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14)
러스트 [RUST]-1014
검은 넝쿨이 단검을 꼬챙이처럼 사용해 잘 익은 수육 한 덩어리를 솥에서 꺼냈다.
휘리리릭-
서걱- 서거걱-
40개가 넘는 넝쿨이 수육을 써는 모습은 괴이했다. 기계로 자르는 것처럼 균일하게 썰리는 수육. 그리고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쌈 싸먹던 김 양이 힐끗 마루의 눈치를 봤다.
‘실컷 먹었나?’
눈치 보는 걸 보니, 적당히 배가 찼나 보다.
“맛있냐?”
“어- 으응- 근데 왜 안 먹음?”
“있다가. 더 푹 삶아서 먹으려고.”
“고기. 너무 많이 삶으면 맛없는데.”
적당히 배가 찬 김 양이 고기 맛에 대해 극찬했다. 맛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은 듯한 맛이었는데, 그렇게 오래 삶았어도 탄력이 살아있고 부들부들해서 신기한 맛이라는 것.
“고소한 맛은 돼지나 소보다 더 진함. 이거 본래 코끼리 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음?”
“그랬으면 코끼리를 식용으로 썼겠지.”
“아- 그럼 이거 다 먹으면 다시는 먹을 수 없다는 소리네.”
“평생 먹어도 다 못 먹겠다. 그래서 먹으니까 곰 고기 먹었을 때처럼 막 후끈후끈 힘이 솟고 그러는 것 같냐?”
반쯤 농담 섞인 마루의 질문에 갸웃 고개를 기울인 김 양의 머리 위로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동 떠오른 듯했다.
“힘은 모르겠고. 흐응-”
게슴츠레 마루를 바라보던 김 양이 히죽 웃었다. 술도 안 먹었으면서 뭔가 알딸딸한 표정이었다.
“부작용이 생긴 것 같음.”
“무슨 부작용?”
“간이···.”
“간? 리버(Liver)?”
“좀 이상해진 것 같음.”
“간이?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우리 백정. 요즘 천정, 만정처럼 보였는데 코끼리 고기를 먹고 보니까. 한 십정 정도로 보이는걸.
???
영상으로 지켜보던 기순이 한숨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
[다 먹었으면 하던 아까 이야기나 마무리 짓자.]김 양의 미묘한 반응은 제국 황제의 베트남 참전 이야기에 묻혔다.
[레온 보나드 황제를 죽일 생각인 건 아니겠지?]“황제의 능력이 신앙을 먹고 강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황제가 신성을 얻고 전쟁의 신이나 승리의 신까지 간다면?”
황제의 능력이 공간 지각능력을 바탕으로 영역 내의 물체에 염력을 투사하는 능력이라면 그게 극한으로 강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도 원거리 저격을 막고 포탄을 유도해 명중률을 높이기까지 하는데, 신앙을 먹고 계속 강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마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생존과 안정이었다. 그리고 제국의 황제는 신성 왕국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할만한 충분한 위험성이 있어 보였다.
[황제를 네가 직접 죽이는 건 위험해.]설령 죽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뒷감당이 어려웠다. 당장 덴 브라운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고 덴 브라운을 지나간다고 해도 제국 사람들이 문제였다.
현재 레온 보나드 황제는 신앙이 생길 정도로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런 황제가 암살됐다? 공간 지각능력이 있고 원거리 저격이 통하지 않는 황제를 누가 죽일 수 있을까?
가장 큰 용의자는 마루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제국 황제가 전쟁하고 다니는 걸 그냥 지켜보자고?”
[우리가 문제가 생긴 것처럼, 제국도 문제가 생길 거다.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싱크홀을 폐쇄하고 신앙을 먹은 괴물과 식인귀를 처단한다고 했던 일이, 신성 왕국 반대파와 게릴라를 만들고 각국에 연쇄 반응을 일으킨 것처럼. 제국 황제가 전쟁을 계속한다면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소수 정예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우리와는 달리, 제국이 힘을 쓰려면 병력과 보급이 필요해.]마루가 단독으로 군단급 이상의 파괴력을 보이는 데 반해, 황제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병력, 화기, 보급이 필요했다.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병력, 화기, 보급이 그냥 생기는 건 아니었다. 적이 강해지면 강해진 만큼, 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엄청난 소모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승리였다.
결국, 황제의 계속된 승리는 그만큼 제국을 쥐어짜고 패전국을 갈아서 만든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게 기순의 생각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가 제국의 빈곤, 제국의 종말이라면 덴 아재가 그냥 있을까? 그 덴 아재가?]“······.”
확실히 덴 브라운이 총리로 있다면, 레온 보나드 황제가 제국을 망치는 꼴을 그냥 지켜보고 있지는 않겠지.
[반대로 전쟁에서 계속 승리해, 신앙을 얻어 강해지고 싶은 황제는 어떨까? 신성을 얻고 싶은 황제가 덴 아재를 용납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그러니까 네가 죽이니 뭐니 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라고 본다.]“······.”
레온 보나드 황제가 더 많은 신앙을 얻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추구한다면 스스로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일은 그랬다. 오르막이 있다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이고 물살이 빠른 곳이 있다면 느린 곳도 있기 마련.
황제가 신앙과 신성에 눈이 먼다면, 그것으로 황제의 운은 다할 것이라는 게 기순의 생각이었다.
마찬가지로 그건 마루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생존과 안전을 위해 싱크홀을 폐쇄하겠다는 생각에 빠져, 끝없이 쓸어버리려고만 한다면 지금처럼 적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언제까지 싱크홀을 폐쇄하고 다닐 건데? 여론전은 언제까지 할 거고? 우리가 싱크홀에 집착하면 할수록, 싱크홀에 뭔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라 역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아지기 마련이잖냐.]“······.”
그건 그랬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싱크홀을 폐쇄하면 할수록 싱크홀을 숨기려는 자들은 더 많이 생길 테고. 싱크홀이 위험하니까 네가 그러겠지만···. 너무 급하게 몰아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무슨 말인지 알았다. 그래도 동남아까지는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아.”
마루는 손을 댔으면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쪽이었다. 어차피 동남아 각국에 손을 댔고 한국과 제국까지 엮였으니, 지금 손을 뗀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태국을 그냥 뒀다면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졌을지 몰랐다. 하얀 코끼리만 하더라도 광역 세뇌가 가능한 능력이었으니까.
놈이 그런 세뇌 능력을 동남아 각국에 뿌리고 다녔다고 생각하면 아찔했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태국이 그러지 못한 건 각국에 놈을 견제할 만한 놈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태국을 건드리지 못한 것은 코끼리 괴물과 태국 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
그래서 마루가 태국을 무너뜨리자 다른 나라들이 태국을 직접 노리거나, 균형이 흔들린 틈을 타서 내부 권력을 노리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반응을 일으키는 상황. 그렇다면 동남아 쪽에 있는 싱크홀과 신수, 신앙 먹은 식인귀나 사이비까지는 끝내는 게 맞겠지.
다만 앞으로는 지금처럼 일단 밀어버리고 사후 정리하는 방법은 고려하는 쪽으로 해서.
만족할 만한 식사를 끝내고 나른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김 양은 갸웃했다. 마루의 말도 기순의 말도 좋은 말이고 그렇기는 한데, 그녀가 듣기엔 뭔가 불필요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던 것.
“흐응- 그냥 지금처럼 후딱 밀어버리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아직 까지는 그 괴물들. 싱크홀로 도로 기어들어가지만, 갑자기 행동을 바꿔서 싱크홀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게?”
싱크홀을 폐쇄하려고 한 이유가 뭔가? 그 괴물 때문 아니었나?
“일본에서도 그랬잖음. 쫙 퍼졌다가 다시 도쿄 싱크홀로 들어갔잖음. 싱크홀로 돌아가는 성질이 있으니까 무기화를 하니 어쩌니 그러는 거지, 사방으로 퍼지면 그딴 소리 했겠음?”
싱크홀 괴물이 가진 감염력과 침식 능력은 엄청났다. 침식이 시작되면 분 단위로 순식간에 변이를 일으켰으니, 번진다고 하면 순식간. 싱크홀로 돌아가지 않고 퍼진다면 답이 없었다.
“그러니까 만약 상황이 변하면? 싱크홀 괴물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하면? 그러니까 이것저것 재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처리하는 게 맞지 않나 싶은데. 그리고 싱크홀도 그냥 까발려버리고.”
[싱크홀의 위험성은 충분히 알렸잖아. 그래서 제보도 받았고.]“감염과 침식 위험성을 제대로 알렸음? 그리고 제대로 알리려면 싱크홀 괴물이 소금, 바닷물, 햇빛에 약하다는 것까지 알려야지.”
[소금과 바닷물에 약하다는 게 알려지면 그걸 써먹으려고 할 텐데?]배부른 고양이가 갸르르-하는 것처럼 김 양이 귀찮은 표정으로 답했다.
“어차피 우리가 싱크홀 폐쇄하면서 소금이랑 바닷물 쓴 거, 아는 사람은 다 알 거 아님? 어차피 시간 지나면 알려질 거. 지금 바로 공개해 버리고 알아서 폐쇄하든, 싱크홀 지키고 통제하겠다고 하든,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우리는 계속 싱크홀 폐쇄하면서 다니고. 응.”
김 양 생각은 그랬다. 싱크홀 무기화하려는 애들도 그게 위험하다는 건 다 알고 있었다. 위험한 거니까 전략 무기화하려는 걸 테고.
문제는 거기에 휘말리게 될 민간인이었고 골치 아프게 엮일 신성 왕국이었다. 신성 왕국이 피곤해지면 누가 피곤해지겠는가? 당당한 서열 2위인 자신도 피곤해지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래야 하나.
병신 같은 놈들이 무기화하겠다고 하다 지랄 나면 그놈들이 책임져야지.
똥을 싸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인 건 극혐인 김 양이었다.
깔끔하게 정보 공개해서, 폐쇄할 거 폐쇄하고 아니면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굳이 정치적으로 얽히고 귀찮게 그러지 말고.
싱크홀 폐쇄하는 방법도 알려줬으니 나중에 터진다고 해도 자기들이 선택한 거니까 알아서 할 테고.
“어쨌든. 소금, 바닷물, 햇빛 이야기 알려주면, 싱크홀 근처에 소금 포대라도 쌓아 놓겠지. 싱크홀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소금 쟁여 둘 거고. 그럼 된 거지. 아님?”
[······.]놈들의 약점을 공개하면 최소한 소금 비축분은 늘어날 것이라는 김 양의 말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싱크홀 관련 정보 알리고···.”
잠시 생각을 고른 마루가 결정했다.
“싱크홀 괴물에 대한 정보도 공개한다.”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공개해 버리면 일반인들이 대비할 수 있을 테니, 차라리 낫겠지.
“싱크홀 통제해서 무기로 써먹겠다고 하는 놈들은 걸리면 쓸어버린다고 경고해.”
예전에는 각국 정부나, 지배세력, 군부나 알고 있던 정보를 동남아시아 거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게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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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해체한 코끼리 고기는 신성 왕국 수상 도시로 보내졌다.
[뼛국물도 효과가 있다는 게 확인됐어요.]거대 곰 고기가 육체 능력 전반에 상승효과가 있었다면, 신수 코끼리 고기는 정신 쪽에 효과 있었다. 정신계 능력이나 지배력, 정신파 저항성이 커진다는 게 밝혀진 것.
“고기만 그런 게 아니라 곰탕도 그렇다는 거지?”
[지금까지 효과를 보면 그래요.]“김 양을 보니까 간이 붓던데. 다른 효과나 부작용은 없나?”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먹으면 효과가 좋았어요.]그러니까 그 이야길 김 양에 대입해 보자면.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마루 자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호승심이 남아있었다는 이야기겠지?
나주연은 마루의 해석에 노코멘트하기로 했다. 마루가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육 먹고 푹 자야겠어.’
어쨌거나 오늘 저녁은 코끼리 고기 수육으로 해야겠다고 결정한 나주연이었다.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지간한 약보다 더 효과가 좋아요. 우울증과 신경과민에도 효과가 좋고요.]“그래? 그럼 이건 곰 고기처럼 특식으로 쓰는 것보다 관리해서 쓰는 게 좋겠군.”
지속 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곰 고기처럼 반영구적인 효과가 있을지 몰랐다.
[네.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리고 인공지능을 탑재한 안드로이드 문제도 확인됐어요.]코끼리의 능력에 작동 오류를 일으킨 보조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경호원 문제였다.
[생각과 정신이 물질계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프로그램과 칩에도 영향을 줬어요.]“위험하군.”
[네. 사람도 위험하지만, 인공지능도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니까요.]코끼리 고기가 정신계 저항성을 높여준다면 오히려 인간이나 동물이 안전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디아나와 사만다가 보조 인공지능의 변질 예방 방법을 찾고 있으니, 조만간 대응 방법이 나오겠죠.]“대응 방법이 나올 때까지는 안드로이드 생산은 멈추도록 해.”
안드로이드가 이상 동작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안드로이드 생산을 중단하고 있던 나주연이었다.
[네.]“그리고 싱크홀 괴물 연구는 어떻게 됐어?”
[아직 까지는 소금, 바닷물, 햇빛에 약하다는 것 말고는 딱히 약점이 보이지 않아요.]인공지능 디아나가 속보를 전했다.
[베트남 평화를 위한 4자 회담이 결렬됐다고 합니다.]북베트남의 통일 의지가 강했을까? 남베트남의 분리 독립의지가 강했거나. 아니면 덴 브라운이 레온 보나드 황제의 전쟁 의지를 꺾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한국과 제국이 참여한 4자 회담이 결렬됐다는 건. 베트남 내전이 터진다는 뜻이었다.
쯧-
혀를 찬 마루가 상황실로 향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