으로 한쪽 눈과 안면이 녹아버린 얼굴로 채찍을 휘두르는 3호.
끝이 갈라진 채찍이 공기를 찢으며 쏘아졌다.
휘리리릭-
동시에 마루의 발밑에서 솟은 넝쿨이 채찍과 충돌하며 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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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힘을 이기지 못해 산산이 터지는 채찍과 넝쿨. 둔탁한 충격파가 동그랗게 퍼지는 찰나의 틈으로 3호를 스치고 지나가는 마루.
콰드득—-
머리를 잃은 3호가 비척비척 앞으로 내딛다, 순간적으로 허리를 360도로 회전하며 끊어진 채찍을 휘둘렀다.
기습적인 채찍질에 반응한 넝쿨이 방어했지만, 마루는 먼저 공격하고 있었다.
원을 그린 짧은 채찍질을 피해 휘둘러진 뉴클립스.
좌우/상하로 그어진 검격이 머리 잃은 3호를 열십자(╋)로 쪼갰다.
툭- 투둑-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안드로이드 3호의 조각 너머 보이는, 두꺼운 코끼리의 다리. 마치 그리스 신전 기둥처럼 굵은 백색 다리만 마루의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크기가.’
그리고 이어진 섬광.
번쩍-
마루의 앞을 방어한 넝쿨이 검은 입자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
‧
‧
김 양과 친위대는 매복한 전차와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출력 높여! 최대 출력으로 해!]노심 아머의 방어막은 주력전차의 120mm 철갑탄이라도 몇 발은 버틸 수 있었다. 최소한 3발에서 많게는 5발 정도까지는 방어할 수 있는 스팩. 그런데 단 고작 한 방에 깨지고 있었다.
[이거 우리 기술 들어간 포탄 같은데?] [적 전차. 한국군이 사용하는 전차와 유사해 보입니다.]김 양이 낮게 욕했다. 한국년들 동남아와 무역한다고 하더니 무기 팔아먹고 있었던 거냐? 그럼 다른 동남아 국가도 죄다 한국군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거고?
[드론 전개. 센서부터 먹통 만들어!] [드론 전개.]초소형 드론이 벌떼처럼 떠올랐다. 밀림과 전차 참호에 은폐, 엄폐한 전차를 향해 날아가던 드론들이 강풍에 중심을 잃고 흩어졌다.
[능력 반응!] [바람 능력자입니다.]김 양의 HUD(Head-Up Display)에 전차와 전차 사이에 팔을 앞으로 뻗은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철컥- 20mm 저격탄이 약실에 채워지는 것과 동시에 격발됐다.
탕-
일직선으로 쏘아진 탄환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충돌해 깨져버렸다. 쪼개진 탄환이 산탄처럼 흩어져 바람 능력자의 옆으로 스치고 지나가기도 전에 두 번째 탄환이 발사됐다.
히익-
“엎드리···.”
깜짝 놀란 바람 능력자를 몸으로 가로막고 내리누른 병사의 몸통이 20mm 탄의 충격에 산산 조각났다.
능력자의 몸을 휘감은 바람이 핏방울과 살덩이를 날려버렸지만, 그래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표적(target)이 됐다.
‘바람이란 말이지.’
그거 뚫으면 그만 아니겠어?
거의 연사로 쏘아진 두 발의 탄환, 하나가 휘감을 바람에 구멍을 뚫고 거의 같은 자리에 파고든 탄환이 바람 능력자의 왼쪽 어깨 어림을 날려버렸다.
20mm 탄의 위력은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깨 어림을 맞았지만, 왼팔이 뜯어졌고 갈비뼈와 폐까지 드러난 모습.
휘몰아치던 강풍이 사라지자, 드론이 전차에 달라붙었다. 센서를 향해 자폭하는 초소형 드론들. 순식간에 눈이 멀어버린 전차들이 후퇴하는 것을 그냥 지켜볼 친위대가 아니었다.
[지금이다. 돌격!] [캐터필러를 쏴!]집요한 공격에 후퇴하던 전차가 하나둘 파괴됐다. 견디다 못한 전차병이 해치를 열고 고개를 내밀어 봤지만, 방향을 잡기도 전에 사살됐다.
[머리 내민 새끼부터 잡아!] [2시 능력 반응!] [확산탄 터뜨려!]노심 아머 전용으로 개조한 120mm 박격포가 불을 뿜었다.
[2시 침묵.] [3시 방향에 능력 반응. 대지 조작으로 확인.] [박격포 지원 사격 요청.]필사적으로 후퇴하는 전차를 돕기 위해 적의 능력자들이 분전했지만 그뿐. 김 양과 친위대를 막을 순 없었다.
[항복하라고 해.] [항복을 거부했습니다.] [놈들이 싱크홀 쪽으로 갑니다.] [막아. 싱크홀 쪽으로 가는 놈들부터 쏴!]김 양이 집중사격을 명령했다. 전차를 바리케이드처럼 세운 적들이 싱크홀로 달려갔다. 그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확산탄과 열압력탄.
몇 발로 싹 쓸어버렸어야 했지만, 다양한 능력자들이 폭발과 후폭풍, 파편을 막아냈다. 그 틈으로 통제선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적들.
그리고 놈들은 열어서는 안 될 것을 열었다.
[통제선이···.]성벽처럼 우뚝 솟은 방벽에 여기저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치 댐이 무너지기 전처럼 갈라지기 시작하는 통제선.
눈매가 가늘어진 김 양이 친위대를 뒤로 물렸다.
[참호까지 후퇴.] [전술핵 준비. 소금과 바닷물도 준비해.] [벙커 전개. 바리케이드로 저지선 설치.]점점 더 커지는 통제선의 균열. 폭삭 주저앉은 다리처럼 무너져 내린 방벽 사이로 칙칙한 안개 같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닷물과 소금 뿌려!]소금이 흰 눈처럼 뿌려졌고, 바닷물은 폭포처럼 쏟아졌다.
촤아아악-
치이이익-
용암에 물을 뿌린 것처럼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짙은 안개처럼 피어오른 수증기 사이로 보이는 그림자.
우으으어어어–
죽은 것들이었다.
크에에에에엑-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것들이 무너진 통제선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어야 할 그것들이 바닷물과 소금에 맞아서인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발사!]예광탄의 빛줄기가 레이저처럼 그것들을 향했다.
[어차피 싱크홀 뚫렸어. 폭격해! 당장!]융단폭격이 죽은 것들 위로 뿌려졌다.
‧
‧
‧
섬광탄을 아득하게 넘어선 강력한 불빛에 마루는 왼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엑스레이로 찍은 것처럼 강한 섬광에 손바닥뼈가 비쳤다. 이어진 빛의 폭력에 대항하듯 솟아오른 검은 넝쿨과 넝쿨 잎사귀가 그대로 녹아버렸다.
‘시발.’
순간적으로 시야가 마비될 정도로 강력한 빛에, 찔끔 눈물을 흘린 마루가 눈두덩이를 훔쳤다.
‘앞이 안 보여. 빌어먹을···.’
발밑에서 계속 솟아나는 넝쿨과 잎사귀 덕에 눈이 멀지 않았지, 실명할 정도로 위협적인 섬광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쿵-
소리가 아니라 진동.
쿵- 쿵-
(죽지도 않고 조아리지도 않았나?)
언어가 아닌, 머릿속에 그대로 박히는 듯한 의사. 놈의 흥미로워하는 생각이 날 것 그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간 잠잠했던 감각이 느껴졌다.
찌릿-
두근-두근—두근–
쭈뼛 선 감각에 따라 옆으로 몸을 던지자, 거대한 기둥 같은 다리가 마루가 서 있던 자리를 짓밟았다.
콰아아앙—-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충격파와 흔들림. 작게 펼쳐진 죽음의 정원이 단 한 번에 뭉개지며 지워졌다.
(몸이 움직이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을 텐데 피하다니.)
어디 한 번 더 해보라는 듯한 사념이 퍼졌다.
“지랄.”
옆으로 굴러 몸을 피했던 마루가 벌떡 일어나 쪼개진 작은 문으로 내달렸다. 상/하로 분리된 안드로이드 2호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냅다 뛰는 마루.
(지랄?)
뒤도 안 돌아보고 튀는 마루의 뒷모습.
설마하니 그대로 도망칠 줄 몰라, 멍하니 보고 있던 빛나는 코끼리가 뒤늦게 분노했다.
뿌우우우우우!!!
네놈은 도망칠 수 없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
콰득-
거대한 문짝이 종잇장처럼 뜯어지며, 백색으로 발광하는 거대한 존재가 성큼성큼 속도를 높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