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19)
러스트 [RUST]-1019
12.7mm 중기관총과 괴수용 특수탄의 조합은 파괴적이었다.
투두두-
묵직한 총성 끝에 이어진 둔탁한 소리.
퍽-
두개골과 뇌수가 터지며 풀썩 쓰러지는 모습.
“어? 어? 시발?”
머리통이 날아간 괴물이 다시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계속 쏴!”
“뒈지지 않으면 그냥 갈아버리라고!”
“탄약수! 빨리!”
“탄약 가져와 탄약!”
무지막지한 십자포화에 팔다리, 머리가 날아간 괴물이 느릿하게 전진하는 모습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변이 괴수고 식인귀고 머리가 날아가면 끝나기 마련인데, 바다를 건너온 싱크홀 괴물은 머리를 잃었음에도 움직였다. 그리고 놈들은 손톱과 이빨이 없어도 치명적이었다.
사방으로 흩뿌리는 체액에 닿기라도 하면 그것으로 끝. 순식간에 감염됐고 침식이 시작됐다. 전신이 불타는 듯한 격통에 시달린 사람은 순식간에 놈들처럼 변해버렸다.
끄아아아아아-
불과 몇 분 전까지 같이 싸우던 전우가 변해버린 모습. 그리고 이어지는 감염의 확산, 침식의 전파.
“크레모아 격발!”
“격발!”
폭발음과 함께 감염과 침식의 연쇄가 끊겼다.
“접근하지 못하게 해. 어차피 놈들은 죽지 않는다.”
“기동력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다리를 쏴!”
분대 단위 소대 단위로 주요 거점을 막고 있었기에 명령이 제각각이었다.
“병신아. 그러면 팔로 기어오잖아! 팔부터 쏴!”
“머리를 조준해. 머리를!”
“다리를 쏘라니까!”
“미친 새끼야 화염방사기 꺼. 전부 불바다로 만들 생각이냐!”
소금과 바닷물을 뿌려 전진을 늦췄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전선이 무너졌을 뻔했다.
그렇게 1파를 막자마자, 2파가 들이닥쳤다.
“저 껍데기 같은 건 뭐야?”
“12.7mm 철갑탄이 안 먹혀?”
싱크홀 괴물의 외형은 끔찍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일그러진 피부에는 진물과 고름이 흐르는 것도 모자라, 말라붙은 딱지까지 있었다.
“계속 쏴. 쏘다 보면 깎여!”
“관절을 노려. 관절이 힘들면 머리를 노리고!”
보기와는 달리 화산재와 먼지가 시멘트처럼 굳어져 생성된 진회색 딱지는 어지간한 방탄판보다 단단했다.
한국군의 대응은 재빨랐다. 12.7mm로 힘들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30mm 자주 대공포 부대를 부산으로 보낸 것.
“30mm 대공포다. 대공포가 왔다!”
“그쪽은 30mm가 정리하게 하고 뒤로 빠져.”
30mm 대공포는 놈들을 갈아버리기엔 충분했지만, 대공포의 숫자가 부족했다.
“이쪽 뚫린다! 이쪽부터 오라니까!”
“여기도 급하다고!”
다급하게 내려온 150문의 차륜형 대공포로는 부산 방어도 힘들었다. 그렇게 소금과 바닷물에 느려진 괴물에도 조금씩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K-9은 언제 오는 거야?”
“6시간 뒤에 도착한다고 해. 조금만 더 버텨!”
그리고 첫 괴물이 부산에 상륙한 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 부산이 함락 위기에 빠졌고 김해와 통영까지 한꺼번에 날아갈 상황에 몰렸다.
‧
갑작스러운 싱크홀 괴물의 침공에 사령부는 비상이었다.
“백만? 어이가 없군. 언뜻 봐도 사백만은 훌쩍 넘겠는데 고작 백만이라고?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이따위로 보고 했어?”
“처음에는 백만 이하로 추산됐습니다.”
“그럼 뭐냐? 저 숫자는 뭐냐고?”
“지금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갈궈대기 시작한 사람을 다른 장군이 진정시켰다.
“놈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다는 게 문제다.”
“건너오지 못하게 얼음 바다를 깼다고 하지 않았나?”
별들의 닦달에 대령이 답했다.
“대마도 쪽 바다를 깼더니 울산과 김해, 통영 쪽으로 우회했다고 합니다.”
“엉뚱한 데 투입할 화력으로 바다부터 깨버리라니까!”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K-9 자주포까지 내려가 불사의 괴물을 막고 있지만, 간신히 전선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성 왕국 국왕은? 어떻게 됐지?”
“국왕이 부산 전선에 도착했다고 하지 않았나?”
부산 앞바다 컨테이너선 사태에서도 혼자서 싱크홀 괴물들을 밀어버렸었으니, 이번에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흠- 그래도 신성 왕국 국왕의 능력이라면 방어선이 맥없이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국왕의 능력이라면 위력이 확실하지. 놈들이 낙동강 방어선 뚫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해.”
“국왕과 연결되면 그에게 자주포 부대를 붙여주는 건 어떻겠나?”
“좋은 생각이군.”
“친위대와 함께 왔을 텐데. 자주포를 붙여주는 게 의미가 있겠나?”
“있지. 그는 중‧단거리에 강하니까.”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포병대가 생기면 운신의 폭이 넓어질 거야.”
“바로 추진하도록 하지.”
마루를 지원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는 장군들이었다.
“부산에서 긴급 통신입니다. 핵 사용 허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불가!”
“안된다고 해.
“핵 사용은 곤란해.”
“중국 상황이 이상하다는 첩보가 있었다.”
“전술핵이건 전략핵이건 최대한 핵전력을 온존해야 할 상황이라고 전해.”
부산 전선은 물고 늘어질 여력이 없었다.
“당장 전술핵을 쏴야 한다고! 아니. 전략핵을 쏘더라도 놈들이 대한 해협을 건너지 못하게 막아야 해!”
[핵은 안된다고 합니다. 현재 중국 내전에서 이상 조짐이 있어 핵전력을 최대한 온존해야 한다고 합니다.]중국 내전? 지금 중국 내전이 문제인가? 당장 밀리게 생겼는데?
“저 망할 괴물 새끼들 넘어오는 걸 막지 못하면 그놈의 핵 써보지도 못하고 털린다고. 지금 상황 제대로 전달한 거 맞나? 보고 제대로 올라간 거 맞아?”
[예. 최악의 경우엔 낙동강을 방어선으로 하라는 명령입니다. 신성 왕국 국왕의 요청이 있다면 최우선으로 요청에 응하라는 명령입니다.]핵을 써서라도 놈들이 더 몰려오지 못하게 막아야 했는데, 사령부가 핵 사용을 금지했다. 반대도 아니고 금지.
“미치겠군. 정말.”
거기에 신성 왕국 국왕의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었다.
‘죽음의 정원.’
너무 화려한 나머지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고유 능력이었다. 그걸 사용했다면 분명 목격담이 돌았을 텐데,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자주포 옮겨. 소금과 바닷물 뿌릴 준비하라고 해.”
어차피 부산을 뺏길 상황이라면, 시가전으로 시간을 끄는 게 맞았다.
‧
콰직-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던 불사의 괴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마루가 가는 곳마다 좌우나 상하로 분리된 불사의 시체가 꿈틀거렸다.
‘이 새끼들 여전하군.’
길게 이어진 그림자에서 솟아 나온 듯, 죽음의 넝쿨이 너울거렸다. 제단의 파편 성분이 함유된 단검을 매단 넝쿨이 채찍처럼 쏘아져 싱크홀 괴물을 상/하로 토막 냈다.
상체는 상체대로 하체는 하체대로, 내장이 흘러내리는 중에도 마루를 향해 달려드는 싱크홀 괴물의 상‧하체.
단 일 푼의 의지도, 목적도 없는 맹목적인 행동. 그저 반사적으로 감염시키고 침식시키려는 듯한 움직임.
그 의미 없는 동작을 멈추게 한 건, 죽음의 넝쿨이었다.
푸솨솨솨솩-
넝쿨 끝에 매달린 단검이 불사의 고깃덩이를 다짐육으로 만들었다. 이미 죽은 것이건, 불사의 괴물이건 다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치지직- K-9 자주포 대대를···. 치직-]한국군에서 K-9 자주포 대대를 붙여준다는 통신이 들어왔지만, 마루는 대응하지 않았다. 찝찝함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정원을 쓴다면 순식간에 놈들의 숫자를 줄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모아 놓은 죽음을 소진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소진한 죽음을 다시 채울 방법이 없었다. 동물들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니 동물을 잡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사람을 수확할 수도 없었기 때문.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마루는 뉴클립스와 넝쿨 단검으로 싱크홀 괴물을 상대했다. 최대한 죽음을 소진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잘하고 있다는 듯 두근거렸다.
불사의 괴물로 만든 다짐육 위에서 마루는 먼 곳을 바라봤다. 짙은 구름과 안개가 부산을 뒤덮기 시작하는 모습이 눈동자에 비쳤다.
짙은 구름은 강한 해풍에도 흩어지지 않고 덩어리져있었다.
[치직- 드론 근접 촬영 시작합니다.]처음에는 구름이 몰려오고 그 아래 밀물처럼 안개가 뒤따랐다. 조금 흐릿하다 싶었던 카메라 영상이 순식간에 먹통이 되면서 드론과의 교신이 끊기기를 수차례.
마루는 일본에서 탈출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 안개는 화산재와 먼지가 섞인 안개였다. 어쩌면 화산 먼지로 만들어진 안개일 수도 있었고.
“안개 샘플은 확보했나?”
[삐이익- 분석 들어갔습니다.]“까마귀 정찰대를 보내도록.”
[정찰대 준비 완료. 까마귀 정찰대 임무 시작합니다.]까아아악!
까악!
까마귀 정찰대가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공지능 디아나가 긴급 보고했다.
[치지직- 칙- 제국에서 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던 김기순과 교신이 끊겼습니다.]기순과 갑작스럽게 통신이 끊겼다. 마지막 교신에는 적과 교전 중이라는 정보가 남았다고 이야기하는 디아나.
스으읍- 후으으-
마루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기순이 탄 비행선도 김 양의 비행선처럼 전용 비행선이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격추할 수 없었고. 설령 격추됐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응 시스템이 있었다.
‘덴 아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습격이라.’
누구지?
왜 기순을 습격했지?
기순이 제국을 갔다 온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어쨌든 기순의 비행선을 공격할 수 있는 적이라면 셋.
신세계 질서를 부르짖는 다국적 세력, 무너진 남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한 고위급 식인귀 또는 흡혈귀. 마지막으로 제국이었다.
‘제국이라.’
제국이 기순을 공격했다? 만약 제국이 공격한 것이라면, 덴 아재가 명령하지는 않겠을 터.
‘레온 보나드 황제가 기순을 공격하라고 했다면?’
이유가 있겠지. 보이지 않는 이유가···.
마루는 다시 숨을 고르곤, 이어진 보고를 확인했다.
[치직- 극초음속 미사일로 공격당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치직-]“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안드로이드 동원을 허가한다. 헌터 동원령을 내리도록. 생존자와 블랙박스를 반드시 찾아내.”
‧
‧
‧
이제까지 싱크홀 괴물이 사방으로 퍼지지 않는 이유.
그 첫 번째. 어떤 이유가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싱크홀 밖으로 나온 괴물들은 시간이 지나면 싱크홀로 귀환한다.
두 번째. 소금과 바닷물에 약하다. 소금과 바닷물에 닿은 괴물은 죽는 것은 아니지만, 움직임이 둔화(鈍化)되거나, 비활성화된다. 다시 말해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뜻.
소금기가 씻기면 다시 활성화되지만, 바닷속에 빠지면 그걸로 끝이라고 봐야 했다. 바다는 싱크홀 괴물이 퍼지지 못하게 하는 천연 장벽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햇빛 또는 햇빛과 연관된 것에 약하다. 정제염이 효과 없는 건 아니지만, 태양과 해풍으로 만든 천일염에 비해 효과가 낮았고, 인공 태양 빛이 효과 없는 건 아니지만, 정오의 태양광에 비하면 효과가 약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불사의 싱크홀 괴물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를 단서는 태양 빛에 있었다.
“그러니까 핵이면 되는 것 아님?”
김 양의 머리 위에 ‘핵!!!’ 이라는 느낌표가 우다다- 떠올랐다. 수소폭탄의 원리는 사실상 인공 태양의 원리와 같았다.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삼중수소를 반응시켜 열과 빛을 만드는 것. 그러니까 크고 우람한 수소폭탄으로 터뜨리면 불사의 괴물이고 뭐고 깔끔하게 잿더미가 될 것이라는 주장.
[확실히 핵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가 있었군요.]핵이 약점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후드의 이야기에 나주연이 반론했다.
[잊었나요? 최소의 싱크홀이 생긴 이유가 핵 때문이라고 했었는데요.]일본의 싱크홀에 핵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나? 싱크홀과 핵이 반응해 엄청난 규모로 커졌을 것으로 추측됐기 때문이었다.
김 양, 후드, 나주연이 회의하고 있는 중, 인공지능 디아나가 긴급 상황을 알렸다.
[비상사태입니다. 제국과 회담을 하고 돌아오던 김기순의 비행선이 정체불명의 적에 공격받았습니다.]“!”
[?] [!] [폐하께서 현재 시간부로. 전시태세로 전환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오