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13)
러스트 [RUST]-1013
잠시간의 대치 끝에 레온 보나드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자신이 신앙 흡수해서 경계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신성 왕국 블라디마루 칼린이 신앙을 흡수해 강해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는 게 문제 아닌가? 하는 질문.
[블라디마루 칼린의 능력은 확실히 상식과 법칙에서 벗어난 구석이 있었지. 그리고 동남아에서 그렇게 무리한 학살을 한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하기 어렵더군. 그렇지 않았나?]“······.”
[하지만 죽음의 신, 전쟁의 신, 신을 죽이는 신이라는 위명을 얻기 위해서라 학살한 것이라면? 블라디마루 칼린의 행동이 이해되더군. 그래도 내가 문제인가?]“논점을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중요한 것은 레온 보나드가 신앙을 얻어 신성까지 가느냐 하는 점이었다.
식인귀와 흡혈귀를 처단한 이유가 무엇인가? 놈들이 지배력과 정신파를 이용해 인간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신앙의 대상이 되고, 그 결과 신성을 얻게 된 황제는? 인간을 지배하는 무언가, 신적인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블라디마루 칼린은? 나보다 그가 문제일 텐데?]“블라디마루 칼린은 죽이면 죽였지, 억지로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마루가 한 일을 보면 그랬다.
마루는 시작부터 그랬다.
블라디아크 타워를 만들 때부터 분란을 일으킨 자는 내보냈다. 그가 장악한 영역이 넓어지면서 디트로이트 시를 장벽으로 막았을 때도 마찬가지. 같이하고 싶지 않다는 자들은 나가게 했고 뜻에 반하는 자는 추방했다.
그건 나중에 자유 캐나다 연방이라면서 신성 왕국에서 독립하겠다는 자들이 나왔을 때도 똑같았다.
마루가 죽음과 관련한 신성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힘을 죽이는 데 쓸망정, 강제로 지배하는 데 쓰지 않았다.
[······.]“신성 왕국의 기술은 특이점을 넘었어. 제국의 클론 관련 기술을 가져갔으니, 뇌에 정보를 주입하는 기술을 발전시켰겠지. 그럼 사람을 세뇌하는 것쯤이야 금방일 터.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덴 브라운이 이제껏 파악한 바로는 그랬다.
“그래서 내가 신성 왕국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고.”
신성 왕국은, 블라디마루 칼린은 최소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했다. 자유를 존중한다는 건 인간성을 긍정한다는 것.
신성 왕국에서 언론과 행정을 담당했던 PD가 홀리교라는 종교 단체를 만들었음에도, 블라디마루 칼린은 사람들을 현혹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절대적인 존재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고자 하지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인간을 무턱대고 죽이려 하지는 않았지. 그런데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어떠신지 모르겠군.”
[블라디마루 칼린을 높게 치는군. 그렇게 그가 마음에 들면 신성 왕국으로 가지 않고?]“황제. 우리가 했던 계약을 기억했으면 좋겠군. 나는 내정을 황제는 군사를. 그리고 우리가 서로 견제하며 제국의 영광을 이루기로 했던 것을. 그런데 황제가 반신이나 신이 되기 위해 제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오해군.]덴 브라운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필라델피아 탈환은 보급을 쥐어짜서 얻은 승리였지. 왜냐고? 금방 해결할 수 있는 전선을 유지해 병사들을 각성시킨다며 시간을 끌대로 끌었으니까. 결과는 어떻게 됐지? 모든 영광은 황제인 당신이 전부 차지했고 말이야, 거기에 불만은 없어. 하지만 그 뒤에 당신이 한 행동은 뭐였지? 군단을 나눠 4개 주를 단숨에 장악했어.”
[그게 문제인가?]“문제지. 그게 문제가 아니면 뭐가 문제일까? 보급은 어떻게 할지 계획하고 진행했나? 4개 주에 있는 변이 괴물과 식인귀, 흡혈귀들은? 아직도 국지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4개 주의 주도를 점령했으니까 일단 장악한 것은 장악한 것이다? 그래. 거기까지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뭐? 베트남 내전에 참전하겠다고? 그걸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아직 4개 주를 완전히 장악한 것도 아닌데 바로 베트남 내전에 참전? 한국군이 북베트남과 연관된 상황인데 제국이 남베트남의 편에서 참전하면 어쩌겠다는 건가?
모르지는 않을 테고 알면서 그랬다면 왜 그랬을까?
끝없는 전쟁으로 병사들을 각성시키면서 제국을 쥐어짜 이루고자 하는 게 북미의 통일일까? 북미를 통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베트남 내전에 참전하겠다는 건가?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네. 진심으로.”
황제로 추대한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던 초심. 그러기 위해 군사와 정치를 분리하자고 했던 그 생각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덴 브라운의 말에 레온 보나드가 답했다.
[제국을 위해서 베트남을 비롯해 동남아를 그대로 둘 순 없어.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지만, 블라디마루 칼린이 동남아에서 신앙을 얻기 시작하면 너무 강해져.]군대를 키우고 제국의 경제를 활성화 시키려면, 동남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해야 했다. 동시에 마루를 견제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했다. 신성 왕국만 잘 싸우고 이기는 게 아니라, 제국도 강하고 승리한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전생의 신, 승리의 신이라는 이명을 갖지 못하게 막아야 해.]지금처럼 죽음의 신이나, 살육의 신, 공포의 신처럼 악신의 이미지가 굳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혹시라도 상황이 곤란해질 경우, 상성으로라도 누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 황제께서 신앙을 받았다는 거군.”
[그래. 신앙을 얻었네. 그게 중요한가?]“중요하지. 그래서 더 많은 신앙을 얻기 위해 끝없는 전쟁이 필요하고?”
[어쩌자는 거지? 그럼 내가 신앙을 얻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인간의 믿음마저 자원이 된 세상. 먼저 선점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했다.
전쟁의 신, 승리의 신성을 얻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했다. 신앙으로 능력이 강화되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물러설 순 없었다.
계속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했다.
필라델피아 공방전에서 이기게 된 것도, 흡혈귀 년의 발악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믿음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몰라. 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 믿음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제대로 모르기에 지금처럼 따지고 들 수 있는 거겠지. 단언하는데, 신앙에서 밀린다면 제국은 결국 몰락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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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성층권 비행선을 이용해서 독자적인 무선망을 구축하는 것 같은데 괜찮음?]입은 마루를 향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다른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동남아 지역에서 여론을 형성하려고 한다는 건가?”
[아마도? 어떡하든 친해지면, 뭘 팔아먹든 좋으니까.]대놓고 옛날 미국 드라마랑 영화도 무료로 뿌리고, 문스타그램 같은 SNS 서비스도 다시 오픈하고 그러고 있는 걸 보면 제국이 작심하고 동남아 시장에 힘을 쓰는 듯싶었다.
제국이 성층권 비행선을 이용해 동남아시아 전역에 인터넷망과 통신망을 구축하려고 하자, 한국도 몇 대 없는 성층권 통신 비행선을 부랴부랴 동남아시아로 보냈다.
제국과 한국이 동남아 시장을 경쟁적으로 개척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두 나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작은 베트남 분단 사태부터였다. 한국은 북부에 있는 공장 때문에라도 북베트남을 버릴 수 없었고, 이에 대항하듯 남베트남이 미합중국을 계승했다는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대화와 타협으로 어떻게 해볼 여지가 있었지만, 갑자기 제국 황제가 베트남 내전에 참전한다고 선언하면서 엉망진창이 됐다.
이런 와중에 제국이 동남아 전역에 독자적인 통신망을 구축한다는 건, 단순한 통신망 구축이 아니었다.
“통신망 구축과 함께 GPS 시스템을 회복하고 동시에 정찰까지 겸하겠다는 것이겠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문화 플랫폼은 여론전을 대비하는 것이겠고.”
인공지능 디아나는 혹시라도 제국과 여론전, 정보전, 전자전을 하게 될 경우, 순식간에 상황을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여론전이나 정보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든 명령만 하시면 제국 비행선의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레온 보나드 황제는 갑자기 왜 베트남 내전에 참전하겠다는 거야? 한국보고 꿇으라는 건가?”
[동남아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의 대답에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솥단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김 양이 툭- 대답했다.
[회사 다닐 때 생각해보면. 그렇게 갑자기 빠꾸 없이 들이대는 애들은 대충 나와바리 뺏겠다고 들어오는 거였음.] [베트남 내전을 이용해 동남아 시장을 먹으려고 한다는 뜻입니까? 인간은 이해할 수 없군요. 우리보고 싸우지 말라고 한 이유가 동남아 시장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으면서, 자기들은 참전하겠다니.]인공지능 디아나가 대놓고 인간을 토로했다. 하지만 김 양의 신경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익었을 것 같은데. 조그만 거 하나 건져서 잠깐만 확인해 보면 안 될까?]“기다려.”
[그럼 젓가락으로 살짝 찔러보는 건?]“아직 빛나고 있잖아. 기다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솥단지 속에는 은은한 빛을 잃지 않은 고깃덩이와 거대한 뼛조각이 들어있었다.
[근데 고기 효과 보려면 빛이 있을 때 먹어야 하지 않을까?]“몇 시간을 삶았는데도 저러면 위험할 수 있어. 놈의 신성이 잔류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뇌를 물리적으로 변이시킨 괴물인데 그게 뱃속에 들어가서 어떻게 될지 알고. 최소한 완전히 익기 전까지는 안 돼.”
고기에 대한 김 양의 집착은 제국이 베트남 내전보다 더 컸다. 순식간에 주제가 고기로 변해버리는 상황이었지만, 인공지능 디아나는 그 꼴을 볼 수 없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한국 정부가 제국에 굴복하고 북베트남을 포기할 확률 23%. 한국과 제국이 각기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 내전이 길어질 확률이 57%. 한국과 제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확률이 14%, 다른 상황으로 전개될 확률이 6%였습니다.]“제국은 본토에서 작전 중이던데, 황제가 뻥 카 친 건 아닐까?”
[그건 아닐 거다. 황제는 지금 제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필라델피아 승전 연설에서 선언한 것이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 거다.]황제의 선언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거짓이 아니겠느냐는 마루의 주장에 기순이 그건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
“솔직히 지금 제국 상황으로 베트남 내전에 참전할 수 있겠어? 당장 본토 병력 보급도 허덕여서 우리랑 한국에 기대고 있는 판에?”
제국의 주력 부대로는 새로 점령한 4개 주를 관리하는 것도 힘들었다. 주도와 주요 도시는 점령했지만, 지방은 아직 교전이 끝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베트남 내전에 참전하겠다?
최소한 수십만 단위의 병력을 보내야 할 텐데?
그렇게 무리해서 얻으려는 게 베트남 시장 확보와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한국과 척지고 신성 왕국과도 척지면서까지?
“대체 무슨 생각이지?”
[저번에 말했듯, 신앙 때문이겠지. 동남아에서 네 존재감이 커지는 걸 막고 황제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닐까?]신앙이라. 황제가 신앙을 먹기 시작했다는 건가?
“신앙이라. 쯧- 곤란하네.”
황제를 죽인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황제를 죽인다면, 덴 아재가 분명 숨겨둔 패를 꺼낼 테니까.
[덴 아재가 가지고 있는 패라면 같이 죽자는 것이겠지.]예전에도 그랬었다. 자기가 있는 회의장에서 대놓고 신경가스 터트린 전적이 있는 아재였다. 황제를 죽이고 제국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숨겨둔 뭔가를 터트릴 것.
“황제는 무슨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필라델피아 공방전을 보면, 일종의 염력 같았다.]“염력이면 염력이지 일종의 염력은 뭐야?”
[단순한 염력은 아닌 게,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기순의 설명이 더해지는데, 김 양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여기. 여기 고기 빚 꺼졌음. 이거 다 익은 거 맞음? 맞지?]“···먹고 하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