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05)
러스트 [RUST]-1005
마루에 있어 ‘초심’이란, ‘생존’과 ‘안전’이었다.
‘튄다.’
국왕이 됐다. 죽음을 다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 됐고, 뉴클립스라는 희대의 마검을 소유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뉴클립스가 있으니 붙어볼까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마루는 돌아온 감각을 무시하지 않았다. ‘생존’과 ‘안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빛 다음에는 직접 공격인가?’
혼자만의 생존과 안전이 아니었다.
마루가 등에 지고 있는 건 신성 왕국 그 자체였다.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뒤따르는 것을 보니,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괴물 코끼리가 추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쫓아 온다는 건···.’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
“2호. 김 양과 친위대와 연결되나?”
마루는 짐짝처럼 끌고 가는 안드로이드 경호원을 향해 물었다. 하반신이 잘린 채 기동 정지했던 2호의 동공에 희미한 빛이 깜박이며 답했다.
(치지직- 현재. 칙- 싱크홀 활성화. 칙치직- 교전 중. 치지직-)
“현재 상황 전달하고. 내 비행선 호출해.”
(삐이이- 상황 전달.– 비행선- 호출- 완료-)
만찬장에서 백색의 빛에 죽음의 넝쿨이 입자로 변하는 걸 확인하는 순간, 마루의 생존 본능이 극한으로 예민해졌다.
연결이 끊긴 안드로이드 3호가 아군을 공격한 것과 괴물 코끼리가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한 빛을 분출하는 것까지. 전부, 잠들었던 생존 감각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죽음을 다룰 수 있게 된 후부터, 발동하지 않던 생존 본능이 다시 발동됐다는 건 위험하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마루는 일단 장소를 벗어났다. 풍부한 교전 경험과 위험을 경고하는 감각이 피하라고 했기 때문.
‘왕성과 놈의 거처 인근엔 방위군과 대공 방어 시스템이 있어.’
놈의 거처에 어떤 장치가 있을지 몰랐다. 신수라고 했으니 신물이 있을 수도 있었고. 신수를 받드는 광신자들도 있을 터.
뿌우우우우우우!
거기서라!! 거기서!!
쿵- 쿠쿵-
마루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치지직- 비행선 착륙 치직- 지점- 치직-요-)
전용 비행선이 착륙할 곳을 지정해달라는 안드로이드 요청.
“착륙하지 말고 내 앞으로 오라고 해. 지상 6m~7m 위에서 해치 열어.”
(칙- 완-료-)
잠시 뒤, 마루 전용 비행선과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 한 척이 다가왔다.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은 요청하지 않았는데, 상황을 들은 김 양이 딸려 보낸 것 같았다.
위이잉-
퍼어어엉-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이 괴물 코끼리를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백색의 레이저처럼 쭉- 곧은 잔상을 남기고 쏘아진 레일 건(Rail Gun)이 마루를 추격하는 코끼리를 노렸다.
레일 건 포격에 대응하듯 번쩍- 빛나는 섬광.
쾅!
레일 건 포탄이 만든 잔상과 코끼리가 뿜어댄 빛이 충돌하며, 착탄이 빗나갔다. 계속된 레일 건 포격이 코끼리가 뿜어낸 짙은 빛을 꿰뚫지 못하고 전부 빗나가고 있었다.
쾅! 콰쾅! 쾅—
포격을 막기 위해서인지, 마루를 추격하는 걸 멈춘 코끼리였다. 그 틈에 전용 비행선에 뛰어오른 마루가 코끼리를 바라보자.
뿌애애애애애애애!!
분노에 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그란 충격파를 만들며 퍼진 울음소리에 깜짝 놀란 듯. 푸드덕- 사방에서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한국에서 식인귀 실험실 근처에서 봤던 비둘기 떼나, 울산에서 봤던 까마귀 무리보다 더 많은 숫자. 엄청난 숫자의 비둘기가 한꺼번에 치솟는 모습은 마치 자연재난이 터지기 직전 같았다.
그렇게 높이 날아오른 비둘기 떼가 태양을 가릴 듯 고도를 높이더니, 기다란 구름처럼 하나로 뭉쳐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으로 달려들었다.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의 근접 방어시스템이 작동했고 하부에 있는 코일 건 시스템도 비둘기 떼를 향해 맹렬한 사격을 시작했다.
노란색, 주황색 예광탄이 지나간 자리마다 떨어지는 비둘기들. 변이를 일으켜 어지간한 육식 조류보다 덩치가 큰 비둘기들이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추락했다.
초당 수십에서 수천 마리가 죽어 나감에도 비둘기들은 공포가 거세된 것처럼 달려들었다.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도 그 비정상적인 행태에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지만, 비둘기들의 자살 공격이 더 빨랐다.
퉁- 투퉁- 퉁-
비행선을 향해 몸통 박치기를 시작하는 비둘기들.
우우웅-
투명한 방어막이 작동하며 비둘기를 밀어냈지만, 그것도 잠시. 비둘기 떼가 비행선 전체를 감싸자 문제가 생겼다.
밀집된 비둘기가 만든 생체 EMP가 강해지면서 비행선의 전자기기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거기에 비둘기들이 비행선의 엔진 흡기구 안전망을 뜯고 들어가자 전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펑- 트드드들-
엔진이 하나씩 꺼지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고도가 낮아짐에도 비행선은 마지막 공격을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모듈 원전이 폭주한 끝에 피어오른 작은 버섯구름. 비행선에 달라붙었던 비둘기들이 통째로 숯덩이로 변했다.
뿌애애애애애애애애!!
비둘기 태반을 잃고 마루를 놓친 코끼리의 분노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
‧
‧
‧
김 양과 친위대는 열린 싱크홀을 폐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놈들이 끝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닷물 계속 뿌려!]침식당한 동물들과 벌레 그리고 사람까지. 일본 도쿄에 있는 싱크홀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십만 넘게 토해내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놈들이 소금과 바닷물에 약하다는 것. 죽지 않는 놈들인지라 죽지는 않았지만, 소금과 바닷물에 느려지고 정화됐다.
일단 움직임을 멈췄으니 그걸 정화라고 표현하는 게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느려지고 멈춘다는 게 중요했다.
친위대는 놈들의 움직임이 둔화(鈍化)됐을 때를 노려 공격했다. 벌레는 짓이겼고, 덩치가 큰 것들은 토막 냈다.
[소금이 모자랍니다!] [보급은? 아직?] [보급선이 오려면 2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소금 없으면 불이라도 질러!]쉼 없이 방아쇠를 당기며 외치는 김 양의 HUD(Head-Up Display)에 안드로이드 2호가 보내온 정보가 떠올랐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안드로이드가 하나 파괴됐고. 하나는 반파. 그리고 마루가 도주 중이라는 내용.
크릭-
철컥-
빈 탄창을 기계적으로 교체한 김 양이 전선을 확인했다. 아직은 잘 막고 있지만, 빌어먹을 싱크홀이 꾸역꾸역 괴물 딱지를 뱉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전황을 확인한 김 양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지금이야 잘 막고 있다지만, 탄과 보급물자의 소모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넉넉하게 1시간 정도 쓸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물자가 고작 5분 10분 만에 동났다. 그렇다고 아낄 수만도 없는 것이. 김 양과 친위대의 적은 싱크홀 괴물뿐만이 아니었다.
싱크홀 통제부대는 처리했지만, 인근 지역 태국군까지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태국 왕과 정부를 정리하고 군부를 장악해 태국군을 제어하려고 했지만, 그걸 담당한 마루가 후퇴해 버렸다.
‘흐응- 좋지 않음.’
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어딘가 하나씩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옛날 회사에서 작업했을 때도 이렇게 어긋나다 보면 피똥 쌀 일이 생겼었는데.
제일 큰 어긋남은 최고 존엄인 마루가 후퇴했다는 것. 죽음을 다루기 전부터도 ‘이 새끼 진짜 같은 사람인가?’ 싶은 마루가 후퇴라니.
‘마루가 후퇴할 정도라면 진짜 위험하다는 건데.’
아파트 3층 높이의 곰도 잡았는데, 코끼리를 잡지 못하고 후퇴했다고? 진짜 무슨 특수한 능력이라도 생긴 코끼리일까?
갸웃-
이상한 것들이 계속 신앙을 먹게 그냥 두면 나중에는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했던 기순의 주장이 떠올랐다.
김 양이 보기엔 머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어딘가 이상한 건지 헷갈리는 기순이었지만, 가끔 맞는 말도 해서 계륵 같은 게 그린-순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번엔 그린 순의 예상이 맞은 것 같았다.
‘그건 꼭 이상한 것만 맞춘다니까.’
신앙을 먹어서 강해진 코끼리라면 위험하겠지. 마루가 바로 후퇴한다고 했지만, 혹시 모를 일.
[블랙 드레이크급 한 척, 왕님에게 지원 보내.] [까마귀 정찰대가 탑승한 비행선을 보낼까요?] [아니. 포탄이 넉넉하게 남은 것으로] [알겠습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 보낸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이 자폭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비둘기 떼의 공격과 신수인 코끼리 때문이라는 보고였다.
[왕님은?] [무사하십니다.]잠시 뒤, 마루의 전용 비행선이 도착했다.
[왔음? 괜찮음?] [그래. 상황은 어때?] [엉망임.] [얼마나?]김 양이 지금까지의 전황을 파일로 보내며 말했다.
[바지에 똥 싸기 직전?]피식- 웃은 마루가 전황을 확인했다. 말은 똥 쌀 지경이라고 하면서도 싱크홀에서 쏟아지는 괴물을 잘 막고 있는 김 양과 친위대였다.
문제는 불사의 괴물이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잡은 인간형 괴물만 십만이 넘었고 동물과 곤충류까지 합하면 백만이 가뿐하게 넘은 상황. 그렇게 많이 잡았음에도 싱크홀에서 쏟아져 나오는 속도나 밀도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보급이 문제군.] [추가 보급이 오려면 1시간 넘게 걸리는데, 이대로 가면 보급이 떨어지기까지 30분도 안 걸림.]마루의 시선이 무너진 통제선을 향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무너진 담벼락처럼 생겼지만, 마루는 그 재질과 색에 관심이 갔다. 언뜻 봐도 신수랍시고 있던 코끼리의 거처에서 본 성벽과 비슷한 색과 재질.
태국에서 싱크홀을 어떻게 안정시켰을까?
불사의 괴물은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무엇보다 제일 위험한 것은 감염과 침식. 어지간한 방호복으로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자극을 받으면 불사의 괴물을 내뱉는 싱크홀을 어떻게 통제했을까?
‘괴물 코끼리의 능력으로 싱크홀을 통제했겠지.’
괴물 코끼리의 능력과 태국 왕의 능력이 비슷하다면, 놈의 능력은 정신계였다. 그것도 세뇌에 가까운 정신계.
‘단순한 정신계나 세뇌는 아니야.’
안드로이드 3호까지 배신하도록 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그랬다.
[그럼 그거 일종의 해킹 아님? 세뇌도 컴퓨터로 따지면 해킹? 그런 거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놈의 빛은 물리력을 가지고 있었어.]분명 레일 건의 포격을 빗겨냈다. 그것도 여러 차례.
[죽음은? 죽음의 정원으로 쌈 싸먹는 건?] [확실하지 않지만, 상극인 듯싶다.]상극이라는 말에 김 양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상극?] [놈의 빛에 닿으니까, 죽음의 넝쿨이 분해됐어. 물론 놈의 빛도 그만큼 약해졌지만.]섬광을 막은 것도 죽음의 넝쿨이었고, 섬광에 분해된 것도 죽음이었다.
흐으응-
[색깔이 시커메서 그럼? 아니면 신앙 때문?] [글쎄···.]단순히 빛과 어둠의 대립은 아니었다. 검은색을 죽음으로 본다면 빛은 생명이나 삶일 텐데, 코끼리의 빛은 생명이나 삶이 아니었다.
‘어떻게 통제했지? 강력한 빛으로 세뇌했다고 가정하면.’
머리가 팽팽 도는 마루였다.
‘싱크홀 괴물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통제가 가능하다고 해도 저 많은 숫자를 한 번에 세뇌할 순 없었을 터. 할 수 있었다면 통제선을 만들지 않았겠지. 그러니까 코끼리 놈의 능력도 완벽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저 담벼락. 놈의 거처와 비슷한 재질로 통제선을 만들었어.] [흐응-]죽음의 정원을 펼칠 땐 코스트가 필요했다. 작게는 마루의 정신력과 체력이, 많게는 생명이 필요했다.
죽음의 정원을 유지하거나 확장하려면 그만큼 많은 생명을 수확해야 했다. 생명이 부족하면 확장된 죽음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죽음이 그런데 코끼리의 능력이라고 대가나 소모가 없을까?
대가가 가볍거나 소모가 적다면 진작 동남아시아를 통일했겠지. 무엇보다 싱크홀에서 멀리 떨어진 거처에 있었다는 건. 어쩌면 소모가 막심해서일지 몰랐다.
[인신 공양까지 해야 할 정도로 말이야.] [흐으으응- 그럼?]마루가 차갑게 말했다.
[놈을 말려 죽여야지.]어떻게? 하는 김 양의 눈빛.
[이곳으로 유인한다.]‧
쿵- 쿠웅-
기계로 보이는 걸 지배한 것도 그렇고 비둘기 떼를 움직이느라 소모가 컸다.
(그놈은 위험해. 그놈을 죽였어야 하는데.)
신앙을 먹어 반신에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직감이 발달한 코끼리였다. 그건 분명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마루를 죽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거처로 발걸음을 옮기는 코끼리가 갑자기 느껴진 끔찍한 고통에 울부짖었다.
뿌애애애애애애애액!
그곳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 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정도였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통증에 공포심까지 들 정도.
꿰에에에에에에엑!-
부우우웅-
주저앉으며 코를 휘두르자 폴짝 뛴 그것이 눈에 보였다.
도망친 그것이었다.
그 새끼가 자신의 소중한 곳을 공격한 것.
(······.)
“아까-비-”
고개를 숙인 코끼리의 눈에 반쯤 파먹힌듯한 파이어 에그와 중심이 보였다.
뿌애애애애애애애액!
이 새끼가아아아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