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1)
러스트 [RUST]-101
서울 샬롯 그룹 본사.
심은규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래···. 확실히 잡았다고?”
“예. 야마츠키 신약 연구실에서 작업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흠- 본토와는 연락이 끊겼을 텐데, 작업이 끝난 건 어떻게 알았지?”
여우 같은 년이 수를 썼을 가능성도 있었다. 심은규는 돌다리도 두들겨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호텔 사장이 가져간 위성 통신망으로 연락받았습니다.”
“잡은 건 확실한 건가? 교차 검증은 했고?”
“위성 통신망이 하나뿐이라 교차 검증은 못 했지만, 연구소 직원들 여럿과 통화를 해서 확인한 결과 확실합니다. 뭣보다 연구소 직원 가족들이 한국으로 올 수 있냐, 없냐가 걸려있는 일이라 말이 틀릴 여지가 없습니다.”
심은규가 아껴둔 꼬냑을 꺼내 잔에 채웠다. 짙은 황금색 액체가 잔 속으로 흘러가며 특유의 향이 대표이사실을 채웠다. 술이라기보다 향수에 가까운 냄새. 심은규는 깊숙하게 향기를 탐하면서 아쉽다는 듯, 시원하다는 듯 말했다.
“병신 같은 년,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가더라니···. 그래서 그년의 목은? 확실히 잘랐고?”
“회생 가능성이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치명상이라는 말에 심은규가 들고 있던 잔을 내리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회생 가능성이 없어? 그년에게 약이 있으면? 엉?”
“급속치료제는 없다고 했습니다. 치료제가 없으니 곧 죽을 거라고. 죽일지 살릴지.”
“죽이라고 했잖아. 죽이라고.”
“······.”
“그년이 어떤 년인데 치명상은 무슨 치명상!!! 당장 머리를 잘라버리라고 해. 당장!”
“옛. 알겠습니다.”
“잠깐.”
허겁지겁 나가는 직원을 심은규가 불러세웠다.
“그년이 확실한 거 맞지?”
“비상 통로로 움직인 것을 보면 맞지 않을까 합니다.”
홍채인식을 해야 비상 통로를 쓸 수 있었다.
“좋아. 부산 샬롯 호텔로 갈 준비를 해. 그년이 죽었다는 걸 알면 무너지겠지. 내 직접 옥석을 가려내고 처리할 테니, 필요한 애들 명단 만들어 놔.”
“넷. 명단은 어느 선까지 할까요?”
“전부. 어설픈 놈들은 이번에 싹 갈아치워 버릴 거니까. 빡빡하게 확인해.”
“알겠습니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았다. 코끝을 간질거리는 풍부한 향을 삼키며 심은규가 잔을 들었다. 조금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 아무리 영악해도 짐승일 뿐이었다. 배고프다고 그렇게 쉽게 밖으로 나돌다니, 싸구려 종말에 걸맞은 년이었다.
뒈진 개년의 얼굴을 보면서 술을 마시면 술맛이 꿀맛이 될 텐데.
삐익- 인터폰을 누른 심은규가 혀로 굴리던 꼬냑을 삼켰다.
“머리랑 몸통. 함부로 다루지 말고 잘 보존하라고 해. 박제를 만들게.”
[···박제 말입니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이제. 샬롯 그룹은 온전히 내 것이다.
아래 깔린 서울의 풍경. 다음은 네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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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린 9개의 핑크빛 앰풀. 9명이 각자 급속치료제 나눠 가졌던 것을 회수한 마루였다.
퍽-
어윽!
“팔이 내 팔!!!”
“치료제를··· 제발 치료제를···”
“살려주세요.”
걷어차인 놈들과 새로 다리를 분리해준 것들이 치료제를 돌려달라며 신음했다.
‘사장이 가져간 게 9개로 알고 있는데, 9개 전부 공평하게 나눴다고? 알뜰하게 나눴네.’
안쪽에서 총소리가 난 걸 보면 안에도 사람이 있다는 의미였다. 안에 있는 놈들이 실세라면, 그 실세가 이들에게 급속치료제를 나눠 갖도록 했다는 말은 더 좋은 뭔가를 챙겼다는 소리였다.
‘급속치료제보다 좋은 걸 사장이 가지고 있었다?’
그게 뭘까? 마루가 핑크빛 앰풀을 주머니에 챙기며 서버실로 들어갔다.
“이쪽은 다 정리했는데, 그쪽에 사장이랑 있어?”
“여기 있음. 사장 상태가 안 좋음.”
“그래? 죽을 거 같아?”
“······.”
김 양의 목소리가 좋지 않은 것을 보니 심각한가 보다. 어쩌다 그랬데? 급속치료제를 뺏겼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경호원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마루와 김 양은 번갈아 봤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인성이 글러 먹은 게 확실했다.
“어이가 없어서. 내가 최소한 3번은 살려준 것 같은데. 표정 보소? 아주 지랄들을 해요. 지랄을···.”
마루의 말에 경호원이 꿈틀댔다. 김 양이 묶인 것을 풀어주지 않고 있었나 보다. 역시 김 양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어으허으어!
뭐야 이거? 왜 소리를 이따위로 내?
경호원의 입을 벌려보니, 있어야 할 게 없었다. 팔다리 멀쩡해서 사장한테나 린치했거니, 그렇게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아- 진짜.”
하긴, 밖에 널려있는 팔다리들을 생각하면 뭐. 근데 지혈은 어떻게 시켰데? 급속치료제로 지혈만 시킨 건가? 독한 놈들이 세상엔 참 많았다.
이 상태로 치료제를 발라 버리면, 다시 붙일 때는 아문 부분 다시 잘라내고 붙여야 할 텐데. 아니, 다시 붙이지 않겠다고 바른 건가?
어쨌든 잘린 부분이 있어야 급속치료제를 쓰든 말든 했다.
‘경호원은 그렇다 치고. 사장은···.’
슬쩍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난감했다. 손목과 발목이 잘려있었고 케이블 타이로 지혈했지만, 제대로 지혈되지 않아 엉망인 상태.
스윽-
공간이 일렁이더니, 투명한 통이 쑥 나왔다.
“아- 씹- 잘했어.”
마루가 욕을 삼켰다. 투명한 통 안에 들어있는 건 시신경이 그대로 붙어 있는 안구였다. 양쪽 눈동자 색이 미세하게 다른 안구. 하나는 눈동자가 좀 짙고, 다른 하나는 옅은 갈색이었다.
“진짜 왜 눈알을 뽑고, 지랄들인지.”
아마도 비밀 통로를 사용해 탈출하려면 홍채인식을 해야 했기 때문에 뽑은 것 같았다. 손목은 지문인식 때문에 자른 것 같았고. 그럼 발목은 왜? 마루는 잠시 현타가 왔다. 이게 내로남불이었구나. 좋네.
“손목이랑 발목이랑도 찾아봐. 경호원 것도. 뭔 일인지 들어봐야 하니까. 헬기 조종사는?”
사지 멀쩡하게 잠들어 있었다. 팔다리 건드리면 헬기 조종 못 하니까 놔뒀나? 그냥 재워두고. 사장부터 치료해야겠다. 우선 자세히 좀 살펴보고.
“에이- 진짜-”
배신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같은 편 아니었어? 호텔 사장이 월급도 주고 그랬을 텐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은 몰골이었다. 마루가 2/3쯤 남은 급속치료제를 까서 몸통과 팔다리 여기저기 뜯긴 부분에 뿌렸다.
찢긴 부분은 순식간에 치료됐지만, 뜯겨 나간 부분은 채워지는 데 오래 걸리고 있었다. 어쩌면 완전히 채워지지 않고 아물 위험도 있었다. 급속치료제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의료진이 필요해 보였다.
밖에 잘라 놓은 것들 가운데 가운을 입고 있는 애들이 있었는데. 하나라도 데려와야 하나? 결정은 빨랐다.
마루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 의료진이라는 남자의 사지를 붙여 데려왔다.
“상태가 어때?”
“위험합니다. 워낙 유실된 부분이 많고, 중상인지라.”
“치료제가 있는 데도?”
“예. 치료제가 만능은 아닙니다. 유실된 곳을 채우려면 세포가 증식해야 하는데, 이렇게 많은 부분을 한꺼번에 증식하려면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몸이 견디지 못할 겁니다. 사실 지금도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마루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슬쩍 꿈틀거리는 경호원과 사장을 봤다. 그래도 사장은 경우가 있으니까.
일렁이는 공간에서 팔이 쑥 나왔다. 김 양이 내민 손에 들려있는 것은 살덩이였다. 피범벅인 살덩이를 본 의료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이걸로 경호원부터 말하게 해놔 봐.”
“예···.”
의료진이 조심스럽게 살덩이를 받아 경호원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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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샬롯 호텔 앞.
길게 늘어선 벤츠 사이로 롤스로이스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경호원이 먼저 내려 뒷좌석 문을 열자, 심은규가 천천히 내리며 양쪽으로 죽 늘어선 자들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정복자의 얼굴, 승리자의 표정을 감추지 않은 모습.
“이쪽으로···.”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굽힌 직원이 심은규를 에스코트했다.
“흐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이군. 버러지 같은 것들. 심은규는 싸늘한 눈빛을 한 채 굽실거리는 자들을 스쳐 지나갔다.
“어디로 모실까요?”
“집무실. 그리고 팀장급 이상은 모두 대회의실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에스코트하던 직원이 떠나자. 심은규가 옆에선 비서에게 말했다.
“다 모이면 한 번에 정리해. 어떤 면상들인지 얼굴이나 보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겠어.”
“네. 준비는 다 됐습니다.”
띵동-
[문이 닫힙니다.]전용 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심은규의 사방을 둘러싼 경호원들이 무전기로 통신을 주고받았다.
띵-
[문이 열립니다.]먼저 내려 주변을 확인하는 경호원들. 밖에도 경호원들이 군데군데 동선에 포진해 있었다. 실로 철통같은 안전이었다.
그년이 죽었으니 문제가 될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년에게 받은 은혜를 갚겠다며 미친 짓을 하는 것이 나오면 피곤했다. 내려오지 않고 알아서 처리할까 싶기도 했으나 이 심은규가 샬롯 그룹을 장악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심은영의 뿌리가 깊게 박힌 부산인지라 싹 뽑아내려면 어차피 한 번은 왔어야 했었다. 이왕 해야 할 일이라면 속전속결로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피를 보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빨리 보고 빨리 해결하는 게 좋았다.
이미 한 번 확인했겠지만, 경호원들이 다시 집무실 안을 확인했다.
“이상 없습니다.”
쯧- 역시 천한 핏줄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집무실 인테리어와 소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혀를 찬 심은규가 장식장을 살폈다.
“술 보는 눈은 있었나 보네.”
배신당해 뒈진 년이 남기고 간 거라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장식장 문을 열고 위스키 하나를 꺼낸 심은규가 잔을 들고 시원하게 뚫린 창문으로 향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풍경. 확실히 좋은 터였다. 시내에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크진 못했을 거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룹이 쪼개지기 직전까지 갔었던 일들, 월드 그룹에게 아쉬운 소리 했던 순간들, 그리고 월드의 미친년 유 이사가 떠올랐다.
“씨발년.”
위스키를 한 모금 머금자 화끈하고 묵직한 향이 뱃속을 휘감았다.
“좋군.”
순간, 집무실 천장이 일렁이더니 뭔가가 경호원 머리 위로 떨어졌다.
으직-
콰득-
떨어진 무엇이. 경호원의 목을 순식간에 꺾어버리곤 남은 두 사람의 경호원을 향해 날아갔다. 총을 뽑기에도 지원을 부를 짬도 없이 그대로 넷이 뒤엉켰다. 투명하게 일렁거리는 속에서 뻗어나간 스트레이트를 경호원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빠극!
한 방에 턱이 박살 났고 이어진 훅에 목이 돌아가며 쓰러지는 경호원.
다른 경호원은 언제 목이 썰렸는지 머리만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일렁이던 공간에서 이기영 과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뒤로 호텔 샬롯을 지키는 칼이라 불리는 사내도 모습을 드러냈다.
“흐흐흐흐흐. 그래.”
심은규가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위이이잉-
커다란 책상이 반으로 접히며, 안쪽에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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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이 가져온 손목. 손목은 찾았는데 발목은 찾지 못했다. 발목으로 뭔 짓을 할 게 있다고 꼭꼭 숨긴 건가? 설마 쥐새끼들한테 던지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잘린 손을 보니, 오른손 엄지손톱에 잘근잘근 씹힌 흔적이 역력했다.
갸웃-
마루가 손을 살폈다. 다행히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서 붙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응? 이거 감촉이 이상한데?
왼손과 오른손 감촉이 좀 다른 느낌?
“붉으핵 햑이··· 후걸 서서 후걸.”
뭐라고? 무슨 약이 있다고? 마루가 미간에 구멍이 난 남녀의 시체를 살폈다. 깊숙한 품에 짙은 붉은색 앰풀이 있었다. 거부감이 드는 빛깔이 여전했다. 마루가 경호원을 보곤 되물었다.
“이걸 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