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12)
러스트 [RUST]-1012
신앙을 먹고 강해진 괴수와 태국 왕을 잡은 죽음의 정원은 무섭게 강해졌다.
풀잎만 하더라도 이젠 건물이나 장갑차도 썰어버릴 정도였다. 그림자 쥐도 마찬가지, 이제는 건물이고 뭐고 구멍을 파서 뚫고 들어갈 지경.
죽음의 넝쿨은 공격과 방어 모두 압도적으로 변했다. 어지간한 화력으로는 넝쿨 잎을 뚫지 못할 정도였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싱크홀 괴물도 혼자 끝낼 수 있는 것임?]김 양이 돌아온 마루를 반겼다.
“죽음이 넉넉하다면.”
[오- 그럼 계속 쓸고 다녀야겠네? 아니면 왕건이를 잡거나?]죽음을 채우려면 많은 생명을 수확하거나 아니면 신앙을 먹은 신수, 능력자, 식인귀, 흡혈귀 따위를 잡아야 했다. 요는 양이거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
“할 말 있으면 해.”
[흐으응- 티 많이 났음?]김 양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말 그대로 묘하게 식탐에 어울리는 표정.
“징그럽게 그러지 말고. 뭔 이야긴데?”
[그러니까. 코끼리도 먹을 수 있는 거 아님? 우리 그때 큰 곰 먹고 다들 효과 좋았잖음.]뭐?
마루의 표정이 ‘뭔 개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변하기 전에 김 양이 열심히 항변했다.
[그거 코끼리도 고기잖음. 인류의 조상은 본래 코끼리 조상을 먹으면서 빙하기를 견뎠고. 그랬잖음.]코끼리는 인류의 고마운 고기인 것.
[응. 그러니까 인류 조상이 아껴먹은 고기를 우리가 그냥 버리는 것은 죄악임. 진짜로.]김 양은 진심이었다. 저렇게 거대한 코끼리 고기를 또 언제 먹어볼까? 심지어 번쩍번쩍 빛났던 코끼리였다. 매머드? 맘모스? 그런 애들보다 더 크고 힘센 고기.
무엇보다 마루가 죽음을 사용해서 잡으면 생명이 전부 빨리고 거름이 됐는데, 그 신성 코끼리는 뉴클립스로 뇌만 찔러 죽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죽음이 전부 다 먹지 못해서 그런지. 시체가 고스란히 남았다.
그래서 통째로 냉장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마루 몰래 일단 해체해보려고 하다가 실패해서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 고기 뭔가 효과 있을 게 분명함. 그거 죽은 지 일주일도 넘었는데 그대로 싱싱한 것도 그렇고 느낌이 다름. 정말임.]김 양의 필사적인 설명에 마루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김 양은 언제나 고기에 진심이었다. 코끼리가 아니라 악어였다고 해도 고기를 노렸겠지.
그 작은 끄덕임을 허락이라고 생각했는지, 김 양이 설명을 덧붙였다.
[알아봤는데 맛도 괜찮다고 했음. 오래된 이야기지만 아프리카 쪽에서는 가뭄이 심하게 들면 코끼리 사냥을 했다는 기록도 있었고.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코끼리 고기가 병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해준다는 믿음도 있고 그렇다고 했음.]힌두교와 불교에서는 코끼리를 성수로 생각해 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했지만, 인도 홍차로 유명한 아삼(Assam) 지방에서는 코끼리 고기를 영약처럼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역시 고기와 관련해서는 열심히 찾아본 김 양이었다.
[그거 가죽이 질긴데···. 살만 잘 발라서 뼈랑 같이 푹 고아서 먹으면 부드럽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저번에 큰 곰도 곰탕으로 고아서 먹었으니까···.]‘수육’, ‘곰탕’, ‘구이는 힘들까?’ 이리저리 고기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김 양의 모습에 피식- 웃은 마루는 흔쾌히 해체해주기로 했다.
‧
해체를 위해 코끼리가 보관된 냉동창고에 들어간 마루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이거 언제부터 이랬어?”
[어떤 거?]분명히 생명을 잃었던 코끼리 사체에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대로 뉴클립스를 빼 든 마루가 코끼리 머리통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마루가 뉴클립스를 뽑자마자, 바로 반응한 김 양. 그녀의 노심 아머에서 36기의 드론이 떠올라 냉동창고 전체로 흩어졌다.
언제 위치를 잡았는지, 높은 구석에 자리한 김 양이 격철을 잡아당겼다. 철컥-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마친 뒤에야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임?]“이 새끼 빛나고 있잖아.”
마루의 대답에 김 양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게 왜? 빛난다는 건, 신성인지 신앙인지 있다는 거 아님?]좋은 거 아닐까? 신앙이 담긴 고기라는 뜻인데? 그건 무슨 맛일까? 김 양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
마루는 대답 대신 은은하게 빛을 내는 코끼리 머리통 위로 올라갔다. 뉴클립스로 뚫었던 구멍이 확연히 작아져 있었다.
미친- 뒈졌는데 상처가 치료되고 있다고?
‘이 새끼 능력이···.’
세뇌하는 빛? 군중 제어? 문득 김 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성수, 신수로 취급받아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힌두교.
팔이 달린 코끼리 신상.
가네샤.
그러니까 ‘가네-샤아’.
‘군중’을 의미하는 ‘가네’와 ‘주인’을 뜻하는 ‘샤아’를 합친 뜻.
다시 말해 군중의 주인.
거기에 왕권의 상징, 왕권의 힘이 되는 흰색 코끼리가 합쳐졌다면?
‘신앙이 계속되는 한 존재하게 되는 건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흰색 코끼리를 보면 그랬다.
종말이란 기존의 질서와 법칙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정신활동이라고 분류했던 마음, 감정, 신앙 같은 것이 물리적인 힘을 갖는 세상.
마루가 코끼리 괴수를 죽였다고 아무리 방송해도 사람들이 그걸 믿지 않는다면?
흰색 코끼리가 신의 아바타라고 믿는다면?
신의 힘이 깃든 신수라고 아직도 믿고 있다면?
쿠직-
아물고 있는 상처 속에 뉴클립스를 박아 넣자, 이미 뒈진 코끼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신경이 다시 회복되고 있었다는 뜻.
미간을 찌푸린 마루가 뉴클립스를 뽑았다. 팔뚝만큼 커다란 구멍이 코끼리 괴수의 머리뼈를 통과해 안쪽 뇌까지 뚫려있었다.
“이거 광장으로 옮기고, 직접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여기로 오라고 광고 돌려.”
[응. 알겠음.]‧
코끼리의 사체를 공개하겠다는 광고에 바글바글 모여든 사람들. 태국의 신수, 하얀색 코끼리가 죽었다는 걸 믿지 않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진짜 죽은 건가?”
“너무 멀쩡한데?”
“잠자고 있는 것 아니야?”
“숨을 쉴 때 가슴이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아.”
모인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코끼리를 찍어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냐? 합성 아니지?)
(이걸 믿냐? 인공지능으로 만든 거겠지.)
(아니야. 저기 내 친구도 있다고.)
(실시간으로 숏 올라오잖아.)
(숏이고 톡이고 어떻게 믿어?)
태국도 그렇지만 동남아 각국에서 유선 인터넷은 끊긴 지 오래였다. 영악한 변이 괴수들이 전선과 통신망을 공격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괴수가 끊지 않더라도 화산 폭발과 지진, 내전으로 전력과 통신이 제대로 연결된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성 왕국의 성층권 비행선을 이용한 무선 통신망을 복구한 것, 다시 스마트폰을 이용한 소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도 자고 있다고?”
“이상한데? 진짜 죽은 거 맞아?”
“마취제를 썼겠지.”
“저 덩치에 마취제가 통하리라 생각하냐?”
“아니야 잘 보라고 빛이 나고 있잖아.”
“빛이 나면 뭐해 머리에 저렇게 크게 구멍이 뚫렸는데.”
“저렇게 큰 신수를 어떻게 죽였지?”
“칼로 머리를 뚫었다잖아.”
“그걸 믿냐?”
“네 머리를 이쑤시개로 찌르면 너도 죽겠네?”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던 김 양은 친위대를 지휘해 추가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바리케이드 가슴 높이로 만들어. 다닥다닥 붙지 못하게 해.] [사람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습니다.]넓은 광장이 인파로 가득 찼다. 그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마루가 등장했다.
저벅저벅-
족히 10만은 됨 직한 사람들이 노려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걸은 마루가 흰색 코끼리 앞에 섰다.
스르르릉-
그 서늘한 살기에 웅성거리던 소리가 뚝 끊겼다.
“······.”
“······.”
“······.”
그 넓은 광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10만이 넘는 군중의 시선이 그를 향했음에도 마루는 연설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흰색 코끼리를 밟고 올라섰을 뿐.
“······.”
“······.”
“······.”
하얀 코끼리를 신수로 믿고 있는 사람들은 신수를 모욕하는 짓이라며 분노했지만,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들을 짓누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독한 적막 속에서 마루가 뉴클립스의 칼날을 퉁- 튕겼다. 웅웅- 울리는 소리가 심장을 파고드는 것 같은 공포에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이어진 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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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뛰어올랐다가 그대로 내리긋는 검격.
뉴클립스 특유의 힘이 발현되면서 컨테이너 4개를 합쳐 놓은 듯한 굵기의 흰색 코끼리의 목이 잘렸다.
충격과 공포. 경악이 쓰나미처럼 사람들을 덮쳤다. 하지만 진정한 충격과 공포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우직- 스걱- 스거걱-
목이 잘린 코끼리를 즉석에서 해체하기 시작하는 마루. 그 거침없는 칼질에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변하는 거대 코끼리.
흰색으로 빛나던 가죽이 선홍색 핏방울에 물들었다. 작은 빌딩처럼 거대했던 몸통도 가죽이 벗겨지며 점차 고깃덩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참혹한 모습에 훌쩍이는 사람이 생겼고 몇 명은 선 채로 기절하기까지 했지만, 해체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가네샤-
‘가네(군중)’의 ‘샤아(주인)’
흰 코끼리의 강력한 군중 제어능력은, 사람들 앞에서 해체되는 것으로 끝났다.
‧
‧
‧
생방송으로 방영됐기에 덴 브라운도 해체 쇼를 볼 수 있었다.
‘미쳤군.’
10만이 넘는 인파가 모였는데 그 자리에서 그들이 믿는 신수의 시체를 토막 내다니. 진지하게 제정신인지 묻고 싶었다.
만약 사람들이 그대로 달려든다면? 비무장 민간인이고 뭐고 쓸어버릴 생각이었나? 그렇다면 블라디마루 칼린은 정말 미친 게 맞았다.
‘날뛸 테면 날뛰어보라는 건가?’
거대한 뼈와 고기가 분리되는 장면은 화면으로 봐도 압도적이었다. 무엇보다 해체되는 대상이 신수로 여겨진 하얀색 코끼리라는 것은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생명체의 한계에서 약간은 벗어났던 존재가 그저 뼈와 살로 분류되는 모습은, 근원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근원적인 공포심?’
신수를 죽여서 단지 고깃덩이로 만들어 버리는 존재에 대한? 덴 브라운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레온 보나드의 통신이 들어왔다.
[지금 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봤나?]“보고 있지.”
[신의 아바타, 신수를 도축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동남아 전체에 뿌렸다는 이야기다.]“그렇지.”
덴 브라운의 담담한 반응에 레온 보나드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놈은 너무 영악해. 지금 저 퍼포먼스가 뭐라고 생각하나? 저건 단순히 해체쇼가 아니야. 하얀색 코끼리가 가진 힘. 가네샤의 신앙을 뺏으려고 하는 거다.]“······.”
암살 위험에서도 흥분하지 않던 레온 보나드가 흥분하는 느낌에 침묵을 선택한 덴 브라운.
[모르겠나? 블라디마루 칼린은 신성. 신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분명해. 놈을 그대로 둔다면 놈은 신성을 얻을 테고. 반신이 될 거다. 놈들 장난스럽게 광고했던 반신 이야기가 현실이 될 거라고.]“······.”
잠시 침묵이 이어진 끝에 덴 브라운이 말했다.
“그걸 이제 알았나? 알고 있었을 텐데, 갑자기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지는군.”
[······.]덴 브라운의 번뜩이는 눈빛이 화면 저 너머에 있을 레온 보나드를 향했다.
“우리 황제 폐하께서도 신성이나 신앙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
레온 보나드 황제가 블라디마루 칼린의 행보에 갑자기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가 뭘까?
실익 없는 베트남 내전에 참전하겠다는 갑작스러운 선언은 왜 했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반응을 보자면, 아마도 신앙이나 신성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어떤 신앙을 얻었을까?
연이은 전쟁과 승리를 생각해보자면 전쟁의 신, 승리의 신이라는 영역이 아니었을까?
아주 공교롭게도 신성 왕국 국왕 블라디마루 칼린도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고. 당연히 마루가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터.
“아닌가?”
[······.]레온 보나드와 덴 브라운의 시선이 화면 속에서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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