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16)
러스트 [RUST]-1016
덴 브라운이 대놓고 물었다.
“미쳤나?”
파병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직접 개입하는 것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동남아로 가서 한다는 말이 뭐가 어쩌고 어째?
블라디마루 칼린을 잡겠다?
그 잡는다는 말이 생포한다는 이야기인지 죽이겠다고 하는 뜻인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블라디마루 칼린은 시작하면 끝을 본다는 것.
제국과 신성 왕국이 전쟁한다면 남부 연맹 식인귀와 흡혈귀들은 좋아 죽겠지. 전쟁의 틈을 타 진수성찬을 만끽할 테니까.
[말이 거칠군.]“혹시 정신계에 당한 건 아닌가? 그 여자 흡혈귀에게 당했다거나.”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 마루라면 정신계에 당해서 공격했다고 해서 용서하거나 그냥 지나갈 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국을 멸망시키는 것까지는 가지 않으리라. 동남아시아처럼 황제와 그 측근을 죽이는 정도로 끝날 가능성도 있고.
‘빌어먹을···. 블라디마루 칼린이 황제를 죽이면 제국 시민은 신성 왕국과 전쟁을 원할 텐데. 제국 사람들이 아무리 황제를 지지한다고 해도 살려둘 리 없어.’
같은 편이 정신계에 당해도 밀어버리고 죽이는 판에, 제국 황제가 정신계에 당했다? 치료고 나발이고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죽일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이건 외통수였다.
[일이 잘못되면 내가 정신계에 당했다고 발표하면 최소한 제국은 유지할 수 있을 거다.]“대체 왜?”
덴 브라운은 레온 보나드 황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과의 관계도 틀어지다 못해, 최악의 경우에는 제국도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당신은 믿음이 있나?]“······.”
믿음이라.
모든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을 의미했다.
무엇을 믿는가?
덴 브라운이 믿고 있는 건 무엇일까?
레온 보나드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처음 시작부터 그랬다. 서로 견제하고 서로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그 견제에는 분명 상대방의 폭주를 감시하고 만약 상대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한다면 제거한다는 합의가 숨어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다면, 서로가 제국을 위할 것이며 제국을 위해 상대방을 죽일 수 있다는 믿음이겠지.
덴 브라운은 레온 보나드를 감시하고, 레온 보나드는 덴 브라운을 감시하는 이상적인 믿음 속에서 제국은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있지.”
제국을 위해 그 누구도 죽여야 한다면 죽일 수 있다는 믿음. 그걸 믿음이라고 한다면. 덴 브라운에겐 분명히 믿음이 있었다.
[나도 그렇다네.]레온 보나드가 마루를 죽여야 한다고 믿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진심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
황제에 등극하고 고작 10개월 남짓한 시간. 필라델피아를 장악한 거미 군단을 물리쳤고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4개 주를 탈환했다.
수많은 도시와 마을을 식인귀와 변이 괴수로부터 해방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승전보에 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똘똘 뭉쳤고 애국심과 자신감이 충만한 상황.
동남아 시장이 중요하다고 해도, 직접 파병해 수렁에 빠질 필요는 없었다. 한국이 하는 것처럼 물자만 지원한다거나.
인도차이나반도를 휩쓸고 있는 전쟁의 불꽃에서 벗어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중심으로 시장을 장악한다거나 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야기했을 텐데?]“······.”
충분히 이야기했고,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끝까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래. 동남아 각국이 싱크홀 개입 문제로 신성 왕국 화폐를 기축통화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었나?]동남아시아 각국은 초반 결제를 신성 왕국 화폐로 사용했었다. 하지만 싱크홀 폐쇄 간섭 사태로 기축통화를 제국 화폐로 바꾸겠다고 했었다.
[그러자 신성 왕국이 바로 태국을 공격했지. 위험한 싱크홀을 폐쇄하겠다는 명분으로. 결과만 보자고, 동남아시아 각국이 제국 화폐를 기축통화로 쓰겠다고 하자, 신성 왕국이 어떻게 했나? 싱크홀만 폐쇄하면 될 것을 왜 정부와 군부를 무너뜨리고 선거를 했지?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을 것 아닌가?]“싱크홀은 명분일 뿐이고 동남아시아를 통째로 쥐려고 그런 거다?”
[선거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놈들은 이미 한국을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어. 한국 정부를 누가 만들었지? 신성 왕국이다. 신성 왕국의 주력군은 어디 출신이지? 한국군 출신 아닌가? 동남아 싱크홀 폐쇄를 한다면서 보급 공장은 어디에 지었지? 한국에 지었고.]“······.”
[과거 한국과 동남아시아를 석권한 나라가 있었지. 그들은 풍부한 인력과 자원을 통해 군사력을 키웠다. 그렇게 힘을 기른 나라가 무엇을 했나? 미합중국을 기습했다. 태평양을 장악하기 위해.]“그때와 마찬가지로 신성 왕국이 전쟁을 일으킬 거다?”
[이미 시작이다. 놈들이 보낸 싱크홀 자료. 우리가 파악한 싱크홀 자료의 공통점은 불의 고리를 타고 싱크홀이 생긴다는 거다. 신성 왕국이 싱크홀을 폐쇄하겠다고 다닌다면 태평양 전체를 자기들이 관리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괌과 하와이도 그 대상이고.]“싱크홀을 신성 왕국이 폐쇄하는 동안, 우리는 내실을 쌓으면 되지 않나? 놈들이 싱크홀 괴물과 소모전을 치르는 동안 우리는 더 많은 주를 해방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덴 브라운은 화났다. 이미 했던 이야기였다. 서로 합의했던 이야기. 신성 왕국과 적대하지 않고 힘을 기르는 데 주력하기로.
베트남전 참전 연설을 했으니 무를 수 없다며, 최소한의 병력이라도 보내야 한다고 해서 보냈더니, 한다는 소리가 블라디마루 칼린을 잡겠다?
[우리가 발전하는 동안. 우리가 내실을 쌓는 동안 놈들은 가만히 있을까? 블라디마루 칼린의 신성이 더 커지고 강해지는 것은? 신성 왕국 놈들도 계속된 전쟁으로 각성하는 병사들을 늘어날 텐데. 그건? 놈들이 동남아시아를 먹지 못하게 막는 것이야말로 제국의 미래를 위한 일 아닌가?]“······.”
레온 보나드를 바라보는 덴 브라운의 눈빛이 우묵하게 가라앉았다. 분명히 분위기가 변한 것을 알아차렸을 텐데 레온 보나드의 파란 시선은 변함없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을 어떻게 잡겠다는 거지? 신앙으로 강해졌다면서?”
[놈의 능력은 강력하지. 강하다는 건, 그만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게 놈의 약점이다.]한국에서 블라디마루 칼린이 무장 난민을 공략한 영상을 여러 차례 분석해 얻은 결론. 놈은 생명을 죽일수록 강해졌다.
동남아에서 벌어진 살육을 비교해 보면, 한국에서 보여줬던 그 강함이 없었다. 한국에서 얻은 힘이 반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
[놈이 죽일 게 없다면 어떻게 될까? 놈이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면? 그렇게 생각해보니 놈이 무리해서라도 싱크홀을 폐쇄하려 한 이유가 뭔지 알겠더군.]“······.”
레온 보나드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싱크홀에서 나오는 괴물은 이미 죽은 것들. 놈들을 아무리 죽여봐야 블라디마루 칼린의 능력은 소모만 될 뿐, 충전되지 않지.]“······.”
[천적이건 아니건. 싱크홀 괴물은 놈의 약점이다. 수천에서 수만까지는 감당할 수 있겠지. 하지만 수십만 수천만 수억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어.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생명을 흡수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지. 그래서 놈은 싱크홀 폐쇄에 집착하는 거다. 미래 자신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알고 있겠지만, 놈은 태국 코끼리 신수만 죽인 게 아니다. 동남아 싱크홀을 폐쇄한다면서 신성을 얻거나 신앙의 대상이 된 괴수와 일종의 종교 지도자를 죽였더군. 사이비가 사람들을 세뇌한다는 이유로. 식인귀가 아닌데도 말이야. 정말 사이비라서 죽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유가 뭘까? 태국 신수의 빛이 놈의 능력을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지?]“······.”
태국 신수가 일으킨 강력한 빛이 블라디마루 칼린의 능력을 검은 입자로 분해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이래도 신성 왕국과 놈을 그냥 둬야 하나? 아직도 놈들과 잘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놈들을 그냥 두면 제국은 언제나 놈들이 발아래 있게 될 거다. 그리곤 놈들의 수족이 되어 연명하게 되겠지.]“그래서 블라디마루 칼린을 잡겠다?”
[그래. 나중은 없어. 바로 지금이 놈을 잡을 최적의 기회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성 왕국은 강해질 테고, 싱크홀은 폐쇄될 터. 블라디 마루 칼린을 잡기 위해 제일 좋은 시점은 바로 지금. 당장이었다.
황제는 미쳤다.
권력의 절반을 스스로 내려놓을 정도로 명석했던 황제는 이제 없었다.
연이은 승리로 얻은 열광적인 지지, 믿음과 신성의 맛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미 자신의 논리와 결정을 만든 뒤,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덴 브라운의 말에 레온 보나드가 낮은 톤으로 웃었다.
누가 누구보고 미쳤다고 하는 건가?
신성 왕국과 블라디마루 칼린이 성역이라도 되나?
누가 결론을 낸 상태로 생각을 끼워 맞추고 있는가?
제국의 미래, 제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총리가 할 소린가?
우묵한 눈빛과 새파랗게 웃는 눈빛이 교차했다. 동시에 말하는 두 사람.
“그렇다니 유감이군.”
[동감이네.]블라디마루 칼린을 잡는 데 성공하건, 실패하건.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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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실에서 보고받던 김 양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남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는 제국군 포병대가 전선에 포격했다는 보고였다. 문제는 화끈하게 쏜 것도 아니고 깔짝깔짝 간만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베트남의 퇴각로를 열기 위해서 몇 발 경고 사격한 정도인지라, 전면 개입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포격을 안 한 건 아닌지라. 경계를 낮출 수도 없고.
북베트남에서는 남베트남군을 추적‧섬멸을 할 수 없게 됐으니 명백한 개입이라고 제국에 항의했지만, 어쩌겠나? 제국 황제가 참전을 선언했는데 그 정도에서 끝나길 다행인 거지.
진짜 마음만 먹었다면 일제 포격으로 추격하는 북베트남군을 몰살시켜버리고 전선을 끌어 올렸을 터.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김 양은 갸웃했다.
‘반격하지 않네? 반격했으면 상당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을 텐데.’
따로 한국이랑 입을 맞췄나?
북베트남은 한국에, 남베트남은 제국에 의존하게 하자고.
‘그것도 그렇지만 진짜 간만 보네?’
김 양이 제국군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물음표를 띄울 무렵. 마루는 리퍼 슈트를 입고 남베트남 전선 근처에 잠입해있었다.
저번 괴물 코끼리와 싸운 이후로 어쩐지 다시 감각이 예민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찝찝한 기분.
황제가 미치지 않은 이상 적당한 선에서 멈출 거라고 했던 기순의 예상대로, 지금까지 전황만 보면 대체로 그랬다.
북베트남군이 밀고 내려오지 못하게 경고 사격을 하는 정도에서 끝났고, 남베트남군이 후퇴할 경우 길을 여는 선에서 지원했다.
무엇보다 남베트남군이 북으로 치고 올라갈 때 같이 올라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확실히 기순의 예상대로 적극적으로 참전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상하네. 계속 뭔가 걸리는 느낌이야.’
이렇게 찝찝한 것을 보면 분명 뭔가 걸렸다.
‘코끼리 놈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나?’
코끼리 괴물은 신앙을 먹은 신수였다. 가까운 거리에서 놈의 빛에 쏘였으니 정신계 면역이라고 한들 뭔가 부작용이 남았을 수도 있었다.
‘며칠 푹 쉬는 것도 생각해봐야겠어.’
쿵- 쿠웅-
전선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포성이 울려 퍼졌다. 마루는 그 포성이 터진 곳으로 은밀히 이동했다.
쿵-
레온 보나드 황제가 ‘베트남전에 참전할 것이며, 반드시 승리하리라.’ 당당히 선언한 것에 비해 적은 규모의 포병대가 재빨리 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호언장담한 것에 비해 포병 규모가 크진 않네. 덴 브라운과 갈등이 깊어서 파병 규모가 줄어든 건가?’
기순의 생각대로라면 그랬다.
‘한국에서 자주포를 수입한다고 들었는데, K-9 자주포는 보이지 않는군.’
제국군 자주포는 확실히 달랐다. 200mm 대구경인 점도 그렇고, 엑소슈트로 포탄을 장전하는 방식도 그랬다.
‘화력 위주, 생산성 위주인가?’
팔라딘(M109A6 Paladin)이나 K-9처럼 포탑이 있는 형식이 아니라, 옛 소련의 자주포 2А3 콘덴사토르-2P(2А3 Конденсатор-2П)나 북한의 M-1989, 170mm 자주포처럼 포탑이 없는 형식이었다.
위이이잉-
마루는 초소형 드론을 이용해 이탈하는 자주포의 뒤를 밟았다. 되도록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렇게 따라간 곳에는 임시 주둔지가 있었다.
울창한 밀림을 싹 쳐내고 불을 질러 만든 공터에, 간이 벙커와 바리케이드 경비초소까지 올린 주둔지였다.
‘지뢰밭에 센서까지. 임시 주둔지라고 하더니 방비가 철통 같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
웨에에에에에엥-
“적이다!”
“2시 방향이야!”
“아무것도 안 보여.”
“움직이는 것 없음.”
“열화상에 걸리는 것 없음.”
“동작센서 감지되지 않음.”
“은신 장비다. 은신이야!”
“탐지기 가져와 빨리!”
“지향 사격 준비. 방향은 2시 방향.”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그 자리에서 멈춘 마루에 인공지능 디아나의 보고가 들어왔다.
[통신 해킹 성공했습니다. 적 교신 내용상, 현재 위치가 발각된 것으로 보입니다.]은신이 걸렸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